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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커도 마음은 솜沙糖”… ‘巨人病’과 36年 싸웠던 김영희 [김종석의 굿샷 라이프]|東亞日報

“키는 커도 마음은 솜沙糖”… ‘巨人病’과 36年 싸웠던 김영희 [김종석의 굿샷 라이프]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2月 5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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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年代 籠球 스타, LA 올림픽 銀
成長호르몬 過多 分泌 末端肥大症
最近 內視鏡 手術 治療 勸奬
205cm 한기범 2次例 心臟 手術

오랜 거인병 끝에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농구 스타 출신 김영희 씨. 여자프로농구 경기위원으로 일할 때 모습. 동아일보 DB
오랜 巨人病 끝에 60歲를 一期로 世上을 떠난 籠球 스타 出身 김영희 氏. 女子프로籠球 競技委員으로 일할 때 모습. 東亞日報 DB


며칠 前 1980年代 韓國 女子籠球 全盛期를 빛낸 김영희 氏가 60歲를 一期로 世上을 떠났다.

選手 時節 키가 205㎝이었던 그는 1982年 印度 뉴델리와 1986年 서울 아시아競技에서 센터로 뛰며 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年 조승연 監督이 이끄는 韓國 女子籠球 代表팀에서 銀메달을 거들었다. 그때 만해도 韓國 스포츠가 올림픽 球技種目에서 거둔 最高 成績이었다. 1981年 숭의여고 卒業 後 韓國化粧品에서 뛰며 한 게임 最多인 61點을 터뜨리기도 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농구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  김영희 씨(오른쪽에서 세 번째)도 당시 멤버였다. 박찬숙 성정아 김화순 등도 보인다.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1984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女子籠球에서 銀메달을 딴 韓國 代表팀. 김영희 氏(오른쪽에서 세 番째)도 當時 멤버였다. 박찬숙 성정아 김화순 等도 보인다. 大韓民國籠球協會 提供

● 끝없는 病魔와 맞선 人生 後半戰


선수 시절 김영희 씨의 뇌종양 투병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 PDF
選手 時節 김영희 氏의 腦腫瘍 鬪病 消息을 傳한 동아일보 紙面. 東亞日報 PDF


하지만 김영희 氏의 人生 後半戰은 病魔와의 끝없는 싸움의 連續이었다. 24歲 때인 1987年 惡性 腦腫瘍으로 8時間에 걸친 手術을 받았다. 當時 동아일보 報道에 따르면 腦에 생긴 혹 때문에 호르몬샘이 막혀 糖尿病이 생겼으며 머리가 깨질 듯 아픈 症勢까지 보였다.

筆者는 몇 年 前 김영희 氏의 自宅을 찾아가 인터뷰한 적이 있다. 多世帶 住宅 2層의 20m²(藥 6坪) 單칸房에서 홀로 머물며 如前히 鬪病 中이었던 그는 “어느 날 샤워를 하는데 머리에 感覺이 없었다. 頭痛이 너무 甚해 病院을 찾았는데 腦腫瘍이라고 하더라. 이틀만 늦게 갔어도 危篤할 뻔했다”라고 當時 狀況을 생생히 떠올렸다.

1988年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던 計劃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隱退食道 없이 코트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 後로도 試鍊은 繼續됐다. 1998年 唯一한 親舊 같은 存在였던 어머니가 59歲로 他界한 뒤 2000年 아버지마저 세 次例 癌 手術 끝에 눈을 감았다.

依支할 곳이 없던 그의 健康은 더욱 나빠졌다.. 2002年 ‘巨人病’으로 알려진 末端症候群 判定까지 받았다. “心臟과 將棋 等이 繼續 커져 죽게 되는 病이다. 每달 150萬 원 넘게 드는 成長호르몬 抑制 注射를 平生 맞아야 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自身의 身世를 恨歎하던 그의 生前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 後로도 張(腸) 痲痹 症勢와 肺에 물이 차고 膽囊에도 炎症이 생기는 等 後遺症에 시달렸다. 2003年 女子프로籠球(WKBL) 技術委員으로 競技場을 찾아 後輩들을 지켜보기도 했으나 暫時였다. 다시 보이지 않은 敵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 原因은 腦下垂體 腫瘍 …症狀 천천히 進行


정상인  손(왼쪽  사진 왼쪽, 오른쪽  사진 왼쪽)과 말단비대증에 걸린 손. 사진 출처 현대아산병원, 메디인디아넷
正常인 손(왼쪽 寫眞 왼쪽, 오른쪽 寫眞 왼쪽)과 末端肥大症에 걸린 손. 寫眞 出處 現代峨山病院, 메디인디아넷


末端肥大症(Acromegaly)은 腦下垂體에서 分泌되는 호르몬인 成長호르몬이 非正常的으로 過剩 生産되면서 나타나는 疾患이다.

成長호르몬은 成長期 以後 分泌量이 減少하게 된다. 末端肥大症은 腦下垂體 腫瘍이 생겨 成長期 以後에도 成長호르몬이 過度하게 分泌돼 손, 발이 커지고 여러 合倂症이 생긴다. 천천히 進行되기 때문에 認知가 어려워 40歲 以後에 發見되는 境遇도 많다. 症狀이 徐徐히 變化하기 때문에 本人이나 周邊에서 認知하지 못하는 境遇가 많다. 糖尿病, 高血壓, 心筋 肥大, 心不全症, 睡眠無呼吸症, 大將 폴립, 大腸癌의 危險度가 增加한다.

