•  


李在明標 成長戰略 企劃者 이한주 京畿硏究院醬의 ‘李在明論’|新東亞

李在明標 成長戰略 企劃者 이한주 京畿硏究院醬의 ‘李在明論’

“基本所得 말 바꾸기? 公正成長에 다 담았다!”

  • 金賢美 記者

    khmzip@donga.com

    入力 2021-07-20 10: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基層民衆 삶 體得한 李在明 競爭力, 아무도 못 따라가

    • 더 有能한 4期 民主黨 宣言, 親盧·親文度 함께해야 政權 再創出

    • ‘집 떠난 進步層’과 ‘合理的 中道層’ 確保가 關鍵

    • 統計로 본 韓國 社會, 통째로 외우는 理由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이한주(65) 京畿硏究院腸(嘉泉大 글로벌經濟學科 敎授·寫眞)은 李在明 京畿知事의 代表 公約인 基本所得 企劃者로 알려져 있다. 이 知事는 大選 出馬 宣言文에서 “基本所得을 導入해 不足한 消費를 늘려 經濟를 살리고 누구나 最小限의 經濟的 豐饒를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社會를 만들겠다”고 했다. “適正한 分讓住宅 供給, 充分한 基本住宅 供給으로 더 以上 집 問題로 苦痛 받지 않게 하겠다”며 ‘基本 시리즈(基本所得·基本住宅·基本金融)’를 言及하기도 했다.

    하지만 ‘政策 브레인’이라는 說明만으로는 이 知事와 李 院長의 35年 因緣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不足하다. 1986年 初 스물두 살의 司法試驗 準備生 李在明(그해 10月 司試 合格)과 경원대(現 嘉泉大) 經濟學科 敎授로 갓 赴任한 서른 살의 이한주는 當時 韓國 社會의 矛盾이 凝縮돼 鎔鑛爐처럼 끓어오르던 都市 城南에서 만났다.

    “城南住民敎會를 이끌던 이해학 牧師님(李仁榮 統一部 長官 丈人) 敎會 行事에서 李在明을 처음 봤다. 말數가 적고 얼굴이 깨끗하던 게 기억난다. 나는 大學 時節 서울대基督學生會에서 活動했다. 當時 反獨裁 運動, 貧民運動을 主導한 이해학 等 敎界 젊은 리더와 因緣이 많았다. 城南에 있는 學校로 오자 이 牧師님이 함께 일을 하자고 불렀다. 그때는 敎授 身分으로 市民運動에 參與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분당新都市가 建設되기 直前 1980年代 京畿 城南은 한쪽에선 부수고 다른 한쪽에선 만들었다. 移住民, 撤去民 問題가 큰 이슈였다. 그렇게 이 牧師님과 함께 活動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李在明이라는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는 消極的 參與者였다. 李在明이 司試에 合格한 뒤 다시 만났다.”

    이 知事는 只今도 그를 ‘敎授님’이라고 부른다.

    司法硏修院을 마치고 李在明은 京畿 성남시 新興1棟 市廳 앞에 辯護士 事務室을 냈다. 얼마 後 이 敎授가 辯護士 李在明에게 도움을 請했다. 傳貰 詐欺를 當해 거리에 나앉을 危機에 處해서였다. 城南 住公아파트에서 傳貰살이를 始作한 지 1年쯤 지난 어느 날 낯선 男子가 찾아와 身分證을 보여주더니 “이 契約을 認定할 수 없다. 當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男便 몰래 傳貰 契約을 한 夫人이 保證金을 가지고 떠나버려 離婚訴訟 中이라는 것이다. 이 辯護士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리 經濟學者라도 눈뜨고 詐欺를 當할 뻔했다. 이를 契機로 이 辯護士는 城南地域 運動家와 大學生들의 專擔 辯護士가 됐다.



