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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도 感歎한 朝鮮時代 갓… 그 魅力의 再發見[강인욱 世上萬事의 起源]|東亞日報

나폴레옹도 感歎한 朝鮮時代 갓… 그 魅力의 再發見[강인욱 世上萬事의 起源]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11月 23日 23時 3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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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
《갓을 쓴 兩班을 빼고 朝鮮時代를 想像할 수 있을까. 近代化를 거치면서 不必要한 傳統文化를 象徵했던 갓이 最近 여러 媒體를 통해 새롭게 紹介되며 世界的인 注目을 받고 있다. 韓國을 除外하면 정작 世界 어디에서도 비슷한 帽子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멀게는 200年 前 나폴레옹이 激讚했고, 舊韓末 韓國을 訪問한 西洋 旅行家들은 입을 모아 ‘韓國은 母子의 나라’라는 記錄을 남겼다. 最近에 넷플릭스에서 放映된 ‘킹덤’이라는 映畫에 華麗한 갓이 登場하여 世界的으로 큰 人氣를 얻었고, 엉뚱하게도 中國에서 갓의 起源은 中國이라며 不必要한 論爭을 일으키기도 했다. 都大體 갓은 어디에서 始作되었고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했을까. 遺物이 傳하는 그 歷史를 함께 살펴보자.》

韓國의 갓, 高句麗에서 始作
갓이라는 帽子는 챙이 달려서 햇빛을 避하는 것이 主目的으로 韓國뿐 아니라 世界 곳곳에서 發見된다. 中國 身長의 실크로드에서는 2500年 前부터 짧은 챙이 달린 帽子를 쓴 境遇도 있지만, 大部分은 그냥 고깔을 썼다. 추운 草原에서 빠르게 말을 달려야 하는 地理的 特性을 勘案한 結果이다. 現在 우리가 쓰는 갓과 같은 形態의 帽子는 高句麗의 龕神塚 壁畫에서 처음 登場했다. 그리고 둔황의 莫高窟에 그려진 高句麗人의 모습에서도 갓이 보인다. 따라서 現在까지의 資料로 볼 때 갓을 처음 쓴 사람은 高句麗人日 可能性이 크다. 東아시아에서 騎馬文化가 發達한 匈奴를 비롯한 遊牧國家나 中國 어디에서도 비슷한 넓은 챙의 갓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갓은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 무사를 빚은 토기 인형(하니와)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출처 영국박물관
高句麗의 갓은 日本으로 傳해졌다. 日本 武士를 빚은 土器 人形(下니와)에서 그 形態를 찾아볼 수 있다. 寫眞 出處 英國博物館
또 實物 갓의 痕跡은 新羅의 古墳인 天馬塚과 金鈴塚에서 發見되었다. 여기에서 出土된 갓은 자작나무로 만든 챙 部分이다. 그 위에는 高句麗의 壁畫를 聯想시키는 各種 神話 속의 새와 基마인이 그려져 있어서 高句麗와의 關聯性을 傍證한다. 다만 머리에 쓰는 部分은 빠져 있다. 新羅 古墳 出土品으로 볼 때 三國時代의 갓은 平素에는 官帽를 쓰다가 갓이 必要하면 바깥의 樣態(遮陽) 部分만 따로 쓰는 一種의 組立式이었을 것 같다. 高句麗의 갓은 日本으로도 건너갔으니, 우리의 三國時代에 該當하는 古訓時代의 人物型 土器(下니와)에도 갓과 같은 帽子를 쓴 武士들이 보인다.

