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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들 “改憲은 내 삶을 바꿀 希望… 所得隔差-男女差別 解消할 憲法을”|동아일보

靑年들 “改憲은 내 삶을 바꿀 希望… 所得隔差-男女差別 解消할 憲法을”

  • 東亞日報
  • 入力 2018年 3月 1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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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은 이런 改憲을 願한다] <1> ‘改憲 첫經驗’ 1987年生의 所望
改憲의 해 태어난 87年生들 深層設問



“나에게 改憲은 可能性이자 希望이고 變化다.”  

1987年 9次 憲法 改正 當時 태어나 올해 31歲가 될 때까지 하나의 憲法 아래 산 大韓民國의 첫 番째 世代. 동아일보가 政治權의 改憲 論議와 關聯해 두 番의 올림픽, 外換危機와 大統領 彈劾, 세 番의 政權交替를 經驗한 이들 靑年 31名(男子 16名, 女子 15名)에게 ‘내 삶에서 改憲의 意味’를 묻자 20名(65%)이 肯定的인 變化의 動力으로 삼고자 했다. 否定的(7名·22%), 中立的(4名·13%) 答辯보다 훨씬 많았다.

應答者의 90%인 28名이 “現 時點에서 改憲이 必要하다”고 答하면서 이들은 새 憲法에 들어가야 할 內容을 스스로의 삶에서 찾았다. 會社員 김가연(假名·女) 氏는 入學한 지 13年이 넘도록 貸出金을 갚지 못한 現實을 털어놨다. 金 氏는 “結婚을 하고도 學資金 貸出을 갚고 있는데 男便한테 참 未安하더라. 내가 바라는 改憲은 所得 隔差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可能性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最近 ‘미투(#MeToo·性暴力 告發 運動)’가 話頭로 떠오른 가운데 兩性 平等을 强化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會社員 양수진 氏는 “우리 나이帶 女性들은 男女 差別을 經驗으로 안다. 女性의 勞動權을 强化하는 方向으로 改憲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民主化 憲法의 洗禮를 받고 태어나 韓國 社會를 主導할 時期에 10次 改憲 論議에 參與하는 1987年生들의 改憲 期待感이 높은 건 現實의 壁이 그만큼 碌碌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에 對한 記憶을 묻자 △貧富隔差(10名·重複 答辯 許容) △機會 不均等(8名) △男女 差別(7名) △過度한 競爭(4名) △過重한 業務(2名) 等을 꼽았다. 이들은 새 憲法에서 貧富隔差 緩和나 機會 均等, 兩性 平等 條項이 强化됐으면 좋겠다는 希望을 披瀝했다. 

이番에 論議되고 있는 改憲은 1987年 以後 31年에 걸쳐 일어난 大韓民國의 코페르니쿠스的 變化를 反映하려 한다는 點에서, 以前 改憲이나 다른 政治的 어젠다보다 市民들의 삶에 끼치는 波及力의 次元이 다르다. 그러나 20代 國會는 아직 改憲을 위한 對國民 設問調査도 進行하지 못한 채 遲遲不進하다. 이에 文在寅 大統領은 더 以上 改憲을 미룰 수 없다며 이달 20日 大統領 改憲案 發議를 豫告하고 있지만 自由韓國當 等 野圈은 靑瓦臺 主導의 改憲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對峙 戰線만 形成하고 있다. 새로운 大韓民國의 틀을 위한 改憲 動力은 아직 始動도 못 걸고 있는 셈이다.
  

▼ 公正競爭卷, 女性勞動權, 休息權… ‘平等과 幸福’ 목마르다 ▼

“우리 나이에 3億 원짜리 傳貰 얻을 돈이 어디 있어요.”

“자는 딸 얼굴만 보는 게 무슨 아빠입니까.”

“女子라서 採用 안 한다기에 敎師 꿈 접었죠.”

올해 서른한 살, 1987年生의 삶은 불만족스러운 것이 많았다. 憲法에 어떤 價値를 反映해야 하는지에 머뭇거렸던 그들은 “살면서 뭐가 힘들었느냐”고 바꿔 묻자 기다렸다는 듯 答辯을 쏟아냈다. 貧富 隔差, 男女 差別, 機會 不均等, 過度한 勞動 等 다양했다. 하지만 結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내 家族이 더 幸福하고 더 나은 大韓民國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그 價値를 憲法에 실어 달라는 목소리였다.

