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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演劇人 列傳]俳優 하성광 “등이 듬직한 先輩가 되고 싶다”|동아일보

[심규선의 演劇人 列傳]俳優 하성광 “등이 듬직한 先輩가 되고 싶다”

  • 東亞日報
  • 入力 2017年 3月 29日 16時 21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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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성광을 인터뷰하며 매우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하다는 말 속에는 착한 것 같다는 인상도 들어간다. 그는 
‘조씨고아’를 통해 배우로서 확실한 위치를 굳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폼 잡지 말고 
편안한 연기로 앞으로도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俳優 하성광을 인터뷰하며 매우 率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率直하다는 말 속에는 착한 것 같다는 印象도 들어간다. 그는 ‘조氏孤兒’를 통해 俳優로서 確實한 位置를 굳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폼 잡지 말고 便安한 演技로 앞으로도 觀客들을 幸福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안철민 記者 acm08@donga.com
써도 되냐고 물었다.

써도 된다고 答했다.

그의 러브 스토리와 結婚에 對해….

“全南 珍島에서 實業高等學校를 卒業하고 軍隊를 除隊했으나 뭘 해야 할지 漠漠했다. 平凡한 會社員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答이 演劇이었고 無酌定 上京했다. 演劇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僅僅이 살던 中 障礙人劇團과 公演(共演)할 機會가 있었다. 나는 元來 主人公 女子와 헤어지는 驛이었다. 그런데 그 女子와 結婚하는 驛이 出演을 못하게 되면서 내가 代身 그 役을 맡게 됐다. 그리고 劇中에서처럼 사랑에 빠졌다.”

그女는 다리에 障礙가 있었고, 세살 聯想이었다. 結婚 얘기가 나왔을 때 처음에는 拒否했다. 世俗的인 理由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먹고 살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사는 方法과 才幹을 몰라서였다.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結婚을 하고 文藝振興院 公演藝術아카데미에 들어가 本格的으로 演技를 배운다(그는 나중에 又石大를 卒業했다). 그에게도 結婚은 人生의 轉換點이었다.

結婚 19年次인 그는 요즘 幸福하다. 高1 딸과 中3 아들은 ‘다행스럽게도’ 演劇俳優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고 자랑이다. 아직도 ‘村놈’ 냄새가 슬쩍 풍기는 ‘그’는 俳優 하성광(47)이다. 3月 27日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失禮인 줄 알면서도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댓바람에 물어봤다. “映畫 出演도 꽤 하는데 大部分 端役이다. 生活費 때문인가.” 그가 出演한 12篇의 映畫 中 端役이 9番, 助演이 2番, 主演이 1番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對答했다. “그렇다.” 그러면서 “비록 選擇의 幅은 작지만 모든 映畫에 다 나가는 것은 아니고, 어떤 映畫인지, 무엇을 얘기하는 지는 보고 決定한다”고 말했다.

映畫 얘기가 나온 김에 그가 한때 몸담고 있었던 極端 골목길(代表 박근형)의 同僚들에 對해서도 물어봤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映畫나 드라마에서 成功한 同僚들을 言及한 대목이 있어서였다. 同僚란 박해일, 윤제문, 엄효섭, 고수희 等이다.

“부럽기도 하고, 嫉妬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게 全혀 도움이 안됐다. 演劇은 映畫와 다르다고 整理했다. 그러기까지 時間이 꽤 걸렸다. 只今은 舞臺 위에서 演技를 하고 있고, 인터뷰도 하고 있는 하성광이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映畫를 말하는 그에게서 ‘觀照(觀照)’라는 單語를 떠올렸다.

“映畫에 出演한다고 해서 뜨길 願하는 것이 아니다. 일로서 만나길 바랄 뿐이다. 많이 떴다가 몇 年 後에 사라지는 사람도 꽤 있다. 나는 잔걸음이라도 꾸준히 걷고 싶다.”

勿論 그가 映畫에 對해 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映畫보다 演劇에 愛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演劇은 어떤 基準으로 選擇할까. 이 質問에 對한 對答도 내 豫想을 빗나갔다.

