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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語를 잊어가는 김승옥… ‘안개’ 속 그의 奮鬪는 熾烈했다[데스크가 만난 사람]|東亞日報

單語를 잊어가는 김승옥… ‘안개’ 속 그의 奮鬪는 熾烈했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4月 4日 23時 42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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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霧津紀行’ 出刊 60年 김승옥 作家

1964년 김승옥이 펴낸 ‘무진기행’이 세상에 나온 지 60년이 됐다. 2024년의 한국 사회는 1964년의 한국 사회보다 
긍정적으로 변했을까. 뇌졸중으로 대화가 힘들지만 작가는 “그럼”이라고 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964年 김승옥이 펴낸 ‘霧津紀行’이 世上에 나온 지 60年이 됐다. 2024年의 韓國 社會는 1964年의 韓國 社會보다 肯定的으로 變했을까. 腦卒中으로 對話가 힘들지만 作家는 “그럼”이라고 答했다.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무진은 어디에 있습니까?”

‘霧津紀行’의 作家 김승옥(83)은 暫時 생각하더니 흰 종이에 韓半島 地圖를 그렸다. 地圖 위에 서울을 標示하고, 이어 平壤, 釜山, 順天을 적더니 마지막으로 光州를 表示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各 都市를 包含하는 큰 圓을 그리고 ‘무진’이라고 눌러 적었다. 무진은 서울일 수도, 부산일 수도, 그 어느 곳일 수도 있다는 뜻이란다. 1960年代 霧津紀行을 읽고 感銘받은 文靑들이 서울驛으로 가 無作定 無進行 列車票를 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고 하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金 作家가 23歲 때인 1964年 10月 思想界에 發表한 ‘霧津紀行’이 올해 60周年을 맞았다. 2003年 腦卒中이 發病한 以後 正常的인 對話가 힘들어진 그는 再昨年 허리 負傷에 이어 지난해 初 腸狹窄症이 發見됐다. 큰 手術을 3番 받아 氣力이 急激히 弱해졌단다. 以後로는 서울 강북구 번동의 집에서 蟄居하다시피 했다고. 하지만 ‘霧津紀行 60周年 얘기를 듣고 싶다’고 家族을 통해 뜻을 傳하자 그는 欣快히 許諾했다. 마침 3日 저녁에 西大門에서 家族 모임이 있으니 좀 일찍 나가 인터뷰를 하겠다는 뜻도 傳해왔다. 이날 午後, 지팡이를 짚은 金 作家가 느릿한 걸음으로 光化門 동아일보의 인터뷰 場所로 들어왔다. 아내, 長男과 함께였다.

金 作家는 21歲, 서울대 佛文科 2學年 때 ‘生命練習’으로 한국일보 新春文藝에 當選되며 文壇에 나왔다. 2年 뒤에 ‘霧津紀行’을 發表하자 文壇은 술렁였고, 이듬해 ‘서울, 1964年 겨울’로 東人文學賞을 거머쥐자 文段은 衝擊을 받았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進駐해 온 敵軍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中略) 안개는 마치 이승에 限이 있어서 每日 밤 찾아오는 厲鬼(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무진기행 中에서)

이날 作家는 90分 가까이 進行된 인터뷰 時間 동안 머릿속에서 떠도는 適切한 答辯의 單語를 찾느라 苦心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선 ‘무진’ ‘안개’ ‘南과 女’ ‘善과 惡’ ‘부끄러움’ 等의 單語를 反復해 적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長男이 “이런 뜻입니까” 하면 때론 웃으며 肯定했고, 때론 “아니”라고 線을 긋기도 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듯한 對話가 出口 없이 이어졌다. 記者는 12年 前에 登壇 50周年을 맞은 金 作家를 筆答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안개’가 짙어진 듯했다.

‘霧津紀行 發表 60周年이 된 所感’을 묻자 作家는 答 代身 종이를 꺼내 ‘腦卒中’ ‘東亞日報’를 連이어 적었다. 腦 모습을 그리더니 옆에 다시 腦卒中이라고 적었다. 알 듯 말 듯했다. ‘무진을 오랫동안 사랑해주시는 讀者에게 監査하시냐’고 다시 묻자 그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肯定했다.

그러고선 그는 갑자기 ‘霧津紀行’을 봐야겠다면서 冊이 只今 있냐고 물어왔다. 文庫本은 찾지 못해서 急한 대로 컴퓨터에 貯藏된 霧津紀行의 파일을 노트북 모니터에 띄우자 그는 위아래로 손짓을 해가며 自身이 읽고 싶은 部分을 찾게 했다. 그러고선 그는 直接 손을 뻗어 모니터에 올라온 수많은 文章들 사이에서 몇 文章을 反復해 짚었다. 小說 末尾, 正確히는 세 文章이었다.

“우리는 아마 幸福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찢어 버렸다.”

