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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計士와 컨설턴트 관두고 3D 프린팅에 빠져든 理由”[Question & Change]|東亞日報

“會計士와 컨설턴트 관두고 3D 프린팅에 빠져든 理由”[Question & Change]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2月 28日 10時 23分


코멘트

동아일보는 創業家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를 新聞 紙面에 連載하고 있다. 하지만 創業家가 걸어온 길을 限定된 紙面에 싣는 데는 限界가 있다. 創業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紙面에 미처 싣지 못한 對話 內容을 追加로 싣는다.

▶紙面記事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4/112031438/1


3D프린팅으로 맞춤 眼鏡을 만드는 콥틱의 성우석 共同 代表는 스타트업을 創業하기 前에 三逸會計法人 會計士, IBK證券과 삼성증권에서 M&A(引受合倂) 컨설턴트를 했다. 心身이 지쳤던 어느 날, 생각해봤다. ‘50歲, 60歲가 됐을 때 나는 무엇을 할까’. 職業의 壽命이 길지 않은 世界에서 答이 안 나왔다. 답답한 心情으로 이런 저런 工夫를 하다가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 冊에서 答을 찾았다. 그 冊을 통해 3D 프린팅을 알게 된 後 冊에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 實行해봤다.

▽성우석 ㈜콥틱 共同代表(43)

―大學에서 統計學을 專攻했더라.

統計學科는 事實 點數를 맞춰서 갔다(웃음). 工夫하다보니 統計學科는 잘 안 맞는다는 생각에 經營學을 複數 專攻했다. 會計士 準備도 그 當時에 했다.

―會計士 일은 얼마동안 한 건가?

2002年부터 2005年까지 삼일회계법인에 다녔고, 軍隊 갔다가 除隊하면서 M&A뱅커 쪽으로 方向을 틀었다. IBK證券에서는 M&A와 私募펀드 業務를 했고, 三星證券에서는 M&A를 맡았다.

―아버님이 事業을 하셨는데, 그걸 이어받을 생각은 안 했나.

삼성증권에서 컨설팅을 繼續 해야 하나, 아니면 私募펀드로 옮겨볼까 苦悶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쪽(製造業) 業務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하게 됐었다. 2013年부터 2015年까지 아버지 事業을 도와드렸다.

아버지는 30年 넘게 엔지니어 生活을 했고, 엔지니어링을 바탕으로 20~30年 事業을 하셨다. 元來는 내게 事業을 이어받으라 하셨다. 하지만 내가 가보니 그곳에선 아버지의 말씀이 곧 法이었다. 내가 “이렇게 해야 單價를 낮출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그곳에서는 新入社員 級이 事業을 하겠다고 설치는 것과 같았다.

갑갑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工夫를 하다가 롱테일 經濟學의 創始者인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冊을 接했다. 그 冊을 통해 3D 프린팅을 알게 됐다. 冊에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 實行해봤다.

―冊을 理解하는 것을 넘어서 實際로 하나씩 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製造는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分野였다. ‘Back to basic(基本으로 돌아가라)’이라고, 다시 製造業이 脚光받고 重要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貿易이 發達하지만 結局은 리쇼어링(reshoring·企業이 海外로 進出했다가 高費用의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다시 本國으로 돌아오는 것) 얘기도 많이 나오지 않나. ‘製造業은 近處에서 生産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3D프린팅이 核心 技術이었다. ‘메이커스’ 冊을 읽다보니 ‘이런 게 있네,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製造業에 適性이 있으리라는 保障은 없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工場을 많이 다녔던 記憶이 있다. 또 M&A 業務를 할 때도 製造業 分野를 자주 맡았다. M&A를 하려면 會社를 잘 把握해야 했는데, 當時 나는 現場을 많이 다녔다.

特히 自動車 部品業 現場을 많이 갔다. M&A 뱅커들은 電話 通話로 必要한 部分을 解決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現場에 가서 일하는 體質이라, 일하기 始作하면 工場 等 現場을 다니며 그 곳 분들과 生活을 함께 했다.

