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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人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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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人의 삶 (Christian life)이란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따르는 信者 들의 價値觀 世界觀 을 反映하는 生活을 意味한다. 一般的으로 基督敎人들의 生活哲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人 들의 삶은 學術的으로 原理와 方法을 內包하고 있다. 하나님 의 創造目的을 이루기위하여 삶의 領域에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人의 삶의 目的이다. [1] 基督敎 人들이 이 世上에서 聖書的이며 神學的인 要素를 包含하고 있는 基督敎的  價値觀 을 가지고 現實에서 그리스도的 삶의 文化 敵 形態와 結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形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와  바울 , 基督敎 歷史의 나타난 靈的 巨匠과 같은 人物들의 삶의 모델로 삼아 聖經的  世界觀 과 價値觀에 根據하여 그리스도人 들의 삶의 樣式을 追求하는 것이다.

人間 理解 [ 編輯 ]

古代 헬라에서는 너 自身을 알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델피 (Delphi) 神殿의 信託이었고, 소크라테스 의 말로도 有名하다. [2] 그들에게 있어서 自身들을 아는 것은 哲學的 命題이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와 같은 사람은 人間이 平生 ‘眞正한 自身이 되는 法’(自身의 眞正한 모습을 아는 것)李 人生의 目標라고 본다. [3]

神學的 觀點에 본 人間 [ 編輯 ]

自己 自身을 省察한다면 人間은 窮極的으로 失望하게 된다고 칼빈 은 말한다. 人間을 聖經으로부터 理解했던 傳統的인 神學과 달리 現代 神學者들은 聖經 中心이 아닌 哲學的 體系가 중심되어 哲學과 聖經을 混合하여 人間을 理解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啓示를 理性的, 科學的, 哲學的으로 解釋하는 것은 限界가 있다.

  • 어거스틴 - 原罪로 墮落하였고 恩惠로 救援받는 人間을 말한다.
  • 펠라기우스 는 人間의 全的 墮落과 救援의 無能力을 否認하고 自力救援을 主張한다.
  • 루터 의 義人事賞은 어거스틴의 恩寵論에서 왔다.
  • 칼뱅 - 하나님의 形象으로 創造되었나 墮落으로 歪曲되어 그리스도로 인해 形象이 回復되어야 함을 말한다.
  • 슐라이에르마허 와 리츨 - 칸트 나 新 칸트의 哲學 體系를 使用하여 純粹한 內在的 人間論을 主張한다.
  • 키에르케고르 - 人間은 하나님 앞에 선 單獨者이다. 피造成의 槪念으로 說明한다. 人間은 生과 死의 緊張 속에서 自身의 피造成을 깨닫고 自身의 實存을 發見한다는 것이다.
  • 바르트 -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人間性을 回復한다고 본다.
  • 볼트만 - 실존적 自己理解를 强調한다.
  • 고가르텐 - 律法과 福音의 要求 아래 있는 對話的, 活動的 人格 사이의 緊張에서 解釋한다.
  • 틸리히 ? 人間을 疏外 狀態에 빠진 字로 說明한다.
  • 니부어 - 하나님의 形象과 同時에 罪人을 말한다. 니부어는 人間의 自己의 有限性을 認定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努力하는 存在者 卽 罪人으로 人間을 말한다.
  • 몰트만 과 판넨베르그 - 마르크스나 블로號, 마르쿠제 等의 辨證法的이고 進化論的 唯物史觀을 中心으로 普遍私的이고 進化論的 人間學을 主張한다.

그리스도人의 삶에 對한 解釋 [ 編輯 ]

  • 코람 데오 - 하나님의 意圖로 創造된 人間은 하나님의 尊前에서 사는 삶 [4]
  • 하나님의 말씀 앞에 直面한 存在
  • 하나님의 創造 目的과 設計
  •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生命의 삶
  • 自然的, 靈的, 復活의 삶

基督敎人에 對한 定義 [ 編輯 ]

基督敎人 使徒行傳 11張 25~26節. 基督敎人 或은 그리스도人 基督敎 를 믿는 사람, 다시 말해 聖經에서 메시야 로 豫言된 예수 그리스도 의 삶과 가르침을 中心으로 하는 宗敎 를 믿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이用語가 使用되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意味이다. Christian Christian The Greek word Χριστιαν?? (Christianos), meaning "follower of Christ", comes from Χριστ?? (Christos), meaning "anointed one

使用의 根源 [ 編輯 ]

弟子들이 그리스도人이라고 불렸던 안디옥 都市 近郊에 있는 베드로 敎會

바나바 사울 (바울)을 안티오크 로 데려 간 後에 사도 行纏 11 章 26 절에서 約 1年 동안 弟子들에게 가르쳤던 新約 聖書에 그 用語 (또는 다른 言語로 된 그 語源들)의 처음 使用된 記錄이있다.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 弟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人이라고 불 렸습니다." 두 番째 言及은 사도 行纏 26 腸 28 節에 나온다. 헤롯 亞그립바 2 世는 使徒 바울에게 "아그리빠가 바울에게 對答했다. 거의 너는 나를 그리스도人으로 說得했다"고 對答했다. 세 番째이자 마지막 新藥의 用語에 對한 言及은 베드로 戰서 4:16에서 信者들에게 勸告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人으로 苦痛을 當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를 代身하여 하나님 께 榮光을 돌리게하십시오." [三]

케네스 사무엘 웨이스트 (Kenneth Samuel Wuest)는 新約 聖書의 세 句節의 모든 句節은 그리스도人이라는 用語가 로마 皇帝를 認定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追從者들을 言及하는 粗雜한 要素를 反映한다고 主張한다. 누군가가 그곳에 基督敎人이라는 이름을 주었던 안디옥 (Antioch)이라는 都市는 그러한 別名을 찾는 것으로 評判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이 用語를 明白히支持함으로써 "나사렛"보다 選好되었고, 베드로부터는 크리스토 니노라는 用語가 이그나 티우스와 폴리 카르 以後의 初代 敎會 敎父들의 標準 用語街되었다. 크리스천이 아닌 文學에서 가장 처음 登場한 用語는 "그리스도人의 支派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를 가리키는 요세푸스를 包含한다. 그리고 他 케이 터스 (Tacitus)는 1 世紀 末頃에 글을 썼다. 實錄에서 그는 "低俗한 名稱 [一般的으로 그리스도人이라고 불린다]"과 關聯이 있으며, 그리스도人을 로마의 偉大한 화재를위한 네로의 犧牲羊으로 確認했다.