○ “金수저의 ‘反則’을 不許해 달라”

職場人 하지훈 氏(31)는 몇 해 前 就業한 自身을 가리켜 “運이 좋았다”고 했다. 就業을 못 해 結婚도 미루고 혼자 사는 親舊들이 周邊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河 氏는 “서울에 傳貰집을 얻으려면 最小 3億 원이 必要하다. 成人이 돼서도 父母님한테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憲法에서는 어떤 形態의 社會的 特殊階級度 認定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事實上 貧富에 依해 階層이 나뉠 수밖에 없는 게 現實. 金수저는 事實上 ‘反則’李 容認되는 공정하지 못한 競爭 시스템도 問題다. 特히 最近 公共機關, 金融機關 就業 非理 等이 靑年들에게 剝奪感을 안겼는데 이런 일이 發生하지 않도록 公正社會의 價値를 强化해야 한다는 注文이 많았다.

階層·世代 間 隔差 解消를 위해 國家의 義務를 强化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醫療界에 從事하는 우승현 氏(31)는 “父母님이 1995年 2億8000萬 원에 산 아파트는 現在 18億 원으로 크게 올랐다. 反面 우리는 父母 世代에 비해 結婚, 내 집 마련 等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며 “父子에게 稅金을 더 걷어 福祉를 强化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그동안 大統領, 國會議員 等 政治人이 社會 不平等 問題 解決을 放棄한 만큼 國民들이 積極的으로 政治人들을 牽制하고 評價해야 한다는 指摘도 많았다. 會社員 유승오 氏(31)는 “내가 살고 있는 地域의 國會議員 德에 洞네가 뭔가 改善됐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제대로 일을 못 하면 國民召還制를 통해 魂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大統領과 國會議員의 特權을 制限하고, 國民發案制와 國民召還制를 導入하자는 主張이 多數 나왔다.

○ ‘87年生 김지영’의 絶叫

‘敎師 募集 公告 南 0名·女 0名’

學院 講師 윤아라(假名·31·女) 氏는 大學 卒業 後 數年間 私立 敎師 正規職 採用에 應試했지만 男女 差別의 높은 壁 앞에서 꿈을 접었다. 支援했던 學校마다 最終 合格者에 女性은 없었다. 몇 年 前 尹 氏가 期間制로 일했던 私立高는 젊은 女敎師를 全部 非正規職으로 採用했다. 尹 氏는 “男女 敎師 性比가 99 對 1 水準이었다. 結婚과 出産 問題 때문에 女性 正規職 採用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憲法은 性別이나 宗敎, 社會的 身分에 依한 差別은 勿論 女性 勤勞者에 對한 不當한 差別을 禁止하고 있다. 하지만 大韓民國 ‘87年生 김지영’들에게는 例外가 많다. 實力이 問題가 될 때도 있겠지만 女子라서, 엄마라서, 아내라서가 이유일 때도 많다. 尹 氏는 “結婚, 出産을 앞둔 女性은 採用 忌避 對象이다. 女性의 平等한 勞動權을 憲法에서 더 强하게 保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問題意識은 ‘國家는 母性의 保護를 위하여 努力해야 한다’는 憲法 條項 改正 要求로 이어지고 있다. 辯護士 유선아(假名·31·女) 氏는 “組織에서 性別 하나로 就業과 昇進을 決定하는 境遇도 如前하다. 出産에 對한 女性의 自己決定權도 包括한 基本權 項目의 補完이 必要하다”고 말했다.

○ “過勞社會는 이제 그만…休息權 明示해야”

일 못지않게 個人 生活을 重視하는 世代인 만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日과 삶의 均衡)의 價値를 담아야 한다는 意見도 적지 않았다. 펀드매니저 이우진 氏(31)는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 氏는 요즘 아버지와 漸漸 닮아가는 自身을 걱정한다. 그는 “退勤하면 딸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아버지인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을 運營하는 윤지민 氏(31)는 쫓기며 사는 삶 自體가 問題라고 했다. 尹 氏는 “大學 땐 成跡을 잘 받아야 했고, 對外活動으로 스펙을 쌓아야 했다. 就職해서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며 “쉬는 게 罪惡視되는 게 아니라 休息을 즐길 수 있는 權利를 憲法에 强制해 달라”고 말했다.