    鎔鑛爐 같은 都市 城南에서 李在明과의 만남

    “예전부터 學生運動을 하다 問題가 생기면 逃亡가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運動 方向이 달라졌다. 지학순 主敎가 있는 講院 原州로 가면 協同組合論者가 되고, 工團이 密集한 서울 구로동으로 가면 現場派가 되고, 基督敎界人 인명진이나 제정구를 만나면 勞動運動派가 되고, 京畿 城南으로 가면 貧民運動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게다가 城南은 嘉泉大, 한국외국어대(龍仁分校), 慶熙大(水原分校)가 만나는 地點이어서 學生運動의 物理的 空間이 됐다. 全國的으로 學院自主化 鬪爭이 擴散하던 時期에 示威 中 다치거나 連行된 學生의 辯護를 이 辯護士가 도맡았다.”

    人權辯護士 李在明의 活躍이 始作됐다. 以後 李在明은 首都圈 南部 貯油所 反對鬪爭, 쓰레기 燒却場 反對運動, 詩 議政 監視活動, 詩 執行部 辦公費 公開 運動 等을 이끌며 存在感을 드러냈다. 2002年 ‘파크뷰 特惠分讓’ 疑惑 提起로 市民運動家로서 名聲과 함께 公務員 詐稱 前科 記錄을 안게 된 李在明은 2006年 政治에 뛰어들었다. 2010年에 이어 2014年 城南市長 再選에 成功했고, 2017年 더불어民主黨 大選 競選에서 3位에 그쳤지만 2018年 京畿知事에 當選됐다.

    이 過程에서 李在明과 이한주는 政治的 同志가 됐다. 政策 基調나 公約을 만들고 引受위를 꾸리고 市·道程을 構想할 때에는 늘 곁에 있었다. 特히 2010年 全國을 떠들썩하게 한 ‘성남시 모라토리엄 宣言’은 初選 市場 李在明의 行政力과 政治力을 立證하며 그가 全國的 人物이 되게 한 事件이다.

    “當選 後 引受위에 들어가 詩 財政을 살펴보니 그동안 숨겨온 5000億 원臺 빚이 튀어나왔다. 이 돈은 판교新都市 開發과 關聯해 編成된 特別會計로서 바로 그해 國土部에 돌려줘야 할 돈이었는데 前任 市長 때 이리저리 轉用해 거의 다 써버렸다. ‘現實的으로 갚을 수 없다고 하자.’ 이 市長에게 모라토리엄을 提案했다. 갚을 돈이 없기도 했고 다른 目的도 있었다. 2010年 進步系 市長이 當選되자 城南市에선 福祉 欲求가 噴出했다. 그 많은 要求를 다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市民에게 알릴 必要가 있었다. 結果的으로 모라토리엄 宣言과 脫出은 成功的이었다. 성남시는 豫算 削減과 緊縮財政으로 3年 6個月 만에 모라토리엄에서 卒業했고 이 市場은 再選에 成功했다.”

    2018年 京畿硏究院長으로 赴任한 그는 李在明의 두 番째 大選 挑戰을 지켜보고 있다. 7月 5月 수원시 京畿硏究院에서 李 院長을 만났다.

    6월 17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정책협약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이한주 경기연구원장(맨 오른쪽). [경기도 제공]

    6月 17日 慶南道廳에서 열린 政策協約式에 參席한 李在明 京畿知事(오른쪽에서 두 番째)와 이한주 京畿硏究院腸(맨 오른쪽). [京畿道 提供]

    맞서 싸우지 말고 國民에게 呼訴하라

    - 캠프에서 윤후덕 議員과 共同 政策擔當인데 具體的으로 어떤 役割인가.