“없다. 時間 按排가 가장 重要하다. 겹치기 出演은 안 되니까 먼저 들어온 것을 選擇한다. 元來부터 選擇을 해야 할 만큼 機會가 많은 것도 아니다.”

選擇基準이 全혀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는 “劇團이 觀客을 어떻게 보고 演劇을 舞臺에 올리는지는 본다”고 했다. “돈이 따라오는 것이야 좋지만, 처음부터 돈을 目的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 演劇을 選擇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를 有名하게 만든 ‘조氏孤兒(趙氏孤兒),複數의 씨앗’이라는 作品을 言及할 때가 된 것 같다. 國立劇團이 만든 이 演劇에서 그는 主人公인 ‘정영’이라는 人物을 演技했다.

“이까짓 게 무어라고!” ‘조씨고아’에서 주인공 정영을 연기하는 하성광이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조씨고아라고 속여 
신고하고,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본 뒤 조씨고아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다. 이 후 정영은 20년간 외로이 복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필부
 정영이  극의 중심인물로 바뀌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단 제공
“이까짓 게 무어라고!” ‘조氏孤兒’에서 主人公 정영을 延期하는 하성광이 조氏孤兒를 살리기 위해 自己 아들을 조氏孤兒라고 속여 申告하고,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본 뒤 조氏孤兒를 안고 嗚咽하는 場面이다. 이 後 정영은 20年間 외로이 復讐를 準備한다는 點에서 이 場面은 匹夫 정영이 劇의 中心人物로 바뀌는 轉換點이라고 할 수 있다. 國立劇團 提供
紀元前 6世紀頃 春秋時代 陳(晉)나라에서 벌어진 權力다툼으로 조氏 家門 사람 300名이 죽는 滅門之禍(滅門之禍)를 當하는 데, 單 한名의 갓난아기가 살아남아 20年 後에 怨讐이자 養아버지에게 復讐를 한다는 게 이 演劇의 줄거리다. 12世紀 元나라 때 箕君賞이라는 사람이 ‘조氏孤兒’라는 이름으로 雜劇(원臺雜劇)을 썼고, 이것을 고선웅 演出이 脚色·演出했다. 정영은 조氏 집안의 門客으로 平凡한 議員(醫員)이었지만 조氏孤兒를 살려내기 위한 눈속임으로 自身의 아들을 代身 죽도록 만드는 非情한 아버지이자, 20年 間 復讐의 칼을 갈다가 조氏孤兒에게 眞實을 알리고 復讐를 하게 만드는 執念의 人物로 그려진다.

이 演劇은 2015年 11月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처음 공연됐는데 觀客의 讚辭를 받으며 大舶을 터뜨렸다. 그해 第52回 東亞演劇賞 大賞, 演出賞, 演技賞, 視聽覺디자인賞을, 第8回 大韓民國演劇大賞 對象, 演出賞, 演技賞을 휩쓰는 等 喪服까지 따라왔다. 두 上의 演技賞을 받은 俳優가 바로 하성광이다.

그러니 조氏孤兒 以前과 以後의 變化를 묻지 않을 수 없다.

“周邊에서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제 됐다’라는 말도 한다. 어느 程度의 境地에 오른 俳優가 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別般 바뀌었거나 變한 게 없다. 自信感이나 프라이드가 높아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그것도 아니다.”

‘조氏孤兒’는 올해 初 再공연됐다(1월 18日~2月 12日, 서울 명동예술극장).

“첫 公演은 그냥 해야 하니까 했는데, 再公演은 關心이 커지고, ‘하성광이 뭐길래’ 하는 觀客까지 만족시켜야 해서 負擔이 컸다. 그렇지만 (두 番째 公演이어서) 나 自身을 컨트롤할 수 있는 餘地도 있었다. 結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하성광이 뭐길래’라는 것은 “저렇게 좋은 俳優가 여태껏 어디에 있었나”라는, 그에게는 最高의 讚辭를 다른 말로 表現한 것이다.