31年 前보다 社會가 크게 變한 만큼 새 要求 事項도 생겼다. ‘맑은 空氣를 마실 수 있는 權利’ ‘快適한 環境에서 아이를 키울 權利’를 要求하며 環境權 强化 목소리가 커진 게 代表的이다. ‘나홀로 家口’와 非婚主義者 等이 늘어난 狀況에서 家庭 共同體의 法的 테두리를 擴大해 달라는 要求도 있다. 血緣이나 婚姻 關係로 이뤄진 境遇만 法的 ‘保護者’로 認定할 게 아니라, 個人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保護者의 範圍를 늘려달라는 것. 이 밖에 少數者 差別 禁止, 生活 安全圈 强化, ‘動物權(權)’ 保障 等도 提示됐다.

▼ 民主化 누리고 兩極化 시달린 ‘촛불 世代’… ‘現行 憲法과 桐甲’ 1987年生의 31年


박종철 烈士가 顧問으로 死亡한 1月부터, 16年 만에 直接投票로 大統領이 選出된 12月까지. 1987年은 大韓民國 現代史의 革命的 變化를 불러온 起點이 됐다.

올해 31歲인 ‘87年生’들은 같은 해 태어난 現行 ‘87年 憲法’과 나이가 같다. 6·10 民主抗爭으로 爭取한 ‘政治的 民主化’ 以後 世代다. 서슬 퍼런 獨裁 政權 아래 國家의 組織的인 暴力을 直接 겪지는 못했지만 ‘87年 憲法’ 아래 지난 31年間 激變해온 韓國社會의 變化狀이 이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87年生의 幼年期는 前後(前後) 어떤 世代들보다 ‘薔薇빛 未來’를 꿈꿨던 時期다. 이듬해 열린 88올림픽은 韓國 社會의 民主化와 先進化를 急速히 진전시켰다. 이어진 ‘3低(低) 好況’과 國家 主導의 高成長 戰略으로 1990年代 中盤까지 이들은 해를 더해갈수록 潤澤해지는 希望的인 삶을 누렸다.

하지만 1997年 國際通貨基金(IMF) 事態로 外換危機가 닥치면서 危機를 맞았다. 30代 後半∼40代 中盤이었던 이들의 父母世代는 大規模 構造調整과 整理解雇의 颱風 한가운데에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얼어붙은 雇用市場의 朔風을 버티는 父母를 보며 ‘平生職場’에 對한 信賴를 잃고 ‘鐵밥桶’으로 象徵되는 安定的인 職場을 渴求하게 됐다.

또래가 美軍 裝甲車에 깔려 死亡한 2002年 孝順·미선 孃 事件에 共分한 이들은 첫 大規模 촛불集會에 參席한 經驗이 있는 世代이기도 하다. 21歲 때는 大韓民國을 뒤흔든 狂牛病 波動, 29, 30歲 때는 최순실 國政壟斷 事態로 再現된 촛불集會에도 나가봤다. 文化的으로는 H.O.T.와 god 等이 이끈 1990年代 大衆文化 黃金期를 누리며 思春期를 보냈다.

2006年 成人이 된 이들의 生涯 첫 投票는 이듬해 17代 大統領 選擧였다. 李明博 大統領의 當選으로 두 番째 政權交替를 겪은 뒤, 다양한 政治的 混亂相이 빚어졌다. 盧武鉉 前 大統領이 檢察 搜査를 받던 中 逝去했고 2010年에는 天安艦 爆沈과 延坪島 砲擊事件으로 또래 軍人들이 犧牲당했다.

이들이 大學 卒業 後 가까스로 첫 職場에 들어간 나이는 男女 各各 平均 25.7歲, 23.9歲(統計廳, 2013年)다. 하지만 就職이 곧바로 結婚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00年代 들어 本格的으로 注目받은 ‘非婚(非婚)’槪念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젠더 感受性’에 敏感한 1987年生은 어느 世代보다 隔差 解消와 性平等, 多樣性에 對한 尊重을 追求하며 다음 改憲에 목소리를 얹으려 하고 있다.

김상운 sukim@donga.com·최우열 記者·最高야 best@donga.com·홍정수·박성진 記者
#改憲 #憲法 #兩性平等 #男女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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