時代別로本 基督敎人들의 삶 [ 編輯 ]

聖經과 敎會 歷史속에 나타난 그리스도人들의 삶을 時代마다 다양하게 强調點이 나타난다.

舊約과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하나님의 形象 으로 創造된 人間-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41

  • 宗敎的 存在이며 -善惡果를 통한 하나님과의 關係를 形成, 言約을 遵守
  • 責任的 存在 -동산管理者로 勞動과 다스림(창: 1張 26-28)
  • 言語的 存在- 言語를 통한 解釋的 存在로서 삶-動物들의 이름을 지음

破壞된 人間의 삶 [ 編輯 ]

舊約聖經 35人物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聖經人物事前 Archived 2017年 9月 19日 - 웨이백 머신

*
아담
의 삶- 罪로 汚染된 思想과 行動으로 宗敎的, 責任的, 解釋的 存在의 使命에 致命的인 腐敗가 일어남
  • 夫婦 關係의 責任攻防- 하와와 아담이 서로의 罪를 핑계됨- 罪는 責任性을 回避, 衒學的 言語를 驅使하게 됨
  • 罪의 影響- 轉嫁- 家族 共同體에 全體로 퍼짐

카인의 殺人 -잘못된 內的이며 마음의 中心이 잘못된 狀態에서 宗敎的인 儀式을 行함, 卽 하나님께 드리는 禮拜의 方式과 內的 態度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이 그의 祭物을 받지않자. 그의 顔色이 안좋아짐- 하나님은 善을 行하도록 警告했지만 듣지않았다. 殺人이라는 暴力을 恣行하다. 하나님께悔改하지 않고 도리어 바른 宗敎的 關係와 올바른 禮拜를 俊秀한 동생을 暴力的으로 죽임. 人間은 自己의 뜻대로 自身의 삶의 方式대로 하나님께 暴力的인 行動을 하고 그에게 叱責을 받으며 周邊의 사람들에게 暴力的으로 行動하는 典型的인 罪의 行動的 結果와 代理的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 카인 의 暴力的 삶과 彷徨하는 삶속에도 하나님의 恩惠는 함께있었다. 歌人을 保護함.

佳人의 後孫들- 文化的 삶을 즐겼다(창 4:16-24). 後孫가운데 라멕은 殺人을 많이했다. 窓 4:23 아담의 後孫들 - 宗敎的 삶-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노아 의 삶- 終末論的 삶의 原形-말씀을 따라 마지막 未來를 準備하며 現在를 사는 삶.

아브라함 의 삶- 故鄕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서 定着하기 前까지 屈曲과 믿음으로 順從하기까지 結局 믿음의 祖上으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의 삶- 終末의 危機 속에서 사는 삶, 그의 아내는 罪와 誘惑으로 죽음, 利己的인 삶, 道德的 影響力을 喪失한 삶

이삭 의 삶 하나님의 選擇으로 始作되는 삶(生命의 主人은 하나님), 言約의 後孫, 모리아 山에서 財物로, 에서를 偏愛(窓 25:27, 28)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임 窓 26:7-11, 順從的 삶으로 信者→들의 模型

야곱 의 삶- 리브가의 寵愛와 長子權을 빼앗음, 波瀾萬丈한 삶, 요셉을 偏愛, 人間的의 꾀와 生存哲學이 剛함

요셉 ..苦難의 아픔이 하나님의 攝理(窓 45)-萬民의 救援과 生命을 위함(창 50), 罪에 敏感, 啓示依存 史上, 지혜롭고 賢明한 삶, 寬容과 믿음의 삶

士師記 時代.. 하나님과 말씀을 떠난 苦難의 行軍, 異邦國家들에 依해 채찍을 맞음, 二律背反.. 逆說的 敎訓들. . 罪의 誘惑- 人間 罪性의 自由함과 悔改와 하나님의 사랑(懲戒의 채찍). 하나님을 떠난 人間들의 苦痛과 悽絶한 모습

  • 드보라 - 女史社, 바락과 協力하여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물리침 (4:4-5:31) 男子들의 數値를 드러냄
  • 삼손- 聖靈의 能力과 罪의 誘惑 사이에서 사는 삶, 最後 죽음에서 悔改와 더불어 勝利의 삶의 모습

모르도개(뜻: 작은사람)- 바使에 잡혀간 捕虜였지만 祕密兵器 에스더를 養育시켜 하나님義百姓들의 生命을 求함, 王의 陰謀를 申告하고 惡人 하만에게 敬意를 표하지 않음. 예스더에게 勝負手→를 던지개하는 決斷의 삶을 살았다.

에스더- 모르度個의 提案에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生命을 救한 智慧로운 信仰的 삶의 女性

나오미- 自身 寡婦이면서 아들들이 모두 죽고 自負들이 寡婦가 되었지만, 지혜로운 女性으로 寡婦 며느리 룻을 보아스와 結婚하도록 삶을 逆賊시킨 苦難의 勝利者

룻기 . 나오미를 選擇-힘들지만 眞理의 길을 따름 .絶望에서 希望으로. 말씀에 純宗, 다윗과 그리스도의 祖上이 됨

사울王- 하나님보다는 人間을 重要하게 생각, 말씀보다는 自身의 職分을 重要하게 생각, 하나님께 純宗보다는 自身의 決定을 重要視함

요나단 - 人間的인 名譽와 職分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다윗을 사랑함. 權力을 防禦하려고 다윗을 죽일려능 아버지 사울王과 다른 삶을 살다. 다윗을 自身의 生命처럼 사랑하는 모습.

다윗..罪人과 義人 사이, 木洞時節, 골리앗을 죽임, 사울王에게 生命의 威脅을 받음, 王의 統治와 그의 失手와 智慧들

욥기. . 無知의 理致. 하나님의 絶對主權, 義人의 苦難도 하나님의 攝理이다.

