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에 對한 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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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 1973年 工事 出帆 以來 여러 分野에서 批判을 받았다. 한국방송공사에 對한 批判은 主로 社長 任命 方式, 受信料 徵收, 與圈 偏向性 等에 集中돼 있다. 한국방송공사의 與圈 偏向性은 언제나 存在했지만 2013年에 이르러서는 그 程度가 더욱 심해져서 김대중 政府 以前 水準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指摘이 提起된다. [1]

人事 論難 [ 編輯 ]

大韓民國 放送法 第 50兆 2項에 따르면 KBS의 "社長은 理事會의 提請으로 大統領 이 任命"하게 돼있다. [2] 이 때문에 政權이 바뀔 때마다, 或은, 政府의 意志에 따라 KBS의 社長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維新憲法 時期와 新軍部 統治 時期에는 政府가 言論을 統制하여 아무런 問題도 提起되지 않았으나, 1987年의 6·29 宣言 以後 政府의 言論 統制가 풀려 KBS 社長이 任命될 때마다 이에 對한 여러 意見이 提起되었다. 特히 KBS 內部에도 變化가 생겨 1988年 5月 28日에 KBS 勞動組合이 結成된 以後 1990年 서기원 社長 退陣運動과 2003年 서동구 社長 退陣運動을 벌였다. [3]

서영훈 社長 辭退 壓迫 [ 編輯 ]

1987年의 6·29 宣言 以後 1988年에 KBS 理事會에서 獨立的으로 서영훈氏를 社長으로 選出했으며, 以後 KBS에 相當한 內部改革이 進行되고 있었다. 그러나 3黨 合黨 으로 巨大 與黨이 된 當時 盧泰愚 政府와 民主自由黨 은 KBS에 對한 監査院 特別會計를 통해 서영훈 社長을 辭退 壓迫했고, 서영훈 社長은 1990年 3月 2日 KBS 理事會에 辭表를 提出하고 辭退했다. 以後 KBS 勞組는 言論 掌握 이라며 反撥하였으나 KBS 理事會는 노태우 大統領에 서기원의 社長 任命을 提請하였다. (이는 以後 노태우 政權의 落下傘 人事라는 評을 받았다. [ 出處 必要 ] ) 勞組가 鬪爭 水位를 높였으나, 노태우 大統領은 4月 9日 서기원을 社長으로 임명하였다. KBS 勞組는 그 다음날부터 社長 出入 沮止等을 試圖했으나, 이 狀況이 持續되자 KBS에 公權力이 投入되어 많은 勞組員들이 連行되었다. 以後 輿論은 勞組의 罷業을 支持하는 쪽으로 흘렀으나, 勞組員들이 現場으로 復歸하면서 罷業은 마무리되었다. [4]

1990年 KBS 事態 [ 編輯 ]

서동구 社長 任命 [ 編輯 ]

노무현 政府 出帆後 盧武鉉의 大選候補 時節 言論特報를 지낸 서동구를 社長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落下傘 出身 論難이 沸騰하였고 勞組는 社長을 認定할 수 없다며 出勤沮止 鬪爭에 나섰으며, 任命된 지 3日 만에 서동구는 辭職書를 提出했다. 以後 KBS勞組와 市民團體로 構成된 'KBS 社長 共同推薦委員會'가 推薦한 3人 中 한名이었던 정연주가 選任됐다. [3]

정연주 社長 解任 [ 編輯 ]

現行 放送法 床에 明示된 KBS 社長 任命權에 面職權 包含 與否를 놓고 政府와 한나라黨 은 任命權에 免職(解任)權이 包含된다고 主張하면서, 當時 정연주 社長에게 辭退를 慫慂하였다. [5] [6] 2008年 8月 5日 , 監査院 은 KBS에 對한 特別監査 結果를 發表하였다. 이 때까지 監査院은 總 4次例에 걸쳐 監査 結果에 對한 정연주의 疏明 機會를 주기 위해 出席을 要請하였으나 정연주는 이를 拒否하였다. [7] 이에 따라 정연주의 疏明 없이 KBS에 對한 監査院의 特別監査를 마친 監査院은 KBS 理事會에 정연주 解任勸告案을 傳達하였다. [8] 이에 對해 8月 6日 , 정연주 社長은 記者會見을 열고 監査院의 特別監査 結果를 反駁하며 監査院의 特別監査 自體가 '政治的인 意圖'가 있다고 主張했다. 또한, 現行 放送法에는 KBS 社長 解任權이 大統領에게 없음을 强調하였다. [9] 그러나, 정연주의 記者會見이 있고 난 다음捺印 8月 8日 에 理事會는 정연주 社長 解任決議案을 議決했다. 解任建議案이 可決된 後, 정연주 前 社長을 위한 辯護人團이 構成되고 解任提請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과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을 法院에 提出하였으나 모두 棄却되었다. [10] [11] 이에 對해서 中道·進步的 團體 및 言論에서는 李明博 政府 가 放送 掌握과 李明博 政府의 口味에 맞는 코드 人士를 社長 자리에 앉히기 위해 監査院, 檢察 , KBS 理事會를 動員하여 解任시켰다고 보았고, 保守的 團體 및 言論에서는 KBS가 지난 10年동안 左偏向的이었고 鄭 前 社長이 이른바 코드人事라고 主張하며 鄭 社長 解任에 贊成했으나, 野黨과 市民團體 等에서는 言論掌握이라며 反對하는 等 政治的 性向에 따라서 意見이 엇갈렸다. [12] KBS 勞組는 정연주 社長의 退陣을 反對하는 陣營과, 贊成하는 陣營으로 갈리기도 했다. [13] [14]

2009年 11月 12日 정연주가 李明博을 相對로 낸 解任處分 無效 請求 訴訟에서 裁判部는 "解任 處分 節次上 瑕疵가 있고, 裁量權도 濫用된 것으로 보인다"고 原告 勝訴 判決을 내렸으며, [15] 起訴됐던 背任 嫌疑에 對해서도 無罪 判決을 내렸다. [16]

이병순 社長 任命 [ 編輯 ]

정연주의 退陣 以後 8月 25日 KBS 理事會는 이병순 當時 KBS 비즈니스 社長을 KBS 新任 社長으로 任命 提請하였고, 8月 26日 李明博 大統領은 이병순 社長을 임명하였으며, 8月 27日 KBS의 公社化 以後 첫 KBS 內部 出身 社長인 이병순 社長이 就任하였다. 이에 對해 "KBS人들이 工事 出帆 以後 35年 동안 그토록 渴望해 오던 첫 番째 KBS 出身 社長이 된 것이다"라고 높이 評價하면서 罷業 決意 等 大 政權 鬪爭에 나섰던 KBS 勞動組合은 "첫 KBS 內部 出身 社長을 歡迎한다."며 이병순 社長을 認定하였다. [17] . 또한 上級團體인 言論勞組가 정연주를 爲始하며 政治 偏向性과 組合費 橫領等을 하고 있다며 全國言論勞動組合에서의 脫退 投票를 進行하였고 [18] . 投票 結果가 可決되면서 [19] 9月 2日 言論勞組에서 脫退한 獨立勞組로서의 KBS 勞動組合으로 出帆하였다. 그러나 KBS 記者協會와 KBS PD協會로 構成된 KBS 社員行動은 이병순 社長을 無效라 主張하며 KBS 對內外的으로 半 이병순 活動을 벌였다. 2008年 11月 13日, 政權에 對한 批判의 水位가 높았던 프로그램 "時事투나잇"을 廢止하면서 論難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金仁圭 社長 選定 [ 編輯 ]

