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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記者 購讀|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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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寧하세요. 신광영 論說委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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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2024-04-28
칼럼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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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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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人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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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이스라엘 女軍들 ‘나의 가자地區 戰鬪機’

    이스라엘은 女性이 義務 軍服務를 하는 世界 唯一의 나라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等 危險 地域에도 女軍들이 投入된다. 이스라엘 監督이 만든 다큐멘터리 ‘내가 正말 微笑 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에는 가자地區 占領軍으로 服務했던 이스라엘 女軍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除隊 後 20代 後半이 된 그들은 當時 記憶을 이렇게 回想한다. “(選任이) 제게 銃을 쥐여 주며 占領할 마을을 보여 주자 저는 더 剛해졌다고 느꼈어요. 老人부터 아이까지 모두가 敵이었고 人類愛는 곧 (우리의) 죽음이었죠. 우리는 어떤 躊躇함도 없이 나아갔어요. 銃은 裝塡돼 있고, 이제 갈기기만 하면 됐어요.” “제 아이가 집에서 울어댈 때면 제 記憶은 (아기들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으로 向하게 돼요. 罪責感이 드냐고요? 그냥 제 마음속 거울을 보는 느낌이에요. 저에게 잠재된 暴力性을 비춰 주는 거울… 저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惡魔 같았던 그 瞬間만 빼고요.” “軍隊 同期들에게 가끔 電話를 걸어요. 저는 말하죠. 이게 없어지질 않아. 비누로 손을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질 않아. 그럼 動機는 그게 뭐냐고 물어요. 저는 말해요. 내 손에 묻은 피…. 戰鬪가 끝나고 몇 年이 지났지만 그때의 핏자국이 지워지질 않아요.” 이스라엘은 軍事强國이다. 尖端 武器로 武裝한 것은 勿論이고 戰爭 때마다 30萬∼40萬 名의 精銳 豫備軍이 召集된다. 2009年과 2014年 가지地球에 進入해 하마스와 地上戰을 벌였을 때도 팔레스타인에 壓倒的인 被害를 안겼다. 2009年 戰鬪 때 이스라엘 死亡者는 13名에 不過했지만 팔레스타인에선 民間人 900餘 名을 包含해 1400名이 숨졌다. 2014年에는 이스라엘(72名)의 30倍에 達하는 2100餘 名의 팔레스타인人이 死亡했다. 덜 죽고 많이 죽이면 그것이 이기는 것일까. 그게 勝利한 戰爭이라고 해도 이스라엘은 그 勝利를 통해 얻어낸 것이 거의 없다. 하마스는 이내 빈자리를 다시 채워 어김없이 이스라엘에 攻擊을 再開했다. 家族과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人들은 하마스에 依支하며 켜켜이 復讐心을 쌓아왔다. ‘戰爭 英雄’으로 歸還한 이스라엘 軍人들 亦是 손에 無辜한 이들의 피를 묻혔다는 心理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戰爭에서 이기고 平和와는 멀어지는 오랜 惡循環은 이番에도 再演될 兆朕이다. 이스라엘은 곧 하마스의 本據地 가자地區에 歷代 最大 規模 地上軍을 投入할 豫定이다. 하마스의 奇襲 攻擊으로 1500餘 名이 死亡하는 初有의 大慘事를 當한 이스라엘로선 苛酷한 代價를 안기는 것 外에 마땅한 對應策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番에 가자自救에서 全面戰이 벌어지면 이스라엘 軍人들의 犧牲이 어느 때보다 클 수 있다. 이스라엘로선 國際社會의 壓迫과 이란 等으로 擴戰될 危險 때문에 民間人 被害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地域을 통째로 焦土化시키기보단 密着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市街戰으로 小規模 戰鬪를 이어가야 한다. 戰鬪員과 民間人이 區別되지 않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는 數百 km에 達하는 땅窟 곳곳에 陷穽을 파놓고 이스라엘軍을 기다릴 것이다. 가지地球 作戰에 參與했던 한 이스라엘 兵士는 “집 한 채 한 채 門 하나 하나를 열 때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軍人들과 人質들의 犧牲을 甘受하고 하마스 勢力을 一時 制壓한다고 한들 가자地區 住民들의 繼續될 抵抗은 막을 길이 없다. 