솔로몬과 유다王國 .背反

솔로몬의 老年의 삶

"솔로몬의 富貴와 智慧와 모든 榮光을 누리는 世上的인 成功에 이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靈的墮落에 對해 바로 말씀을 하신다. 世上의 成功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솔로몬의 성공을 말씀을 하신다. 이런 솔로몬을 하나님께서는 直接 두番씩이나 나타나셔서 悔改하고 돌아올 機會를 주었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과 命令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져 結局 墮落으로 이어진 솔로몬의 삶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오늘 本文에서 솔로몬을 對敵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솔로몬을 일평생 사는 동안 솔로몬을 對敵하고 괴롭게 하는 勢力으로 使用하신다." [1] Archived 2017年 9月 30日 - 웨이백 머신

北 이스라엘.. 偶像

豫言者들. 眞理와 苦難의 삶. .이사야..예레미아

바벨론 捕虜時代의 삶.. 苦難의삶

砲로 貴한.. 希望과 再建

舊約의 結論的 敎訓

舊約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百姓들의 삶의 모습들

  • 하나님과 關係的 삶의 維持. 生命과 죽음 卽 審判
  • 罪의 剛한 作用. 罪人임 보여줌
  •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慈悲를 - 헤세드 보여줌
  • 宮國敵으로 메시야를 希望하는 삶을 사는 길을 보여줌

新約과 그리스도인 삶 [ 編輯 ]

舊約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關係속에서 하나님의 百姓들의 삶이 要求되었다.

窮極的인 罪의 問題의 解決者로 聖子 예수 그리스도의 誤審으로 罪를 容恕받은 聖徒들의 眞正한 삶의 모습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다. 新約에서는 참된 하나님이신 主님이 오셔서 참된 聖徒들의 삶의 모습으로 模範을 보여주셨고, 弟子들도 그의 삶의 모습을 따르면서 살았으며 그리스도人들에게도 同一하게 主님의 삶의 모습을 따르도록 訓戒한다.

新約 속의 예수의 삶 [ 編輯 ]

  • 예수님의 生涯의 年代記的 모습에서 그의 삶의 모습을 쉽게 理解하게 된다.

예수님의 生涯票

  • 特別히 4福音書에서는 그의 삶의 具體的인 情況과 여러問題들의 解決과 참된 그리스도人들의 敎訓들을 보여준다.
  • 參考 文獻

삶의 特徵들 [ 編輯 ]

삶의 模範을 주신 것들

  • 섬김- 하나님의 形象을 가진 存在에 對한 待遇, 하나님 만이 참된 섬긴의 對象, 우리는 서로를 섬기면서, 驕慢을 버리고 참된 삶의 姿勢를 코람데오의 삶을 敬虔하게 살아야 한다.
  • 犧牲-苦難, 十字架를 짊, 죽으심
  • 容恕 - 人間 自身의 不足함과 罪를 認定하는 것
  • 사랑과 配慮- 사랑하는 것은 弟子의 모습(요 13: 34), 配慮의 對象者들 - 弱者, 疏外된 者들, 蔑視받는 者들
  • 希望 -救援의 約束, 再臨의 約束
  • 自己夫人 마 16:24
  • 온유 - 마 11:29
  • 自費 - 고후 :7, 9
  • 苦難- 벧전 2:21-23
  • 精潔한 삶 - 曜日 3:3
  • 謙遜- 빌 2:5,7
  • 純宗 - 요 15:10
  • 하나님께 榮光 - 요 17:4

新約 속의 弟子들의 삶 [ 編輯 ]

弟子들- 예수님의 삶을 따랐다.

바울 - 그리스도를 본받는자가 되었고 自身이 그리스도들 본 받고 따르는 것처럼 聖徒들도 自身을 본 받으라고 함

  • 앤 크리스토 -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
  • 聖靈으로 사는 삶
  • 福音으로 사른 삶
  • 그리스도를 萬有의 州로 證據하는 삶
  • 歷史의 主人이며 審判主로 認定하고 사는 삶- 標대를 向하는 目標
  • 믿음, 所望, 사랑의 實踐-古典 13張
  • 區別된 거룩한 삶. 벧전:1:14-17

그리스도人의 特性 [ 編輯 ]

  1. 하나님께 對한 態度
  • 믿음-히 11:6, 敬虔 - 딛 2:12 사랑-마 22:36, 기뻐함 - 빌 4:4그리스도에 對한 態度 믿음- 딤後 1:12, 敬拜 - 빌 2:4-1, 본받음 - 古典 11:1, 交際-曜日 1:3
  • 聖靈님에 對한 態度 聖靈을 좇아행함-갈5:16, 充滿을 받음-엡 5;18, 印度-柳 1:20, 消滅치말라-살전 5:19, 가르침을 받음- 요 14:26
  • 世上에 對한 態度 淨潔 -딤
  • 信者에 對한 態度
  • 信仰을 나타내는 行爲
  • 恩惠를 表現하는 行爲

初代敎會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말씀에 따르고 聖靈의 充滿한 聖經的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聖靈 充滿한 삶- 使徒行傳4:32-37 [2]
  • 基督敎的 價値觀, 基督敎 世界觀, 基督敎 文化館,
  • 終末論的 삶 - 하나님 나라의 擴張을 위해서 살았고 到來를 대망
  • 돈과 偶像을 버리고 하나님께 順從하는 삶- 使徒 바울(行 19:10), (行 19:29)

中世時代의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카타콤과 基督敎의 承認 [ 編輯 ]

카타콤 時代 [ 編輯 ]

카타콤 (Catacomb)는  무덤 으로 使用하기 위하여 좁은  通路 로 이루어진  地下   墓地 이다.  基督敎人 들이  로마 帝國 의  迫害 를 避해 숨어들어서  禮拜 하였다. 아주 넓고 어두운 곳으로, 基督敎人들이 나올때에는 거의 장님이 되어 나올 程度였고, 約 10坪 程度의 작은 넓이의 땅에서 400名이 讚頌을 하였고, 傳染病이 돌면 三分의 一二 죽었다고 한다. 基督敎가 逼迫을 받지 않고 나왔다가도 墮落을 보고 後悔한 基督敎人이 다시 들어가 生活하였다. IXOCE (익투스) 라는 暗號를 썼는데, 이는 물고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권능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基督敎人은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 基督敎人임을 確認하였다. Catacombs_of_Rome Catacombs_of_Rome

  • 信仰優先前 삶- 權力과 政治보다는 믿음의 삶에 强調, 逼迫과 苦難속에서 그리스도人의 삶을 堪當
  • 逼迫의 삶- 眞正한 그리스도人을 만든다.