몽골 影響받은 패랭이
패랭이 같은 모자를 쓴 몽골의 석인상. 몽골 영향으로 고려는 물론 유라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모자가 널리 쓰였다. 강인욱 교수 제공
패랭이 같은 帽子를 쓴 몽골의 石人像. 몽골 影響으로 高麗는 勿論 유라시아 全域에서 비슷한 帽子가 널리 쓰였다. 강인욱 敎授 提供
三國時代의 갓은 高麗時代 몽골의 侵入으로 큰 變化를 겪으니, 當時 東아시아 全域에 影響을 준 몽골의 影響이 結合되어서 챙이 짧은 패랭이가 登場한다. 패랭이의 痕跡은 멀리 濟州島의 돌하르방에도 남아 있다. 몽골帝國의 곳곳에 남아 있는 石人像度 패랭이 같은 帽子를 쓰고 있어서 外形上 돌하르방과 가장 類似하다. 實際 몽골 干涉期에 濟州島에 몽골人이 오래 居住했으니 그들의 影響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濟州道뿐 아니라 몽골式의 패랭이 帽子는 全國 곳곳에 퍼졌다. 密陽 고법리에서 發見된 高麗 末期에 文身으로 活動한 박익(1332∼1398)의 무덤에 남겨진 壁畫에는 몽골 帽子와 닮은 패랭이 같은 갓을 쓴 사람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비록 實物 資料는 없지만 공민왕 臺에 검은色의 갓은 兩班이 쓰고 흰 갓은 平民이 쓰는 法을 定했다고 하니, 只今 우리에게 친숙한 兩班의 갓인 黑笠(黑笠)은 이때 本格的으로 登場한 셈이다. 하지만 갓이 널리 流行한 것은 朝鮮時代이다. 朝鮮 王朝는 性理學的 統治秩序를 確立하며 嚴格한 身分 秩序를 强調했고, 各種 官職의 品階에 따라 갓과 裝飾을 規定했다. 갓은 單純한 帽子를 넘어서 새로이 登場한 士大夫 階級의 象徵이 되면서 더욱 多樣해지고 華麗하게 發達하며 朝鮮을 代表하는 象徵으로 자리매김했다. 反面 高麗時代로부터 傳하던 패랭이는 平民의 것으로 남았다.

경남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 내부 벽화. 박익은 고려 말 문신으로, 그의 무덤 안에는 몽골 패랭이 모자와 닮은 갓을 쓴 사람이 그려져 있다. 사진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慶南 密陽 고법리 박익 벽화묘 內部 壁畫. 박익은 高麗 末 文身으로, 그의 무덤 안에는 몽골 패랭이 帽子와 닮은 갓을 쓴 사람이 그려져 있다. 寫眞 出處 國立文化財硏究員 홈페이지
이렇게 갓이 韓國 文化를 代表하는 데에는 또 다른 理由가 있었으니, 바로 數千 年間 이어진 韓國의 常套이다. 2500年 前 古朝鮮의 人物像과 2000年 前 扶餘의 人物像은 모두 빠짐없이 상투를 틀었다. 朝鮮의 兩班들도 멋있는 갓을 쓰기 위해서 머리를 다듬어 작은 달걀만 한 상투의 꼭지를 얹었다. 反面에 같은 時期 中國은 滿洲族의 辮髮이 널리 流行했으니 갓 같은 母子는 아예 發達할 수 없었다. 이렇듯 갓은 對外的으로는 韓國을 代表하였고, 朝鮮 社會 內에서는 成功한 兩班들의 象徵으로 자리매김했다. 以後 朝鮮時代 後期가 되어 兩班의 數가 增加하고 新興 富者들이 많아지며 갓 裝飾이 發達해 華麗함의 極致를 달리게 되었다.

갓의 威嚴에 반한 나폴레옹
1816년 조선을 방문한 배질 홀이 쓴 책에 들어간 삽화. 나폴레옹은 그림 속 갓 쓴 노인의 위엄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배질 홀 ‘조선 서해안과 유구 항해기’
1816年 朝鮮을 訪問한 배질 홀이 쓴 冊에 들어간 揷畵. 나폴레옹은 그림 속 갓 쓴 老人의 威嚴을 보고 感歎했다고 한다. 寫眞 出處 배질 홀 ‘朝鮮 西海岸과 遺構 항해기’
華麗한 韓國의 갓에 注目한 最初의 유럽人은 놀랍게도 有名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다. 200年 前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戰爭에서 大敗하고 結局 失脚하여 세인트헬레나섬에 監禁된 채 失意에 빠져 餘生을 보냈다. 當時 英國 海軍 將校였던 배질 홀(1788∼1844)은 1816年에 韓國의 西部 海岸과 日本 오키나와를 探査하고 돌아가는 길에 나폴레옹이 流配돼 있던 세인트헬레나섬에 들렀다. 世上을 모두 잃고 挫折한 나폴레옹은 敵國인 英國의 下級 將校와 만나는 것을 願치 않았다. 하지만 홀의 아버지가 나폴레옹과 軍事學校 同窓이라 마지못해 만났고 對話도 無味乾燥했다.