再公演을 觀覽했을 때 2幕에서 하성광의 延期는 밖으로 마음껏 發散을 하지 않고, 왠지 感情을 눌러서 表現하는 느낌을 받았다. “切除를 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1幕과 2幕 사이에는 20年이 흘렀다. 정영의 아픔을 表現할 때 全部 내보이는 것은 意味가 없다. 그의 苦痛도 마음속에서 농익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100%를 다 까발려 보여주기보다는 70%나 75%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1幕은 밖으로 나오는 에너지가 많다면, 2幕은 눙쳐서 끌어안는 에너지가 많다”고 表現했다. 나는 이 말을 復讐를 하기까지는 平凡하면서도 非凡하고, 착하면서도 모질고, 어리숙하면서도 用意周到했으며, 復讐에 成功한 後에는 安堵하면서도 虛無한 정영을 表現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解釋했다.

좋은 演劇임에도 不拘하고 事實 나는 800年 前에 쓴 2500年 前의 復讐가 무슨 意味가 있는지 疑問이었다. 이 疑問은 고선웅 演出家를 인터뷰할 때도 가졌던 것으로 그 때는 復讐에 재미를 버무렸다는 技術的인 側面과 復讐를 한다고 반드시 후련한 것은 아니라는 解釋을 받아들이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하성광을 만나면서 또다시 같은 疑問을 갖게 됐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氏孤兒’를 復讐가 아닌 다른 키워드로 解釋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解釋이야 觀客 마음 아닌가. 그는 말했다.

“‘조氏孤兒’는 單純한 復讐劇이 아니라 復讐에 이르기까지의 過程이 重要하다. 子息과 아내까지도 죽여 가며 復讐를 選擇한 정영이, 그 以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게 觀客들에게 感動을 주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復讐보다 오히려 義理 쪽에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이 演劇은 意氣(義氣)를 뜻하는 協(俠)의 눈으로 볼 수도 있으며, ‘協’의 化身이 바로 정영 아니겠는가. 21世紀에서 復讐는 낯설지 모르지만 의로움은 아직도 有效하고, 그 點이 觀客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면 大舶도 理解가 간다.

마침 ‘조氏孤兒’가 復讐를 하고 140餘年이 흐른 뒤 같은 秦나라에서 中國 最初의 俠客 稱號를 받는 禮讓(豫讓)이라는 人物이 나온다. 禮讓은 自己가 모시던 主君 지백(智伯)이 조양자(趙襄子)라는 人物을 치려다 오히려 죽임을 當하자 復讐를 決心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番이나 조양자를 襲擊했지만 結局은 失敗하고 붙잡혀 自決한다. ‘선비는 自己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조氏孤兒’ 2幕에서 정영이 얼굴과 머리에 흰 粉漆을 하는 場面이 나온다. 20年이 지나 復讐에 나설 때다. 原作에는 없는데 고선웅 演出이 넣었다고 한다. 그 意味를 묻는 사람이 많은데 20年이라는 歲月이 흘렀다는 點과 復讐를 앞둔 戰士(戰士)의 覺悟를 表現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성광은 覺悟의 意味가 크다고 봤다. 그런데 이 場面도 妙하게 禮讓이라는 人物과 겹친다. 禮讓은 첫 番째 暗殺이 失敗하자 두 番째 暗殺을 準備하면서 身分을 감추기 위해 온 몸에 옻漆을 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달라지게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칠신탄탄(漆身呑炭)이다.

大勢 演出家 고선웅은 이 役을 왜 그에게 맡겼을까. 하성광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故 演出을 만난 것은 2010年 ‘人魚都市’에 出演했을 때다. ‘人魚都市’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호스피스 病棟을 背景으로 삶과 죽음, 現實과 幻想의 世界를 오가는 作品이다. 그 以後 두 사람은 같이 作業을 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하성광은 ‘인어공주’에서 故 演出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다고 한다.

“當時에 고 演出이 이런 저런 코칭을 했지만, 演技에 내가 입히고 싶은 色깔을 더 많이 입혔던 것 같다. 個人的으로는 ‘人魚都市’를 통해 自己 생각대로 演技하는 方法을 많이 배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番에는 演出의 말을 따르자고 다짐했다.”