콘스탄틴 大帝 以後 [ 編輯 ]

콘스탄티누스 1歲 272年   2月 27日  -  337年   5月 22日 )

콘스탄티누스 1世는 흔히 첫 番째 그리스도인 로마 君主로 알려져 있다. 基督敎의 先生으로 諮問家로 有名한 神學者  락탄티우스 를 두었다.

그의 治世는 基督敎 歷史에서 重要한 轉換點이 되었는데  313年   밀라노 勅令 으로 基督敎에 對한 寬容을 宣布하여 基督敎 迫害를 끝내고 事實上 基督敎를 公認했다. 또한 基督敎 敎會의 押留된 財産을 돌려주고 이에 對한 國家의 補償을 定했다. 비록  311年  先制  갈레리우스 가 이미 밀라노 勅令과 비슷한 基督敎에 對한 寬容을 宣布하였지만, 콘스탄티누스 1歲의 積極的인 基督敎 振興策으로 로마에서 基督敎의 位相은 새로이 定立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世는 다양한 法令을 통과시켰다.

  • 基督敎   聖職者 에게는 稅金을 賦課하지 않게 하는 法令을 頒布하였다. 또한 以前과는 다르게 聖職者의 私有財産 所有를 承認하였다.이것으로 帝國은 財政難에 시달리게 되었다.
  • 基督人들의 特惠는 社會的 어려움과 道德的 解弛를 가져올수도 있다.
로마 帝國의 公認 [ 編輯 ]

基督敎의 歷史#.EB.A1.9C.EB.A7.88 .EC.A0.9C.EA.B5.AD.EC.9D.98 .EA.B3.B5.EC.9D.B8 古代의 基督敎 電波地域      325年     600年

313年  콘스탄티누스 1歲 가  밀라노 勅令 을 發表하여 基督敎에 對한 迫害를 中止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歲의 어머니 헬레나는 基督敎 信者였으며, 傳해지는 이야기로는 콘스炭이누스 1歲가  밀非우스 다리 戰鬪  前날 꾼 꿈의 指示대로 兵士의 防牌에  카이 로 ()를 그린 後 戰鬪에 勝利하자 基督敎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325年 콘스탄티누스 1世는  第1次 니케아 公議會 를 열고 그 동안 다양한 思想으로 分化되어 있던 基督敎의 敎理를 整理하도록 하였다. 이 公議會에서는  單性說 을 主張하는  아리우스파 를 異端으로 規定하고,  니케아 神經 을 採擇하여 基督敎의 基本 敎理를 形成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世는 基督敎를 통하여 政治力을 强化하고자 하였다. 324년에서 330年 사이 로마 帝國은 首都를  비잔티움 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都市를 建設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 로 改稱하였다. 새로 지어진 建物 가운데에는 敎會도 包含되어 있었다.

基督敎가 公認되면서 神學의 集大成度 함께 이루어졌는데,  아우구스티누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예루살렘의 키릴로스 암브로시우스  等의  交付 들이 代表的이다.

어거스틴 時代 (354年- 430年) [ 編輯 ]

아우구스티누스 時代에 道德的 腐敗가 倫理의 正當性이 必要하게 되었다. 이點에서 펠라기우스는 道德的 觀點에서 人間의 自力救援을 主張하게 되었다. 이것이 異端으로 淨罪되었다.

"政治的 狀況으로 볼 때 어거스틴은 콘스탄틴 以後 基督敎가 認定되고 國交化 되면서 逼迫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한 篇으로 敬虔이 衰落하고 墮落으로 떨어지는 逆機能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다른 한便에서 神學的 硏究에 깊이 沒入하고 平安한 時代에 基督敎人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哀惜하게도 基督敎와 로마는 얼마 가지 않아 異邦人들의 侵略을 받게 되고 沒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러한 狀況은 異敎徒들의 挑戰을 받게 되고 基督敎化 된 後 로마가 亡한 理由가 基督敎에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基督敎에 억눌려 살았던 異敎徒들이 基督敎人들에게 怨望의 화살을 쏘게 된 것입니다. 當時 어거스틴의 親舊이자 로마의 行政擔當官人 마르켈리누스는 異敎徒들의 對抗에 對應할 수 있는 사람이 어거스틴 밖에 없음을 깨닫고 도움을 要請합니다. 413에 始作하여 427에 完成된 < 하나님의 都城 >은 로마의 滅亡이 基督敎에 있지 않으며, 로마가 곧 ‘하나님의 都城’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世上의 都城인 로마는 不完全하며, 缺乏되어 있고, 欲望과 罪가 가득한 곳이라고 力說합니다. 비록 이곳에 一部의 善과 公義가 있다고 할지라도 世上의 都城은 審判받아 마땅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基督敎人은 이 世上의 都城에 살지만 永遠한 하나님의 都城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거스틴은 < 하나님의 都城 >을 記述하면서 ‘世上의 都城’과 ‘하나님의 都城’을 區分하고, 로마의 滅亡 理由가 基督敎에 있지 않다는 것을 辨證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13年의 오랜 執筆 期間과 厖大한 分量은 不可避하게 最高善의 問題, 叡智와 運命의 問題, 自由意志의 複雜한 主題들을 끌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本書는 單純한 基督敎的 歷史 哲學의 觀點을 넘어 基督敎의 總體的 問題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正統 敎會의 敎理整理의 始作 -올바른 信仰과 神學을 定立

中世時代의 삶 [ 編輯 ]

敎會와 聖職者 中心의 世界觀에 따라서 敎會와 敎皇의 權威에 順從하는 受動的 態度의 삶을 살았다.

  • 經濟的 政治的 宗敎的 混沌의 時代, 黑死病으로 苦痛의 時代
  • 敎會와 하나님의 나라를 一致시키는 誤謬를 犯하여 지나친 敎會와 聖職者의 權威에 强調로 因한 社會的 不均衡과 敎會의 腐敗를 招來하게 되는 原因이 됨
  • 聖經의 참된 敎訓과 하나님의 참된 뜻이 尊重되지 못한 모습
  • 르네상스 人文主義 運動으로 基督敎人들의 삶을 反省하게함
  • 새로운 敎會 改革을 기달리는 聖徒들이 出現, 위클리프 롤라드 運動, 얀 후스 , 틴데일 ,
  • 敍任權 論爭- 皇帝와 敎皇의 權限의 鬪爭으로 敎會의 本質과 使命에 傷處를 입음
  • 十字軍 戰爭- 이슬람과의 지나친 戰爭으로 많은 被害를 發生
  • 스콜라哲學의 登場- 基督敎人들의 具體的인 삶의 强調보다는 理性的, 論理的 哲學的 論究에 置重
  • 르네상스 人文主義 運動의 始作- 새로운 世界觀的 삶의 始作

中世에서 宗敎改革以前 時代의 人物들 [ 編輯 ]

眞理의 말씀으로 살려고 몸부리치던 人物들이다.