    “싱크탱크 出帆을 準備하고 있다. 各 分課를 構成하고 政策을 튜닝하는 것이 내 일이라면, 이렇게 生産한 課題를 政務的으로 檢討해 適切한 方式으로 公開하는 것이 尹 議員의 일이다. 쉽게 말해 내가 ‘李在明 政府’의 議題와 政策은 무엇이어야 하나를 얘기한다면, 尹 議員은 只今 그것이 꼭 必要한가, 豫算은 얼마나 들까, 政治的으로 成功할 수 있을까 같은 메시지라도 어떻게 내보내야 效果的일까 檢討한다. 尹 議員은 政務 感覺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 둘 다 必要하다.”

    - 7月 4日 민주당 豫備競選 國民面接에서 이 知事가 3位 안에도 들지 못한 것은 뜻밖이다.

    “8名이 1名을 集中 攻擊한 8代 1 競選 아니었나. 1等 走者가 牽制를 받는 것은 當然하다. 우리 戰略은 다른 候補들이 攻擊해 와도 맞서 싸우지 말고 國民에게 呼訴하는 方式으로 가자는 것이다. 黨員만 바라보지 말고 ‘黨員을 통해서 國民을 向해 말하자’다. 그런데 이 知事 스타일이 挑戰하는 것은 쉬운데 挑戰받는 것은 語塞해한다. 그냥 싸우라고 했으면 잘할 텐데 自制하라고 하니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選擧는 黨 中心으로 치러야 한다. 出馬 宣言에서도 김대중·노무현·文在寅 政府의 土臺 위에 더 有能한 4期 民主黨 政權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競選 過程이 過熱되면 2007年 大選 같은 일이 벌어진다.”

    工巧롭게도 7月 5日 民主黨 宋永吉 代表가 寬勳클럽 招請討論會에서 이 問題를 言及했다. “親文 黨員 一角에서 李在明 知事를 牽制하는 것 아니냐”는 指摘에 宋 代表는 민주당에 뼈아픈 記憶을 꺼내 들었다.

    “노무현 大統領 任期 末 鄭東泳이 黨 大選候補가 되자 一部 親盧 勢力이 鄭東泳보다 李明博이 되는 것이 낫다는 雰圍氣로 안 찍었다. 結局 500萬 票라는 壓倒的 車路 이명박 候補가 勝利했다.”

    - 於此彼 민주당 大選候補는 李在明이라고 樂觀하나.

    “우리에겐 몇 퍼센트 支持率로 이番 競選을 마무리 짓느냐가 重要하다. 萬若 30% 近處에서 競選이 끝나면 李在明을 支持하지 않은 나머지 70%가 움직일 餘地가 너무 많다. 그렇게 되면 前例 없는 政治 게임이 펼쳐질 것이다. 最小限 45%를 넘기는 것이 目標다.”

    - 與黨 候補로는 1位를 하고 있지만 20%臺에 갇힌 박스圈 支持率에 對한 憂慮도 있다.

    “그렇다. 이 支社의 支持率은 文在寅 大統領 支持率로 代辯되는 與圈 支持率의 盒과 野圈 忌避層 사이에 固定돼 있다. ‘집 떠난 進步層’과 ‘合理的 中道層’을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關鍵이다.”

    最近 代表 政策인 ‘基本所得’에 對한 이 知事의 立場 變化를 擧論하는 이가 많다. 出馬 宣言에서 言及은 했지만 수많은 政策 中 하나로 羅列하는 데 그쳤다. 온라인 記者懇談會에서는 “基本所得은 조금 옆으로 配置한 것이다” “全 世界에서 全面的으로 導入한 事例는 없다” “財源 負擔 問題도 있는 것이 現實이다”라며 只今까지 攻擊的으로 基本所得을 主張해 온 것보다 鎭重한 姿勢를 取했다. 李在明 候補는 競選 候補 討論에서 “아직 公約을 하나도 發表한 게 없어서 基本所得이 1番이라 할 수가 없다”라고 하더니 “早晩間 發表하겠지만 順位로는 公正成長이 1番課題다”라며 ‘公正成長’을 들고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누구나’ N分의 1로 갈라주면 무슨 도움 되나

    - 全 國民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基本所得 公約을 抛棄했나.