出演者들이 모여 臺詞를 읽어보는 첫 리딩 때 하성광은 不安했다. 그런데 高 演出은 그에게 “됐네” 하고 信賴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래서 故 演出을 그냥 따르자고 한 것은 아니고, 演出家들의 指示를 時間이 흘러 理解하게 되는 學習效果의 結果로 보인다. 고 演出이 그에게 直接 뭐라고 한 적은 없는 듯한데, 고 演出은 “하성광은 正말 健康한 마인드를 가진 俳優”라고 評했다.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信賴가 ‘조氏孤兒’의 成功을 牽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氏孤兒’에 出演했던 팀은 ‘義理回’라는 모임을 만들어 會員들의 慶弔事가 있을 때 不定期的으로 만나 懷抱를 풀고 있다. 드문 事例라고 한다(아전인수 같은 解釋이지만, ‘義理回’라는 이름이 ‘조氏孤兒’를 ‘協’의 視角으로 보는 게 無理가 아니라는 것처럼 들린다).

2014년 9월에 공연한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연극만발-남산에서 길을 잃다’의 홍보 포스터. 오른쪽은 고수희 씨. 이 연극은 
어려서부터 여자 옷 만들기를 즐겼으나 반란군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신라 혜공왕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와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비틀었다. 하성광으로서는 국립극단과 인연을 맺게 되는 첫 작품으로 이후 ‘조씨고아’ ‘야키니쿠 드래곤’에 출연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하성광 제공
2014年 9月에 公演한 國立劇團의 ‘三國遺事 演劇滿發-南山에서 길을 잃다’의 弘報 포스터. 오른쪽은 고수희 氏. 이 演劇은 어려서부터 女子 옷 만들기를 즐겼으나 叛亂軍에 依해 悲慘한 죽음을 當한 新羅 惠恭王 이야기를 現代로 가져와 縫製工場 勞動者들의 이야기로 비틀었다. 하성광으로서는 國立劇團과 因緣을 맺게 되는 첫 作品으로 以後 ‘조氏孤兒’ ‘야키니쿠 드래곤’에 出演하는 契機를 만들어줬다. 하성광 提供
그는 지난해 3月에도 좋은 役을 맡아 日本 신국립극장에 서는 機會를 얻었다. 在日同胞 劇作家 兼 演出家인 정의신 氏의 ‘야키니쿠 드래곤’에 出演한 것이다. 韓日合作人 이 演劇은 國內에서도 2008年 初演, 2011年 앙코르 公演을 하며 觀客과 評壇으로부터 好評을 받았다. 하기야 정의신票 演劇은 이미 定評이 나 있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日本 關西地方의 곱창집 週인 김용길의 ‘龍’字가 ‘龍’(드래곤)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 하성광은 主人公 김용길을 延期했다.

정의신 氏의 作品을 貫通하는 視線은 ‘境界人’인 ‘자이니치’(在日·在日同胞)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면서도 家族愛, 容恕, 配慮, 希望 等을 抛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種種 在日同胞 作家의 作品과 登場人物을 우리의 잣대로 거칠게 裁斷하려는 사람이 있다. 말릴 수야 없지만, 옳지도 않다. 돈 싸들고 제 발로 美國으로 간 사람이 市民權을 받으면 祝賀하고, 못난 祖國을 만나 어쩔 수 없이 日本에 定着하게 된 在日同胞가 歸化를 하면 非難하는 式의 잣대로는 在日同胞들의 고단했던 삶과 異邦人의 외로움, 未來의 不安을 理解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김용길이라는 人物은 太平洋戰爭에서 왼팔을 잃은 在日同胞다. 그는 在日同胞의 情緖를 代表하는 人物이기도 하다. 그래서 鎭重하고, 묵직했고, 어려웠다.”

同時에 “‘조氏孤兒’는 成功할지 안할 지도 모르고 했는데, ‘야키니쿠 드래곤’은 이미 셋업이 된 作品이다. 그런 作品에 出演을 하게 된 것은 큰 榮光”이라고 했다. 이 作品의 出演을 提案한 박현숙 國立劇團 公演企劃팀長에 對해 “두고두고 感謝하다”고.

