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194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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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出生 1946年 11月 22日 ( 1946-11-22 ) (77歲)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 美 軍政 朝鮮 慶尙北道 月城郡
(現 大韓民國 慶尙北道 慶州市 )
學歷 美國 휴스턴 大學校 大學院 經濟學 博士

정연주 (鄭淵珠, 1946年 11月 22日 ~ )는 大韓民國 의 言論人이다. 第15·16·17代 KBS 社長과 第9代 건양대學校 總長을 모두 歷任하였다.

동아일보 解職 記者 出身으로 한겨레 워싱턴 特派員을 지냈다. [1] 노무현 政府 時期 市民·言論團體의 推薦으로 KBS 社長에 任命되었고 KBS 社長 在職 期間 동안 KBS를 '探査報道의 名家'로 再탄생시켰다는 評價를 받았다. KBS 社長으로서의 言論界의 評價는 探査報道팀을 創設해 韓國의 探査저널리즘의 礎石을 다졌고 이 探査報道팀은 '데이터 저널리즘' 等 새로운 取材 技法을 試圖하며 "韓國 探査 報道의 새 地平을 열었다"는 評을 받고 있다. 이때 키워진 探査報道 力量이 後날 獨立言論 ' 뉴스打破 ' 創刊과 維持에 影響을 주었다는 分析도 있다. [2]

生涯 [ 編輯 ]

慶尙北道 月城郡 (現 慶州市 )에서 出生하여 競走高等學校 서울大學校 經濟學科를 卒業하고 美國 휴스턴대學校 에서 經濟學 博士 學位를 받았다. 1970年 東亞日報 記者로 言論人 生活을 始作하였다.
2005年 4月 8日 ~ 2006年 3月 31日 까지 12代 韓國放送協會 會長을 歷任하였고, 2007年 4月 2日 ~ 2008年 3月 28日 까지 14代 韓國放送協會長을 歷任하였다. 2008年까지 KBS 社長職에 在任하다가 解任되었다.

記者 時節 [ 編輯 ]

記者 時節 自由言論守護運動과 白紙廣告 事態 를 맞았고, 이를 契機로 1975年 동아일보에서 解職되어 美國으로 건너가 1977年 씨알의 소리 》 編輯長을 지냈다. 1988年 동아일보 解職記者들이 主軸이 된 한겨레新聞 이 創刊되자 워싱턴 特派員으로 新聞에 參與하였고, 2000年 歸國하여 論說主幹을 지냈다.

KBS 社長 時節 [ 編輯 ]

盧武鉉 政權에 依해 任命된 서동구 前 社長이 落下傘 論難으로 KBS勞組와 寺院의 反撥에 依해 辭任한 後 2003年 4月 28日 市民과 言論團體의 推薦 公募에 依해 한국방송공사 社長에 任命되었다. 2004年 盧武鉉 大統領 彈劾 訴追 가 通過되자 彈劾 特輯 放送을 編成하였는데, 彈劾 贊成 側에서는 이 特輯 放送을 彈劾에 反對하고 盧武鉉 大統領을 擁護하는 內容으로 이루어져 있어 偏頗放送을 하였다고 非難했다. 이 같은 迂餘曲折을 겪었지만 2006年 11月 連任에 成功하여 李明博 大統領이 就任한 後에도 繼續 社長職을 遂行하였다.

KBS 社長 以後 [ 編輯 ]

하지만 在任 동안 稅金還給 訴訟을 法院의 調整을 받아들여 早期에 끝냈다는 赤字經營 理由로 2008年 6月 11日 監査院 의 特別監査를 받게 되었고, 民主黨과 李明博 政府 에 反對하는 人士들은 이를 李明博 政府의 放送 掌握 陰謀라고 强力히 非難하였다. 이러한 反對에도 不拘하고 8月 11日 李明博 大統領은 정연주 社長을 解任하였는데, 이와 關聯 大統領이 KBS 社長을 解任할 수 있는 權限이 있는가에 對해서 論難이 일었다. 이 過程에서 정연주 社長 解任에 反對하던, 신태섭 KBS 理事가 同意大學校 廣告弘報學科 敎授職 및 KBS 理事職에서 解任되기도 하였다. [3]

이에 對해 정연주는 自身의 解任이 不當하다며 訴訟을 提起하였고, 2008年 8月 20日 서울行政法院 李明博 大統領의 解任 處分 效力을 정지시켜달라며 申請한 解任執行停止 申請을 棄却했으며 2008年 8月 22日 서울南部地法 은 KBS 理事會 決意에 對한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을 棄却하였다.

