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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 댄서, 名作의 主人公이 되다[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東亞日報

女性 댄서, 名作의 主人公이 되다[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10月 23日 11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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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물랑루즈에 들어서는 라 굴뤼’

그 누구보다 우리 팀이 最高라고 自信하고, 舞臺 위에선 世上의 主人公처럼 最善을 다하며, 내려와서 받는 冷酷한 評價엔 눈물은 흘리되 認定하는….

女性 댄서들의 競爭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요즘 感動을 주고 있습니다. 歌手를 빛내주는 이름 없는 存在였던 댄서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면서 K팝이 華麗한 꽃을 피우기까지 보이지 않는 많은 努力이 있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不過 10年 前까지만 해도 댄서를 專門性을 가진 아티스트로 認定해주는 雰圍氣는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最近에서야 춤 動作부터 콘셉트와 舞臺 企劃까지 해야 하는 綜合 藝術임을 보게 된 듯 한데요.

約 150年 前 프랑스 파리의 한 藝術家는 이 댄서들을 그림의 主人公으로 내세웠습니다. 大衆文化라는 槪念도 없던 이 時節에 댄서는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醉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存在로 認識되곤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보다 훨씬 더 果敢한 選擇인 셈인데요. 그 藝術家의 그림을 만나보겠습니다.

●물랑루즈의 女王, 라 굴뤼





물랑루즈 포스터로도 有名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입니다.

그림 가운데 女性의 表情이 視線을 사로잡습니다. 검은 옷들 가운데 밝게 눈에 띄는 흰 드레스와 가슴에 달린 꽃, 살짝 치켜 든 고개와 도도한 表情이 印象的이죠. 이 女性의 兩 쪽에는 다시 두 名의 女性이 팔짱을 끼고 그女를 이끌고 있습니다. 마치 파파라치가 스타를 기다리다 瞬間 捕捉한 듯 움직이는 律動感度 돋보입니다.

이 그림의 主人公은 바로 물랑루즈에서 ‘라 굴뤼’(La Goulue·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라는 別名으로 有名했던 댄서 루이즈 웨버(1866~1929)입니다.

1890년 경 ‘라 굴뤼.’
1890年 警 ‘라 굴뤼.’


그女는 寫眞 속에서처럼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觀客의 머리를 넘기는 等 果敢한 댄스로 물랑루즈를 휘어잡았습니다. ‘라 굴뤼’라는 別名은 춤을 추면서 觀客의 테이블에 있는 술을 모조리 먹어 치우곤 했기 때문에 붙었다고 합니다. 寫眞으로는 傳해지지 않는 그女의 大膽함과 거친 性格이 로트렉의 그림에서 오히려 더 생생히 드러나죠?

물랑루즈 안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 같은 도도함과 堂堂함. 그女는 實際로도 그런 性格이었다고 합니다.

거슬 맥(Gerstle Mack)李 쓴 로트렉 前期에는 當時 有名 歌手인 이베트 길베르가 라 굴뤼에 對해 말한 逸話가 傳해집니다. 파리의 國際 競馬 大會인 그랑프리의 갈라 디너가 있던 어느 날, 라 굴뤼는 이곳에서 公演을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는 파리 上流層 人士들은 勿論 英國 王世子 에드워드 7世도 參席했습니다.

에드워드 7歲의 存在를 알고 있던 라 굴뤼는 그의 테이블 앞에서 놀리듯 치마를 들어올리며 熱情的으로 춤을 췄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큰 목청으로 “어이 王世子氏! 우리한테 샴페인 한 盞 待接 하시죠?”라고 외쳤다고 하네요.

客席에 있던 사람들은 라 굴뤼의 無禮한 行動에 깜짝 놀랐고, ‘헉!’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念慮와 달리 王世子는 화내지 않고 큰 웃음을 터뜨린 뒤 라 굴뤼를 비롯한 댄서들에게 술을 注文해주었다고 합니다. 英國의 王族 앞에서도 기죽지 않으니 ‘물랑루즈의 女王’이라 불릴 만 했던 사람이었죠.




이런 逸話를 보고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그는 라 굴뤼를 어느 瞬間에 보고 描寫한게 아니라 그女의 性格을 잘 알고 表現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트렉度 이 그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1年 동안 4番이나 展示를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가 그린 많은 라 굴뤼의 그림 中 가장 그女를 잘 表現한 그림일 듯합니다. 로트렉은 왜 라 굴뤼에게 이렇게 關心을 갖고 그女를 主人公으로 등장시켰던 걸까요?

●아웃사이더를 自處한 貴族, 로트렉


로트렉이 그린 물랑루즈의 라 굴뤼 공연 홍보 포스터.
로트렉이 그린 물랑루즈의 라 굴뤼 公演 弘報 포스터.


라 굴뤼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6살 엄마를 따라 洗濯婦로 일했습니다. 손님들의 華麗한 옷을 몰래 입어보곤 했던 그는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1年 만에 몽마르트로 向합니다. 이곳의 술집에서 춤을 추다 有名 댄서의 눈에 띄어 커리어를 始作했죠.