中東의 해묵은 報復의 쳇바퀴를 平和的으로 解決하려 했던 指導者들이 있었다. 1993年 팔레스타인 自治權을 認定한 오슬로 協定을 締結한 이츠하크 라빈 當時 이스라엘 總理, 1978年 中東과 이스라엘 間 最初의 平和協定을 이끈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大統領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둘 다 各自의 陣營에서 背信者로 낙인찍혀 最後를 맞았다. 라빈 總理는 유대人 民族主義者의 손에, 사다트 大統領은 이슬람 過激團體에 依해 暗殺됐다. 平和보다는 戰爭, 共存보다는 排除를 追求하는 쪽이 살아남는 生態系가 維持되는 限 憎惡에 寄生하는 勢力들이 사람들의 運命을 쥐게 된다. 이런 自滅的인 게임의 룰이 支配하는 곳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極右 政權이나 하마스 같은 極端的 武裝團體들이 서로가 서로의 存在價値를 證明해주며 主人公으로 浮刻된다. 이스라엘에서 極右派를 솎아내고,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게 그나마의 解法일텐데 핏빛의 外信 寫眞들이 時時刻刻 쏟아지는 只今의 展示 局面에선 그런 主張들이 別로 설 자리가 없다. 신광영 國際部 次長 neo@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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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타냐후 “하마스, 民間人 산채로 불태워”… 地上戰 名分으로

    팔레스타인 武裝團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奇襲 攻擊하는 過程에서 恣行한 民間人 殺傷 實態가 續續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民間人 虐殺을 地上軍 投入의 名分으로 삼으려 할 可能性이 높다는 分析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總理는 11日(現地 時間) TV 演說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軍人들을 斬首하고 女性을 性暴行한 것은 勿論이고 어린이들의 머리에 銃을 쏘고, 사람들을 산 채로 불태웠다”며 “하마스 隊員들은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警告했다. 이스라엘 總理 代辯人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國境에 있는 크파르兒子 키부츠(集團農場)에서 斬首된 嬰幼兒들의 屍身이 發見됐다고 밝혔다고 美國 CNN放送은 傳했다. 하마스의 民間人 虐殺 疑惑은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이 이날 白堊館에서 유대人 指導者들과 만나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斬首하는 寫眞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想像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더욱 增幅됐다. 다만 白堊館은 “네타냐후 總理 代辯人의 主張과 이스라엘 言論 報道를 根據로 言及한 것일 뿐 該當 寫眞을 본 것은 아니다”라고 解明했다. 하마스는 聲明을 통해 虐殺 疑惑을 否認하며 “우리 抵抗軍이 어린이 斬首, 女性 性暴行에 連累됐다는 根據 없는 主張을 西方 媒體들이 流布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虐殺과 犯罪를 隱蔽하기 위한 情報 造作”이라고 主張했다. 戰爭 6日째인 12日 基準 兩側 死亡者는 하마스 隊員 1500名을 包含해 4100名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當局은 自國 死亡者가 最小 1300名에 이르는 것으로 把握했다. 팔레스타인 保健部는 住民 1354名이 死亡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大統領은 이스라엘의 地上軍 投入이 現實化될 境遇 擴戰에 對備해 이란을 直接 擧論하며 “‘操心하라’고 分明히 傳達했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特派員 pep@donga.com신광영 記者 neo@donga.com}

    •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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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타냐후 “하마스, 民間人 산 채로 불태워” 하마스 “情報 造作”

    팔레스타인 武裝團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奇襲 攻擊하는 過程에서 恣行한 民間人 殺傷 實態가 드러나면서 攻擊의 名分을 確保하려는 兩側의 輿論戰도 激化되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總理는 11日(現地 時間) TV演說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軍人들을 斬首하고 女性을 强姦하는 것은 勿論, 어린이들의 머리에 銃을 쏘고, 사람들을 산채로 불태웠다”며 “하마스 隊員들은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警告했다. 이스라엘 總理 代辯人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國境에 있는 크라르 牙子 키부츠(集團農場)에서 斬首된 嬰幼兒들의 屍身이 發見됐다고 밝혔다고 美國 CNN 放送은 傳했다. 이곳은 아기 屍身 40具가 發見됐다는 證言이 나오는 等 慘酷한 被害를 입은 地域이다.