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淳
(趙淳,
1928年
2月 1日
~
2022年
6月 23日
)은
大韓民國
의
政治人
이다.
[1]
서울特別市葬, 韓國銀行 總裁 等을 지냈다.
1928年 2月 1日
江原道
注文鎭
出生이다. 1949年 서울大學校 商科大學 專門部를 卒業하고
陸軍士官學校
의 敎官으로 生徒들에게 英語를 講義하였다. 美國 留學을 마친 後 1968年부터 1988年까지
서울大學校
經濟學科에 敎授로 在職했다. 케인즈 學派의 一員으로서 많은 學問的 業績과 弟子를 남겨
大韓民國
經濟學界에서
서강학派
와
학현學派
에 버금가는 '趙淳學派'라고 일컬어질 程度의 人脈을 構築하였다.
陸士
敎官 時節 陸士 生徒였던
盧泰愚
를 가르쳤던 因緣으로 1988年에
노태우 政府
에 立脚하여 1990年까지
經濟部總理
兼
經濟企劃院
의 長官을 지냈다. 以後 1992年부터는
韓國銀行
總裁를 지냈고, 漢文 古典에도 能했기 때문에 1993年부터 1994年까지
도산書院
의 院長을 지냈다. 다음 해인 1995年 政界에 入門하여
民主黨
에 入黨하고 民選 1期
서울特別市葬
에 當選되었다.
金大中
의 政界 復歸 以後
民主黨
을 脫黨하여
無所屬
으로 지내오다가 1997年 다시 殘留 민주당의 大選 候補로 迎入되어 大選레이스에 나섰다. 그러나 群小 政黨의 勢不利를 느끼고
신한국당
의
李會昌
과 聯合하여 合當하고 初代
한나라黨
總裁가 되었다.
2000年 第16代 總選에서 한나라당에서 公薦을 받지 못한
김윤환
,
이기택
等과 함께
민주국민당
을 構成했으나 정작 本人은 不出馬했다. 여기에 민주國民黨이 地域區 1席, 全國區 1席을 獲得하는 低調한 成跡을 記錄하자 政界를 隱退했다. 한便
명지대학교
夕座敎授를 지냈고,
서울大學校
經濟學部에서 名譽敎授로 在職하였다.
2022年 6月 23日
서울峨山病院
에서 老患으로 因해 95歲로 他界하였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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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譽 博士 學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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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 選擧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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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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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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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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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任
이기택
|
第3代
民主黨
總裁
1997年 9月 11日~1997年 11月 20日
|
後任
(解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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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2代
한나라黨
總裁
1997年 11月 21日~1998年 8月 4日
|
後任
(權限代行)
이기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