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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가 네게 패스할게”… 김승현의 ‘어시스터’ 自處한 金炳哲[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東亞日報

“이젠 내가 네게 패스할게”… 김승현의 ‘어시스터’ 自處한 金炳哲[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1月 13日 16時 00分


코멘트

[12] 單짝 籠球스타 김병철과 김승현

깐부. ‘같은 便’, 나아가 ‘어떤 境遇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意味로 通用되는 隱語, 俗語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人生도 健全한 交感을 나누는 平生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人間關係는 健康에도 肯定的인 影響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價値’를 紹介합니다.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이자 최고의 단짝 파트너로 꼽히는 김병철 전 오리온 코치(오른쪽)와 김승현이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만나 농구 인생을 추억하며 우정을 쏟아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韓國 籠球를 代表하는 레전드이자 最高의 單짝 파트너로 꼽히는 金炳哲 前 오리온 코치(오른쪽)와 김승현이 지난해 12月의 어느 날 만나 籠球 人生을 追憶하며 友情을 쏟아냈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人生이 술술 풀리고, 하는 것마다 잘 될 때는 周邊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歡迎 받고, VIP 待接을 받으니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神經이 덜 쓰인다. 나를 最高로 치켜 주면서 온갖 物質的 攻勢를 펼치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눈을 어둡게 한다.

사람 사는 게 順坦치만은 않다. 純粹하게 내 사람이 되는 境遇도 있지만 不純한 意圖를 갖고 接近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有名해질수록, 힘이 있을수록 사람에게 속고 當해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지는 境遇가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럴 때 暫時 잊고 있었는데, 恒常 그 자리에 있는 옛 사람들의 眞價를 깨닫기도 한다.

神氣의 드리블과 奇想天外한 패스로 한 時代를 風靡했던 傳說의 포인트 가드 김승현(46)에게 1990年代 籠球 全盛期를 이끈 ‘오빠 部隊’의 主役 金炳哲(51) 前 오리온(現 高陽 消奴) 코치는 恒常 제 자리에 있는, 마음의 故鄕 같은 先輩다. 온갖 有名稅를 치르고 精神을 차리고 보니, 暫時 잊고 있었던 先輩는 如前히 그의 곁에 있었다.

둘은 東洋(오리온의 前身)에서 10年 가까이 한솥밥을 먹으며 籠球 人生 頂點에 함께 올랐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그들의 全盛期가 오리온이 가장 興했던 全盛期였다. 김승현은 코트에서 공만 잡으면 金炳哲을 찾았고, 김병철은 김승현의 패스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빈 空間을 달렸다. 오리온의 緣故地였던 大邱 팬들은 勿論이고, 籠球 좀 안다는 팬들은 눈만 마주쳐도 名場面이 生産되는 둘의 콤비 플레이를 아직도 追憶하고 그리워한다.

● ‘共通 分母’ 하나 없이 ‘우리’가 된 2002年
“나는 승현이가 그렇게 빠른 줄 몰랐어요. 오리온이 승현이가 다니던 東國大하고 演習競技를 몇 番 했는데 나는 승현이를 專擔 守備하지 않아서 速度感을 못 느꼈죠. 그런데 승현이가 오리온에 入團해서 練習을 하는데 공을 잡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게 眞짜 電光石火였어요. 제가 元來 速攻 나갈 때 빨리 안 뛰는데 승현이가 入團한 後로는 正말 겁나게 뛰기 始作했죠.”

5살 差異인 둘은 出身 學校도 다르다. 엮이는 게 하나도 없다가 오리온에서 처음 만나 ‘우리’가 됐다. 金 前 코치는 용산고-고려대 時節 이미 正確한 슈팅과 突破 能力을 갖춘 特級 슈팅 가드로 스타 班列에 올랐다. 前, 現職 歷代 籠球 選手들 中에는 別名, 修飾語가 있는 選手들이 몇 名 없다. 中高校 時節 ‘才能 하나는 籠球大統領 許載 以後 가장 뛰어나다’는 評價를 받았던 金 前 코치는 簡潔하면서도 다양한 퍼포먼스가 可能한 籠球를 驅使해 ‘피터팬’이라는 愛稱이 붙었다. 籠球 코트를 거의 콘서트場으로 만든 ‘오빠 部隊’의 主人公 中 한 名인 金 前 코치를 김승현은 當然히 알고 있었다.

“2001年度 프로籠球 新人 드래프트에서 오리온에 指名(全體 3順位)되고 나서 바로 병철이 兄이 생각나더라고요. 포인트가드인 저와 어떤 슈팅 가드가 짝이 될까 드래프트 前에 많이 궁금했는데 兄을 만나 무척 榮光이었죠.”

