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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滅亡 보고 朝鮮內政 干涉 始作한 淸[박훈 韓日 歷史의 갈림길]|東亞日報

류큐 滅亡 보고 朝鮮內政 干涉 始作한 淸[박훈 韓日 歷史의 갈림길]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4月 30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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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슈리성 전경.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상징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류큐 시대 의식을 재현하는 ‘슈리성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2019년 10월 화재로 불타기 전의 모습. 사진 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日本 오키나와에 있는 슈리城 前景. 슈리城은 류큐 王國의 象徵으로 2000年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으로 登載됐다. 류큐 時代 意識을 再現하는 ‘슈리城 祝祭’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寫眞은 2019年 10月 火災로 불타기 前의 모습. 寫眞 出處 유네스코 홈페이지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東洋史學科 敎授
《近代日本은 初期부터 유난히 海外膨脹辱을 보였다. 이미 도쿠가와 幕府는 1855年 아이누人들이 살던 只今의 홋카이도를 直轄領으로 삼았고 메이지 政府는 이어서 日本人을 大擧 이주시켰다. 그 너머 北方에도 關心을 보여 1875年에는 러시아와 사할린-쿠릴熱島 交換條約을 締結하고 쿠릴列島를 손에 넣었다. 이듬해인 1876年에는 도쿄로부터 1000km나 떨어져 있는 太平洋의 섬, 오가사와라諸島 領有를 宣言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1873年에는 征韓論이 沸騰했고 1875年에는 운양호 事件을 일으켜 朝鮮에도 攻勢的 姿勢를 取했다.》

日本의 膨脹에 第一 먼저 抵抗한 것은 事實 류큐王國(只今의 오키나와)이었다. 15世紀에 오키나와 全體를 統一한 류큐王國은 明나라의 忠實한 朝貢國이었다. 그러다가 壬辰倭亂 後인 1609年 日本의 사쓰마번이 侵攻해와 朝貢을 要求했다. 以後 류큐는 이른바 ‘良俗體制’를 外交의 基本原理로 삼아 中日 兩國에 朝貢하면서도 內政은 自主的으로 行해온 儼然한 王國이었다. 日本은 400年 넘게 繁榮해온 王國을 먹잇감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日에 倂合당한 류큐, 繼續 抵抗


이런 류큐人들의 抵抗運動은 朝鮮 近代史에도 큰 影響을 미쳤다. 청이 류큐 滅亡을 보고 朝鮮에 對한 支配를 强化한 것이다. 金玉均의 甲申政變은 이에 對한 反撥이었다. 류큐人들은 自身을 中國을 中心으로 한 東아시아 國際體制의 重要한 一員으로 자리매김하고 日本의 侵略에 國際的인 對應을 呼訴하는 戰略을 擇했다. 그들은 中國의 實權者 李鴻章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病合當한 後에도 朝鮮의 甲申政變이나 청불戰爭에 影響 받으면서 抵抗運動을 展開해 나갔다.

이 자그맣고 平和로운 섬에 大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871年 한 事件이 發生했다. 류큐 漁民들이 臺灣에 漂着했는데, 그곳 原住民들이 이들을 殺害하고 만 것이다. 日本은 ‘自國民’ 殺害에 報復한다며 臺灣에 派兵했다. 이어서 1879年 마침내 500名의 兵力으로 류큐王國을 멸망시키고 國王 狀態(尙泰)를 도쿄로 잡아갔다. 그러고는 오키나와縣을 設置했다. 류큐는 宗主國인 請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代案(對岸)에 있는 푸젠省으로, 이어서 베이징을 찾아가 “사나운 日本人들이 敢히 凶暴한 威勢를 부리면서 쳐들어와 數百 年 된 번신(藩臣)의 종사를 멸망시켰다”며 “살아서는 日本의 속인(屬人)이 되길 願치 않고, 죽어서는 日本의 속귀(屬鬼)가 되는 것을 願치 않는다”고 懇切하게 救援을 要請했다.

류큐 “日, 다음 目標는 淸” 派兵要請


그러나 淸은 冷靜하게도 日本과 류큐王國을 分割해 나눠 가질 생각을 했다. 强大國에 依해 제멋대로 國土가 分斷된 우리에게는 씁쓸한 場面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청불戰爭이 터져 左宗棠(左宗棠)의 軍隊가 푸젠성까지 進駐해오자 류큐人들은 이 軍隊가 류큐로 건너와 日本人들을 쓸어내 달라고 하소연했다. 류큐 指導者 香덕굉(向德宏)은 “戰艦 2, 3隻을 派遣하여 日本人을 問罪할 것을 懇切히 바랍니다. … 天子의 軍隊가 國境에 다다르는 것을 보면 우리 人民은 죽음을 무릅쓰고 日本人을 남김없이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萬一 日本의 艦船이 救援하러 온다면 日本 國內는 텅 비어 있을 것이니, 中國이 상하이 톈진 等地로부터 곧바로 출격해 無防備 狀態의 日本을 攻擊하면 될 것”이라고 日本 本土 攻擊 戰略까지 提示했다.