정연주 社長의 殘餘任期를 채운 이병순 社長 後任으로 2009年 11月 18日 KBS 理事會는 金仁圭 디지털미디어協會長을 選定했다. 그러나 17代 大選當時 이명박候補 放送戰略室長 經歷이 問題가 되었다. 勞組는 金仁圭를 社長으로 認定할 수 없다며 出勤沮止鬪爭을 벌였다. 그러나 金仁圭 退陣을 要求하는 總罷業의 贊反投票結果가 否決되면서 內訌이 일기도 했다. [20]

以後 2010年 12月 30日 楊正哲 前 靑瓦臺 祕書官은 金仁圭가 靑瓦臺 高位 人士를 만나 "KBS를 掌握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한 事實을 暴露하면서 放送 掌握 論難이 加重되기도 했다. [21]

親政府 性向 [ 編輯 ]

앞서 言及했듯 KBS 社長의 任命權을 大統領이 가지고 있어 뉴스 프로그램에 政府의 政策에 유리한 報道들이 많은 比重을 차지할 때가 있으며, 政府의 政策에 對한 特輯 放送이 非定期的으로 編成될 때가 있다. 이 때문에 政權이 바뀔 때마다 KBS 內部에서도 批判의 목소리가 있다.

李明博 政府 [ 編輯 ]

社長 任命과 縮小報道 論難 [ 編輯 ]

李明博 政府 때의 境遇, 側近과 大選候補 言論 特報 出身을 KBS 社長으로 任命 [22] 하였다. 그리고 政府批判的人 報道를 한 構成員에 對해서는 重懲戒를 내리고 [23] , 野黨과 市民社會界로부터 政府와 與黨 쪽으로 偏頗報道한다는 論難을 받았다. [24] [25] [26] 例를 들어 뉴스 프로그램에서 金碩基 當時 警察廳長 內定者가 指揮한 龍山4區域 撤去民 示威 鎭壓 및 靑瓦臺의 李健熙 에 對한 單獨赦免 같이 政府에 不利한 事件들은 比重이 縮小되어 報道된 反面, 아랍에미리트의 原電 數週 等 政府에 유리한 政策 및 事件에 對한 報道는 많은 比重을 차지하였다. [27] [28] 라고 過去에 批判이 있으나 事實 이는 單純下 觀點의 差異일뿐이다. 용산 撤去民 示威 鎭壓은 適法한 公權力의 行使로 보는 것이 더 妥當하다. 아랍에미리트 原電 樹州는 只今 와서 보면 正말 國益을 위한 일이었다.

追跡60分 4大江便 不放 [ 編輯 ]

2010年 12月 8日 KBS 追跡60分 에서 4大江 事業에 對한 放送이 될 豫定이던 가운데 KBS側은 갑작스레 放送을 取消, 保留했다. KBS側은 '法院의 判決이나 公的 機關의 判定에 決定的인 影響을 줄 수 있는 報道나 論評은 愼重을 期해야 한다'는 KBS 放送强力 20項에 依해 取消했다고 밝혔으나, KBS 勞組側은 "언제부터 裁判 宣告 日程을 보고 放送 與否를 決定했나"라며 訴訟이 進行 中인 모든 事案에 對해 放送을 못하게 한다면 放送할 수 있는게 얼마나 있겠느냐며 强力 反撥하며 "8日 KBS 民主廣場에서 放送保留決定 糾彈大會를 열 計劃"이라고 밝혔다. 한便, KBS 社內에서는 '4大江 事業에 對한 言及은 禁忌'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어 이러한 疑惑이 드러난것 아니냐는 疑惑도 提起하고 있다. [29] 이에 앞서 11月 17日 追跡60分 에서 천안함 被擊 事件 을 다루려고 했으나, 갑자기 放送 取消에 들어가 反撥한 바 있어 KBS에 對해 政權의 外壓이 作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論難이 불거지고 있다. [30]

2011年 補選期間 엄기영 不法 콜센터 摘發 물타기 [ 編輯 ]

2011年 에 있었던 再補選 에서는 KBS의 兩非論的인 報道가 指摘받기도 했다. 再補選이 있기 前 엄기영은 不法 콜센터 運營으로 因해 選菅委에 摘發되어 2名이 拘束되는 事態를 빚었다. 같은날 한나라당은 최문순의 文字中 一部가 事實과 다른 部分을 指摘하며 이것도 不法選擧라고 主張했다. KBS는 뉴스에서 "政治攻防"으로 묶어서 與野의 싸움처럼 報道했다. 이에 對해 KBS 公正放送推進團은 "KBS 뉴스는 相對인 民主黨 최문순 候補 側의 虛僞 文字메시지 發送 件과 함께 묶어 與野의 政治的 攻防으로 處理했다"며 "常識的 次元에서 比重을 따지면 旅券에게 致命的인 不法 選擧 惡材를 '機械的 中立' 報道 를에 가두다 보니, 結果的으로 '물타기'가 돼버린 것"이라고 指摘했다. 選菅委가 摘發하여 拘束된 事案(엄기영側)과, 한나라당이 指摘하는 文字 中 事實과 다른 部分이 있는 것(최문순側)과는 무게感의 程度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KBS는 엄기영의 不法選擧 運動 摘發의 主體가 된 選菅委와 警察의 立場을 縮小, 歪曲하고 민주당의 一方的인 主張인것처럼 報道했다. [31]

2012年 總選 期間 문대성 論文剽竊 非報道와 金容民 막말 報道 [ 編輯 ]

2012年 總選을 앞두고 새누리黨 문대성 候補가 論文을 剽竊했다는 疑惑이 提起되었다. 3月 26日 以後 ‘代筆’과 ‘二重剽竊’ 疑惑까지 나왔고 及其也 學術團體協議會까지 나와 文 候補 論文이 剽竊이라고 確認하면서 事態는 더욱 커졌지만, KBS 全國 뉴스에서는 單 한 件의 리포트도 放送되지 않았다. 3月 26日부터 4月 3日까지 KBS 本社 記事가 作成한 剽竊 關聯 記事는 短信 記事만 1件이었고, 이마저도 主要뉴스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實際로 取材記者들은 이 問題의 深刻性을 把握하고 社內에 情報報告도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民主黨 金容民 막말 事件이 터지자 4月 4日부터 이 內容의 리포트 뒷部分에 함께 묶어서 내보낸 것이다. ‘候補 資質 論難’이라는 題目의 리포트에서 民主黨 金容民 候補의 막말事件은 51秒였고, 새누리당에 不利한 문대성 論文 剽竊 論難은 26秒에 不過했다. 이날부터 KBS는 9時뉴스에 닷새 連續으로 네番째(5日), 세 番째(6日), 두 番째(7日), 세 番째(8日) 等 9時뉴스 앞部分에 이른바 金容民 막말 波紋을 集中 配置해 議題化했다. [32] 한국방송공사 새勞組는“주부들을 對象으로 하는 아침뉴스 프로그램에도 金容民을 仔細히 紹介한 反面 문대성 論文剽竊 疑惑은 單獨 리포트 한 番도 報道하지 않았고, 與野 攻防리포트에서 한番씩 言及하는 程度였다”고 批判했다.