김승현이 入團하기 直前 2000~2001시즌에 오리온은 恥辱的인 꼴찌(10位)를 했다. 金 前 코치는 常務에서 軍 服務를 하고 그 시즌에 팀에 復歸했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競技力과 팀 雰圍氣를 혼자서 收拾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一當百이 可能한 김승현이 入團을 했다.

“勝현아, 率直하게 얘기해봐. 꼴찌 팀에 오기 싫었지? 하하.”

“아니에요. 誘導 審問하지 마세요.”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1년 오리온에 입단해  데뷔 시즌 엄청난 코트 장악력으로 농구계를 충격에 빠뜨리면서 슈퍼스타 반열에 올라선 김승현. KBL 제공
동국대를 卒業하고 2001年 오리온에 入團해 데뷔 시즌 엄청난 코트 掌握力으로 農具契를 衝擊에 빠뜨리면서 슈퍼스타 班列에 올라선 김승현. KBL 提供
-오리온에서 만난 게 正말 因緣입니다.

“승현이가 워낙 大學 때 잘해서 當時 1, 2順位 指名權을 갖고 있었던 LG나 골드뱅크(KT의 前身)에서 指名할 수도 있었죠. 그 때 어떤 監督님이 널 뽑았지?”

“최명룡 監督님이죠. 다들 김진 監督이 저를 뽑은 줄 알고 계셔요, 하하. 兄도 있고 해서 指名되고 마음이 便했어요.”

“事實 저는 高麗大(92學番) 3學年 때 三星으로 가는 것에 對한 얘기가 되는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리온이 1995年에 籠球 팀을 創團한다고 發表를 했어요. 오리온과 비슷한 時點에 創團한 待遇(韓國가스公社 前身) 等 두 팀이 創團 프리미엄으로 大學 팀을 于先 指名할 수 있었는데, 오리온이 고려대를 指名하면서 卒業班인 저하고 희철이가 入團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승현이와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됐죠.”

김 전 코치(왼쪽)와 김승현(가운데)은 ‘우리’가 되자마자 오리온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고 둘만의 전성기를 누린다. KBL 제공
金 前 코치(왼쪽)와 김승현(가운데)은 ‘우리’가 되자마자 오리온을 統合 優勝으로 이끌고 둘만의 全盛期를 누린다. KBL 提供
둘은 처음 ‘우리’가 되자마자 2001~2002시즌 프로籠球에서 팀에 正規리그, 챔피언決定戰 統合 優勝을 안겼다. 速度를 推進體로 삼아 空間을 最大限 活用하는 둘의 籠球는 外國人 選手들의 定型化된 1代 1에 支配된 當時 프로籠球 트랜드를 180度 바꿔 놓았다.

둘 德分에 ‘萬年 꼴찌’ 오리온은 기나긴 暗黑期를 뚫고 絶對 强豪이자 全國區 球團으로 올라섰다. 김승현은 데뷔 시즌에 新人賞과 正規리그 最優秀選手(MVP)賞을 한꺼번에 받았는데, 이 記錄은 아직도 프로籠球에서 唯一하다. 여기에 베스트 5, 어시스트, 가로채기 賞까지 휩쓸었다.

김승현은 氣勢를 이어 2002年 열린 釜山아시아競技에서 男子 籠球 代表팀에 金메달까지 안겼다. 김승현이 없었다면 中國과의 決勝戰은 100% 虛無한 敗北였다. 김승현은 4쿼터 終了 41秒 前 81-88로 勝負가 거의 넘어간 狀況에서 中國 選手의 공을 가로채 83-88로 追擊의 불씨를 당겼다.

終了 23秒 前 83-90에서는 현주엽에게 絶妙한 어시스트 패스를 해줬고, 바로 1秒 만에 공을 빼앗아 문경은의 3點砲를 만들어냈다. 中國의 自由投 失敗로 얻은 同點 機會. 김승현은 終了 14秒 前 현주엽에게 빠르게 패스를 連結하면서 守備를 끌고 움직였고, 그 德에 현주엽이 長身 숲을 뚫고 劇的으로 90-90을 만들며 延長戰에 들어갈 수 있었다.

延長戰에서 韓國은 김승현의 幻想的인 리딩으로 中國을 잡아내고, 1982年 뉴델리 아시아競技 以後 20年 만에 金메달을 따낸다. 韓國 籠球 歷史上 最高의 名勝負로 남을 歷史의 中心에 그가 있었다. 프로 데뷔 1年 안에 김승현처럼 剛한 印象을 남긴 選手, 이룰 건 다 이룬 選手는 없다.

