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와 스탈린의 握手[임용한의 戰爭史]〈219〉|東亞日報

히틀러와 스탈린의 握手[임용한의 戰爭史]〈219〉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7月 5日 03時 00分


코멘트
第1次 世界大戰을 始作하기 前에 獨逸은 戰爭 準備를 하면서 絶對로 러시아를 侵攻해서는 안 된다는 準則을 세웠다. 萬에 하나 侵攻한다면 우크라이나로 限定한다. 獨逸에 必要한 땅은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였다. 多幸히 이때는 이 原則이 지켜졌다.

1930年代 히틀러의 口號는 ‘獨逸의 生存’이었다. 獨逸 民族이 生存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領土가 必要하다는 것. 히틀러는 露骨的으로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等 東유럽 國家를 指目하고, 이곳을 얻기 위해 蘇聯과 一戰도 不辭하겠다고 떠들었다. 1938年 히틀러가 체코를 倂合했다. 베르사유 體制를 廢棄하고 再武裝을 宣言한 獨逸은 어느새 유럽 最强이 되어 있었다. 프랑스 軍部는 率直히 獨逸軍이 더 剛하며 自身들은 防禦는 可能하지만 攻擊은 어렵다고 告白했다. 게다가 英國과 프랑스는 1000萬 名의 犧牲者를 낸 1次 大戰의 惡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눈에 들어온 나라가 蘇聯이었다. 蘇聯은 1次 大戰 때 聯合軍과 함께 獨逸과 싸웠다. 히틀러는 체코 다음 目標로 폴란드를 노렸다. 蘇聯 立場에서 獨逸이 폴란드를 占領하면 우크라이나가 危險했다. 獨逸은 1次 大戰 前부터 우크라이나에 눈毒을 들였고, 히틀러는 입만 열면 마르크스주의의 撲滅이 나치당의 疏明이라고 떠들고 있었다.

폴란드도 이를 알고 蘇聯과 相互防衛協約을 맺고 있었다. 영, 프의 使節團이 모스크바로 달려갔다. 3國이 힘을 합쳐 히틀러의 野慾을 꺾자고 했다. 情勢上 拒否할 수 없는 提案이었는데, 스탈린은 시큰둥했다. 알고 보니 蘇聯은 우크라이나를 保護할 方法이 또 있었다. 폴란드를 獨逸과 半씩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祕密裏에 誕生한 條約이 독소不可侵 條約이다. 두 나라는 폴란드를 侵攻해 半分했고, 英國과 프랑스는 힘쓰는 시늉만 하다가 끝냈다.

우크라이나 戰爭이 膠着狀態로 들어가자 러시아는 러시아 에너지 依存度가 높은 獨逸을 脅迫하기 始作했다. 두 나라는 또 손을 잡을까? 이番에는 그럴 可能性이 낮지만 언제 누가 背信할지 모른다. 아니 國際政治에는 背信이란 單語조차 存在하지 않는다.

任用한 歷史學者


#히틀러 #스탈린 #第 1次世界大戰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