  • 존 위클리프 : 聖經 飜譯으로 苦難과 무덤이 파헤쳐져 名譽殺人을 當함.교황의 權力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敎理에 攻擊을 加하였다. 後에 宗敎 改革 運動의 여러 原理는 모두 그의 敎說 가운데서 싹텄다고 여겨지기도 하며 위클리프의 敎說은 롤라드, 卽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依해 各地에 퍼졌다. 民衆에게 福音의 眞理를 傳하기 위해 라틴語로 된 聖書를 英語로 飜譯하여 마침내 1382年에 完成하였다. 殉敎者 윌리암 틴데일에게 聖經을 英語로 飜譯하는데 큰 影響을 주었다. 化體說을 反對하고(transubstantiation), 修道院制度를 批判하고 敎皇의 權威를 反對하였다.
  • 롤라드 : 위클리프 後裔들-위클리프를 따르는 ‘가난한 司祭들’은 英國 全域의 마을을 돌며 위클리프의 飜譯된 英語聖經을 가지고 英語로 說敎했으며, 腐敗한 敎會의 改革.
  • 얀 후스 : 위클리프에게 影響을 받고, 敎皇批判, 盛饌 時 葡萄酒와 떡 憤兵을 主張, 火刑 當함-모라비아 敎會 或은 체코 改新敎라는 名稱으로 命脈.
  • 프라하의 제롬 (히에로니무스): 哲學者, 神學者, 宗敎改革家로서 自身의 삶을 獻身하였고, 잘못된 敎會의 腐敗와 敎理를 改革, 火刑 當함.
  • 社보라롤라 : 이탈리아의 도미니쿠스回 修道士·說敎가·종교개혁가이다. 사보나롤라는 說敎를 통해 피렌체 詩를 改革하고, 民主政治를 實施하려고 했다. 또한 敎皇 알렉산데르 6歲의 不道德을 非難하고 火刑 當함. 當時 支配者인 로렌초 데 메디치를 攻擊하고, 敎會와 俗世의 墮落을 辛辣하게 批判.
  • 피터 발도 : 그의 目的은 淸貧한 使徒的 삶이었으며, 가난했지만 예수님이 그의 삶 全體를 이끄신다는 確信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財物에서는 자유로워졌고 예수님께는 종이 되었다. 얼마 後, 왈도는 福音을 傳하기 위해 旅行.
  • 윌리엄 틴들 : 존 위클리프에게 影響을 받아 英語로 聖經을 飜譯한 사람이다. 그는 英語 飜譯을 위해 獨逸로 건너가 祕密裏에 飜譯作業을 했으며 旣存에는 없던 새로운 單語를 만들기도 했다. 聖經을 飜譯한 罪로 逮捕되어 1536年 10月6日 火刑 當했다.

宗敎改革 時代의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마르틴 루터 의 敎會의 腐敗를 改革하여 말씀中心의 삶을 强調하였다. 章 칼뱅 츠빙글리度 하나님 앞에서 卽 코람데오의 삶을 强調하여 社會, 政治, 文化의 變革을 이룩하였다.

宗敎改革家들의 日常의 삶 [ 編輯 ]

宗敎改革은 基督敎 歷史만이 아니라 世界史에서도 한 劃을 긋는 事件이었다. 外的으로는 改新敎가 誕生하게 되었고 內的으로는 基督敎 信仰이 새로워지는 契機가 되었다. 이로 인해 改革된 信仰에 對해서는 다양한 評價가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는 宗敎改革의 靈性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 “平凡한 사람들의 日常은 事實上 모든 領域에 걸쳐, 修道院 안에서 자라던 豐富한 靈性으로부터 影響을 받지 못했다. … 宗敎改革과 더불어 유럽의 大都市들이 그리스도人들의 새로운 思考와 行動方式의 搖籃이요 그것이 녹아든 도가니로 登場하면서, 靈性이 形成되는 中心은 차츰 차츰 修道院으로부터 場터로 옮겨갔다. … 宗敎改革은 그리스도의 信仰을 이 새 時代의 狀況과 生活方式에 連結시키려고 이루어진 하나의 끊임없는 試圖였다.”

또 이런 말도 했다. “宗敎改革의 靈性은 日常 世界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그 뿌리를 내리면서 아울러 그 삶을 志向한다. … 宗敎改革 靈性의 核心 要素들-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신칭의와 倫理의 實踐이라는 敎理지만-은 甚至於 집안 살림을 챙기는 것과 같은 가장 平凡한 日常生活에도 새로운 次元의 意味와 重要性을 附與하였다.”(종교개혁 時代의 靈性)

中世敎會와 比較했을 때 宗敎改革者들은 生活信仰의 重要性을 强調했다. 代表的인 例로 宗敎改革의 불을 댕긴 루터는 마태복음 6張 24節~34節을 註釋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世上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고 敎會뿐 아니라 집까지 부엌, 狂, 作業場, 논과 밭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場所가 될 수 있다.”