“勝현아, 眞짜 決勝戰에서 韓國이 이길 줄을 몰랐어. 너가 얼마나 軍隊를 안 가고 싶었으면 그렇게 죽기 살기로 뛰었겠니. 何如튼 내가 본 너의 競技 中에 第一 强烈했어. 하하.”

“延長戰에서 (門)卿은 兄한테 ‘百 도어 플레이(공을 갖고 있지 않은 選手가 守備를 빠르게 따돌리고 奇襲的으로 골대를 向해 들어가면서 패스를 받아 得點하는 움직임)’로 패스를 넣어줘서 決定的인 得點을 했잖아요. ‘백도어’는 팀에서 兄하고 많이 練習했죠. 눈빛만 마주쳐도 그 플레이를 했는데 決勝戰 延長戰에서 瞬間 卿은 兄이 병철이 兄으로 보이더라고요. 나는 그 場面이 가장 記憶에 남아요. 兄과의 練習이 決定的인 瞬間 人生 패스로 나왔죠.”

“그래. 승현이 너하고 代表팀에서 함께 金메달을 땄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그 때 代表팀에 갈 수 있었는데 當時에 아내가 妊娠을 하고 있었거든. 한참 아시아競技 對備 訓鍊할 때 出産할 時期였어. 當時 김진 監督과 박건연 코치께서 意思를 물어보셨는데, 나 代身 조상현(LG 監督)李 엔트리에 들어갔을 거야. 事實 當時 中國에는 ‘韓國 킬러’라는 후웨이동에 야오밍까지 있어서 아무리 안房에서 하는 大會지만 쉽지 않다고 봤는데 奇跡이었지. 後悔가 돼.그런데 勝현아, 正말 軍隊 안 가려고 熱心히 뛴 거 맞지?”

“兄, 하하. 그 때가 一生一帶 最高의 컨디션이었어요.”

以後 둘은 한동안 프로籠球 興行 코드 노릇을 톡톡히 했다. 統合 優勝을 한 다음 시즌에도 오리온은 둘의 活躍으로 正規리그 優勝과 챔피언決定戰 準優勝을 차지했다. 金 前 코치는 正規리그 MVP에 베스트 5像을 거머쥐었다. 2年 次 징크스라는 말이 無色하게 김승현은 손끝에 공만 걸리면 想像하지 못한 魔術을 부렸다. 팀은 以後 4시즌 連續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통합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 시즌 정규리그 MVP에 오른 김 전 코치. 김승현은 김 전 코치가 MVP를 받은 것에 자신의 몫이 절대적으로 크다고 한다. KBL 제공
統合 優勝을 차지하고 다음 시즌 正規리그 MVP에 오른 金 前 코치. 김승현은 金 前 코치가 MVP를 받은 것에 自身의 몫이 絶對的으로 크다고 한다. KBL 提供
“데뷔 시즌 첫 開幕展에서 지고 兄 기억나요? 병철이 兄이 守備를 못해서 졌거든요. 하하. 두 番째 競技부터 더 攻擊的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兄, 그냥 달리자’라고 했어요. 내가 無條件 다 뿌려줄 테니까 3點 슛 쏘고, 레이업 슛하라고 그랬어요. 그 때부터 우리만의 뛰고 쏘는, 팬들이 아주 재밌어하는 ‘런 앤 건(Run and Gun)’ 籠球가 始作됐죠. 아, 記憶해야할 건요. 統合 優勝하고 다음 시즌에 兄이 MVP(2002~2003시즌 正規리그)를 탄 것도 저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시스트 1位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나한테 패스 준 게 아니냐? 하하.”

“제가 記錄한 어시스트의 4割은 병철이 兄 몫인 건 맞아요. 잘 넣어줬죠.”

2006年 籠球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 大會에서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를 비롯해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폴(골든스테이트) 等 當代 地球村 最高의 籠球 스타가 包含된 美國 代表팀을 相對로 부린 妙技도 김승현 籠球 人生의 名場面이다. 월드컵 直前에 몸이나 풀고 競技를 즐겨볼까 했던 美國프로籠球(NBA) 代表 스타들이 요리조리 自身들을 빠져 나가면서 얄밉게 재주를 부리는 김승현을 잡으려고 前方 프레스를 加하는 珍風景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승현은 미국프로농구 당대 최고 스타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매직’ 농구를 했다. 2006년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 대회 한국과 미국 농구 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위), 크리스 폴(아래)을 상대하고 있는 김승현. 김승현 제공
김승현은 美國프로籠球 當代 最高 스타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매직’ 籠球를 했다. 2006年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 大會 韓國과 美國 籠球 代表팀 間의 競技에서 只今도 現役으로 뛰고 있는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危), 크리스 폴(아래)을 相對하고 있는 김승현. 김승현 提供


● “힘들 때 ‘지못未’, 勝현아”
프로籠球 데뷔 시즌에 籠球 選手로 받을 수 있는 모든 榮光을 거머쥔 김승현의 人生 앞날에는 坦坦大路만이 깔릴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빨리 길바닥에 欠집이 생겨 길을 離脫하고 또 離脫하는 不運의 連續이 꽤 길게 그를 덮어버렸다.