當然한 얘기지만 그에게도 아픈 記憶이 꽤 많다. 勿論 演技를 못했다는 評價를 받았을 때다. 2005年 김아라 演出의 ‘덫-햄릿에 對한 冥想’이 그랬고, 2006年 기국서 演出의 ‘리어王’은 最惡이었다. 그는 리어王의 長男인 에드거 役을 맡았는데 煙氣를 못한다고 甚하게 辱을 먹었다. 욕먹는 것보다 더 큰 苦痛은 왜 辱을 먹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는 말은 들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對한 說明이 없었다. 只今 생각해 보니 ‘조氏孤兒’의 2幕에서처럼 ‘눙쳐서 하는’ ‘切除된’ 延期를 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異常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에드거 逆으로 그해 서울演劇祭 新人演技賞을 殊常한 것이다. “演技는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都大體 나보고 演技를 繼續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런 苦悶에 빠지게 만든 演劇이 바로 리어王이다.”

演出과 俳優는 언제라도 衝突할 수 있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는 最大限 演出의 意思를 受容하려고 한다. 그러나 無條件은 아니다. 演出이 問題 提起를 하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다른 俳優와의 앙상블을 깬다면 그대로 受容할 수는 없다. 그 때는 내 個人의 問題가 아니라 劇 全體의 問題가 된다. 그럴 때는 問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옳은 方向을 찾아야 할 것이다.”

心思가 複雜하지만, 그는 ‘리어王’에 愛着이 있다. 50代 後半이 되면 리어王 驛에 挑戰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50代 後半이라고 못 박는 걸 보면, 年輪에서 오는 完熟美를 期待하는 것 같다. 그는 ‘眞짜 惡役’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大槪 이런 希望 속에는 그間의 評價에 對한 反撥心理가 作動하는데, 그도 或是 ‘사람이 너무 順하다’는 말을 들어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나중에 그는 “親한 親舊들은 나를 ‘性깔 있는 애’라고 한다”고 紹介했다, 나는 親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는 아직도 映畫를 찍는 카메라 앞에 서면 낯설고, 舞臺 위에 서면 便하다고 했다. 카메라 앞의 延期는 틀리면 다시 찍을 수 있지만, 舞臺 煙氣는 한番으로 끝이다. 그러니 그 反對가 돼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對答은 簡單했다. “演劇은 練習을 하고 舞臺에 서니까 그래도 괜찮다. 映畫는 練習도 別로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데, 演技의 質은 演劇만큼 올려야 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端役이 더 어렵다. 어떻게 나올지, 무슨 人物인지도 모르고 演技를 할 때가 있어서다.”

하성광은 지난해 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2인극 ‘고모를 찾습니다’에 출연했다. 캐나다 극작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 
상대역은 탤런트 정영숙이었다. 그는 이 연극에서 연락이 끊긴지 30년이나 되는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죽어간다”는 편지를 받고 700번이나 읽은 뒤 고모를 찾아가는 성격장애인 켐프 역을 맡았다. 예술의전당 제공
하성광은 지난해 末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公演한 2人劇 ‘姑母를 찾습니다’에 出演했다. 캐나다 劇作家 모리스 패니치의 代表作. 相對役은 탤런트 정영숙이었다. 그는 이 演劇에서 連絡이 끊긴지 30年이나 되는 姑母 그레이스로부터 “죽어간다”는 便紙를 받고 700番이나 읽은 뒤 姑母를 찾아가는 性格障礙인 켐프 役을 맡았다. 藝術의殿堂 提供
그가 요즘 演劇판을 어떻게 생각하나.