한便 KBS는 祭需 性暴行 未遂 疑惑을 받고 있으며 KBS出身이기도한 새누리黨 김형태 候補에 對해서도 選擧가 끝날 때까지 한 件도 報道하지 않았다. 지난 8日 暴露된 以後 浦項支局에서 두 次例 短信記事가 나간 것이 全部였다. 이를 두고 KBS 새勞組는 罷業特報에서 “KBS의 이番 總選 報道가 歷史的으로도 言論學 敎科書의 한 페이지를 裝飾할 可能性이 높다”고 慨歎하면서 “偏頗終結者 KBS 總選報道”라고 批判했다. [33]

기타 [ 編輯 ]

2010年 秋夕 連休 첫날이었던 9月 21日 當時 KBS 아침마당에 李明博 大統領이 出演하였다. 하지만 人間的인 面, 親書民籍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그쳐 軟性化된 프로그램을 통한 弘報로 活用됐다는 批判이 提起됐다. 윤성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本部 幹事는 "KBS에서 內部的으로도 政府를 批判하는 프로그램 製作하는데에 制約을 받으며 억눌리고 있는 反面에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大統領이 出演해 맘껏 自身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保障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過去 政府와 달리 現 政府의 言論環境이 惡化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弘報 放送을 했다고 指摘했다. [34]

2010年 11月 13日 放送될 豫定이었던 '視聽者提案公募 아이템'李 靑瓦臺의 電話로 인해 主題가 서울 G20 頂上會議 로 바뀐것도 드러났다. [35]

이렇게 KBS의 親政府 性向이 꾸준이 이어지면서 勞組와 言論 團體들에 依한 政權讚揚 批判이 끊이지 않고 있다. [36]

朴槿惠 政府 [ 編輯 ]

2013年 촛불集會 縮小 報道 [ 編輯 ]

國精院 大選 介入을 糾彈하는 2013年 촛불 集會에 對해 MBC와 KBS는 單身으로만 處理하는 等의 方法으로 縮小報道함으로써 深刻한 與圈 偏向性을 드러냈다는 批判이 提起되었다. [37] KBS 等은 2013年 6月 말一警부터 始作된 촛불集會에 對해 7月 내내 거의 報道하지 않았다. 2013年 7月 29日 大學生들은 이들 放送社 앞에서 記者會見을 열고 放送社들의 報道行態가 5.18 當時와 비슷하다고 指摘했다. 特히 KBS의 境遇 두 次例 單身으로만 報道한 것이 全部라는 點을 指摘하면서, 도리어 外信들은 춧불집회와 國精院 事件을 大書特筆하는 마당에 KBS 等은 政權의 侍女가 되어 눈치 보기에 汲汲할 뿐이라고 批判했다. [38] 以後 集會規模가 漸漸 커져 8月 들어서는 數萬名이 參加하게 되자 單身으로 報道하기 始作했는데, 그마저도 촛불集會 自體보다는 民主黨과 연계시켜 與野 間 政爭으로 報道하는 行態를 보였다. 8月 10日 放送된 KBS 뉴스는 數萬名의 市民이 參與한 촛불集會에 對해 "민주당이 國民 보고 大會를 開催했다"거나 "所屬 議員과 黨員들이 動員됐다"고 報道하고 바로 이어서 "民生을 外面하고 政治 攻勢에만 熱中한다"는 與黨의 批判을 報道했다. 이러한 報道 行態에 對해 市民들의 非難과 冷笑가 잇따랐으며 KBS 內部에서도 '촛불'이라는 單語 自體가 禁忌語가 되고 있다는 自省의 목소리가 나왔다. [39]

2013年 鐵道勞組 罷業 報道 [ 編輯 ]

民主言論市民聯合 (민언련)李 鐵道罷業 하루 前인 2013年 12月 8日부터 17日까지 KBS MBC SBS 等 地上波 3社 뉴스에 나온 138件의 인터뷰 및 發言을 分析한 結果, 罷業을 ‘不法’으로 規定하는 政府와 코레일의 立場과 罷業으로 인한 被害를 言及하는 인터뷰가 全體 75%인 104件을 차지한 反面 鐵道罷業을 支持하는 市民의 멘트를 單 한 件도 내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實際 輿論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大學과 市民團體를 爲主로 鐵道罷業에 對한 支持가 이어졌고, 輿論調査 結果를 봐도, 水西發KTX 分割이 民營化 手順이며, 鐵道勞組에 對한 逮捕令狀 發付 等 政府의 對應이 ‘過度’하다는 意見이 더 많았다. [40] [41] [42]

민언련 은 特히 KBS 9時뉴스의 ‘데스크 分析‘道 批判했다. 罷業 첫날 이현주 經濟部長은 ’데스크 分析‘에서 새마을號와 無窮花號의 運行이 줄어 市民들이 KTX를 타야했다며 “이처럼 鐵道 罷業은 漠然한 國民 不便 程度가 아니라, 可視的인 國民 損失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主張은 事實과 다르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代替人力을 一般列車가 아닌 KTX에 主로 投入하고 있다. 코레일은 勞使 合意를 어기고 通勤, 通學列車 ‘누리로’를 全面 中斷했다. [40]

16日 ‘데스크 分析’에서 황상무 社會1部長은‘외부세력이 코레일 勞使의 合理的 對話를 막고 있다’는 趣旨의 分析을 내놨다. 水西發KTX를 分割高 競爭體制를 導入하는 것에 對한 勞使 兩側의 意見을 傳하면서 “外部勢力의 介入은 (勞使가 合理的 對話를 못하게 하는) 이 不信을 더욱 키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黃 部長은 ‘外部勢力’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現在 1000餘個 市民團體는 國會와 政府에 社會的 論議機構 設置를 要求하고 있다. [40]

15件 以上으로 把握되고 있는 列車 事故에 對한 리포트에서도 ‘政府 偏向’이 나타났다. KBS는 12月 15日 果川 政府綜合廳舍驛에서 일어난 乘客 死亡事故에 對해 16日子 임종빈 記者의 報道에서 “鐵道 罷業 以後 크고 작은 事故가 잇따르더니 어젯밤, 80代 할머니가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報道했다. 그러나 이 報道에는 次長 業務를 위해 ‘100時間’ 敎育을 받아야 한다는 團體協約을 코레일이 違反한 事實은 나오지 않았다. [40]