KBS 社長 解任 [ 編輯 ]

現 放送法 上에는 大統領에게 KBS 社長 任命權은 있으나, 免職權까지 함께(이를 任免權라고 한다) 明示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政府와 한나라黨 은 任命權에 免職(解任)權이 包含된다고 主張하면서, 前 政府 出身의 KBS의 首長인 정연주 社長에게 辭退를 慫慂하였다. [4] [5]

이에 對해서 民主黨 , 민주노동당 , 創造韓國當 , 進步新黨 等을 爲始로 하여 中道·進步的 市民團體 및 傾向· 한겨레 等의 言論社에서는 李明博 政府 가 放送 掌握과 李明博 政府의 口味에 맞는 코드 人士를 社長 자리에 앉히기 위해 監査院 , 檢察 , KBS 理事會를 動員하여 解任시켰다고 보았고, 한나라黨, 自由先進黨 等을 爲始로 하여 保守 團體와 所謂 朝中東 이라 일컬어지는 保守言論에서는 KBS가 지난 10年동안 左偏向的이었고 鄭 前 社長이 이른바 코드人事라고 主張하며 鄭 社長 解任에 贊成했다. [6] [7] [8]

2008年 8月 5日 , 監査院 은 KBS에 對한 特別監査 結果를 發表하였다. 이 때까지 監査院은 總 4次例에 걸쳐 監査 結果에 對한 정연주의 疏明 機會를 주기 위해 出席을 要請하였으나 정연주는 이를 拒否하였다. [9] 이에 따라 정연주의 疏明 없이 KBS에 對한 監査院의 特別監査를 마친 監査院은 정연주의 社長 在任 時期에 發生한 KBS의 累積赤字와 放漫한 經營, 코드 人事 專橫, 法人稅 還給 訴訟 取下에 따른 KBS의 損失 等을 綜合해 보았을 때 정연주에게 KBS 經營責任者로서의 脾胃가 顯著하다고 最終 判斷하고 KBS 理事會에 정연주 解任勸告案을 傳達하였다. [10] 이에 對해 다음捺印 8月 6日 , 정연주 社長은 記者會見을 열고 監査院의 特別監査 結果에 條目條目 反駁하며 監査院의 特別監査 自體가 '政治的인 意圖'가 있다고 主張했다. 또한, 現行 放送法에는 KBS 社長 解任權이 大統領에게 없음을 다시 한番 强調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KBS 理事會 人士들에게 自身을 解任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 것을 當付했다. [11] 한便, 監査 結果에 對해 無效를 主張하는 公營放送 守護를 위한 촛불示威가 8月 7日 에 KBS 本館 앞에서 있었으며 이 過程에서 言論勞組 委員長, 鄭淸來 前 議員等이 連行되기도 하였다. [12]

그러나, 정연주의 記者會見이 있고 난 다음捺印 8月 8日 에 理事會는 結局 정연주 社長 解任決議案을 議決했다. 이 過程에서 理事會를 沮止하고자 KBS 職員 一部가 3層 會議室 進入을 試圖했으나 理事會의 要請을 받고 KBS 內部에 進入한 警察들에 依해 制止당했다. 또한 親與 性向으로 分類되는 理事들이 解任建議案을 議決한 뒤 나갈 때 私服警察이 이들을 事實上 護衛한 點을 들어 이들이 事前에 緻密하게 準備하지 않았느냐는 疑惑이 提起되었다. [13] 李明博 大統領은 8月11日 정연주 社長을 解任했다. 解任建議案이 可決된 後, 정연주 前 社長을 위한 辯護人團이 構成되고 解任提請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을 法院에 提出하였다. [14] 그러나 8月 20日 서울行政法院은 정연주에게 "回復할 수 없는 損害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解任 處分을 停止시켜달라는 정연주의 申請을 棄却했고 [15] , 정연주의 抗告로 열린 이 裁判의 2審에서도 서울高等法院은 "理由없다."며 棄却했다. [16] , 한便 이와 別途로 열린 裁判에서 8月 22日 서울南部地方法院도 "現行法上 大統領에게 韓國방송공사 社長 解任權이 認定된다"며 정연주가 提起한 解任決議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을 棄却하였다. [17] .