    “最近 論調를 바꾼 것은 事實이다. 그러나 基本所得에 對한 基調를 바꾼 것은 아니다. ‘基本所得, 基本住宅, 基本金融’은 모든 사람이 國民으로서 누려야 할 最小限의 經濟的 基本權을 保障하는 政策이다. ‘基本’ 시리즈는 福祉制度의 單純한 擴張에 그치지 않고, 國民의 經濟的 基本權 保障을 통해 총수요를 늘려 經濟를 善循環시키고 個人 力量을 키워 實質的으로 公正한 競爭과 革新을 圖謀하는 經濟政策이다. 다만 急激한 財政 擴充의 어려움 等으로 基本 政策을 單番에 施行하기보다는 靑年基本所得과 類似하게 部分的으로 施行하거나 낮은 水準에서 出發해 그 效果에 對한 客觀的 評價와 國民的 同意를 통해 段階的으로 擴大할 수도 있다는 것을 提案했다. 基本所得은 20~30年을 두고 반드시 간다.”

    - 基本所得 基調를 維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基本所得은 設計에 따라 不平等을 解消하는 아주 좋은 方式이다. 基本所得의 英語 名稱이 ‘유니버설 베이식 인컴(Universal Basic Income)’이다. 앞의 두 單語가 ‘누구나’라는 意味다. 그 ‘누구나’ 때문에 이 政策을 實現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여러 基本所得론 中에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共有 部(Common Wealth)’의 槪念으로 보면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財貨를 無條件 N分의 1로 갈라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境遇에는 個人에게 돌아가는 몫이 매우 작아진다. 政策은 哲學이 아니다. 政策은 삶이고 政治다. 이 知事의 ‘基本 시리즈’는 ‘유니버설 베이식 인컴’과 ‘유니버설 베이식 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 두 軸으로 돼 있다. 인컴은 돈이지만 서비스는 財貨나 用役 다 該當된다.

    例를 들어 大學 敎育이 우리 모두에게 꼭 必要한 것이라고 合意되면 ‘유니버설 베이식 에듀케이션(Universal Basic Education)’으로 간다. 모든 大學生에게 奬學金을 支給하는 데 年 5兆8000億 원이 든다. 當場은 큰돈으로 보이지만 우리 經濟가 每年 2~3%씩만 成長해도 10年 뒤엔 큰 負擔이 아닐 수 있다. 每달 50萬 원씩 全 國民에게 나눠주려면 年間 300兆 원이 必要하다. 우리나라 國內總生産(GDP)李 2000兆 원이 조금 안 되는 現實에서 300兆 원은 큰 負擔이지만 앞으로 GDP가 5000兆, 7000兆 원臺가 되면 300兆 원도 큰돈이 아니다. 그래서 基本所得 槪念은 가져가되 實現 可能性이 있는 것부터 段階的으로 實現하자는 戰略이다. 이 知事 公約집에도 ‘基本所得委員會를 둔다’ 라는 內容을 넣었다. ‘大統領 公約이니까 無條件 한다’가 아니라 向後 國民이 參與해 基本所得을 어떻게 設計해 나갈지 協議하도록 했다.”

    野黨은 基本所得 代案 말하는데 與黨은 批判만

    - 민주당 內部에서도 이 知事의 ‘말 바꾸기’에 對한 批判이 적지 않다.

    “野黨은 오히려 基本所得에 對한 代案을 내놓고 우리와 競爭하는데 與黨 內部에선 無條件 싫다고 批判만 하니 안타깝다. 이 知事가 오래前부터 提案하고 성남시와 京畿道에서 部分的으로 施行한 基本所得 論爭이 擴散하는 것은 우리 社會의 패러다임 轉換을 위해 매우 鼓舞的인 現象이다. 이 知事가 치고 나가지 않았다면 安心所得, 公正所得, ‘簿(負)의 所得稅’ 같은 政策이 世上에 나왔겠나. 이 知事가 大選 出馬 宣言에서 밝힌 것처럼 政策에는 著作權이 없고 政府는 國民을 위해 수많은 政策 가운데 가장 效率的인 것을 選擇하면 된다. 選擧 過程에서 熾烈한 論爭을 통해 國民 삶을 安定化하고 質을 높이는 데 必要한 政策의 輪廓이 드러날 것이라고 期待한다.”