2014年 靑瓦臺 新年人事會 金한길 代表 發言 漏落 [ 編輯 ]

2014年 1月 3日 靑瓦臺에서 열린 政府 新年人事會에는 民主統合黨 金한길 代表도 參席하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金한길 代表의 發言 中에는 "民主主義가 傷處받고 政治는 失踪된 한 해"였다는 內容이 있었지만, 當日 KBS 뉴스 9 에서 김병용 記者는 이 發言은 報道하지 않았다. 또한 國家機關의 大選介入 問題에 對해 特檢 導入을 促求한 發言에 對해서는 " 金 代表는 特히 大選 關聯 疑惑에 對한 特檢도 거듭 要求해 對與 攻勢가 繼續될 것임을 豫告했습니다.”라고 報道함으로써 政治攻勢를 했다는 이미지가 多分하도록 報道했다. 리포트 題目 亦是, "朴 大統領 “國政 2人3角 慶州, 主體들 所任 다해야”"로 되어 있어서 放送社들 中 唯一하게 朴槿惠 大統領의 ‘立場’만 强調했다. 이러한 報道에 對해서는, 野黨 代表의 發言을 正確히 紹介하는 것은 ‘팩트’를 傳達하는 基本 事項인데도 이 ‘基本的인 領域’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特히 KBS가 그렇게 强調하는 ‘與野의 立場을 公正히 報道한다는 均衡的 報道’ 原則 亦是 지켜지지 않았다는 批判이 提起되었다. [43]

國精院을 國精院이라 말 못하는 KBS '뉴스9' [ 編輯 ]

2013年 6月 22日 , KBS에서 放送된 < TV批評 視聽者데스크 >는 大韓民國 國家情報院 輿論 造作 事件 과 關聯된 < KBS 9時 뉴스 >의 問題點을 다뤘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으로서 役割에 忠實했다는 評價를 받았지만, 放送 以後 擔當 局長과 部長은 補職 解任되었다. [44] 2013年 8月 31日 , 脫北 華僑 公務員 間諜 事件 疑惑을 다룬 < 追跡60分 >은 '不放 事態'를 겪었다. 製作陣과 KBS PD들의 激烈한 反撥 때문에 '一部 修正된' 放送 內容이 9月 7日 電波를 탔다. [44] 2013年 後半期엔 채동욱 前 檢察廳長의 論難 國家情報院의 介入 論難 과 關聯해 KBS 報道 局長와 記者 協會가 蔡東旭 報道의 '偏向性 論難'으로 葛藤이 激化되었다. [45] 2014年 2月 基準으로, < 追跡60分 >이 放送한 國精院 間諜造作 疑惑은 檢察과 國精院의 ' 公文書 僞造 事件 疑惑과 맞물리면서 政治權 '핫이슈'가 되었다. 이런 報道와 關聯해 KBS '뉴스9'는 SBS, JTBC 等 主要 放送社들이 2月 21日 메인뉴스에서 '國精院'이라는 正確한 表現을 使用한 것과 달리 KBS는 '有關 情報機關'이라는 單語를 使用하였다. [44] KBS本部가 지난 2014年 2月 18日 發行한 노보에서 " 朴槿惠 大統領 就任 1年 KBS에서 國家情報院 은 放送禁忌가 되었다"고 批判을 確認한 셈이다. [44]

歲月號 沈沒 慘事 報道 [ 編輯 ]

朴槿惠 大統領에 對한 抗議와 不滿을 縮小, 漏落 [ 編輯 ]

2014年 4月 17日, 朴槿惠 大統領의 彭木港 訪問에 對해, 災難放送 主管 放送社인 KBS는 遺家族의 大統領에 對한 抗議 等을 報道하지 않았다. JTBC는 <뉴스 9>에서 “박근혜 大統領이 들어오면서 一部 말을 하고 서로 對話가 오가는 過程에서 그前에 繼續해서 해왔던 呪文들, 約束들이 다 깨졌다 이러면서 揶揄와 어떤 高喊이 나오면서 相當히 어수선한 雰圍氣가 繼續 이어졌다“, “失踪者 家族들은 政府의 初動對處와 救助作業에 對해 不滿을 表示하면서 激烈하게 抗議했다”고 報道했다. MBC도 “朴 大統領이 入場하자 애끓는 家族들은 嗚咽을 하거나 固城을 지르며 救助 作業에 對한 不滿을 보였다”며 “家族들의 叱咤도 쏟아졌다”고 報道했다. SBS 亦是“一部 家族들은 政府가 實質的 對策을 내놓으라며 抗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KBS가 傳한 朴槿惠 大統領의 珍島 訪問 現場의 雰圍氣는 全혀 다르다. KBS는 <뉴스9>에서 앵커멘트로 “박근혜 大統領이 旅客船 沈沒事故 現場을 訪問해 救助 活動을 督勵하고 失踪者 家族들을 慰勞했다”며 “마지막 한 名까지 構造되도록 最善을 다하겠다며 책임질 사람은 嚴罰하겠다고 밝혔다”고 傳했다. 그리고 이어진 記者 리포트에서 송창언 記者는 當時 狀況을 이렇게 傳한다. “박근혜 大統領이 體育館에 들어서자 失踪者 家族들의 嗚咽이 더 커집니다. 곳곳에서 殺到하는 質問에 一一이 答을 해줍니다. (朴 大統領은) 먼저 家族들을 慰勞하면서 構造에 最善을 다하겠다고 約束했습니다. 徹底한 調査와 責任者 處罰도 强調했습니다. 家族들은 搭乘者 名單 確認이 안 되는 等 不滿 事項들을 建議하자 朴 大統領은 卽時 是正을 指示했고 家族들은 拍手로 呼應했습니다.”이러한 KBS의 報道에 對해서는, 失意에 빠진 失踪者 家族들이 大統領의 發言으로 勇氣를 얻은 듯 보이며, 失踪者 家族들의 絶叫와 거친 抗議는 ‘不滿 事項 件의’가 됐고, ‘高喊’은 사라지고 ‘拍手’만이 남았다는 批判이 提起되었다. [46]

4月 29日, 朴槿惠 大統領이 國務會議 席上에서 謝過하고 合同焚香所를 찾았을 때, 遺家族들의 反應에 對한 報道에서도 비슷한 行態가 反復되었다. 한겨레新聞과 JTBC 等의 言論들이 "거세게 抗議", "調和도 拒否", "沙果가 아니다"라는 表現을 쓰며 現場 雰圍氣와 反應을 傳達한 데 비해, KBS는 遺族들은 내 子息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고 指示를 내려달라고 呼訴했다”며 “이에 對해 朴 大統領은 반드시 安全한 나라를 만들어 이番 犧牲이 絶對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約束했다”고 報道했다. 마치 遺族들이 朴 大統領에 對해 ‘建議’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뉴스 畵面에서 遺族들은 朴 大統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遺族들의 抗議로 朴 大統領 調和가 치워진 事實은 “朴 大統領과 鄭烘原 總理 等의 調和는 리본만 焚香所 안에 걸린채 遺族들 要求로 밖으로 치워졌다”고만 報道했다. KBS는 朴槿惠 大統領의 國務會議 謝過에 對해 "沙果가 아니다"라며 遺族들이 反撥하고 나선 것도 報道하지 않았다.