로트렉의 삶은 라 굴뤼만큼이나 迂餘曲折이 많았는데요. 그는 프랑스 툴루즈 地域의 오랜 地主 家門 出身으로, 公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死亡하면 公爵 稱號를 물려받을 豫定이었고요. 冊 읽기를 좋아하고 學業 能力도 優秀했지만 10代 初盤부터 試鍊이 닥쳤습니다.

그는 13살 때 오른쪽 다리, 14살 때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事故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負傷이 제대로 回復되지 않았습니다. 上體는 正常的으로 자랐지만, 下體는 14살 때의 그대로인 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로트렉의 傳記 作家들은 그의 父母가 親戚 關係였기 때문에 遺傳的 疾患을 앓았을 可能性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當時 貴族들 사이에서 親戚 間 結婚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1894년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1894年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平生 지팡이에 依支해 살아가게 된 로트렉은 다른 趣味는 모두 抛棄하고, 어릴 때부터 才能을 보였던 그림에 沒頭하기 始作했습니다. 그러고는 파리에 살면서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들의 삶에 關心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 머무르며 藝術家들은 勿論 댄서와 술집 主人, 娼女들과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貴族 社會의 ‘트랙’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서 社會의 아웃사이더들에게 同質感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트렉의 同質感은 單純한 觀察이나 憐憫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틀에 갇히지 않는 自由奔放함을 좋아했던 그의 性格이 파리라는 都市의 ‘無法地帶’인 몽마르트의 숨겨진 魅力을 發見하게 해주었습니다. 로트렉은 댄서들度 구경의 對象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感覺의 價値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生前 댄서들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雇用된) 모델들은 人形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물랑루즈의 女性들은 살아 있어요. 그들을 그리기 위해 나는 기꺼이 돈을 支拂할 겁니다. 그들은 소파 위에서도 마치 動物처럼 살아 움직입니다.”

●서로를 支持하며 ‘인사이더’가 되다


로트렉이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들과 眞正한 友情을 나누었다는 것은 實際 逸話로도 確認 됩니다.

라 굴뤼가 ‘물랑루즈의 女王’으로 君臨한 것은 채 5年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飮食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節制할 줄 몰랐던 그女는 今方 춤을 추기엔 너무 무거운 몸이 되어 버리는데요. 人氣가 떨어지자 라 굴뤼는 個人 會社를 차려 물랑루즈 밖에서 춤을 선보이기로 합니다.

부스를 차려 춤을 추고 觀客을 모으기로 한 라 굴뤼는 로트렉에게 도움을 要請합니다. 自身의 부스를 꾸밀 커튼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付託한 것입니다. 로트렉은 이를 欣快히 받아들이고 멋진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德分에 부스는 行人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라 굴뤼는 다른 地域에서도 부스를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95년 라 굴뤼가 차린 부스. 출입문 양 옆에 로트렉의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1895年 라 굴뤼가 차린 부스. 出入門 兩 옆에 로트렉의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로트렉은 이렇게 自身이 價値를 알아보는 사람에 對해서는 無限한 支持를 보내주었던 것 같습니다. 甚至於 벨기에의 한 저녁 자리에서 한 藝術家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非難하자, 決鬪 申請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때 같은 자리에 있던 폴 시냑度 로트렉이 決鬪에서 죽게 되면 自身이 이어서 싸우겠다며 고흐를 擁護했습니다. 結局 그 藝術家는 自身의 發言을 謝過했습니다.

다만 지팡이 속에도 술을 恒常 넣어 다닐 程度로 飮酒를 즐겼던 로트렉은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37歲의 나이에 世上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藝術 世界를 世上에 더 알릴 수 있도록 努力해준 것도 그의 母親과, 마지막까지 義理를 지킨 親舊 德分이었습니다.




當時 虞犯地帶였던 몽마르트의 불량스러운 댄서와 娼女를 그린 로트렉에 對한 非難도 있었습니다. 이에 對해 프랑스와 獨逸의 批評家들은 그의 作品 世界를 擁護하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獨逸 批評家 율리우스 엘리어스는 로트렉이 世上을 떠나고 난 뒤 週刊誌에 “社會의 邊두리에서 로트렉은 藝術家이자 思想家로서 自身의 삶을 찾았다”며 그를 非難하는 社會는 얼마나 純粹한지를 되물었습니다. 또 電氣 作家 거슬 脈은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를 담은 로트렉의 그림은 ‘視覺的 告發’이라고 分析합니다. 身體的 障礙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社會에 對한 告發이라는 것이지요.

로트렉이 社會 告發까지 念頭에 두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때로 너무나 硬直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틀에 가두고 規範을 强調하는 社會의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같습니다. 그래서 自身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댄서들에게 그는 魅了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을 正直하게 그림으로 表現한 結果, 그 自身은 勿論 댄서 라 굴뤼까지 100年이 넘어서도 記憶되는 存在로 그는 만들어주었습니다. 서로를 支持해 준 아웃사이더들이 結局엔 ‘인사이더’가 된 것이죠.

世上을 있는 그대로 直視하고, 내가 價値를 알아보는 存在에게 偏見 없이 따스한 愛情을 보내주고 支持해주는 것. 바로 여기에서 로트렉의 率直하고 大膽한 그림의 感動이 피어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민 記者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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