2009年 8月 18日 法院은 起訴됐던 背任 嫌疑에 對해서 정연주에게 無罪 判決을 내렸다. [18] 2009年 11月 12日 정연주가 李明博 大統領을 相對로 낸 解任處分 無效 請求 訴訟에서 裁判部는 "解任 處分 節次上 瑕疵가 있고, 裁量權도 濫用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연주의 一部 勝訴 判決을 내렸다. [19]

2009年 11月 12日 , 聯合뉴스 의 報道에 따르면, 서울行政法院 行政 13部 所屬 정형식 部長判事는 정연주 前 KBS 社長이 李明博 大統領을 相對로 낸 解任處分 無效 請求 訴訟에서 "解任處分을 取消한다"며 原告 一部 勝訴 判決했다. 裁判部는 "原告에게 一部 思惟에 對해 經營上 잘못이 있다는 것은 認定하지만 解任事由로 認定되지는 않는다"며 "鄭 前 社長에 對한 解任處分은 裁量權을 逸脫ㆍ濫用한 違法이 있어 KBS 社長 解任 處分을 取消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이 判決이 大法院에서 確定되면 KBS 社長으로 復歸할 수 있지만 任期가 11日밖에 남지 않아 復職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報道하였다. [20] 그러나 "解任處分을 無效로 할 程度까지 明白한 違法性은 없어 無效請求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解任 無效 請求에 對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解任 處分 取消 決定을 내렸다.

2012年 1月 12日 解任의 主要 論理였던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 等에 關한 法律上 背任罪’에 對해 大法院은 지난 1月12日 最終 無罪를 確定했으며, 解任處分 無效 訴訟에 對해서도 大法院은 지난 2月23日 解任處分 取消 判決을 確定했다. [21]

檢察의 背任 嫌疑 起訴 [ 編輯 ]

2009年 8月 18日 , 1審인 서울中央地法 刑事合意 22部(이규진 部長判事)는 檢察이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法 上 背任 嫌疑로 不拘束 起訴 된 그에게 無罪를 宣告했다.

이 事件에는 3가지의 爭點이 있는데, 그 爭點은 檢察이 起訴했던 根據였다(괄호 안은 檢察 側 主張).

1. 法人稅 等 賦課處分 取消訴訟의 最終 勝訴 可能性(1審 判決 相當히 유리했으므로 上級審에서도 이길 可能性 높아)

2. 한국방송공사 (KBS)가 받아들인 調停案의 合理性(裁判에 이기면 받을 수 있는 2448億원 抛棄, 調整으로 1892億원 損害 끼쳐)
3. 連任을 위한 目的( 勞組 에서 責任 묻던 狀況에서 서둘러 國稅廳 과의 調整案 合意)

그러나 法院 側은 이 모든 檢察 側 主張에 對해 아래와 같이 反駁했다.

1. "鄭 前 社長이 調整을 選擇한 것은 正常的인 經營 行爲에 該當한다.", "KBS는 法院의 勸告下에 長期間 國稅廳과 相議하고 意見을 調律했으며 1年 넘게 내·외부 專門機關에 諮問을 求하는 等 朝廷의 妥當性을 充分히 檢討했기 때문에 經營不實 責任을 回避하기 위한 背任罪라는 檢察 主張은 받아들일 수 없다.", "KBS는 1審에서 16件 中 9件은 勝訴했지만 7件은 敗訴해 一方的으로 優勢에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2. "1審에서 勝訴했기 때문에 上級審에서도 KBS의 勝訴가 매우 有力했다는 檢察 主張 亦是 判決 宣告 前까지 豫測 不可한 裁判의 特性 에 비추어 볼 때 妥當하지 않다."면서 "通常 法院에서 行해지는 調整 實務의 特性에 비추어 볼 때 어느 한 쪽에 一方的으로 유리한 決定 이 나오는 境遇는 發生할 수 없다."
3. "勞組가 當時 정연주 KBS 社長 時節 社長 退陣을 直接的으로 要求했다고 斷定 못한다."

그 外에도 法院은

1. 鄭 前 社長이 獨斷的으로 調整에 應한 게 아니라 諮問과 內部 檢討를 거쳤고
2. 訴訟에서 이기더라도 國稅廳이 다시 稅金을 賦課할 수 있으며
3. 公企業인 韓國放送이 課稅官廳과 長期間 다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對한 疑問이 든다.