프로籠球 2007~2008시즌 현대모비스와 開幕戰에서 競技 途中 極甚한 허리 負傷을 當하고부터 不便한 일들이 繼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深刻했죠?

“練習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4쿼터 막판에 兆朕이 異常한 거예요. 허리 쪽에서 뭔가 터진 것 같은, 氣分이 異常하더라고요. 그 前에 비슷한 負傷을 當한 적 없으니 어떻게 된 건지 알 길이 없죠. 競技가 끝나고 大邱로 넘어오는데 식은 땀이 나더라고요. 앉아 있기도, 누워있기도 힘들고. 그래서 當時 監督님하고 相議해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病院에서 MRI를 찍었더니 디스크가 터졌더라고요(추간판 脫出症).”

김승현은 몸을 過하게 쓰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相對가 거칠게 守備를 하기 때문에 負傷 危險이 적다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데뷔 때부터 每 시즌 거의 前 京畿, 平均 33~35分 가까이를 뛰었다. 金 前 코치는 “허리가 다칠 줄은 正말 想像도 못했다. 消耗가 많이 된 탓”이라고 했다.

김승현의 허리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던 오리온의 2008~2009시즌 경기. 김승현과  김 전 코치의 표정이 밝지 않다. 동아일보 DB.
김승현의 허리 負傷이 長期化되면서 다시 那落으로 떨어졌던 오리온의 2008~2009시즌 競技. 김승현과 金 前 코치의 表情이 밝지 않다. 東亞日報 DB.
-手術을 해야 될 狀況이었죠?

“팀에서 手術을 안 시키더라고요. 팀이 11連霸인가를 하고 監督님이 그만뒀는데 팀에서는 繼續 제가 再活하면서 뛰길 願했어요. 디스크가 터졌는데, 할 수 없이 腹帶를 차고 뛰었죠.”

“나는 승현이가 디스크가 터져 損傷됐다고 하길래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 점프도 많이 안 하는 얘거든요.”

“兄 深刻했어요. 다치고 한 달 만에 다시 뛰었잖아요. 말이 안 되는 거죠. 病院에서는 無條件 手術하라고 했어요.”

“승현이 너 그 때, 蜂針까지 맞았잖아. 디스크 터지기 前이라면 治療 次元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理解가 안 갔지.”

“말도 말아요. 벌 알레르기 때문에 붓고 엄청 苦生했었어요.”

그 시즌에 21競技 出戰에 그치고, 浮上 餘波로 2008~2009시즌도 39競技만 나갔다. 김승현의 날개가 完全히 꺾이니 팀은 2007~2008시즌 꼴찌로 墜落했고, 다음 시즌도 9位에 머물렀다. 2009~2010, 2010~2011시즌도 내리 꼴찌를 했다. 金 前 코치는 “승현이가 다치면서 나도 人生의 내리막 길을 걷는 것 같았다”고 했다.

豫期치 못한 허리 負傷이 잘 나가던 김승현의 籠球 人生 上昇勢를 잡아 끌어내렸다. 2008~2009 시즌 後 及其也 팀과 年俸 紛爭이 붙었다. 寄與度가 떨어진다는 理由로 年俸을 깎으려는 팀과 削減에는 同意하지만 팀에서 手術을 反對해서 到底히 競技에 나설 수 없는 몸 狀態임에도 두 시즌을 버텼는데, 이 部分이 제대로 評價받지 못했다는 김승현 사이에 葛藤의 골이 깊어졌다. 以後 이런 일이 벌어진다.

意見 衝突이 빌미가 돼 2006年 오리온과 김승현이 FA(自由契約選手)로 5年 契約을 맺을 때 作成, 合意한 別途 裏面契約書가 公開되면서 그는 더 큰 波紋의 中心에 섰다. 裏面 契約은 KBL(한국농구연맹)의 規定 違反 事項. 김승현은 出戰 停止 處分(18競技에서 나중에 9競技로 減免)을 받았다. 2009~2010 시즌에 懲戒를 마치고 팀에 復歸했지만 球團과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江을 건넌 狀況이었다.