하마스의 民間人 虐殺 疑惑은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이 이날 白堊館에서 유대系 指導者들과 만나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斬首하는 寫眞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想像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더욱 增幅됐다. 다만 白堊館은 “네타냐후 總理 代辯人의 主張과 이스라엘 言論 報道를 根據로 言及한 것일 뿐 該當 寫眞을 본 것은 아니다”라고 解明했다.하마스는 聲明을 통해 虐殺 疑惑을 否認하며 “우리 抵抗軍이 어린이 斬首, 女性 性暴行에 連累됐다는 根據 없는 主張을 西方 媒體들이 流布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虐殺과 犯罪를 隱蔽하기 위한 情報 造作”이라고 主張했다. 戰爭 6日째인 11日 兩側 死亡者는 2300名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當局은 死亡者가 最小 1200名에 達하는 것으로 把握했다. 팔레스타인 保健部 亦是 1100名이 死亡했다고 밝혔다.바이든 大統領은 이스라엘의 地上軍 投入이 現實化될 境遇 擴戰 憂慮에 對備해 이란을 直接 擧論하며 “操心하라고 分明히 傳達했다”고 밝혔다. 또 토니 블링컨 國務長官을 이스라엘에 急派해 强力한 支援 意志와 함께 이란과 레바논 武裝團體 헤즈볼라 等에 對한 抑制 메시지를 傳했다.카이로=김기윤 特派員 pep@donga.com신광영 記者 neo@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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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스 “爆擊땐 人質 處刑”… 이 “가자 進入 不可避”

    팔레스타인 武裝團體 하마스의 이스라엘 奇襲 攻擊으로 戰爭이 始作된 지 사흘째인 9日(現地 時間) 이스라엘은 全方位 報復을 宣言하며 하마스 本據地인 가자지구에 對한 地上軍 投入을 豫告했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攻擊해 올 때마다 拉致한 人質들을 1名씩 處刑하겠다며 ‘人間 防牌’ 戰術을 實行할 態勢여서 大規模 人命 被害가 豫想된다. 9日(現地 時間) AFP通信 等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總理는 TV 演說에서 “하마스의 行態는 (테러團體인) 이슬람國家(IS)와 같다. 하마스는 苛酷하고 끔찍한 結果에 直面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總理는 前날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과의 通話에서 “只今은 協商할 수 없다. (가자地區에) 進入해야 한다”며 地上軍 投入이 不可避함을 說明했다고 美國 媒體 額시오스가 傳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指揮部에 對한 暗殺 作戰에 곧 着手할 것이라는 報道도 이어졌다. 10日 基準 이스라엘에선 最小 900名이 死亡하고 2400名 以上이 負傷을 當했다. 이스라엘 當局은 7日 奇襲 浸透한 하마스에 拉致된 人質 約 150名이 가자地區에 붙잡혀 있어 生死가 不透明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集中 攻襲으로 가자地區에서도 770名이 숨지고 3700餘 名이 負傷을 當해 兩側 死亡者가 1670餘 名에 達하는 것으로 集計됐다. 하마스는 人質 殺害 脅迫으로 맞서고 있다. AP, 로이터通信에 따르면 아부 右바이다 하마스 代辯人은 이날 聲明을 통해 “이스라엘이 事前 警告 없이 우리 民間人을 攻擊할 때마다 붙잡고 있는 人質 中 한 名을 處刑할 것”이라고 밝혔다. 兩側이 極端的인 報復戰으로 치달으면서 美國 等 西方 內에서도 單一隊伍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美國과 英國, 프랑스, 獨逸, 이탈리아 等 北大西洋條約機構(NATO·나토) ‘빅5’ 國家 頂上들은 9日 共同聲明에서 이스라엘에 對한 支援 意志를 밝혔다. 하지만 유럽聯合(EU)은 팔레스타인에 對한 支援을 中斷하겠다고 發表했다가 一部 會員國이 立場 車를 드러내자 몇 時間 만에 撤回하는 等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유엔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攻擊을 糾彈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封鎖도 憂慮된다”는 兩非論 속에 安全保障理事會 聲明 導出에 失敗했다.하마스 “爆擊에 人質 4名 死亡”… 이 “하마스 指揮部 除去할것”보복전 치닫는 이-팔 戰爭하마스, 人質 ‘人間 防牌’ 내세워 威脅… 이 “人間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어”가자지구 封鎖… “電氣-食糧 없을 것”地上戰 秒읽기… 民間人 犧牲 等 負擔 “하마스와의 對決은 文明과 野蠻의 對決이다. 文明 世界가 이슬람國家(IS)를 패배시킨 것처럼 하마스를 패배시킬 것이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總理) “이스라엘이 우리 國民을 標的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民間人 人質을 한 名씩 處刑할 것임을 宣言한다.”(아부 右바이다 하마스 代辯人) 팔레스타인 武裝團體 하마스의 奇襲 攻擊으로 最少 900名의 自國民이 숨진 이스라엘이 ‘피의 報復’에 나선 가운데 네타냐후 總理는 “힘으로 하마스를 물리칠 것이며 (이番 戰爭을 통해) 中東을 변화시키겠다”는 攻擊 意志를 밝혔다. 