는 等의 判斷 背景도 列擧했다.

裁判部의 無罪 判決이 이루어짐에 따라 檢察 側은 抗訴를 하겠다고 밝혔다. [22] [23]

건양대學校 第 9代 新任 總長 就任 [ 編輯 ]

2017年 9月 18日 건양대學校 第 9代 新任 總長으로 就任했다.

背任 論難 [ 編輯 ]

정연주는 2003年 4月 25日 한국방송공사 (KBS)의 社長으로 就任하여 2008年 8月 11日 在職 時까지 KBS의 人事, 資金 및 會計 業務 等 經營 全般을 總括하였다. [24]

KBS는 管轄 課稅 官廳인 영등포稅務署를 相對로 1999年 9月 頃부터 2004年 5月 卿까지 總 17件의 租稅訴訟(法人稅, 附加價値稅 等에 關한 減額警正請求拒否處分 및 賦課處分 取消訴訟)을 서울行政法院에 提起하였다. 서울行政法院은 2002年 4月 25日부터 2005年 8月 30日까지 사이에 租稅訴訟 中 16件에 對해 判決을 宣告하였고, KBS는 租稅訴訟 1審에서 法人稅 1,348億 원(法人稅 訴訟價額의 81.54%), 附加價値稅 416億 원(附加價値稅 訴訟價額의 61.35%) 等 總 1,764億 원에 關하여 勝訴判決을 宣告받았다. [24]

그러나 2005年 8月 24日 KBS 社長 정연주는 法人稅 追徵額 459億 원만을 還給받고 課稅 當局과 KBS가 當時 進行하던 租稅訴訟을 取下하기로 하는 調停案을 서울高等法院에 提出하였다. 서울高等法院은 KBS가 提出한 調停案을 거의 그대로 反映하여 2005年 10月 13日 法人稅 調整勸告案과 11月 3日 附加價値稅 調整勸告案을 KBS와 課稅 當局에 送付하였다. 以後 KBS는 2005年 11月 16日, 課稅 當局인 영등포稅務署는 12月 30日 法院에 調整勸告案을 受諾한다는 趣旨의 通報를 하였다. 그렇게 KBS는 2005年 12月 29日 영등포稅務署로부터 還給利子를 包含하여 法人稅 追徵分 556億 원(法人稅 追徵額 459億 원에 還給加算利子 包含)만을 還給받은 後, 2006年 1月 5日 및 같은 달 24日 서울高等法院에서 租稅訴訟을 取下하였다. [24]

2008年 5月 14日 KBS의 租稅 訴訟을 擔當했던 前 幹部 曺某氏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정연주를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 嫌疑로 告發했다. [25]

2008年 8月 20日 [25] 檢察은 KBS가 上級審에서도 勝訴할 可能性이 매우 높았다며 2,448億 원(1審 勝訴金額 1,764億 원 + 還給加算利子 684億 원)을 租稅訴訟을 통해 還給받을 수 있었으나 정연주가 合理的 理由 없이 抛棄하여 實際 還給額과의 差額인 1,892億 원(2,448億 원 - 556億 원) 相當의 財産上 利益을 國家가 取得하게 하고, 同額 相當의 財産上 損害를 公使에게 加하였다며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 嫌疑로 정연주를 起訴하였다. [24]

2009年 8月 18日 서울中央地方法院 第22刑事部(裁判長 이규진, 判事 장재용, 判事 최규진)는 정연주에게 無罪를 宣告했다. [24]

2010年 10月 28日 서울高等法院 第5刑事部(안영진 部長判事)는 정연주에게 無罪를 宣告했다. [25]

2012年 1月 12日 大法院 第2部(梁彰洙 大法官)는 정연주에게 無罪가 宣告된 原審判決을 確定했다. [25]

論難 [ 編輯 ]

KBS1 大河드라마에 關한 批判 [ 編輯 ]

2003年 4月, KBS 社長으로 就任한 後 1999年 前任 박권상 社長이 企劃한 高麗史 10年 프로젝트 武人時代 로 中途에 終了하기로 하여 많은 批判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드라마 武人時代 2003年 6月 28日 부터 9時 45分에서 10時 10分으로 [26] 放送時間帶가 變更되어 論難을 일으켰는데 史劇素材로 重複使用된 朝鮮時代물보다 多少 生疏했던 點, 우리 社會에서 權力頂點으로의 役割이 끝난 軍部를 背景으로 한 탓인지 視聽率이 갈수록 下落했으며 後半期 同一 時間에는 SBS 파리의 戀人 이 높은 興行을 記錄하면서 最終回 視聽率이 13.6%에 그쳤고 이 탓인지 當初 崔의 執權까지 다룰 것이 최충헌 의 죽음에서 끝이 나기도 했으며 後續作 不滅의 李舜臣 放映 準備가 덜 됐다는 理由로 [27] 8回가 延長되면서 劇의 흐름이 느슨해졌다는 指摘도 있었다.