2007~2008시즌 개막전에서 허리 디스크가 터지는 부상을 당한 김승현은 팀의 반대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정상적이 아닌  몸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가  내리막 길을 걷는다. 무릎 부상까지 당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김승현. KBL 제공
2007~2008시즌 開幕展에서 허리 디스크가 터지는 負傷을 當한 김승현은 팀의 反對로 手術을 받지 못하고 正常的이 아닌 몸 狀態로 競技에 나섰다가 내리막 길을 걷는다. 무릎 負傷까지 當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김승현. KBL 提供
그는 다음 시즌 直前 오리온 球團을 相對로 못 받은 報酬에 對한 賃金請求訴訟을 法院에 提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BL로부터 任意 脫退 選手 公示 處分을 받았다. 그러면서 2010~2011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以後 김승현은 1審에서 勝訴 判決을 받긴 했지만 길고 긴 葛藤과 對立으로 滿身瘡痍가 됐다. 抑鬱한 마음이야 컸지만 막장 暴露, 葛藤의 中心에서 슈퍼스타 이미지에 致命的인 損害를 입은 것도 事實. 어쨌든 論難을 自招한 張本人이기 때문에 激勵보다 非難과 쓴 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코트에 復歸하고 싶어 訴訟 勝訴로 얻게 될 돈을 抛棄할 決心까지 하면서 方法을 찾았지만 한 番 꼬인 실타래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숨 막히는 일이 繼續 이어졌네요.

“1審과 抗訴審 둘 다 이겼지만 最善을 다한 選手에게 이런 待接을 할 수 있을까, 正말 끝까지 理解가 안 되더라고요. 判決이 나고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리도 아프고 正말 내 籠球 人生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했어요. ‘짧지만 아주 굵게, 華麗하게 코트에서 뛰었으니 그만 떠나야겠다’고 決心을 했죠. 그런데 마지막 大法院 判決이 나기 前 刹那에…. 그런데 얘기 다 해도 돼요?”

구단과의 오랜 연봉 협상과 이적 분쟁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승현의 현역 후반부 농구 인생은 늘 팬에게 사죄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2011~2012시즌을 앞두고 임의 탈퇴 선수에서 해제돼 코트 복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승현. KBL 제공
球團과의 오랜 年俸 協商과 利敵 紛爭 等으로 論難의 中心에 섰던 김승현의 現役 後半部 籠球 人生은 늘 팬에게 謝罪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2011~2012시즌을 앞두고 任意 脫退 選手에서 解除돼 코트 復歸를 알리는 記者會見을 하고 있는 김승현. KBL 提供
이 뒤에 벌어진 일은 當事者만 안다. 오래 前 일이긴 하나 터지면 籠球界에서 엄청난 波長을 몰고 올 만하다. 그래서 김승현을 말렸다. 相對便에게도 自初至終을 들어봐야 할 問題이기도 해서다. 却說하고, 迂餘曲折 끝에 김승현은 2011~2012시즌 다시 코트에 復歸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順坦하지 않았다. 三星에서 3시즌 동안 벤치를 지키는 날이 많았고, 팀이 再契約 意思를 보이지 않자 未練 없이 隱退를 해버렸다. 다른 팀으로도 갈 수 있었는데 自尊心이 許諾을 안 해 그냥 籠球공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그는 當時 벌어진 一連의 事情들은 무덤까지 갖고 갈 건데, 本人 意思에 關係없이 籠球를 그만둔 ‘김승현 커리어 마침標’가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받아야 할 돈도 蒸發해 버렸다.

‘사고뭉치’로 낙인이 찍힌 그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삼성에서 재기의 몸부림을 했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코트에서 밀려났다.  KBL 제공
‘事故뭉치’로 烙印이 찍힌 그에게 다시 일어설 機會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三星에서 再起의 몸부림을 했지만 그야말로 自身의 意志와는 相關없이 코트에서 밀려났다. KBL 提供
榮光을 함께 했던 後輩의 墜落을 지켜보는 先輩의 속도 便하지 않았다. 김승현이 2011~2012시즌을 앞두고 任意 脫退 制裁가 解除돼 暫時 오리온에서 個人 訓鍊을 할 때 訓鍊 파트너가 되어 준 사람이 金 前 코치였다. 當時 그는 現役 隱退하고 오리온의 리틀籠球團 監督 身分이었다.

“제가 승현이 事情을 많이 모르고 있었죠. 現役에서 마무리를 잘하도록 도와줬어야 했는데…. 승현이가 한참 팀 옮기는 걸로 힘들 때 ‘같이 뛰자, 같이 있자’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어요.”