過去 김영희 氏는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百日祈禱를 했다고 하더라. 아버지(165cm)와 어머니(163cm)도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다섯 살 때부터 키가 자라기 始作해 籠球를 始作한 釜山 桐주여중 2學年 때 189㎝까지 큰 뒤 卒業班 때는 1年 사이에 3㎝가 컸다는 記事가 나올 程度로 關心을 받았다. 숭의여고 入學 後 197㎝까지 큰 키는 200㎝를 훌쩍 넘었다.

末端肥大症에 걸리면 뼈가 넓고 두텁게 成長해 四肢가 커지고 아래턱이 길어지고 콧등이 넓어진다. 땀샘과 皮脂腺이 커져서 皮膚에 기름氣가 많아지고 땀이 많이 나기도 한다. 聲帶가 두꺼워지므로 쉰 목소리가 나고 목소리도 變할 때도 있다. 頭痛이나 視力 損傷이 올 수 있으며, 心臟 肥大症이 나타나기도 한다. 葡萄糖의 細胞 內 流入이 制限돼 血漿 葡萄糖 濃度가 上昇으로 糖尿病이 생기기도 한다.
●葡萄糖 攝取 後 호르몬 測定
1次 診斷은 成長호르몬의 濃度 測定을 통해 이뤄진다. 葡萄糖을 攝取하게 되면 成長호르몬의 分泌가 抑制되지만, 末端肥大症의 境遇에는 抑制가 되지 않다. 葡萄糖을 攝取한 後에 成長호르몬을 測定해도 濃度가 높다면 末端肥大症 診斷을 내릴 수 있다. CT(컴퓨터單層撮影)나 磁氣共鳴映像(MRI)으로 腦腫瘍의 位置와 크기를 確認할 수 있다.

가장 效果가 좋은 治療法은 手術로 腦下垂體 腫瘍을 除去하는 것이다. 코를 通한 內視鏡으로 腫瘍을 除去할 수도 있다. 도파민 誘導體를 服用하는 方法과 소마토스타틴 誘導體를 注射하는 方法도 있다. 먹는 藥은 低廉하지만, 效果가 낮으며, 注射劑는 먹는 藥보다 效果가 優秀하지만 비싼 短點이 있다고 한다. 手術로도 完全히 除去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면 남은 腫瘍은 放射線 治療로 除去하게 된다. 放射線 治療의 效果를 보기까지는 5~10年이 걸리므로 藥물治療도 竝行해야 한다.

특별한 豫防法은 없으며 症狀을 빨리 알아차려 早期에 治療하는 것이 가장 重要하다는 게 專門家들의 說明이다.
● 마르판 症候群은 遺傳 疾患…心臟 血管 뼈 눈에 影響


김영희 씨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센터로 활약한 한기범 씨. 한 씨 역시 거인병으로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다. 동아일보 DB
김영희 氏와 韓國籠球를 代表하는 센터로 活躍한 한기범 氏. 韓 氏 亦是 巨人病으로 두 次例 心臟 手術을 받았다. 東亞日報 DB


韓國 籠球의 大들보 센터로 活躍했던 한기범 氏(60)는 1996年 隱退한 後 血管系 稀貴 疾患인 마르판 症候群에 시달렸다. 아버지와 동생이 모두 같은 病으로 世上을 떠났다. 키가 205cm인 韓 氏는 두 次例 心臟 手術로 危險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還甲을 맞은 요즘도 同好人 팀에서 籠球를 하고 있다.

韓 氏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김영희 氏 別世에 對해 “쓸쓸히 혼자서 孤獨死 비슷하게 했다는 것에 對해서 正말 슬프고 마음도 아주 아프다”라고 悲痛한 心境을 밝혔다. 過去 한 氏는 慈善 籠球大會를 開催해 收益金 一部를 김영희 氏 돕는 데 使用하기도 했다.

마르판 症候群은 末端肥大症과 비슷한 巨人病이다. 1896年 醫師 場 말팡에 依해 처음 報告된 疾患. 우리 몸의 各 部分이 잘 結合하여 維持되고 成長을 調節하는 役割을 하는 結合 組織의 異常에 依하여 發生하는 遺傳性 疾患이다. 마르판 症候群은 心臟, 血管, 뼈, 關節, 눈에 잘 나타난다.

몸통보다 다리가 긴 큰 키, 긴 손가락과 발가락, 扁平發, 脊椎의 側만, 좁은 얼굴 等이 特徵으로 알려졌다.

마르판 症候群은 遺傳 疾患이기 때문에 家族 가운데 患者가 있다면 産前이나 症狀 發現 前에 發見하는 것이 重要하다.
● “난 外界人 取扱 받았지만 베푸는 삶 살려 했다.”

스무살 시절 운동기구를 들며 농구 스타의 꿈을 키웠던 김영희 씨. 동아일보 DB
스무살 時節 運動器具를 들며 籠球 스타의 꿈을 키웠던 김영희 氏. 東亞日報 DB


키가 너무 컸던 김영희 氏는 自身을 外界人에 比喩하기도 했다. 周圍의 낯선 視線에 憂鬱症을 겪었다. 學生들이 “巨人 나오라”라며 門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는 事實을 公開하기도 했다. 그래도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라.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는 어머니의 遺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운 生計에도 障礙人 少年 少女 家長을 돕기도 하고, 自身에 들어온 쌀 같은 救護品 等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내가 사람은 커도 마음은 솜沙糖 같다”라는 生前 한 마디도 떠오른다.

< 도움말 : 三星서울病院, 現代峨山病院 >

金鍾奭 記者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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