2014年 5月 4日, 朴槿惠 大統領이 再次 팽목항을 찾아서 遺家族들을 만난 데 對한 KBS의 報道도 마찬가지였다. 餘他 言論들과 달리 KBS 뉴스9는 大統領에 對한 遺家族들의 抗議나 不滿을 報道하지 않고 大統領 爲主로 報道했다는 批判을 받았다. 當日 JTBC의 뉴스는, 朴 大統領의 彭木港 訪問은 構造 初動措置 未洽과 이에 對한 國民的 不滿이 高調되어 國務會議에서 謝過했지만 惡化된 輿論이 收拾되지 않아 이루어진 것이며, 하지만 如前히 失踪者 家族들은 大統領, 政府를 向해 不滿을 쏟아냈다는 趣旨로 報道했고, SBS 뉴스8 亦是 “기다리라고만 하는데 그게 언제까지냐, 凶彈에 父母를 잃은 大統領도 우리 心情을 알 것 아니냐”며 鬱憤을 터뜨렸다고 報道해서, 大統領의 責任을 强調하는 論調를 보였다. 反面 KBS 뉴스9는 朴 大統領의 珍島 訪問 消息을 첫 消息부터 2個의 리포트로 傳했는데, 첫 消息에서는 朴 大統領의 말만 傳達하다 失踪者 家族들이 “海水部 長官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抗議했다는 事實만 報道했다. 이는 事故 收拾의 責任을 大統領이 아닌 海水部 長官에 맞춘 것이라는 批判을 받는다. <朴 大統領, 搜索 現場 訪問…“最善 다해달라”>는 두 番째 리포트에서는 “大統領이 바지船에 接近하자 失踪者 家族들이 潛水要員들을 激勵하기 위해 건 懸垂幕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만나기 위해 이제 믿고 依支해야할 사람은 潛水要員들 뿐. 大統領의 當付도 끝까지 最善을 다해 달라는 것”이라고 報道했다. 마치 大統領 1人稱 時點 같은 報道다. 이어 “搜索 作業을 지켜보기 위해 바지船에 와 있는 家族들을 만났다”며 “꼭 만날 수 있을 거라는 念願으로 아버지가 가슴에 걸고 있는 失踪 딸의 寫眞을 한동안 바라보며 끝까지 努力하겠다고 慰勞했다”고도 傳했다. 이러한 KBS 報道는 思考에 責任이 없는 大統領이 家族들을 慰勞하고, 責任 있는 擔當者들을 嚴重 問責하는 審判者 자리에 올라있는 듯 報道한 것이라는 批判을 받았다. [47]

誤報 [ 編輯 ]

2014年 4月 18日 放送에서 "엉켜있는 屍身 多數 確認"이라는 字幕과 함께 該當 內容을 傳한 KBS 報道에 對해, 放送通信審議委員會는 같은 달 30日 會議를 열어 警告의 重懲戒를 議決했다. [48] 이에 앞서 28日 小委員會 會議에 出席한 KBS 報道局 뉴스製作 3部 部長 정인철 은 “우리(KBS) 立場에서 볼 땐 誤報보다 表現上의 問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큰 事故를 當한 失踪者들의 家族과 國民 感情을 勘案할 때 ‘屍身이 엉켜있다’는 精製되지 않은 表現은 不適切했다”고 말했다. 鄭 部長은 그러나 “誤報라고 보긴 어렵다”고 主張하며 “該當 멘트가 있고 다음날부터 그間 收拾되지 않았던 屍身들이 하루에도 30~50餘具씩 收拾됐다”고 理由를 밝혔다. 이에 對해 潛水夫의 이야기를 듣고 救助當局이 發表했다고 報道했는데 어떻게 誤報가 아니냐는 批判을 받자, 그는 構造當局의 發表 與否가 아니라 實際 엉켜있는 屍身이 많았는지 與否를 가지고 따져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對해선 다시 災難事件을 報道함에 있어 不明確한 內容은 報道하지 않는 게 重要한 價値 基準”이라는 批判과 “救助當局에서 發表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고 字幕까지 내보낸 건 重大한 失手”, 海警에서도 該當 報道는 誤報라고 發表했다는 指摘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인철 部長은 KBS의 報道가 誤報라는 海警의 發表를 認定할 수 없다고 말했고, 이에 對해서는, 救助 當局이 하지도 않은 發表를 했다고 報道해놓고 誤報라는 救助當局의 發表는 認定하지 못하겠다는 態度는 뭔가라는 批判이 이어졌다. 이날 會議에서는 5人 中 4人의 放送小委 委員들이 重懲戒를 主張했고, 이에 따라 KBS <뉴스特報>는 ‘警告’ 意見 多數로 全體會議에 想定되어 30日 重懲戒가 議決되었다. [49]

文在寅 政府 [ 編輯 ]

KBS 뉴스 9 報道 論難 [ 編輯 ]

2019年 7月 18日, KBS 뉴스 9 에서 大韓民國에서의 日本 製品 不買 運動을 報道할 때, '안 사요, 안 가요' 等 日本 製品 不買 運動을 誘發하는 標語를 使用했다. 이때 '안 뽑아요'라는 文句가 登場했다. 이때 글字 '案'에 日章旗의 빨간 원으로 構成된 'ㅇ'字 안에 自由韓國黨 마크가 넣어져 있는 文句가 登場했다. 더불어 '안 봐요'라는 文句가 登場했는데, 이때도 朝鮮日報 마크가 같은 位置에 넣어져 있는 文句도 登場했다. 이에 自由韓國黨은 KBS가 文在寅 政府 의 總選 介入을 同調하려는 마음가짐을 했나 疑惑을 提起했다. 다음 날, 羅卿瑗 自由韓國黨 院內代表를 비롯한 自由韓國當 國會議員 60餘 名이 KBS 本社 階段 앞에 서서 KBS 解體하라는 口號를 외쳤다. 이때 羅卿瑗 院內代表는 KBS 公正報道 精神은 死亡했다는 發言을 했다. 이에 對해 KBS는 文句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點에서 謝過했다. 또한 7月 25日에는 黃敎安 自由韓國黨 黨代表, 나경원 自由韓國黨 院內代表를 비롯해 自由韓國當 黨員들이 모여 'KBS 受信料 拒否를 위한 全國民 署名運動'을 實施했다. 이때 出征式에서 KBS 受信料 拒否, KBS 市廳 拒否, 梁承東 KBS 社長 辭退 等을 외쳤다.