한 番 烙印이 찍힌 김승현은 하는 일마다 그렇게 찍혔다. 다른 사람이면 그냥 넘어갈 일도 김승현이 하면 論難이 됐다. 本人은 現役으로 뛸 때 先輩나 同僚, 知人들의 付託을 통 크게 들어주기만 했는데 정작 義理를 저버린 막장 籠球 選手가 됐다고 했다. 率直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스타일인데, 否定的인 이미지가 쌓이면서 誤解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코트를 떠나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①籠球 放送을 하다 選手들의 不誠實한 팬 서비스를 擁護한 發言 論難 ②親舊한테 事業 資金을 빌렸다 債務不履行으로 인한 詐欺罪 嫌疑로 被訴.

-①番 論難으로 또 뜨거웠습니다. 이 論難 때문에 籠球 解說도 그만뒀잖아요.

“①番은 分明히 얘기할 수 있는 게, 放送에서는 저는 ‘100% 選手가 잘못했다, 하지만 ‘學生 팬 父母님이 말렸으면 어땠을까’라고 말을 했는데 앞뒤 脈絡 다 자르고 報道가 됐어요. 저는 選手 때 이기든 지든 팬들이 要請하면 全部 사인해주고 寫眞 찍어드렸죠. 저를 알아봐주시면 제가 고맙다고 人事하고 別 짓을 다했어요. 選手들이 잘못을 했지만 敗北를 하고 풀이 죽은 選手들의 마음도 理解한다는 次元으로 言及을 한 게 波長이 커졌죠.”

-惡性 댓글도 많았는데, 봤죠?

“‘籠球는 잘했을지언정, 인성은 쓰레기네’, 뭐 이런 댓글들이 많았죠. 그런데 저랑 對話 1分도 안 해본 사람들이 어떻게 저의 人性을 評價할 수 있는지 답답했어요. 더 以上 言論에 露出되고 싶지 않더라고요.”

-②番 論難이 터지면서 完全히 致命打를 입었을 것 같아요. ‘元來 김승현은 저래’라는 套의 비아냥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돈을 빌린 親舊가 잘 아는 俳優의 切親이었어요(김승현이 1億 원을 빌려 投資). 저도 5億 원을 投資를 했거든요. 안 돌려준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저를 告訴했죠. 김승현이 ‘1億 원 詐欺犯’李 된 거예요. 나중에 利子 780萬 원까지 붙여서 親舊 돈을 갚아줬고, 裁判에서 判事에게 돈을 갚은 書類 領收證을 보여주고 ‘저 이래도 監獄 가야되나요?’라고 물어봤죠. (裁判部는 김승현에게 罰金 1000萬 원을 宣告)”

-抗訴하지 그랬어요?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 또 言論에 나가면 좋지 않은 얘기들이 들리잖아요. 於此彼 抗訴를 하면 檢事가 또 求刑을 할테고, 그러면 또 무슨 罪를 지은 줄 사람들이 알잖아요. 그래서 그만뒀죠. 사람이 正말 무섭더라고요. 電話番號를 다 整理했죠. 새로운 사람도 못 사귀겠더라고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籠球밖에 없잖아요. 또 사람들한테 當하면 안 되는데 依支할 곳이 병철이 兄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SOS를 繼續 치고 있는데 兄도 내상이 커서, 하하.”

오리온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병철 전 코치. 지금은 캐롯에서 소노로 넘어간 전신 오리온 팀에서의 유일한 영구결번(10)자다. 2001~2002시즌 통합 우승을 달성하고 기념으로 림 그물을 자르는 세리머리를 하고 있다. KBL제공
오리온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한 時代를 風靡한 金炳哲 前 코치. 只今은 캐롯에서 消奴로 넘어간 前身 오리온 팀에서의 唯一한 永久缺番(10)字다. 2001~2002시즌 統合 優勝을 達成하고 記念으로 림 그물을 자르는 稅吏머리를 하고 있다. KBL提供
金 前 코치는 오리온에서 隱退하고 오리온에서 指導者 生活을 한 ‘怨 클럽 레전드’다. 華麗한 現役 生活을 마치고 오리온에서 2013年부터 2022年까지 코치, 首席코치, 監督代行을 지냈다. 2019~2020시즌이 끝나고 當時 추일승 監督이 물러나면서 監督으로 內部 昇格이 되는가 싶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首席코치로 監督을 補佐하다가 팀이 2022年 高陽 캐롯에 引受되면서 約 25年間 정들었던 팀을 떠났다.