―本業을 그만둘 때 걱정은 안 됐나.

會計法人은 軍 服務를 하면서 自然스럽게 그만뒀고, 그 다음에는 뱅커 生活을 했지만 워낙 移職이 많은 職業군이라 退社 自體에 對한 負擔은 別로 없었다.

일을 ‘무대뽀’ 方式으로 해야 하는 狀況이 많았던 經驗도 影響을 미쳤던 것 같다. 三逸會計法人에서 勤務할 때는 軍服務 前이었는데, 當時 未畢·未婚 男子는 出張을 많이 보내거나 連續性 없는 일을 많이 시켰다. 答이 없는 컨설팅 業務도 많이 했다. 先輩들과 다같이 밤을 새워가면서 答을 찾았다. 이 모든 게 創業을 위한 準備와 敎育이었던 셈이다.

心身이 지쳐서 관둔 것도 있었지만, 내 商社들의 모습이 堪當이 안 됐다. (그 年次가 되어도) 如前히 只今 나의 生活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컨설턴트라는 職業 自體가 壽命이 짧다. ‘50歲, 60歲가 됐을 때 나는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 했을 때 答이 안나왔다. 只今은 平生 職業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當時 일을 그만둔다고 하니 家族의 反應은.


아내는 나를 믿어줬다. 會計士 資格證도 있으니 最惡의 境遇 다시 本業으로 돌아가는 方法도 있었다. 내가 처음에 3D프린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다들 ‘두세 달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漸漸 살을 붙이고 具體化시키니 ‘네가 事業을 아느냐’며 아버지가 特히 많이 말렸다. 只今은 아버지가 第一 支援을 많이 해 준다.


―事業家인 아버지로부터는 뭘 배운 거 같나


外注를 어떻게 쓰는지, 專門家는 어떻게 찾아내는지 等을 배웠다. 내가 무엇이 必要한지, 뭐가 不足한지 알아야 專門家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다 하는 것은 不可能하다. 또 어떻게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도 배운 것 같다.

―3D 프린팅을 어떻게 工夫하고 實行에 옮겼나.


當時 나는 집에 裝備를 들여오고, 컴퓨터를 한 臺 사서 모델링부터 했다. 하다보니까 正말 재밌었다. 3D 모델링 프로그램 種類도 宏壯히 많은데, 그 中에 한 프로그램으로 모델링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모델링을 해서 유럽 會社에 注文했다. 첫 製品은 아이폰 케이스였다. 모델링이 第一 쉽고 製品化하기도 便한데다 다양한 니즈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드를 만들 必要가 없으니 몰드 費用을 아껴서 만들면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工場을 別途로 만들 必要는 없지 않은가.

當時는 모델링해서 業體에 注文하면 흰色의 거친 表面을 가진 形態로 나왔다. 이걸 硏磨해야 해서 내가 손으로 一一이 다 沙布질을 했다. 3D 프린팅 後 後加工이 重要했다.

또 眼鏡은 3D 프린터로 最大 200個까지 한 番에 만들 수 있는데, 直接 사람 손으로 一一이 硏磨를 하기란 不可能하다. 硏磨 後에는 染色을 해서 色을 입혀야 한다.

製品을 大量으로 만들 수 있는 設備가 必要했는데, 찾아보니 關聯 動映像들이 있었다. 그 映像을 몇 千 番 反復해 보면서 必要한 機械를 하나씩 注文해나갔다. 아버지 知人들 中에 中小製造業을 하는 분들이 많아 도움을 받았다. 只今 인덕원 工場에 있는 라인이 그렇게 映像 하나하나를 찾아서 만든 라인이다.

―事業資金은 어떻게 마련했나.

모아둔 돈으로 始作했고, 技術保證基金으로부터 3億 원을 받아 프린터를 들였다. 그 以後부터는 速度가 빨랐다.