칼뱅 도 누가복음 10張 38節을 註釋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世俗的인 일들을 멀리하고 默想에 沈潛함으로써 天使와 같은 삶을 營爲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誤謬를 犯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부지런히 勞動하도록 創造된 存在이고 自己 召命에 熱中하고 어떻게 共同善을 위해 살 수 있는가를 부지런히 살피는 일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祭祀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으로 始作된 改新敎 信仰은 時間이 가면서 漸次 中世敎會의 信仰을 닮아간다. 宗敎的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生活 속에서는 그 信仰이 제대로 表出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現實에 對해서 폴 스티븐스는 이렇게 指摘한다. “基督敎의 겉모습은 하나님을 發見하고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또한 제대로 祈禱하기 위해 定型化된 宗敎的 機構이다. 反面 基督敎의 核心은 하나님이 超越的인 意味와 抑制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日常的 삶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靈性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나누는 交際다. 그러나 聖經的인 그리스도人이라면 이 交際를 每日의 삶, 現實의 삶으로 具體化하고 具現하고 엮어내야 할 것이다.”(현대인을 위한 靈性)

只今까지도 敎會는 믿음의 關心事를 宗敎的인 領域으로 制限해 왔다. 禮拜드리러 가는 것, 말씀과 祈禱生活에 充實한 것, 사람들을 敎會로 引導하는 것 等은 正말 믿음으로 해야만 하는 重要한 일들이다. 그러나 宗敎的 活動만이 信仰의 全部라고 理解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日常生活 속에서 믿음이 드러나야 한다.

도로시 베스는 이에 對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 周圍에 屬한 人間關係의 基本的인 모습이 繼續 바뀌는 이 時代에 살면서 果然 그리스도人이란 어떤 意味인지 깊고도 豐富한 說明을 熱望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와 基督敎 信仰이 어떤 關係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人으로서 親舊 關係, 夫婦關係, 子女敎育, 公的인 삶과 政治的인 삶, 돈을 어떻게 쓰는지의 問題 等을 어떻게 解決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어떤 그리스도人들은 이러한 問題에 對하여 스스로 努力하여 解答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發見하여 쌓아놓은 再考의 解答들로 滿足하고 自身이 願하는 答을 찾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境遇 우리 그리스도人들은 만족스러운 洞察力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分別하도록 도와주는 信仰을 찾고 있다.”(일상을 통한 믿음 革命)

비슷한 脈絡에서 마이클 프로스트度 우리의 믿음이 가지고 있는 問題點을 指摘한다. “여러 面에서 볼 때 하나님을 制限하지 말고 그 분이 펼치시는 ‘새로운 일’을 보라고 挑戰하는 復興社와 敎會 指導者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특별한 事件에만 限定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勿論 하나님을 특별한 事件에서 排除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聖經과 敎會 歷史에는 하나님의 靈이 宏壯한 모습으로 임하신 事件들이 櫛比하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가장 單純하고 平凡한 일 가운데 조용한 變化를 이루시는 모습 또한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일상, 하나님의 神秘)

宗敎改革週日을 보내면서 우리 時代에 날마다 새로운 敎會의 改革을 생각해본다. 宗敎의 改革만이 아니라 宗敎에 묶인 信仰이 日常生活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足鎖를 풀어주어야 眞正한 改革의 傳統을 이어가는 것이 틀림없다. [방선기 牧師의 生活信仰(28) 宗敎改革과 生活信仰에 對하여]


宗敎改革家들이 말하는 그리스도人들의 삶을 當時 中世時代를 벗어나 聖經에서 强調하는 그리스도人의 삶의 本質과 行爲를 實踐하려했다.


마르틴 루터 [ 編輯 ]

스콜라的 삶의 形式을 버리고 恩惠와 救援의 자유로운 삶의 形式을 가지게되었다. 말씀 中心的 삶으로 轉化되었다. 루터는 勞動도 禮拜의 擴張으로 强調하였다.

  • 믿음의 膳物로 律法的, 行爲的 , 功勞적 삶의 패턴을 變形시킴
  • 良心과 聖經의 中心의 삶을 强調

칼빈의 生涯 [ 編輯 ]

初期生涯 [ 編輯 ]

英語式 존 칼빈(John Calvin)은 프랑스語로 章 칼뱅(Jean Calvin)은 1509年 7月 10日. 5) 프랑스의 피카디 州에 있는 有名한 古都 노용 Noyon, 6) 에서 태어났다. 노용이란 都市는 한때 性 머다드(St. Merdad) 性 엘오이워스 (St. Eloiwas)와 같은 監督들이 살았던 有名한 곳이었다, 7) 또 찰스 大帝(後記 神聖로마 皇帝)가 768年 누우스트리아(Neustria)의 서 프랑크 王國의 王으로 卽位한 곳이며 987年에는 카페티안(Capetian) 王朝의 創始者이며 프랑스의 王 휴우 카펫 (Hugh Capet)李 王으로 卽位한 곳이었다. 8) 歷史가 윌 듀란트는 노용 都市를 칼빈의 神政政治의 槪念과 關聯을 지으면서 말하기를 노용은 敎會와 監督에 依하여 支配받는 敎會 都市였다. 여기서 처음부터 칼빈은 神政政治의 - 하나님의 이름으로 聖職者들에 依하여 社會가 支配되는 것- 하나의 例를 가졌다고 한다. 9) 칼빈이 자란 곳은 이렇게 政治的, 宗敎的으로 重要한 都市였으며 어린 時節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이 自身의 삶의 領域에서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런 意識은 제네바의 宗敎改革에 큰 影響을 주었다. 그렇다고 後에 칼빈이 제네바에서 神政政治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칼빈의 아버지의 이름은 제라드 코뱅(Gerard Cauvin) 이었다. 그는 근면하고 嚴格한 性格의 사람이었다. 칼빈의 어머니는 깜브레(Cambrai)의 旅人宿 主人의 딸인 쟌느 르 프랑끄(Jeanne Le Franc)이었다. 제라드는 노용에서 2 마일쯤 떨어진 港口로서 外스(Oise)江을 가로지는 퐁 레베크 (Pont l'Eveque)라는 작은 마을에서 沙工(boatman)을 하거나 아니면 물桶을 만들고 修理하는 일에 從事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0) 一般的으로 칼빈은 아버지의 銳利하고 組織的인 頭腦를 물려 받았으며 어머니의 敬虔心을 이어 받았다고 알려진다. 勿論 그의 容貌는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 都市에서 좋은 評判을 얻었다. 11) 그의 아버지는 노용 主敎 祕書 그리고 後에 大聖堂 참사회 訴訟 代理人과 그리고 主敎의 財政 空中人이 되었다. 이런 敎會와 關聯된 제라드의 職業은 부르주아로 身分의 上昇을 의미하였고 挪用에 있는 貴族들과 좋은 關係를 갖게 했고 後에 칼빈으로 하여금 貴族들의 子女들과 함께 敎育을 받는 契機가 된다.