2019~2020시즌 중도사퇴한 추일승 감독을 대신해 오리온 감독대행을 맡아 시즌을 치렀던 김 전 코치.  KBL 제공
2019~2020시즌 中途辭退한 추일승 監督을 代身해 오리온 監督代行을 맡아 시즌을 치렀던 金 前 코치. KBL 提供
農具契에서는 대방初-龍山中古-高麗大 等 籠球 名門學校를 거친 스타 임에도 特定 學緣, 地緣에 얽매이지 않고 自己 籠球 色깔과 哲學을 찾아가는 스타일로 通한다. 本人은 스스로 늘 “나는 人脈 管理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못 크는가 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籠球 工夫를 혼자서 지겹도록 파는 스타일이다. 섬세하게 選手를 立體的으로 分析한 맞춤 데이터가 自己 寶物 1號다. 十餘 卷의 노트에 現在 KBL 大多數 主力 選手들의 패턴, 心理 使用法을 整理해놓고 있다. 選手들 各自에 맞는 地圖가 必要하다고 본다. 冷靜하게 指導者의 생각과 評價를 傳하면서도 時間을 주며 發展을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慇懃히 ‘츤데레’다. 本人 아들도 용산고에서 꽤 籠球를 잘했지만, 지난해 다른 工夫에 關心을 갖고 選手 生活에 지쳐하는 氣色을 보이자 바로 그만두게 했다.

指導者 經歷이 끊긴 것을 自身의 能力 不足으로 돌리지만 韓國 籠球 傳說로 남은 自身의 痕跡이 一部 없어진 것에 對해선 本人도 運이 많지 않다고 느낀다. 오리온의 唯一한 永久 缺番(10番)字인데, 팀이 캐롯과 消奴로 連달아 팔리면서 ‘김병철’의 歷史가 흐지부지 사라졌다. 大邱 오리온의 스타였는데, 隱退 後 팀이 緣故를 高揚으로 옮기면서 제대로 隱退式과 永久 缺番 行事를 치르지 못했다.

“兄은 그래도 選手 때는 別 일 없었잖아요.”

弄談 하는 것을 보니 김승현의 性格 하나는 正말 肯定的이다.
“병철이 兄 包含해서 籠球界에서 傷處를 크게 입은 사람을 하나씩 스카우트해서 팀 하나를 만들어볼까요.”

● 이제 김승현에게 ‘오늘의 運勢’ 되고픈 金炳哲
“더 이상 승현이가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도록 이제는 제가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매직 핸드’ 김승현과 현역 시절 포지션을 바꿔 농구 코트 밖 세상에서는 김승현에게 사는 즐거움을 패스해주는 포인트가드가 되겠다는 김 전 코치.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더 以上 승현이가 世上으로부터 傷處 받지 않도록 이제는 제가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매직 핸드’ 김승현과 現役 時節 포지션을 바꿔 籠球 코트 밖 世上에서는 김승현에게 사는 즐거움을 패스해주는 포인트가드가 되겠다는 金 前 코치.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人間的으로 애가 너무 착해서 바보 같아요. 너무 사람들을 잘 믿어 損害를 봐요. 只今도 승현이가 누구랑 만나 事業 얘기 비슷한 것 한다고 하면 제가 깜짝 놀랍니다. 自己가 나서서 여기저기 끌어다가 남 도와줄 苦悶을 한다고 해요. 앞으로는 自身을 위한 時間을 써야 한다고 봐요.”

兄의 論點은, 남 좋은 일은 조금 自制하자는 얘기다.

-只今까지 어떤 決定을 내릴 때 兄한테 意見 求한 적 없죠?

“안했죠.”
“자랑이다.”

新聞에 每日 나오는 ‘오늘의 運勢’를 보면 內容이 좋든 나쁘든 하루를 警戒하며 操心하게 된다. 金 前 코치는 김승현에게 그런 오늘의 運勢가 되고 싶다.

“승현이에게는 ‘意氣銷沈’의 姿勢가 必要해요. 火가 나도 먼저 나한테 電話해서 辱을 하고, 뭐든지 決定을 할 때 나를 스폰지처럼 생각하고 걸렀으면 좋겠어요. 승현이의 ‘리스크’를 내가 받았으면 해요.”

最近의 생각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승현에게 若干의 政敵인 面이 必要하다고 봤다. 그래서 金 前 코치는 김승현에게 낚시를 가르쳤다. 낚시를 통해 自身의 感情을 컨트롤하고 每事에 남들의 感情線이 어떤지 차분하게 짚어보라는 意圖였다. 이제는 낚시를 데리고 간 先輩의 마음을 동생 後輩가 알 것 같다는 金 前 코치다.

● 두 番째 ‘투맨 게임’ 硏究하는 ‘우리’
“現役 時節에는 ‘김승현’이 ‘김병철’을 살려줬잖아요. 슈팅 가드로 正말 포인트가드를 잘 만난 거잖아요. 이제는 ‘김승현’을 위해 서로 포지션을 바꾸려고 합니다.”