    - 이 知事의 ‘公正成長’과 基本所得은 어떤 關係인가. 安哲秀 國民의黨 代表가 6年 前 言及한 ‘公正成長’과는 어떤 差異가 있나.

    “2015年 安 代表가 提示한 公正成長論의 骨子는 공정한 經濟制度(公正去來, 公正 分配, 公正 租稅)를 바탕으로 한 革新成長이다. 우리 社會에 蔓延한 不公正과 不平等이 低成長의 主要 要因이라는 데 共感하지만 이 知事가 主張하는 公正成長은 이보다 더 本質的인 槪念이다. 公正의 土臺 위에 새로운 知識·技術이 創出되고 傳播되는 力動的 革新 過程이 經濟成長이다. 이런 成長의 惠澤을 누릴 때 새로운 革新 動力이 蓄積된다.

    過去 ‘綠色成長’이나 ‘創造經濟’는 公正의 土臺가 없었고, 革新 方向도 不在했다. 成長 그 自體가 目的이다 보니 結果的으로 土建事業, 展示行政, 不動産 景氣浮揚으로 치달았다. 所得主導成長은 所得分配 改善에 置重했고 公正經濟에 疏忽했다. 不公正한 革新은 持續할 수 없고, 革新 없는 工程은 消滅한다.

    우리나라 産業構造와 勞動構造는 大轉換期에 접어들었다. 디지털 轉換과 에너지 轉換은 새로운 일자리를 創出하지만 旣存 勞動者를 失業과 不安定한 일자리로 내몰 憂慮가 있다. 이들의 力量을 强化해 大轉換 過程을 主導하는 것뿐 아니라 旣存 勞動者 雇用을 安定化하는 ‘정의로운 轉換(Just Transition)’李 公正成長의 重要한 軸이다. 그런 意味에서 基本所得度 公正成長의 한 部分이다.”

    - 30年 넘게 政治的 同伴者로서 지켜본 李在明의 長點은 무엇인가.

    “총명하다. 狀況判斷이 빠르다. 參謀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처음엔 反對하다가도 結局 ‘이 사람 判斷을 따라가는 게 맞구나’ 깨닫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적어도 ‘일’은 할 수 있겠구나’하는 確信이 든다. 이 知事는 平生 邊方에서 基層民衆으로 살았다. 머리 좋고 自尊心 센데 處地가 워낙 悲觀的이다 보니 ‘죽자’ ‘精神 차려라’ 每日 이런 말과 다짐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氣層이 必要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그들의 不公平과 抑鬱함을 조금이라도 解決해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이 知事의 平生 信念이다. 내가 보아온 이 知事는 只今까지 한 番도 自己 信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李在明의 魅力이자 競爭力이다.”

    이 知事는 京畿知事를 거치면서 우리 社會 統計數値를 大部分 외우고 있다. 社會 各 部門의 現況과 數値를 記憶하고 그 意味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우리 社會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指針書라는 게 李 院長의 主張. 李 院長은 指導者라면 數字에 剛해야 한다고 말한다.

    “統計는 只今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指導者가 現在 位置도, 가야 할 方向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大統領이 모르면 아무도 모른다. 參謀들도 알려고 努力하지 않는다. 機會 봐서 出馬할 생각만 한다. 이 知事는 韓國 社會를 工夫하고 있다. 只今 當場 누구와 討論해도 지지 않는다고 壯談한다.”

    #李在明 #이한주 #基本所得 #新東亞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