―技術保證基金은 뭘 믿고 資金을 대준 건가.

一旦 내가 어떤 式으로 事業을 하겠다고 發表를 했다. 當時에는 携帶電話 케이스를 始作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完製品을 最大限 빠르게 만들어주는 生産 플랫폼을 하겠다는 計劃을 세웠다. ‘팩토리型 디맨드’라고 해서, 要求가 있으면 팩토리를 提供한다는 槪念으로 接近했다. 그때 眼鏡은 無條件 해야 하는 아이템이라 생각했다.

―眼鏡에 對한 特別한 經驗이나 關心이 있나.

어릴 때부터 眼鏡을 써왔는데 내 귀는 짝귀라 位置가 다르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걸 맞춰줄 수 있는 서울 논현동의 한 작은 眼鏡店에서만 眼鏡을 맞췄다. 늘 ‘왜 이 眼鏡店은 잘 맞춰주는데 왜 다른 眼鏡社한테 眼鏡을 맞추면 眼鏡이 비뚤어지지’라는 疑問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部分을 眼鏡 製造에 反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맞춤型 眼鏡을 製作하면서 쌓이는 빅데이터는 어떻게 活用되나

設計 노하우는 當然히 쌓이고 있다. 또 消費者들이 本人과 비슷한 얼굴의 類型을 選擇하면 어울리는 眼鏡을 推薦해줄 수 있도록 데이터化시킨 알고리즘을 만들게 된다.

眼鏡은 동그란 形態부터 네모에 가까운 形態까지 傳統的으로 分類가 있다. 그 안에서 디테일 差異가 發生하는데, 變奏가 發生하면서 디자인이 40餘 가지로 확 늘어난다. 眼鏡 디자이너들은 “여기에 0.2mm만 올리자” “0.3度를 꺾어야 한다”는 式으로 말한다. 이것만으로도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

―2017年 設立 後 지난해까지 會社가 쭉 成長했는데. 올해는 어떤 段階인가.

지난해 下半期부터 本格的인 스케일업 段階에 있다. 스케일업 할 때 問題가 터지면 안 된다. 그래서 지난해 下半期에 브랜딩에 對해 많이 다잡고, 生産 過程도 훨씬 탄탄하게 다지는 作業을 했다.

職員은 繼續 뽑고 있다. 只今은 開發者를 中心으로 採用하고 있다. 그동안 製品 디자인 쪽을 꽤 갖췄기 때문에 開發 人力과 그에 따른 디자인 백업度 많이 必要하다. UI, UX 디자이너 爲主로 充員을 많이 하고 있고, 마케터들度 뽑는다.

올해는 브리즘의 오프라인 賣場을 10號店까지 낼 計劃이다. 다음달(3月)에 서울 蠶室店을 오픈할 豫定이다.

―콥틱의 組織文化는 어떤가.

서로 英語 이름을 부르다 보니 格이 없는 雰圍氣다. 지난해부터는 팀長體制로 轉換해 팀長과 많은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다. 팀長들이 改善하는 시스템도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내가 直接 했다면, 只今은 팀長 等 職員이 하는 일의 速度를 높이는 役割을 하고 있다. 팀長은 經歷職이 入社하자마자 맡기도 하고, 新入社員이 팀長을 맡기도 한다.

―創業을 꿈꾸는 後輩들에게 財務와 關聯해 助言한다면.

나는 現金흐름을 重要視 한다. 普通 賣出에서 費用을 빼면 남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賣出債券과 買入債務의 時期도 매우 重要한다. 그런 걸 看過하는 境遇가 많다. 날짜管理를 正確히 해야 한다. 콥틱은 B2C라 돈이 바로 들어오지만, B2B인 業體는 ‘(돈을) 3個月 뒤에 줄게’라고 했을 때 뭐라 말을 못한다. 卽刻的으로 돈이 나가는 境遇가 많은데, 그런 管理가 잘 안 되면 資金은 瞬息間에 구멍 난다. 資金 計劃은 6個月 以上 세워놓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쓰는지’ 確認하고 正確히 豫測해야 한다. 投資 라운드가 도는데 最小 6個月이 걸린다. 처음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거의 막판까지 끌고 가다가 時機가 안 맞아서 (事業을) 더 進行 못하는 境遇가 가끔 있는 것으로 안다.