“나는 甚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製藥會社 幹部인 윤희중은 故鄕인 무진에 내려와 現地 音樂敎師인 하인숙을 만나 愛情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의 電報를 받고 急히 上京하게 되면서 하인숙을 向해 聯政의 便紙를 쓰지만 이를 結局 찢고 그냥 무진을 떠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結末 部分이다.

‘特히 마음에 드시는 部分이냐’고 묻자 金 作家는 환하게 웃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며 어렵게 쓰신 部分이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더 환하게 웃었다. ‘霧津紀行’을 只今도 種種 읽으시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아내의 電報를 받고 上京한 主人公은 平素 願했던 대로 製藥會社 專務가 되었을 것이다. 金 作家에게 霧津紀行의 結末 以後가 어떻게 됐을지를 묻자 그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尹과 아내→幸福(안개)→부끄러움’

作家는 아내에게 돌아가 겉으로는 幸福하지만 內面에서는 繼續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의 大部分의 사람이 實際로는 尹과 같은 삶을 選擇하지 않겠냐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무진기행’을 써달라고 하자 작가는 펜을 들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눌러썼다. 비록 직접 감사 인사를 말하지는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감사하시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霧津紀行’을 써달라고 하자 作家는 펜을 들어 한 字 한 字 정성스레 눌러썼다. 비록 直接 感謝 人事를 말하지는 못했지만 ‘讀者들에게 監査하시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金 作家는 ‘霧津紀行’ ‘서울, 1964年 겨울’ 等을 통해 1960年代 꿈과 希望을 잃고 彷徨하는 現代人들의 삶을 問題的 視角으로 그려냈다. 1964年의 韓國 社會와 2024年의 韓國 社會. 좀 더 肯定的으로 變化했을까. 그가 다시 펜을 집었다.

그는 1960年에는 軍人들이 있었지만 只今은 軍人이 없는 社會가 됐다고 했다. 軍人은 軍事政權이라는 說明도 追加로 곁들였다. ‘世上이 좋게 變한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이番에는 “그럼”이라고 明確히 育成으로 答했다.

앞서 金 作家의 携帶電話로 人事를 담은 文字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家族을 통해서는 對面 인터뷰 進行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先生님이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미리 傳達해주면 좋겠다는 付託도 傳했다. 作家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거의 이틀 만인, 인터뷰 當日 正午쯤에 18줄의 제법 긴 答文이 到着했다. 아쉽게도 大部分 本人의 履歷을 다시 機械的으로 言及한 것들이었지만, 이런 部分도 있었다.

‘1966年 短篇集 서울 1964年 겨울 창문사(人世 안 됩니다. 김승옥 火냈다)’

金 作家 아내의 說明으로는 當時 小說家 황순원의 동생이 運營하는 出版社 창문사에서 첫 短篇集을 냈는데 印稅를 하나도 주지 않아 當時 男便의 不滿이 컸다는 것이다. 工巧롭게도 김승옥 夫婦의 主禮 先生님은 황순원 作家였다. 아내는 “황순원 先生님은 동생이 印稅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이다. 어찌 됐든 黃 先生님이 저희의 主禮를 서 주셨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며 웃었다.

金 作家는 몇 年 前까지만 해도 周圍에 글을 繼續 쓰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最近에는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家族들은 얘기했다. 하지만 이날도 金 作家는 작은 灰色 手帖과 어느 冊에서 찢어낸 自身의 履歷이 담긴 종이 2張을 가져와서 무언가 생각이 안 나면 몇 分 동안이나 들여다보곤 했다.

‘手帖을 볼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作家는 열어봐 주었다. 文章보다는 單語, 그마저도 어떤 聯關性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의 이름과 電話番號가 빼곡히 적혀 있는 페이지도 있었다. 그의 이름을 딴 김승옥 文學賞은 지난해까지 8回 受賞者를 輩出했다. 登壇 10年이 넘은 作家가 發表한 短篇 가운데 受賞者를 가린다. 後輩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다시 適切한 單語를 찾느라 한참 ‘안개’ 속을 서성였다. 그러더니 이番에는 그가 2004年 펴낸 散文集 ‘내가 만난 하나님’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冊이 只今 없다고 하자 그 冊을 펴낸 아현동에 있는 出版社를 只今 찾아가자고 長男에게 말했다. 記者에게도 그 冊을 본 다음에 質問에 對한 答을 문자메시지를 통해 보내겠다고 했다. 金 作家의 長男은 “아버지는 이제 어떤 單語가 생각나지 않으면 以前 作品들을 다시 읽으며 그것을 찾으려고 하신다”며 “이제 阿峴洞 出版社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感覺的인 文章을 찾아다니던 20代의 靑年은 80代가 돼서도 如前히 비슷한 자리에서 奮鬪하는 모습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앞서 自身이 적어놓은 글들에 기대어 어떤 出口를 찾고 있다는 것. 그는 如前히 무진의 안개 속에 서 있는 듯했다.





황인찬 文化部長 hic@donga.com
#霧津紀行 #出刊 #김승옥 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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