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貨幣 改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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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貨幣 改革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의 貨幣 改革)은 2009年 11月 30日 午前 11時에 奇襲發表된 것으로, 旣存의 舊券 100원을 新券 1원으로 交換한 貨幣改革이다.

目的 [ 編輯 ]

賃金과 物價를 現實化한 2002年 7.1 經濟改革措置 以後 貨幣 價値가 크게 下落하면서 發生한 인플레이션을 解消하는 것 外에도 北韓 住民들이 保有해 暗去來 市場에서 流通되는 地下 資金을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市場과 市場勢力을 統制하고 計劃 經濟를 强化하기 위한 것으로 推定된다.

結果 [ 編輯 ]

交換 自體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手段으로써 全혀 問題가 없었지만 貨幣 交換條件을 제대로 定해놓지 못한 狀態로 始作해 매우 혼란스러웠고 [1] , 그 結果는 매우 低調하였다. 交換 可能한 金額을 世帶當 10萬원으로 限定하고, 나머지 金額은 國家에 바치거나 銀行에 맡겨야 하는 異常한 端緖가 北韓 社會에 相當한 衝擊과 恐慌을 發生시켰기 때문이다. 特히, 北韓 住民들 中 一部 特權層들은 北韓 貨幣를 前부터 믿지 못해 진작부터 , 美國 달러 , 유로 , 런閔妃 (中國 위안, 元)火 等으로 財産을 貯藏해 왔으며, 돈週(큰 商人)들도 런閔妃(中國 위안貨)나 美國 달러貨로 去來를 해 와서 큰 被害가 없었지만 市場의 장사꾼들의 境遇 一般人들보다 現金을 相對的으로 많이 保有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打擊이 發生하였다. [2] [3]

貨幣改革 日誌 [ 編輯 ]

2009年 [ 編輯 ]

  • 11月 30日  : 世帶當 交換可能額數 10萬원
  • 12月 1日  : 世帶當 交換可能額數 10萬원, 以上 金額은 1/1000의 比率로 貯金
  • 12月 3日  : 世帶當 交換可能額數 10萬원 + 家族 1名當 5萬원 追加 交換
  • 12月 7日  : 神權의 流通 始作
  • 12月 8日 ~ 12月 9日  : 財政일꾼會議 끝에 勞動者 賃金 400원臺 檢討
  • 12月 9日  : 工産品의 市場 去來 禁止, 市場 去來 品目들의 價格上限制 實施
  • 12月 11日  : 場마당에서의 食糧販賣를 禁止하고 國營商店에서만 食糧을 販賣하도록 함
  • 12月 中旬 : 김대장 下賜金을 分配함(농민,광부에게 15,000원, 軍官 月給 100% 引上)
  • 12月 末 : 勞動者 賃金을 100倍로 引上函
  • 12月 28日  : 外貨 使用을 全面 禁止

2010年 [ 編輯 ]

  • 1月 1日 ~ 1月 11日  : 場마당을 全面 閉鎖, 商行爲를 全面 禁止
  • 1月 20日  : 勞動黨 財政經濟部腸 박남기 를 解任 措置
  • 1月 28日  : 內閣總理 김영일이 平壤市內 人民班長들 앞에서 貨幣改革問題에 對한 謝過를 函
  • 2月 1日 : 全國的으로 市場 統制를 풀고 外貨使用禁止 解除
  • 3月 12日 : 前 勞動黨 財政經濟部腸 박남기, 전 勞動黨 財政經濟部部長 김태영 等 100名에 對한 銃殺이 强健軍官學校에서 進行됨.
  • 3月 18日 : 前 勞動黨 財政經濟部腸 박남기에게 經濟改革 失敗의 責任을 물어 處刑했다고 알려짐.

各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