KBS 는 1999年 後三國時代, 三別抄, 공민왕 時代까지 다룬 高麗史 시리즈를 企劃하다 KBS 社長에 就任된 정연주에 依해 取消되면서 [28] [29] 各各 350億, 150億의 製作費用人 不滅의 李舜臣 , 해신 드라마와 칭기즈 칸 의 一代記 드라마를 放送하면서 論難이 되었다. [30]

特히, 高麗史 시리즈의 始作을 알린 太祖 王建 은 元來 2000年 1月 1日 始作할 豫定이었으며 當初 김재형 PD가 演出者로 落點되었으나 龍의 눈물 撮影 當時 助演級 탤런트들로부터 金品을 받았다는 理由 탓인지 [31] 1999年 8月 19日 배임수재 嫌疑로 不拘束 起訴되어 [32] 손을 뗐고 이 때문에 王과 비 2000年 3月 26日 幕을 내려야 했으며 結局 김재형 PD는 1999年 11月 26日 서울地檢으로부터 懲役 2年, 追徵金 1612萬원이 求刑 [33] 되었고 龍의 눈물 이 KBS에서의 마지막 演出作이 됐으며 以後 他放送社로 옮겨 처음 演出한 SBS 女人天下 로 再起에 成功했다.

아들들의 大韓民國 國籍 抛棄와 兵役 未畢 [ 編輯 ]

美國 國籍 아들들이 大韓民國 國籍을 抛棄하고 兵役을 未畢했다. 정연주는 美國에 살겠다는 아들들의 뜻을 尊重했고 美國에서 살려면 主流社會에 積極 參與해야 하니 市民權을 獲得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연주의 아들은 大韓民國 國籍 抛棄 以後 大韓民國에 入國해 大韓民國 企業에서 일했다. [ 出處 必要 ]

綜編 批判 [ 編輯 ]

그는 2011年 12月 5日에 放送된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에서 朝中東 綜編 을 "正말 給水를 매기기가 힘들 程度로 참 低質이었습니다"라고 批判하였다. [34]

著書 [ 編輯 ]