하지만 홀이 가져온 朝鮮의 그림을 보는 瞬間 나폴레옹은 눈을 반짝이며 깊은 關心을 보였다. 나폴레옹은 “老人네가 큰 帽子, 긴 흰수염에 손에는 기다란 파이프를 쥐고 있네. 下! 正말 잘 그렸어!”라며 感歎했다. 平素에도 威嚴 있는 이미지로 보이길 바랐고 큰 키가 아니어서 언제나 옷에 神經 쓰며 威嚴을 드러냈던 나폴레옹이었다. 그러니 머나먼 朝鮮에서 華麗한 갓으로 威嚴을 부린다는 것이 무척 와닿았던 것이다.

나폴레옹 以後 舊韓末 韓國을 旅行한 西洋 旅行家들은 ‘韓國은 母子의 나라’라고 感歎하며 작은 키를 커버하고 華麗한 패션을 자랑하는 훌륭한 藝術 作品이라 激讚했다. 그런데 外部의 評價는 國權을 침탈당하는 1900年代 以後에 急變하였다. 亡해가는 朝鮮에서 갓 쓴 兩班을 보고 쓸데없이 큰 帽子는 落下傘으로 쓰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이어졌다. 日本에서도 朝鮮 侵奪을 本格化하며 儒敎에 사로잡혀 亡國의 길로 간다는 侵略 論理를 强化했고, 그 本보기로 華麗한 갓을 代表로 들었다. 國運이 衰하는 時點에서 갓은 亡해가는 나라의 象徵이 된 것이다. 나라를 잃어버리자 朝鮮을 代表하던 갓은 近代化를 늦춘 舊世代를 代表하여 亡國의 象徵이 되었다. 以後 韓國이 解放된 以後에도 ‘갓 쓰고 自轉車 타기’ 같은 俗談처럼 나폴레옹마저 感歎한, 韓國을 代表하는 最高 名品인 갓은 舊韓末을 거치며 쓸모없는 것을 代表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媒體에서 再現된 갓은 千篇一律的으로 검은色의 黑笠이고 옷도 흰色 道袍여서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은 것도 事實이다. 하지만 最近 드라마와 大衆文化에서 갓이 華麗한 裝飾과 다양한 컬러의 衣服과 어울려 再現되자 世界는 마치 200年 前의 나폴레옹처럼 다시 韓國의 갓에 歡呼하기 始作했다.

韓流 타고 ‘K複式’ 象徵으로
世界 곳곳에 챙이 달린 帽子는 많이 있지만 갓만큼 다채롭게 그 服飾文化를 꽃피운 것은 없으니, 갓은 可히 韓國의 美를 代表함에 不足함이 없다. 이렇게 갓에 對한 再評價가 일어나자 中國 一角에서 갓이 中國製라는 主張도 나왔지만 갓은 古朝鮮과 扶餘에서 流行했던 상투에 遊牧民들의 戰鬪 帽子가 結合된 代表的인 韓國籍 衣服이다. 韓國의 服飾에는 갓뿐 아니라 北方 遊牧 戰士들의 옷에서 祈願한 철릭度 있다. 철릭度 高麗時代에 몽골의 影響으로 導入된 以後 朝鮮時代에 兩班 身分을 代表하는 華麗한 外出服이 되었으니 갓과 비슷하다. 이렇듯 中國과 다른 韓國 固有의 服飾文化 背景에는 北方의 여러 文化를 輸入하고 自身의 社會에 맞게 발전시켰던 文化的 底力이 있다. 하지만 舊韓末 속절없이 外勢의 侵略을 當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物件에서 가장 猖披한 物件으로 轉落하기도 했다. 最近 韓國의 여러 大衆文化가 世界的으로 歡迎받고 있지만, 如前히 우리를 둘러싼 地政學的 狀況은 危殆롭다. 바로 갓이 우리에게 示唆하는 二重的인 意味가 아닐까.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


#朝鮮時代 #갓 #나폴레옹 #k複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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