輿論調査 造作 論難 [ 編輯 ]

KBS 뉴스9은 2019年 12月 27日 韓國리서치에 依賴해 實施한 輿論調査 結果를 根據로 ‘保守野黨 審判論’에 贊成 55.8%, 反對 36.4%로 나타났다고 報道했다. 韓國리서치가 지난해 12月 18日부터 22日까지 닷새동안 實施된 '2020 總選企劃 全國調査' 와 '2020 總選企劃 圈域調査(서울)' 結果를 引用한 것이었다. 그런데 輿論調査 設問을 보면 野黨 審判論에 對해선 "來年 總選에 自己 反省 없이 政府의 발목만 잡는 保守 野黨에게 票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主張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했고, 政府與黨 審判論에 對해선 "文在寅 政府의 失政을 審判하기 위해 與黨인 더불어民主黨에게 票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돼 있다. 卽 徹底하게 처음부터 일정한 答辯을 誘導한 質問이었던 것이다.

그 前에는 공정하였으나 文在寅 政府들어 지나치게 政府의 눈치를 본다고 評價 받고 있는 中央選擧管理委員會조차 輿論調査는 調査者가 意圖한 대로 應答을 끌어내기 위해 應答을 誘導해서는 안 된다는 公職選擧法 108條와, 輿論調査는 客觀的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選擧輿論調査基準 第4條를 違反했다고 判斷했다. 이에 따라 中央選擧管理委員會는 KBS에 對하여 公職選擧法 遵守 促求' 措置를 내렸다 [50] .

自由韓國黨은 輿論調査를 實施한 韓國리서치의 代表 정재선 및, 調査를 依賴·報道한 KBS의 社長 梁承東을 檢察에 告發한다고 2020年 1月 17日 밝혔다 [51] .

親日 美化 [ 編輯 ]

2011年 6月 25日에 放送된 6.25 特輯 다큐멘터리 《戰爭과 軍人》에서는 親日人名事典에 親日派로 收錄된 白善燁 을 美化하려는 內容이 있다는 指摘이 提起되며 批判을 받았다. 全國言論勞動組合은 "KBS의 잇따른 親日, 獨裁 讚揚 放送 試圖는 이명박 政權의 出帆 以後 光復節을 建國節로 바꿔 우리 歷史를 송두리째 歪曲하려는 親日, 뉴라이트 勢力의 움직임과 無關치 않다"며 放送取消를 要求했으며, 光復會度 白善燁 다큐(特輯 2部作 다큐 <戰爭과 軍人>) 放送이 나가기 하루 前인 지난달 23日 한국방송에 公文을 보내 ‘白善燁-李承晩 다큐’ 中斷을 要求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2] 경향신문은 "白善燁 다큐’는 公營放送이 만든 다큐멘터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程度로 한 個人의 記憶과 意見만을 追從했다."면서 "韓國戰爭을 바라보는 다양한 視角이나 列强의 角逐 等 무거운 主題는 除外됐고, 戰爭의 慘酷한 實相을 冷靜하게 짚지도 못했다. 混沌의 時節, 100萬名이 넘는 民間人 被害 事實이나 無辜한 良民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그 家族들을 苦痛 속에 살게 한 國家 暴力에 對해서는 1秒도 言及하지 않았다."고 指摘했다. [53] KBS는 이어 8月 15日 光復節때도 李承晩 다큐를 準備하고 있으며 이에 對해 光復會는 製作 中斷으로 促求했다. 光復會는 "오는 8月15日 光復節에 내보내겠다는 李承晩 讚揚 다큐의 製作도 當場 中斷할 것을 强力히 促求한다"라고 말했다. [54]

高位層의 드라마 製作 介入 與否 [ 編輯 ]

2004年의 史劇 不滅의 李舜臣 의 企劃 段階에서 盧武鉉 當時 大統領이 두 原作小說 中 하나인 칼의 노래 를 즐겨 읽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製作決定이 나왔다는 主張이 있었다. [ 出處 必要 ]

殊常한 三兄弟 의 2009年 12月 26日子 放送分에 警察을 擁護하는 듯한 臺詞가 나와 한동안 論難이 있었다. [55] 實際로 殊常한 三兄弟는 大韓民國 警察廳이 製作을 後援하고 있었다.

2010年의 史劇 名家 의 企劃 段階에 최시중 放送通信委員會 委員長 및 慶州 崔氏 宗親會가 背後에 있다는 疑惑이 2009年 末부터 있어왔다. [56]

受信料 徵收 問題 [ 編輯 ]

只今의 放送受信料 徵收制度는 1981年 처음 導入되었다. 大韓民國 放送法 은 受信料의 徵收와 關聯하여 다음과 같이 規定하고 있다.

第64條 (텔레비전水上機의 登錄과 受信料 納付)

  • 텔레비전放送을 受信하기 위하여 텔레비전水上機(以下 "受像機"라 한다)를 所持한 者는 大統領令이 定하는 바에 따라 工事에 그 受像機를 登錄하고 텔레비전放送受信料(以下 "受信料"라 한다)를 納付하여야 한다. 다만, 大統領令이 定하는 受像機에 對하여는 그 登錄을 免除하거나 受信料의 全部 또는 一部를 減免할 수 있다.

第65條 (受信料의 決定)
受信料의 金額은 理事會가 審議·議決한 後 放送通信委員會를 거쳐 國會의 承認을 얻어 確定되고, 工事가 이를 賦課·徵收한다. <改正 2008.2.29>

第66條 (受信料等의 徵收)

  • 第1項 : 公社는 제65조의 規定에 依하여 受信料를 徵收함에 있어서 受信料를 納付하여야 할 者가 그 納付期間內에 이를 納付하지 아니할 때에는 그 受信料의 100分의 5의 範圍안에서 大統領令이 定하는 比率에 相當하는 金額을 加算金으로 徵收한다.
  • 第2項 : 公社는 제64조의 規定에 依한 登錄을 하지 아니한 受像機의 所持者에 對하여 1年分의 受信料에 該當하는 追徵金을 賦課·徵收할 수 있다.
  • 第3項 : 公社는 제65조의 受信料와 第1項 및 第2項의 加算金 또는 追徵金을 徵收함에 있어서 滯納이 있는 境遇에는 放送通信委員會의 承認을 얻어 國稅滯納處分의 例에 依하여 이를 徵收할 수 있다. <改正 2008.2.29>

第67條 (受像機 登錄 및 徵收의 委託)

  • 第1項 : 公社는 제66조의 規定에 依한 受信料의 徵收業務를 市·道知事에게 委託할 수 있다.
  • 第2項 : 公社는 受像機의 生産者·販賣人·輸入販賣人 또는 公社가 指定하는 者에게 受像機의 登錄業務 및 受信料의 徵收業務를 委託할 수 있다.
  • 第3項 : 公使가 第1項 및 第2項의 規定에 依하여 受信料 徵收業務를 委託한 境遇에는 大統領令이 定하는 바에 따라 手數料를 支給하여야 한다.