  • 《記者인 것이 부끄럽다》. 비봉출판사. 2002年. ISBN   8937603039
  • 《정연주의 證言》. 오마이北. 2011年. ISBN   9788996430575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김다솜. 정연주 "李明博·朴槿惠 政權 8年이 言論 다 망쳐" . 오마이뉴스. 記事入力 2016年 6月 13日. 記事修訂 2016年 6月 14日.
  2. 박용필. (其他뉴스)(오래前 ‘이날’) 11月25日 촛불이 지켜주던 公營放送 . 京鄕新聞. 2016年 11月 24日.
  3. 신태섭 敎授 解職은 정연주 辭退 걸림돌 除去用 《오마이뉴스》 2008年 6月 24日
  4. 김세옥 (2008年 7月 4日). ““大統領에 KBS 社長 解任權 있어”” . PD저널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5. 권혁주 (2008年 7月 22日). ' 입맛 맞는' KBS社長 任命 論難 MB-盧 '닮은꼴 ' . 노컷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6. 노재현, 강병철 (2008年 8月 7日). “政治權, `KBS社長 解任 要求'놓고 對立” . 聯合뉴스 . 2008年 9月 3日에 確認함 .  
  7. 류정민 (2008年 7月 26日). “民主黨 'KBS 정연주 救하기' 팔걷고 나서” . 朝鮮日報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8. 권귀순 (2008年 7月 25日). “민주당 “放送掌握 沮止” 촛불 들고 빗속 集會” . 한겨레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9. 강종훈 (2008年 7月 25日). “KBS, 監査院에 "28日 出席 어렵다" 通報”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0. 정윤섭 (2008年 8月 5日). “監査院, KBS 정연주 社長 解任要求”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1. 김영현 (2008年 8月 6日). “정연주 "公營放送 獨立性 위해 자리 지켰다 "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2. 지연진 (2008年 8月 8日). ' KBS 死守 촛불集會' 强制鎭壓…23名 連行” . 뉴시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3. 최현준 (2008年 8月 8日). “18年 만에 警察 KBS 進入 …職員들 “恥辱의 날”” . 한겨레 . 2008年 9月 3日에 確認함 .  
  14. 신재우 (2008年 8月 8日). “정연주 社長, 解任提請 效力停止 假處分” . 聯合뉴스, . 2008年 9月 3日에 確認함 .  
  15. 차대운 (2008年 8月 20日). “정연주 解任 執行停止 申請 棄却”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6. 이세원 (2008年 9月 5日). “정연주 前社長 解任執行停止 抗告 棄却”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7. 지연진 (2008年 8月 22日). “法院, 정연주 前 社長 解任決議 效力停止 申請 '棄却 ' . 聯合뉴스, . 2008年 9月 25日에 確認함 .  
  18. 강현석 記者 (2009年 8月 18日). “정연주 KBS 前 社長 背任嫌疑 '無罪' 宣告(綜合2報)” . 노컷뉴스 . 2010年 5月 10日에 確認함 .  
  19. 채訟務 記者 (2009年 11月 12日). “法院, 정연주 解任 '無效' 判決” . 아이뉴스24 . 2010年 5月 10日에 確認함 .  
  20. 이한승 (2009年 11月 12日). “정연주 前 KBS社長 解任處分 取消判決” . 聯合뉴스 . 2012年 5月 13日에 確認함 .  
  21. 송선영 記者 (2012年 8月 28日). “정연주 前 社長, '國家' 'KBS' 相對로 損賠訴” . 미디어스 . 2012年 8月 28日에 確認함 .  
  22. “法院, 檢察 主張 모조리 反駁” . 한겨레. 2009年 8月 19日 . 2009年 8月 19日에 確認함 .  
  23. “정연주 前 KBS社長 背任 嫌疑 ‘無罪’” . 京鄕新聞. 2009年 8月 18日 . 2009年 8月 19日에 確認함 .  
  24. 서울中央地方法院 第22刑事部 (2009年 10月 11日). 2008고합887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 (報告書). 다음 블로그.  
  25. beth1004. “정연주 KBS 社長 背任 嫌疑 搜査” . 《參與連帶》.  
  26. 이인표 (2004年 8月 23日). “武臣政權 時代 人物中心 描寫” . 文化日報 . 2018年 11月 21日에 確認함 .  
  27. 김범석 (2004年 5月 16日). “드라마 발목 잡는 '後續 드라마 ' . 일간스포츠 . 2018年 11月 21日에 確認함 .  
  28. `暗黑時代' 高麗史 復元 活潑 聯合뉴스 1999年 1月 29日
  29. (記者의 눈)이진영/KBS에서 밀려난 ‘高麗史’ 東亞日報 2004年 8月 20日
  30. 이형구 선문대 敎授·歷史學 (寄稿/이형구)‘李舜臣’ 後續作이 ‘칭기즈칸’이라니 東亞日報 2005-09-12
  31. 옥철 (1999年 8月 4日). “`용의눈물' 演出家 김재형氏 召喚.調査” . 聯合뉴스 . 2018年 9月 28日에 確認함 .  
  32. 이충원 (1999年 8月 19日). “김재형PD 不拘束起訴” . 聯合뉴스 . 2018年 9月 28日에 確認함 .  
  33. 이명진 (1999年 10月 26日). “[서울地檢] 김재형PD 懲役2年 求刑” . 朝鮮日報 . 2018年 9月 28日에 確認함 .  
  34. 박수진 (2011年 12月 6日). “정연주 “朝中東 綜編, 給水를 매기기 힘들 程度로 低質”” . 노컷뉴스 . 2012年 5月 13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

前任
이긍희
第12代 韓國放送協會 會長
2005年 4月 28日 ~ 2006年 3月 31日
後任
최문순
前任
서동구
第15·16·17代 한국방송공사 社長
2003年 4月 25日 ~ 2008年 8月 11日
後任
이병순
前任
최문순
第14代 韓國放送協會 會長
2007年 4月 2日 ~ 2008年 3月 28日
後任
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