―創業을 꿈꾸는 文科 出身 靑年들에게 하고 싶은 助言은.

나는 말보다 行動이 앞서는 스타일이라, 必要하다 싶으면 直接 만들어본다. 잘 만들지 못해도 繼續 만들다보면 必要한 部分이 생길 것이다. 그때 그 部分에서 必要한 사람을 찾아도 되고, 外注를 주는 것도 方法이다.

―올해 CES에 參加한 成果는.

‘우리가 美國으로 가면 잘 될거야’라는 安易한 생각이 아니라 ‘美國으로 가면 잘 되겠지만 苦生은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苦生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가늠하게 됐다.

美國에는 올해 3月 크라우드펀딩으로 온라인에 먼저 進出할 豫定이다. 以後 실리콘밸리에서 오프라인 賣場을 하나 내는 것이 目標다. 賣場 내는데 最小 1年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어서 빠르면 來年 初가 될 것 같다.

―創業해서 가장 危機는 언제였나.

每日이 危機다.(웃음) 나 같은 境遇 5個年의 事業計劃을 잡고, 資金을 늘 모니터링하고, 每日 밤 通帳殘高를 確認한다.

나는 小小한 失敗를 많이 했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直星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結局 혼자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친 境遇가 많았다. 開發이 그런 境遇다. 草創期에는 내가 많이 시스템을 맡았는데 엉성했다. 只今은 開發팀이 세팅되면서 全혀 다른 次元이 펼쳐졌다. 時間이 지나면서 남들을 더 믿고, 그 사람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狀況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創業家가 職員들에게 信賴를 보내는 方式은 무엇일까.

그들이 만든 시스템을 現場에 適用하는 것.

―創業해서 보람 있던 瞬間은.

職員들이 우리의 비전을 믿고 全力을 다해주고 있다는 것 自體가 가장 보람이다. 各自 自身의 젊음과 所重한 時間들을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成果를 얻어내고 있다는 게 보람 있다.

―사람 한 名 한 名이 所重하겠다.

그렇다. 面接 볼 때 ‘우리는 아직 작은 企業이라 한 名이 들어왔을 때 우리 文化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잘 맞는 게 重要하다’는 걸 强調한다. 普通 面接은 1時間假量 進行되는데, 志願者보다 우리가 오히려 말을 많이 한다. 우리 會社가 이런 會社고, 이런 文化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當身이 우리랑 잘 맞는 것도 重要하다는 것을 말한다.

스킬的인 部分은 뻔한 部分이 많다. 디자인 쪽은 툴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도 重要하지만 오히려 디자이너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새로운 툴을 繼續 배워나가야 하는데 배움에 對해 거리낌이 없는지 等이 重要하다.

―롤모델이 있나.

스티브잡스가 롤 모델이다. 잡스는 自己의 方向을 꿋꿋하게 믿고 갔다. 돈을 벌어다주는 製品이더라도 다음 段階를 위해서는 다 버리는 推進力도 있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管理 하나

그때그때 끌리는 運動을 한다. 예전에는 테니스를 쳤다. 功으로 하는 運動을 基本的으로 좋아한다. 野球도 좋아해 競技할 때는 內野手로 뛴다. 다만 골프는 안 친다.

성우석 ㈜콥틱 共同代表
△고려대 統計學科 △2002~2005年 三逸會計法人 △2009~2010年 IBK投資證券 IB本部 △2011~2012年 三星證券 IB本部 △2015~現在 더메이크 代表理事 △2017~現在 콥틱 代表理事



김선미 記者 kimsunmi@donga.com
김하경 記者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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