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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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出生 1972年 6月 24日 ( 1972-06-24 ) (51歲)
大韓民國 慶尙南道 마산시 馬山會原區 (現 慶尙南道 昌原市 馬山會原區
國籍 大韓民國
職業 俳優
演劇俳優
活動 期間 1993年 ~
宗敎 天主敎 ( 洗禮名  : 크리스티나)
所屬社 935 엔터테인먼트
配偶者 김진민
子女 膝下 1男
웹사이트 935엔터테인먼트 김여진

김여진 ( 1972年 6月 24日 ~ )은 大韓民國 俳優 이다.

1998年 映畫 《 處女들의 저녁食事 》로 데뷔한 그女는 [1] , 2011年 以後 政治的 活動도 活潑하게 하고 있다.

學歷 [ 編輯 ]

政治 活動 [ 編輯 ]

大學生 時節에는 PD系列 運動圈이었지만 大學 卒業 以後 新聞도 뉴스도 보지 않고 政治에 關心을 갖지 않았고 大統領 選擧에서 投票를 했는지도 記憶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 大學校 卒業 以後 盧武鉉 前 大統領의 自殺 以前에는 政治 活動을 하지 않았다. 많은 演藝人들이 參與했던 2008年 촛불示威 에도 參與하지 않았지만 2009年 盧武鉉 이 逝去하자 5月 30日 블로그에 '슬퍼하는 것으로 다시 뵐 수 있다면...'이라는 題目의 글을 올려 哀悼했다. 以後 2010年에는 言論 인터뷰로 政治的 活動을 하였고 2011年에는 示威를 하며 本格的으로 政治 活動을 했다. MBC 《100分 討論》에 出演하여 李明博 政府를 批判했고 [3] 李明博의 登錄金 半값 公約을 履行하라는 1人 示威를 했으며, [4] 大學校 淸掃用役 職員들의 處遇를 改善하기 위해 廣告를 揭載하기도 했다. [5] 2011年 6月에는 한진중공업 整理解雇 撤回 鬪爭 을 促求하며 크레인 籠城에 들어갔던 김진숙 민노총 指導委員과 組合員들을 支援하는 過程에서 警察에 붙잡혔다가 1時間餘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6] 2012年 大韓民國 第18代 大統領 選擧 에서 文在寅 候補 支持宣言을 하였고 贊助 演說을 하였다.

關聯 事件 [ 編輯 ]

  • 2011年 5月 18日 김여진은 自身의 트위터 에 "當身은, 一千九百八十年, 五月 十八日 그날로부터, 單 한瞬間도 自由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當身은 虐殺者입니다. 全斗煥 氏"라는 글을 남겼고 話題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 뒤인 5月 19日 한나라黨 諮問委員 박용모는 自身의 트위터를 통하여 “김여진! 經濟 虐殺者 金아무개 前大統領 두사람에게는 무어라 말할래? 못 생겼으면 함부로 씨부렁거리지마라?”며 “나라 經濟를 죽이는 자는 나라 全體를 죽이는 虐殺者가 아니겠니? 아가리 닥치거라 가시내야”라고 글을 남겼고, 이에 김여진은 “맞을지도..”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7] 같은 날 午後 박용모는 自身의 發言이 世間의 話題가 되자 自身의 트위터를 통하여 “個人的으로 火가 나서 막말을 좀 했다. 시끄럽게 해서 罪悚하게 됐다”, “김여진 以外의 분들에 對하여는 謝過드립니다”라고 남겼다. [8]

演技 活動 [ 編輯 ]

드라마 [ 編輯 ]

映畫 [ 編輯 ]

演劇 [ 編輯 ]

著書 [ 編輯 ]

  • 2011年 《배운 女子》 (씨네21북스)
  • 2011年 《내가 걸은만큼 내 人生이다》 (한겨레출판사)
  • 2012年 《戀愛》 (퍼블리싱 컴퍼니 클)

首相 및 候補 [ 編輯 ]

鳶島 施賞式 部門 作品 結果
1998 第19回 靑龍映畫賞 新人女優賞 處女들의 저녁食事 受賞
1999 第7回 춘사映畫第 새얼굴 女子演技賞 受賞
第35回 백상藝術大賞 映畫部門 女子 新人演技賞 候補
第36回 大鐘賞 新人女優賞 候補
2000 第37回 大鐘賞 女優助演賞 薄荷沙糖 受賞
2002 第3回 釜山映畫評論家協會賞 女優助演賞 吹花癬 受賞
第23回 靑龍映畫賞 女優助演賞 候補
2011 第20回 夫日映畫賞 女優助演賞 아이들... 受賞
2017 KBS 演技大賞 女子 助演賞 魔女의 法廷 候補
2018 第2回 더 서울어워즈 映畫部門 女優主演賞 살아남은 아이 候補
MBC 演技大賞 水木미니시리즈部門 助演賞 붉은 달 푸른 해 候補
2019 第24回 춘사映畫第 女優主演賞 살아남은 아이 候補
SBS 演技大賞 女子 베스트 캐릭터上 復讐가 돌아왔다 候補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