學問의 始作 [ 編輯 ]

제라드는 칼빈을 노용에 있는 카페뜨 大學(the college of the Capettes)에 보냈다. 그곳에서의 學問的인 프로그램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은 數의 敎授陣으로 보아 파리에 있는 大學에 비해 敎育의 水準은 떨어졌다. 그곳에서의 敎育에 滿足하지 않은 제라드는 1523年 칼빈이 라 마르셰 大學(the college of La Marche) 에 입학시켰다. 12) 이 大學은 人文主義的 精神을 칼빈에게 주었다. 그곳에서 칼빈은 有名한 라틴語 敎授인 馬頭린 코디어(Mathurin Cordier) 아래서 라틴語를 배웠다. 13) 그는 現代 敎育學의 創始者中에 한사람으로서 칼빈에게 人文主義 哲學과 基督敎 敬虔을 紹介한 最初의 人物이다. 14) 칼빈은 自身의 데살로니가 全書의 主席(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Thessalonians)을 코디語에게 獻呈하였고, 後에 그를 自身이 세운 제네바 大學에서 라틴語 敎授로 請聘하였다. 後에 칼빈은 그 大學에서 몽테규 大學(college of Montaigu)으로 옮겼다. 에라스무스와 로욜라를 輩出한 그 大學에서 칼빈은 自身의 知的 形成의 큰 發展을 보게된다. 當時 그 大學에는 베다(Beda), 안토니오 코로넬(Antonio Coronel) 그리고 존 메이져(John Major)와 같은 有名한 學者들이 있었다. 칼빈은 哲學과 修辭學, 敎父들의 作品들을 배울 수 있었다. 몽테규에서는 루터의 思想이 否定的인 評價를 받고 있었다. 칼빈의 아버지는 그에게 神學에서 法學으로 專攻을 바꿀 것을 要求하였다. 이런 理由는 아마도 法曹界의 職業이 富와 名聲을 얻게 하는데 確實한 保障이 되기 때문이었다. 15) 칼빈은 아버지의 勸誘를 받아들였다. 칼빈은 아버지의 命에 따라 法學을 工夫하기 위하여 오르레앙 大學(University of Orleans)으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辯護士가 되기 위하여 레스토알( Pierre de l'Estoile) 밑에서 法律과 修辭學을 배운다. 그러나 1年 後에 그는 이탈리아의 法學者 안드레아 알키아티(Andrea Alciati)의 名聲을 듣고 부르지 大學(University of Bourges)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熱烈한 루터파 信者였던 멜케오르 볼마르(Melchor Wolmar) 敎授에게서 헬라語를 배웠다. 칼빈은 헬라語 古典은 勿論 新約 聖經을 原文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볼마르의 루터란 影響이 칼빈의 會心에 影響을 주었는지는 確認되지 않고 있다. 16) 이런 過程을 통하여 칼빈은 人文主義者로서 原文 解釋에 있어서 必要한 訓鍊을 배웠다. 後에 聖經을 解釋하는 偉大한 學者로 쓰이게 된다. 1531年 5月에 칼빈의 아버지 제라드가 世上을 떠났다. 칼빈은 이제는 아버지의 뜻에 매이지 않고 自身의 뜻을 자유롭게 決定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生涯에 하나의 새로운 轉換이었다. 그는 파리 王立 大學(Royal College)로 옮겨 피에르 다네(Pierre Danes) 밑에서 헬라語를 배우고, 바타블(Vatable)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 칼빈은 1532年 4月 4日 23歲의 나이로 세네카의 관용론에 對한 解釋(Calvin's Commentary on Seneca's de Clementia)를 出版했는데, 이 冊으로 칼빈은 에라스무스에 버금가는 有名한 人文主義者가 된다. 여기서 칼빈은 에라스무스의 本文批評에 對한 誤謬를 指摘하고 本文의 意味를 解釋하는 方法을 보여 준다. 세네카의 <관용론>은 로마의 皇帝 네로가 基督敎를 無慘하게 迫害하는 것에 對하여 스토아주의的 立場에서 네로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마음에서 쓰여진 冊이었다. 칼빈이 세네카의 寬容에 對한 解釋을 쓴 것은 프랑스 王 프랑수아 1歲가 改新敎徒들을 迫害하는 것에 對하여 王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였다.

칼빈의 灰心 [ 編輯 ]

칼빈의 이冊은 內容의 優秀함에도 不拘하고 크게 注目을 받지 못하였다. 칼빈은 宗敎改革 運動에 사로잡히게 된다. 칼빈 亦是 루터의 聖經硏究가 宗敎改革의 基盤을 마련한 것처럼 關心을 聖經硏究에 集中하였다. 칼빈의 親舊 니콜라스 콥(Nicolas Cop)李 파리大學 學長으로 1533年 11月 1日 就任되었을 때 演說文을 도와주게 되는데, 그 演說文의 內容은 旣存 로마 카톨릭敎會를 批判하고 루터가 主張한 福音의 絶對性을 强調하며,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恩惠에 對한 內容을 가지고 敎會의 改革을 呼訴하였다. 칼빈이 이 演說文을 直接 썼는지 아니면 間接的으로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콥이 혼자서 썼는지는 繼續 論爭되고 있다. 이 演說 以後 그들에 對한 非難과 逼迫으로, 니콜라스 콥은 바젤로 避身하였고 칼빈도 結局 파리 南西部 250마일에 位置한 앙굴렘(Angouleme)에 隱身處를 定했다. 그는 親舊인 루이스 두 틸레(Louis du Tillet)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敎父들의 冊을 비롯한 수많은 藏書가 있었다. 칼빈 이곳에서 <基督敎 强要>의 쓸수 있었다. 칼빈은 1534年 5月 로用을 訪問하여 聖職者로서 그의 職業을 終結하는 措置를 取함으로써 公式的으로 로마 敎會와 訣別을 했다. 1534年에 그는 再洗禮派의 靈魂 睡眠說 - 죽을 때 靈魂은 잠을 자기 始作해서 죽은 者의 마지막 復活 때 잠을 깬다는 敎理-에 反對하여 '心靈 睡眠說(Psychopannychia)이라는 冊을 發刊했다. 여기서는 칼빈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聖徒의 靈魂은 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라고 主張하였다. 1534年 10月 18日에. 그들에 對한 迫害 理由는 1534年 10月 마르쿠르(Antoine Marcourt)가 로마 敎會의 미사를 反對하는 條文들을 붙인 事件이 일어난 後에 新敎徒들에 對한 迫害가 무섭게 始作되었다. 칼빈도 結局 亡命者로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535年 1月 칼빈은 스위스 바젤로 가서 親舊인 콥을 만났다. 그리고 듀 틸레의 書齋에서 쓰기 始作한 <基督敎 强要>의 脫稿를 서둘렀다(1535년 8月). 이 때 그의 나이 26歲였다. 칼빈은 <基督敎 强要> 初版을 發行하면서 프란시스 1世에게 憲政史를 썼다. 1536年 3月 바젤에서 라틴語로 出版된 <基督敎 强要> 初版은 바로 프랑스 新敎徒들에 對한 辯護를 序文에 불였다. 칼빈 바로 이때 甲子스런 會心을 하게 된다. 自身의 會心의 날짜를 正確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쓴 詩篇主席의 序文에서는 當時 自身의 會心의 狀況을 說明한다.