2番 슈팅 가드였던 金 前 코치는 고려대 時節, 또 프로에서 間或 1番 포인트가드를 보기도 했으나 專門 포지션은 아니다. 하지만 人生 코트에서, ‘수렁에서 건진’ 김승현을 위해 온갖 삶의 智慧와 사람 볼 줄 아는 視野를 패스하기로 했다.

“김승현의 長點은 相對의 비좁은 틈 사이로 패스를 正말 넣을 수 있을까 疑問이 들 刹那에 眞짜 넣는 거였잖아요. 승현이의 아픈 틈을 제가 비집고 治療하려 합니다.”

시시콜콜한 習慣부터 닮기로 했다.

“陰陽湯 아세요? 승현이가 陰陽湯을 먹으라고 推薦해서 그대로 하고 있어요.”

特別한 補藥인줄 알았더니, 뜨거운 물 위에 차가운 물을 부어 섞은 것이다. 섞이면서 發生하는 對流 現象으로 몸에 들어가면 新陳代謝가 좋아진다고 한다.

“勝현아, 너가 하라는 대로 한 달 먹어봤는데 血液 循環이 잘 되고 疲困함도 없어.”
“먼저 뜨거운 물 120ml를 컵에 넣고, 차가운 물 120ml 程度 넣고 3分을 기다려서 마시죠. 이렇게 또 해보세요.”

서로 바꾼 포지션으로 둘은 人生 두 番째 ‘투맨 게임’을 즐기고 있다. 둘은 지난해부터 政府 中央 部處가 모여 있는 世宗市의 地域 學生들을 위해 籠球 才能 寄附를 하고 있다. 行政中心複合都市建設廳이 世宗乙 스포츠 都市로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한 프로젝트인 ‘國代幼少年클럽’ 籠球敎室의 멘토로 學生들을 指導하고 있다.

籠球 레전드 둘이 뜨니 敎室 오픈과 함께 參加者 接受가 마감됐다. 籠球를 하고 싶은 學生들이라면, 또 생각이 있는 學生이라면 基本技와 體力이 없는 狀態에서의 스킬트레이닝은 ‘겉멋’이라고 것을 알려주고 싶다. 基本技와 體力을 아주 재밌게 둘만의 ‘투맨 게임’으로 알려주고 싶다. 金 前 코치는 KBL의 幼少年 有望株 發掘 캠프에서도 總括 코치를 맡고 있는데 언젠가 김승현이 도와줬으면 한다.

둘은 지난해부터 세종시 ‘국가대표 스포츠 클럽’ 농구교실의 국가대표 멘토로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김 전 코치는 KBL 유스 엘리트 캠프의 캠프장으로 향후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유망주 육성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아래 사진). KBL/주식회사 국대 제공
둘은 지난해부터 世宗市 ‘國家代表 스포츠 클럽’ 籠球敎室의 國家代表 멘토로 學生들에게 籠球를 가르치고 있다. 金 前 코치는 KBL 유스 엘리트 캠프의 캠프場으로 向後 韓國 籠球를 代表하는 有望株 育成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아래 寫眞). KBL/株式會社 國代 提供
“勝현아, 너 籠球 人生 끝나지 않았어. ‘홀로서기’ 하지말고 堂堂하게 ‘둘裏書機’하자. 남한테 이용당하지 말고 나를 利用해.”

“現役 時節에는 북치고, 장구치고 패스만 죽어라 하다가 슛을 쏠 機會가 없었는데 이제 兄이 패스 좀 제대로 해줘서 人生의 ‘오픈 찬스’좀 만들어 주세요. 예전에 兄의 슛 터치를 보고 따라하기도 했잖아요.”

뛰고 쏘는 ‘런 앤 건’ 농구의 대표 콤비였던 김 전 코치와 김승현은 인생 두 번째 ‘투맨 게임’ 을 하려 한다. 마치 ‘적벽대전’을 치르는 것처럼. KBL제공
뛰고 쏘는 ‘런 앤 건’ 籠球의 代表 콤비였던 金 前 코치와 김승현은 人生 두 番째 ‘투맨 게임’ 을 하려 한다. 마치 ‘赤壁大戰’을 치르는 것처럼. KBL提供
“우리 예전 競技에서 2代2 ‘투맨 게임’을 하면 相對가 바꿔 막기나 協力 守備를 못했잖아. 한 名에게 集中할 수 없었으니까.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보자고.”

둘은 참 오랜 만에, 그리고 繼續 같은 곳을 보기로 했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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