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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挑戰해야 靑春이다] <4>가방 브랜드 ‘힐리앤鉏스’ 創業 남혜령氏|東亞日報 </4>

[挑戰해야 靑春이다] <4>가방 브랜드 ‘힐리앤鉏스’ 創業 남혜령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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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3年 1月 14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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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場 찾아가 손바닥이 벗겨지게 5年 굴렀다… 가죽 達人이 됐다

“넓은 길 대신 나만의 길” 편한 길을 버리고 20, 30대를 고스란히 힘든 길에 쏟았다. 휴식 한 번 없었던 시간은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다. 가방 브랜드 ‘힐리앤서스’의 남혜령 대표는 “이탈리아 현지 공장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가죽 소재 발굴과 개발에 힘써준다”며 “오랫동안 준비한 만큼 세계적인 가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넓은 길 代身 나만의 길” 便한 길을 버리고 20, 30代를 고스란히 힘든 길에 쏟았다. 休息 한 番 없었던 時間은 그女를 배반하지 않았다. 가방 브랜드 ‘힐리앤鉏스’의 남혜령 代表는 “이탈리아 現地 工場 사람들이 ‘家族’이 되어 가죽 素材 發掘과 開發에 힘써준다”며 “오랫동안 準備한 만큼 世界的인 가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記者 jean@donga.com
“가죽에 對해서라면 뭐든지 다 알고 싶어요. 뭘 해야 하죠? 外國엔 가죽學校가 있나요?”

1998年 京畿 동두천시의 한 가죽工場에 20代의 女性 디자이너가 찾아왔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왔다는 그의 눈빛은 熱情으로 가득 차 있었다. 世界的인 高級 가방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氣勢였다.

“學校는 무슨…. 털 뽑는 것부터 現場에서 배워야 眞짜지.”

工場 社長은 끈질긴 그女에게 이탈리아에 있는 工場 한 곳을 일러줬다. 地方時 等 高級 이탈리아 브랜드에 가죽을 納品하는 工場이었다.

當時 26歲로 高級 輸入衣類 會社 디자이너로 일하던 남혜령 氏 앞에는 세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于先 디자이너로 經歷을 쌓으며 自己 브랜드를 내놓는 길이 있었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이다. 留學길에 오를 수도 있었다.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길이다. 마지막은 東豆川 工場 社長이 알려준 이탈리아 가죽工場에 가서 보고 배우는 길이다. 就業도 아니고, 無作定 工場에서 배운다? 들어 보지 못한 길이었다.

○ 가죽의 達人에 挑戰

1990年代 國內 最高의 衣類會社였던 논노를 거쳐 이탈리아 輸入衣類 會社에서 일하던 남 氏는 그길로 辭表를 냈다. 그女는 “會社에서 이탈리아 鰐魚 가방을 본 瞬間 너무나 뛰어난 가방의 材質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며 “가죽 加工法을 배워 나도 名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꿈이 있던 그女에게 工場은 學校였고 工場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이탈리아로 無酌定 날아온 20代 아시아 女性을 본 現地 工場 社長과 職員들은 모두 놀랐다. 그女는 그들에게 “가죽 加工을 보고 배우는 代身 分明 내가 도울 일이 있을 것”이라며 自身 있게 말했다.

이탈리아 가죽 工場은 新世界였다. 똑같은 가죽도 어떤 化學 成分을 添加하고, 어떻게 매만지느냐에 따라 보들보들해지기도 하고, 딱딱하게 角이 지기도 했으며, 새 가죽이라도 오랜 歲月을 견딘 것처럼 낡아 보이기도 했다. 가죽의 品質뿐 아니라 化學 成分의 레시피와 加工 方法이 이탈리아 가죽의 名聲을 얻게 했다. 그女도 積極的으로 開發 아이디어를 냈다. 어느덧 工場에 必要한 사람이 돼 있었다.

韓國에선 가죽 봉제를 배우기 위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 一帶의 工場을 돌아다녔다. 亦是 正式 就業은 아니지만 “배우는 만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工場 사람들에게 그女는 異常한 사람이었다. 담배 煙氣와 가죽 냄새가 자욱한 곳에 젊은 女子가 밤낮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가죽을 만지느라 손바닥의 허물이 벗겨져도 아픈 줄 몰랐다. 남 氏는 “靑바지 두 벌로 버티면서 工場 近處 모텔에서 잠을 자던 時節”이라며 “배우는 데 精神이 팔려 힘든 것도 몰랐다”고 傳했다.

○ 힐리앤鉏스 뉴욕 進出 눈앞

5年 동안 自費를 털어 이탈리아와 韓國 工場을 거치며 가죽의 達人이 된 남 氏는 2003年 가죽컨설팅會社를 세웠다. 가방 브랜드에서 依賴해오면 가죽 디자인, 製造, 開發을 해주는 일을 한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資本金을 모은 남 代表는 2010年 드디어 꿈꾸던 自身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에 着手했다.

合理的인 價格帶에 고급스러운 素材로 最近 話題가 되고 있는 가방 브랜드 ‘힐리앤鉏스’의 始作이었다. 차근차근 가죽 製造를 배웠던 것처럼 그女는 곧바로 賣場을 내진 않았다. 샤넬백의 퀼팅(누빔), 보테가베네타의 위빙(가죽으로 짠 것)처럼 가죽만 봐도 어떤 브랜드인지 알 수 있는 自身만의 새로운 패턴을 開發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벌집 模樣이 오톨도톨하게 連結된 ‘엠브로이드’ 가방과 私選 줄무늬 패턴이다.

2011年 9月 서울 江南區 신사동 街路樹길에 힐리앤鉏스를 낸 뒤부터는 坦坦大路였다. 첫 番째 손님은 日本人이었다. 賣場 正式 오픈 前날 “오늘 밤飛行機로 서울을 떠난다. 陳列된 製品을 正말 사고 싶다”며 門을 두드렸다. 첫 손님처럼 唯獨 外國人들에게 人氣가 높았다. 보기 드문 가방이라는 게 理由였다. 입所聞이 퍼지면서 1年도 안 돼 百貨店 바이어들이 入店을 提議해 왔다. 또 곧이어 免稅店에서도 그를 찾았다. 힐리앤鉏스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과 롯데免稅店에 잇달아 들어가면서 話題가 됐다.

그女가 처음 東豆川을 찾았을 때부터 꿈은 世界市場 進出이었다. 南 代表는 인터뷰 途中 뉴욕의 A級 쇼룸(바이어 販賣를 위해 製品을 展示해 놓는 곳)과 契約을 맺는 過程을 說明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名聲이 높은 쇼룸과 一旦 契約을 하고 나면 뉴욕 바니스나 프랑스 파리의 콜레트 等 有名 編輯賣場 바이어들에게 팔릴 確率도 더 높아진다. 벌써부터 뉴욕 컬렉션 컬래버레이션 提案도 들어오고 있다.

南 代表는 “人氣 디자이너 알렉산더 王처럼 나도 20代에 디자이너로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누구도 가질 수 없는 所重한 經歷이 있어 後悔는 없다”며 “나만큼 가죽에 對해 아는 디자이너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堂堂할 수 있다. 自身을 믿으면 挑戰도 두려울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수 記者 kimhs@donga.com
#힐리앤鉏스 #남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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