존 칼빈에서 그리스도人의 삶이란 [ 編輯 ]

바른 믿음이 바른 삶을 살게 한다고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恩惠에 關한 確固하며 흔들밈 없는 認識(知識)式이다. 믿음과 그리스도와 聯合 卽 關係를 맺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人의 삶은 創造主 앞에서 被造物로서 人間의 모습을 보여준다. 칼빈은 그리스도人들의 삶이란 먼저 하나님의 榮光을 위하여 사는 것이며, 그분에게 順從하는 것이며, 삶의 터에서 몸으로 드리는 祈禱의 삶을 사는 것이며, 自己를 否定하며 十字架를 지는 것이며, 謙遜하며 하나님을 敬畏하며 마지막으로 共同體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라고 본다. [5]

하나님의 榮光 [ 編輯 ]

칼빈은 그리스도人들의 삶이란 먼저 하나님의 榮光을 위하여 사는 것

純宗 [ 編輯 ]

믿음의 純宗은 하나님이 要求하는 가장 뛰어난 祭祀. 말씀에 純宗

祈禱 [ 編輯 ]

祈禱는 바른 삶으로 이끈다. 우리의 變化를 위해 祈禱가 必要하다고 한다.

悔改 [ 編輯 ]

悔改는 믿음의 열매,

謙遜 [ 編輯 ]

칼빈에게 있어서 謙遜이란 他人을 높이고 自身을 깍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참된 謙遜은 참된 믿음과 連結되어 있다. 謙遜은 참된 信仰深衣 發露이며 創造主 하나님을 信賴하고 그 분을 依支하면서 自發的인 犧牲을 하는 것이며, 自身을 낮추어 同僚를 섬기는 犧牲的 삶이라고 한다. [6]

苦難 [ 編輯 ]

  • 自己를 否定하고 十字架를 堪當하는 삶을 强調 [7]
  • 儉約과 節約, 勤勉을 强調

사랑, 自由, 良心 [ 編輯 ]

삶의 規範들이다.

  • 自由는 律法에서 自由이다.
  • 사랑은 이웃에 對한 사랑인 共同體意識을 갖는 것.
  • 루터가 1521 보름스 會議에서 自己主張과 著書들 撤回하라.. 루터는 내 良心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있어서 許諾치 않는다.

其他 宗敎 改革家들의 삶 [ 編輯 ]

宗敎 改革家 츠빙글리, 部處, 外콜람파디우스,

啓蒙主義 時代의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啓蒙主義는 實際的인 道德을 志向하였으며 形而上學보다는 常識, 經驗, 科學을, 權威主義보다는 個人의 自由를, 特權보다는 平等한 權利와 敎育을 志向하였다. 이 啓蒙主義는 1760年頃 以後 强力히 擡頭되게 된다. 啓蒙主義 思想家들은 人間은 理性으로 適法性을 判斷할 수 있으며, 理性은 權威의 要素이자 權威를 判斷하는 基準이라고 主張했다.

19世紀 [ 編輯 ]

近代의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프란시스 쉐퍼 - 李祥源 博士는 쉐퍼가 直面했던 問題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 ‘實在’, 곧 ‘事實’인가라는 것”이라며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은 삶의 모든 領域에 關係해야 하고, 그분을 禮拜하고 敬拜해야할 뿐만 아니라 順從해야 마땅하다. 쉐퍼는 그리스도人의 삶이란 하나님의 超自然的인 實在, 곧 聖靈의 現存하는 能力 안에서 自己를 죽이며 사랑의 實踐을 통해서 人格的 關係를 回復해 가는 삶이라고 봤다”고 한다. [8]


자크 엘륄 -

 *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엘륄은 어떻게 “모든 것을 除去하는가?” 아마도 엘륄이 加하는 가장 衝擊的 一擊은, 예수의 말씀을 額面 그대로 받아들여 돈을 맘몬으로 擬人化하는 것이다. 맘몬은 神格化된 存在요 惡魔요 偶像이며 우리가 벗어나야 할 權勢인 것이다.

엘륄은 하나님께 드리고 사람에게 베풀 것을 勸한다. 純全히 하나님의 榮光을 위해 드린 膳物(實際的 價値가 全혀 없는 데 돈을 使用하는 것)은 돈의 神聖을 가장 冒瀆하는 行爲다.

  • 엘룰에게 있어서 自由의 軸은 하나님의 榮光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끌어가는 힘은 하나님의 榮光의 所望이다. 우리 안에 居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는 이 榮光의 所望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時代의 그리스도人의 삶 [ 編輯 ]

  • 變化된 文化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文化 衝突注意
  • 人間의 모든 삶의 領域에 하나님의 사랑과 正義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 編輯 ]

  1. 國民日報
  2. '너 自身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 아니다, 오마이뉴스
  3.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人生授業』(서울: 이레, 2010), 20, 24
  4. Richard A.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Baker, 1985, 84
  5. 장호광, 日常속에서 만나는 칼빈神學, 킹덤북스, 2017, 105-176
  6. 장호광, 日常속에서 만나는 칼빈神學, 136
  7. 칼빈이 쓴 基督敎綱要 要約(20) 그리스도人의 삶
  8. 李祥源, 쉐퍼, 基督敎가 現代 相對主義에 맞서야 한다 생각”基督一步, 2020-07-12
  9. 프란시스 쉐퍼 思想의 神學的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