第68條(受信料의 使用)

  • 公社는 第65條 및 第66條의 規定에 依하여 徵收된 受信料를 大統領令이 定하는 바에 따라 韓國敎育放送公社法에 依한 韓國敎育放送公社의 財源으로 支援할 수 있다.

料金은 導入 當時 新聞 購讀料 한 달値를 基準으로 하여 2,500원으로 定하였는데, 2009年까지 이 料金을 維持했다.

2009年 10月 22日 , 國會 文化體育觀光放送通信委員會(以下 門防衛)의 國政感謝狀에서 國會 門防衛 所屬 韓善敎 議員( 한나라黨 )의 '受信料 引上 時 廣告 없이 KBS를 運營할 수 있나'라는 質問에 이병순 當時 社長은 "막말 放送이나 막장드라마 같이 視聽率 競爭의 副作用을 막기 爲해서 受信料 引上이 必要하다"며 "이러한 境遇 KBS 2TV도 廣告 없이 運營하는 것을 願하고 있다"고 밝혔다. 李 社長은 受信料를 6千원에서 6千500원 水準으로 올릴 境遇 KBS 2TV도 廣告 없이 運營해 公營放送의 價値를 높일 수 있다고 說明했다. [57]

2010年 6月, KBS 理事會는 受信料 引上案을 論議하던 中 野黨 推薦人事가 反撥하며 나가자, 與黨 推薦人士들은 受信料 引上案에 全員 贊成하며 一方的으로 想定했다. 이에 對해 受信料 印象을 反對하는 國民들의 輿論을 無視하였다는 批判이 提起되었다. [58] 結局 11月 18日, 受信料를 2500원에서 3500원으로 引上하는 方案이 確定되었다. 그러나 KBS는 2009年 693億원의 黑字를 記錄했으며, 2010年 上半期에도 1003億원의 黑字를 記錄했기 때문에 財政에 問題가 있지 않음에도 不拘하고 引上했다는 批判을 받았다. KBS側은 이에 對해 "지난 30年동안 受信料가 引上되지 않았다"며 引上이 不可避하다고 主張했으나, 1994年부터 受信料가 電氣料에 合算 徵收되면서 輸入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30年 凍結論은 說得力이 不足하다는 指摘을 받았다. [59]

2023年 7月 12日, 受信料 分離徵收가 本格的으로 施行되었다. [60] KBS는 이에 對해 "放送의 自由 侵害"라며 크게 反撥하고 있다. [61]

2024年 2月, 이달부터 施行하려 했던 TV 受信料 分離 告知·徵收가 限時的으로 猶豫됐다. KBS 側은 "受信料 分離 徵收를 2月부터 施行하는 것을 目標로 關係 機關들과 協議해왔지만, 細部的인 事項을 確定하지 못했다"며 "分離 徵收가 언제 施行될지는 아직 確實하지 않다"고 밝혔다. [62]

內容 造作 論難 [ 編輯 ]

2008年 8月 31日子 KBS 9時 뉴스에 같은 날 曹溪宗 主導로 벌어진 '政府 宗敎 偏向' 糾彈 法會가 報道되었다. 報道가 나가기 前에 進行者가 記事를 紹介하는 部分에 進行者 뒤에 僧侶들이 牌말을 든 寫眞이 펼쳐졌는데, "어청수 警察廳長 退陣하라"라고 적힌 牌말의 "退陣하라" 部分이 지워졌다. [63] [64] 放通委는 '意見提示'措置를 내렸다.

2008年 12月 31日과 2009年 1月 1日 사이에 벌어진 普信閣 打鐘行事를 中繼 放送하던 中 行事場 周圍에 벌어진 示威 場面을 내보내지 않고 中間에 拍手소리를 揷入하는 [65] 等 歪曲 放送 是非에 휩싸인 KBS 側은 2009年 1月 2日 午後, 該當 프로그램은 音樂 公演 祝祭 프로그램으로 企劃되었기 때문에 各種 示威 集會 中繼는 주된 內容이 아니었고 公演 爲主로 構成된 것이었다고 解明에 나서기도 했다. [66] [67] 이에 對해 放通委는 '勸告' 決定을 내렸다.

天安艦 誠金募金放送 論難 [ 編輯 ]

2010年 4月 11日 , KBS는 천안함 被擊 事件 으로 인한 死傷者들의 遺族들에 對한 補償 等을 理由로 誠金募金 生放送을 進行하였다. 하지만 誠金募金은 致命的인 財産被害 等으로 인해 돈이 必要한 境遇에 해왔기 때문에 目的과 背景에 對한 疑問이 提起되었으며, 原因 糾明은커녕 船體 引揚이나, 失踪者 收拾도 안 된 狀況에서 이러한 募金이 進行되는 것에 對한 批判이 提起되었다. 國民들의 視線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主張이 提起되기도 하였다. KBS 內部에서도 批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홍기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本部 中央委員은 "이미 一週日 前 週末에도 天安艦 特別放送을 세 件이나 했고,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또 追慕 및 誠金 放送까지 한 것"이라며 "最近 放送된 <KBS스페셜>도 그렇지만 原因糾明과 疑惑에 對한 確認作業에 對한 言及은 거의 없이 追慕 雰圍氣로 몰아가려는 것 아닌지 憂慮된다."라고 指摘하였다. [68] KBS는 募金된 誠金의 使用處에 對한 計劃도 세우지 않은 채 一旦 募金을 始作했다고 밝혔다. [69]

블랙리스트 論難 [ 編輯 ]

개그우먼 出身의 라디오 進行者인 金美花 는 自身이 KBS에 出演하지 못하는 것에 對해 "KBS에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 아니냐"고 自身의 트위터에 陳述하였다. 짤막한 이 글은 KBS에 反撥을 불러왔으며 KBS는 異例的으로 다음날 卽刻 反駁報道를 내보냈다. 後에 김미화는 自身의 글에 對해 後悔는 없다고 말했으며 陳重權 과, 時事評論家 유창선 , 俳優 문성근 [70] 도 김미화의 發言에 힘을 실으며 블랙리스트 存在 可能性을 提起하자 KBS는 法的 對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으며, 陳重權은 誣告罪로 맞告訴 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이에 對해 MBC는 "윤도현 氏나 김제동 氏 等 演藝人들이 줄줄이 放送에 나오지 못하는 것도 모두 政府에 批判的인 性向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며 "이들이 말하는 블랙리스트란 實際로 存在하는 文件이라기 보다는 放送社 스스로 設定해 놓은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라고 報道했다. [71] 유창선은 自身의 블로그에 "KBS는 우리 社會의 巨大한 權力이지만 眞實의 힘은 이길 수 없음을 믿는다"며 "國民을 相對로 거짓말 한데 對한 責任을 認定하고 卽時 公開謝過 할 것"이라고 要求했다. [72] 한便, 정재승 카이스트 敎授는 KBS에서 放映되었던 TV 冊을 말하다 프로그램도 '進步性向의 知識人(陳重權)李 出演했기 때문에 廢止된 것'이라고 主張하기도 했다. [73] 이러한 論難 가운데 警察이 MBC에 들어와 김미화가 進行하는 《 世界는 그리고 우리는 》生放送 臺本을 보여줄 것을 要求하면서 臺本査察 論難이 빚어지기도 했다. [74]

