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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廣場/최인아]自由, 스스로 말미암음|동아일보

[동아廣場/최인아]自由, 스스로 말미암음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16日 23時 45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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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는 자주 외로움을 同伴한다
集團主義, 南 좇는 者들에게 自由 있을까
외롭다면 생각하자, 自由로워지는 中이라고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客員論說委員·최인아冊房 代表
잘나가는 映畫 俳優가 있었다.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演技해 톱스타로 登極하지만 그것도 한때, 어느 날인가부터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고 한물간 俳優 取扱을 받는다. 그럼에도 끝내 頂上의 자리를 잊지 못한 그는 榮光을 되찾으려 발버둥친다. 2014年 아카데미 作品賞과 監督賞, 脚本賞, 撮影賞을 휩쓸었던 映畫 ‘버드맨(Birdman)’ 이야기다. 以前에도 몇몇 映畫를 N次 觀覽한 적이 있지만 이 映畫는 劇場을 나오는 길로 바로 또 票를 사서 連거푸 두 番을 봤다. 그만큼 强烈했다.

映畫 버드맨은 開封한 지 10年이나 되었지만 只今도 세 가지를 鮮明하게 記憶한다. 2時間假量의 映畫가 마치 하나의 場面처럼 이어진 롱테이크 演出과 編輯. 觀客을 映畫 내내 꼼짝없는 興奮 狀態로 몰아넣던 强烈한 音樂. 그리고 監督이 던진 메시지. 監督의 뜻을 제대로 헤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映畫를 感動的으로 본 觀客으로서 나는 이 대단한 映畫에서 ‘自由’를 읽었다.

主人公 마이클 키턴(리건 톰슨 役)은 다시 頂上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孤軍奮鬪한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여러 事件이 터지고 葛藤이 極에 達했을 때 그는 自身의 얼굴에 實彈이 든 銃을 쏴버리기까지 한다. 多幸히 목숨을 잃지 않은 그가 얼굴에 繃帶를 감은 채 病室에서 깨어나는데 이때 카메라가 잡은 그의 얼굴 表情이 아주 複雜微妙하다. 아주 重要한 것을 깨달은 者의 얼굴이랄까. 누가 뭐래도 自身은 배우라는 自覺에 다다른 이의 얼굴이었다. 人氣가 있든 없든, 찾는 이가 많든 적든, 톱스타든 아니든 自身은 如前히 映畫와 演技를 사랑하는 배우라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내 머릿속엔 自由라는 두 글字가 떠올랐다. 自由(自由). 스스로 字, 말미암을 有. 그러니까 自由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먼저 하든 나중에 하든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 本來 意味다. 映畫 속 主人公도 世上의 評價와 無關하게 自身이 俳優라는 自覺에 이르자 마침내 自由를 얻고, 移轉에 延期했던 버드맨이 되어 病室 窓밖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주 자유롭게.

모두들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엔 수고가 따른다고 믿는 내 눈엔 자유롭기 위해 堪當해야 할 것이 먼저 보인다. 最近엔 經濟的 自由에 關心이 크지만, 자유로이 사는 데 必要한 게 돈만은 아니다. 自由는 자주 외로움을 同伴한다. 集團에 屬해 남들 하는 대로 隊伍를 따라가면 외로울 일이 別로 없다. 외로움은 多數가 가는 길이 아닌 ‘마이 웨이’를 갈 때 찾아오고 커진다. 뜻을 같이할 사람이 적고 혼자가 될 때 덜컥 외로워지고 葛藤에 빠진다.

勿論, 사람들이 처음부터 마이 웨이를 試圖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들 自己답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自身의 選擇이 少數의 길임을 마주하면 슬슬 不安하고 외로워진다. 그러다 적지 않은 이들이 좁은 길을 나와 多數의 길로 들어서고 남의 길을 따라가는 者가 된다. 正義니 大義니 이런 게 아니라도 말이다. 아마도 마음은 便해질 것이나 自身이 품은 뜻대로, 自己답게 사는 自由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自由란, 少數(minority)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自身의 길을 갈 때 주어지는 膳物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자 하는 이는 世上과 不和할 可能性이 크니 自由를 願한다면 외로움을 膳物처럼 여겨야 하는 거구나, 생각한다.

個人의 時代를 넘어 ‘核個人의 時代’가 言及될 만큼 우리 社會는 集團主義 文化에서 많이 걸어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如前히 ‘配達의 民族’일 뿐 아니라 ‘바람의 民族’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方向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方向을 좇는다. 이런 데 自由가 있을까?

얼마 前 出刊된 孔枝泳 作家의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印象的으로 읽었다. 무리에 屬하지 않고 自身의 길을 가겠다는 作家의 생각에 많이 共感했다. 그리고 廣告쟁이 時節 서른 初盤에 썼던 카피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自由 아무것도 안 할 自由.” 젊었던 나는 그때 이 文章을 쓰면서,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自由, 首肯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自由, 願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自由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恒常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自由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體驗 또한 했다. 그러니 當身이 只今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自由로워지는 中이구나’라고. 맞다. 當身도 自由路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인아 客員論說委員·최인아冊房 代表
#自由 #集團主義 #核個人의 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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