“劇團도, 俳優도 兩極化가 심해지고 있다. 資本이 안 들어갈 수가 없으니 經濟的 能力이 있는 劇團과 그렇지 못한 劇團이 갈라지고 있다. 俳優도 마찬가지다. 어떤 레벨 以上의 劇場에 서지 못하면 3流 俳優 取扱을 한다. 劇場의 크기는 演劇의 本質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現象은 漸漸 甚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打開策度 마땅찮다. 이런 틈새를 利用해서 作品性이 떨어지는 亞流 演劇이 많이 舞臺에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先輩의 等’을 얘기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先輩의 등’은 안쓰러우면서도 듬직해 보였다. 이제는 그런 先輩가 드물다. 내가 그런 先輩 役割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요즘 나는 舞臺 위에서는 ‘잘 나가는 俳優’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舞臺를 내려가면 ‘質問을 받는 俳優’다. 後輩들이 카톡이나 메신저 等으로 延期 等에 關해서 이런 저런 質問을 해 온다. 아, 이렇게까지 물어오는 後輩들에게는 뭔가 도움을 주는 것도 先輩의 役割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俳優가 된 걸 後悔한 적은 없을까.

“크게 後悔한 적은 없다. 그러나 후회스러운 적은 있었다. 演劇이 잘 안 풀릴 때, 내가 堪當할 수 없는 過한 選擇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어떤 俳優를 志向하고 있는가. 그는 俳優가 아니라 광대로 불리길 願했다. “배우는 왠지 成功한 사람 같고, 뭔가를 이룬 사람 같은 印象을 준다. 광대는 庶民的인데다 아직은 덜 익은 狀態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다.”

다시 生活과 家族으로 돌아갔다. 生活이 힘들지 않느냐는 質問에 그는 答했다.

“늘 그만그만하다. 한 해에 2,3個 作品을 하는데 애들 기르는 것이 좀 힘들긴 하다. 내가 家族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家族이 나를 돌본다. 儉素하게 살아준다는 뜻이다. 結婚 前에는 두렵다고 했는데 只今은 未安함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家族이 있으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點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或是 아이들이 俳優가 되겠다고 한다면.

“내가 關與할 일이 아니다. 도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말리지도 않겠다.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니, 本人의 選擇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는 5月에 김재엽이 쓰고 演出하는 ‘생각은 自由’(5月 23日~6月 17日, 斗山아트센터)에 出演한다. 斗山人文劇場은 올 主題를 ‘葛藤’으로 잡았는데 이 新作은 ‘葛藤 시리즈’의 一環이다. 김재엽이 獨逸 베를린에서 1年間 生活하며 經驗한 일들을 풀어놓는다. 그가 쓴 日記와 創作 노트, 現地 인터뷰 等을 利用해 世界市民, 移住民, 難民의 視角으로 韓國과 베를린의 藝術과 社會에 質問을 던진다(두산아트센터를 紹介하는 2017年 小冊子에서). ‘조氏孤兒’와 ‘야키니쿠 드래곤’의 歡呼를 뒤로 하고 하성광이 어떤 變身을 보여줄지 期待된다.

심규선 고문
심규선 拷問
그를 인터뷰하며 느낀 것은 한 마디로 ‘率直하다’는 것이다. 그는 率直함으로써 便安함을 얻는 것 같다. 實際로 그는 “便安하기만 해도 幸福하다. 只今도 그렇다”고 했다. 그가 앞으로 어떤 役을 맡아 어떤 成就를 이룰지는 점치기 어렵다. 다만, 便安한 演技로 觀客들에게 幸福을 안겨주는 그런 俳優로 繼續 있어달라는 希望을 품어본다.

(그가 出演했던 演劇은 다음과 같다. ‘觀客冒瀆’ ‘70分間의 戀愛’ ‘덫-햄릿에 對한 冥想’ ‘리어王’ ‘龍山, 椅子들’ ‘人魚都市’ ‘李刑事님 修辭法’ ‘風餐露宿’ ‘기름고래의 失踪’ ‘弄談’ ‘背水의 高度(背水의 孤島)’ ‘흙의 停車場’ ‘三國遺事 演劇滿發-南山에서 길을 잃다’ ‘더 파워’ ‘조氏孤兒, 複數의 씨앗’ ‘야키니쿠 드래곤’ ‘姑母를 찾습니다’)

심규선 記者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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