不法 盜聽 疑惑 [ 編輯 ]

  • 2011年 6月 24日, 민주당 黨代表室의 非公開 會議 錄取錄을 韓善敎 한나라당 議員이 公開하면서 不法 盜聽했다는 疑惑이 불거졌다. [75] 이 過程에서 盜聽하여 錄取한 當事者로 KBS 張 某 記者가 指目되었다. [76] [77] KBS 윗線에서 道廳에 介入했다는 疑惑도 있었다. [78] 이에 對해 다음날 6月 25日에 민주당 側은 KBS 受信料 道廳 疑惑을 搜査 依賴하였다. [79] 搜査 結果, 警察은 錄取錄을 公開한 韓善敎와 盜聽 當事者인 KBS 張 某 記者에게 證據不充分으로 無嫌疑를 내렸지만, [80] 迅速한 搜査를 하지 않고, 初動 搜査 段階에서 物證을 迅速하게 確保하지 못하고 容疑者를 찾아내지 못했던 데 起因한 것 아니냐는 指摘과 함께 搜査 過程에 아쉬움이 있다는 意見이 있었다. [81] 그리고, 11月 7日 민주당은 代表室 不法盜聽 眞相糾明을 위한 特檢法을 提出하기도 하였다. [82]

地域局 統廢合 構造調整 論難 [ 編輯 ]

  • KBS가 最近 全國 18個 地域局 中 9個 據點 地域總局과 江陵 , 蔚山 等 一部를 뺀 나머지 地域局 7곳을 各 據點 總局으로 統廢合한다는 構造調停案을 發表하였다. 對象 地域은 原州 , 忠州 , 木浦 , 順天 , 浦項 , 安東 , 晋州 다. 여기에 該當하는 統廢合 對象 放送局은 報道와 製作 機能을 各 廣域 據點總局으로 一括的으로 맡게 된다. 하지만, 弊國이 알려지자 市民團體들이 剛하게 反撥하여 放送局 弊國 撤回를 要求하고 있다. 이는 梁承東 社長을 비롯한 KBS 經營陣들이 莫大한 損失을 受信料를 納付하는 地域民들에게 責任을 轉嫁하는 게 알려지면서 地域民들의 憤怒는 極에 達하고 있다.

기타 [ 編輯 ]

  • 2011年 1月 20日 KBS는 軍 將兵들에게 發熱조끼를 사서 보내자는 誠金募金 放送을 進行하였는데 이 目的이 매우 模糊하며, 왜 軍人들의 物品들을 政府의 支援이 아닌, 國民들 誠金으로 보내냐는 反撥이 일었다. 이 放送은 金仁圭 社長의 指示로 急造했다는 事實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批判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83]
  • JTBC 言論 統廢合 政策 으로 한국방송공사 에 合倂되었던 TBC 의 後身임을 主張하고 있다. 이러한 理由를 들어 1980年 11月 30日 에 廢局된 TBC를 記念하여 2011年 12月 1日 에 開局했으며, 이는 다른 綜編이 JTBC와 같은 日子에 開國하는 데 影響을 주었다. [84] 個國 때부터 "다채로운 즐거움"을 口號로 使用하고 있다.

各州 [ 編輯 ]

  1. “KBS뉴스는 恒常 與圈 偏向이라는 게 問題다” 미디어오늘, 2013年 7月 24日
  2. 2000年에 이른바 "統合放送法"李 施行되기 前에는 " 한국방송공사法 "에 이런 內容이 明示되어 있었으며, 이 때에는 任命과 免職을 할 수 있는 權限, 卽 "任免權"李 明示되어 있었다. (한국방송공사法 15兆 1項)
  3. 國民에게 外面받는 KBS勞組, 過去에는…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4. 원성윤 (2008年 5月 27日). “歷史의 回歸, 18年 前 KBS는 只今과 닮았다” . PD저널. 2016年 4月 10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9年 1月 5日에 確認함 .  
  5. 김세옥 (2008年 7月 4日). ““大統領에 KBS 社長 解任權 있어”” . PD저널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6. 권혁주 (2008年 7月 22日). ' 입맛 맞는' KBS社長 任命 論難 MB-盧 '닮은꼴 ' . 노컷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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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KBS 뉴스서 ‘어청수 辭退’ 피켓 글씨 削除돼
  65. 虜亂風船 든 市民들 '아듀 2008, OUT 2MB'
  66. '造作論難' KBS "放送街에선 通常的으로 있는 日" 解明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67. KBS 除夜의 種 打鐘 放送 歪曲 論難
  68. 조현호 記者 (2010年 4月 11日). “天安艦 誠金募金 生放送에 批判 殺到” . 미디어오늘 . 2010年 4月 11日에 確認함 .  
  69. 조일수 記者 (2010年 4月 26日). “天安艦 特別生放送…‘犧牲者 追慕’ 온 國民 한마음” . KBS. 2018年 7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0年 4月 26日에 確認함 .  
  70. 문성근 "나도 KBS 出演 取消 當했다" 노컷뉴스 2010年 7月 9日
  71. 金美花 "블랙리스트 글 떳떳, 後悔안해" 미디어오늘 2010年 7月 11日
  72. 유창선 “巨大 權力 KBS가 거짓말, 公開 謝過해야”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京鄕新聞 2010年 7月 12日
  73. "KBS 'TV 冊을 말하다' 廢止는 '進步知識人 出演' 때문" Archived 2016年 3月 14日 - 웨이백 머신 民衆의 소리 2010年 7月 12日
  74. 警察, MBC 金美花 프로그램 찾아가 "質問紙 달라" 波長 노컷뉴스 2010年 7月 9日
  75. 民主黨 "會議 內容 盜聽當해"…한선교 "盜聽 아니면 告訴"
  76. ‘道廳 疑惑’ KBS 記者, 거짓말 續續 드러나
  77. 警察 “KBS 記者 ‘國會에 없었다’던 날 CCTV 찍혀”
  78. [單獨] KBS記者 ‘道廳 疑惑’ 윗線도 介入 疑惑?
  79. 民主, 'KBS 受信料 道廳 疑惑' 搜査依賴
  80. 警察, 民主黨 '盜聽疑惑' 事件 無嫌疑 結論
  81. <未濟로 남은 道廳事件…警察搜査 아쉬움>
  82. 民主, 代表室 不法盜聽 眞相糾明 特檢法 提出
  83. KBS 發熱조끼 誠金募金, 金仁圭 指示로 急造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미디어스 2011年 1月 19日
  84. CBS 特別取材팀, "開國 못하면 辭表 써!" 綜編 12/1 個國 强行 왜? , 노컷뉴스, 2011年 11月 2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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