中國의 軍事 介入을 說得하는 論理가 興味롭다. 먼저 류큐 滅亡은 中華秩序 全體의 崩壞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日本人은 먼저 臺灣에서 亂을 始作하고, 이어서 류큐에 虐政을 行하였으며, 마침내 朝鮮에 그 暴力을 行事(壬午軍亂, 甲申政變을 말함)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도 또한 베트남을 侵略하였습니다. … 萬若 이렇게 橫行하는 것을 그냥 둔다면 … 火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一種의 도미노 理論이다. 더 나아가 日本이 西洋과 손잡고 中華秩序를 攻擊할 것을 警告했다. “日本이 어찌 류큐만 갖고자 할 뿐이겠습니까. 그 마음은 저절로 큰 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 戰爭을 벌이려고 하는 者가 있다면 반드시 日本이 그 앞잡이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가 베트남과 戰爭을 하고 있는데 日本이 이를 돕고 있는 것이 그 證據입니다.” 實際로 청불戰爭 當時 프랑스는 日本에 支援을 要請한 적이 있고, 1884年 甲申政變은 이 戰爭 때문에 朝鮮 駐屯 淸軍이 빠져나간 틈을 노려 開化派와 日本軍이 일으켰으니 류큐人들의 豫測이 터무니없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淸은 朝鮮 甲申政變 問題에 汨沒


돛을 내린 채 류큐로 입항하는 류큐의 ‘진공선’. 중국으로 진공품을 싣고 떠났다 귀환할 때는 중국 상품을 싣고 먼 이국으로 출항하는 무역을 했다. 오키나와현립박물관미술관 소장
돛을 내린 채 류큐로 入港하는 류큐의 ‘진공선’. 中國으로 眞空品을 싣고 떠났다 歸還할 때는 中國 商品을 싣고 먼 異國으로 出港하는 貿易을 했다. 오키나와현립博物館美術館 所長
그러나 淸은 바다 건너 류큐까지 軍隊를 派兵할 餘裕가 없었다. 게다가 朝鮮에서는 壬午軍亂·甲申政變까지 터진 狀態였다. 류큐人들의 失望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次에 甲申政變 問題를 매듭짓기 위해 톈진에서 李鴻章과 이토 히로부미가 마주 앉았다. 류큐人들은 이를 마지막 機會로 여겼다. 淸으로 몰려가 “듣건대 베트남은 包圍가 풀리고 프랑스는 講和를 要求했다고 하며, 朝鮮의 일로 日本 使臣이 이미 베이징에 와 있다고 합니다. … 只今 日本 使臣이 베이징에 와서 朝鮮의 일을 論할 때 류큐의 일도 함께 論議해 달라”고 呼訴했다. 그들은 朝鮮과의 衡平性 問題를 擧論했다. 류큐度 朝鮮과 같이 忠實하게 朝貢을 해왔는데 어째서 “朝鮮에 일이 있을 때는 두 番씩이나 兵力을 派遣하여 亂을 鎭靜(壬午軍亂·甲申政變 때 淸軍이 派兵된 것을 말함)시켜 줬으면서 류큐는 돌아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悽絶한 外交戰이었지만 이들의 所望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救援運動을 하던 류큐人 임細工(林世功)은 李鴻章과의 面談을 要求하며 自殺했다.

朝鮮에 軍隊보낸 淸, 總督 行世


류큐의 滅亡에 바짝 緊張한 것은 請이었다. 류큐 自體가 重要한 것이 아니라 같은 朝貢國인 朝鮮에 미칠 惡影響 때문이었다. 게다가 朝鮮은 日本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이로 因해 淸의 朝鮮政策은 크게 旋回한다. 元來 朝貢關係란 間接的인 支配에 不過했으나, 이때부터 直接的으로 內政干涉을 始作한 것이다. 壬午軍亂·甲申政變 때 丙子胡亂 後 처음으로 軍隊가 들어왔고, 위안스카이는 서울에 駐在하며 마치 總督처럼 行世했다. 류큐 倂合은 우리 近代史에도 큰 影響을 끼친 것이다.

박훈 서울대 東洋史學科 敎授

※더 仔細한 內容을 알고 싶은 讀者들은 졸고 「류큐處分機 류큐支配層의 自國認識과 國際關係」‘歷史學報’ 186, 2005 參照
#류큐 #滅亡 #朝鮮內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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