이스라엘은 戰爭 始作과 함께 豫備軍 30萬 名을 動員한 데 이어 하마스의 根據地인 가자지구를 全方位로 包圍하고 있어 地上軍 投入이 臨迫했다는 展望이 나온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서 끌고 온 民間인 人質들을 ‘人間 防牌’로 삼겠다고 威脅하는 等 極端的인 報復戰 樣相이 펼쳐지고 있다.● “하마스 指揮部 除去 作戰 着手”戰爭 나흘째인 10日(現地 時間) 現在 兩側의 死亡者는 1700名에 肉薄했다. 이스라엘 現地媒體 夏芽레츠는 이스라엘 保健當局을 引用해 이날까지 이스라엘人 約 900名이 숨지고 2400名이 負傷을 當했다고 傳했다. 이스라엘防衛軍(IDF)은 이날 브리핑에서 “하마스가 浸透한 가자地區 接境地를 掌握하고 南部地域 統制權을 거의 回復했다”면서 民間人 死亡者와 別途로 하마스 武裝隊員의 屍身 1500具를 發見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 對한 이스라엘의 報復 攻襲으로 팔레스타인 死傷者도 크게 늘었다. 가자地區 保健部에 따르면 이날까지 770名이 숨지고 3700餘 名이 다친 것으로 集計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潰滅을 目標로 大大的인 雪辱戰을 準備하고 있어 死亡者는 繼續 늘어날 것으로 展望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指揮部 暗殺 作戰에도 着手한 것으로 傳해졌다. 英國 日刊 더 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政府 高位 官吏는 “西方이 (테러團體) IS에 했던 것처럼 하마스를 겨냥해 모든 行動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하마스의 指導部와 戰鬪員을 除去하겠다는 意味”라고 말했다. 하마스를 壓迫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對한 ‘考査 作戰’도 始作됐다. 要아브 갈欄트 이스라엘 國防長官은 9日 “電氣도 食糧도 燃料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며 “人間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對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封鎖 政策으로 2007年부터 生必品과 醫藥品 搬入이 制限된 가자地區에 電氣, 食糧, 燃料 供給이 追加로 制限되면 住民 約 237萬 名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유엔 人道主義業務調整國(OCHA)은 住民 約 12萬 名이 이미 避亂길에 올랐다고 集計했다.● “地上軍 投入” 公言해도 걸림돌 많아 네타냐후 總理가 하마스에 對한 ‘끝장 報復’을 宣言한 만큼 가자地區에 이스라엘 地上軍이 投入될 可能性도 적지 않다. 美 媒體 額시오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總理는 8日 조 바이든 大統領과의 電話 通話에서 “우리는 (가자地區에) 進入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이 中東에서 懦弱함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傳해졌다. 바이든 大統領은 이 通話에서 네타냐후 總理의 地上 作戰 計劃을 挽留하지 않았다고 額시오스는 傳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地上軍 投入을 實行하기에는 負擔이 적지 않다. 于先 가자지구로 끌려간 人質 約 150名이 아킬레스腱이 될 수 있다. 10日 월스트리트저널(WSJ) 等에 따르면 리처드 헤흐트 이스라엘 防衛軍 代辯人은 이날 “人質을 죽인다고 狀況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無理한 作戰으로 人質들이 連이어 殺害될 境遇 國內外 批判에 直面할 수 있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爆擊에 따라 19歲 이스라엘 軍人을 包含해 人質 4名이 死亡했다고 主張하며 이스라엘의 弱點을 攻掠하고 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도 自體 映像 分析을 土臺로 이스라엘人 4名이 殺害된 것으로 推定된다고 報道했다. 팔레스타인 住民들이 大規模로 犧牲될 수밖에 없다는 點도 걸리는 대목이다. 가자지구는 世界에서 人口密度가 가장 높은 地域인 데다 하마스 隊員들이 民間人 틈에 깊숙이 숨어 있어 攻擊 對象을 識別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2014年 兵力 6萬 名을 가자地區에 派遣해 하마스와 戰爭했을 때 팔레스타인人 2000餘 名이 死亡했다. 民間人 犧牲이 續出하면 國際 輿論이 이스라엘에 不利하게 바뀔 수 있다. 地上戰이 長期化될 境遇 이番 戰爭에 一部 參戰한 시아派 武裝團體 헤즈볼라와 두 團體를 後援하는 이란으로 戰線이 擴大될 수 있다는 點도 變數로 꼽힌다. 하마스 高位 關係者는 이스라엘 現地 言論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番 攻擊에 關與하지 않았지만 가자地區가 危機에 處하면 戰爭에 介入할 수 있다”고 말했다.카이로=김기윤 特派員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特派員 weappon@donga.com신광영 記者 neo@donga.com박효목 記者 tree624@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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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스 패배시킬 것” “人質 한名씩 處刑”…劇團 報復戰 激化하는 二八 戰爭

    “하마스와의 對決은 文明과 野蠻의 對決이다. 文明 世界가 이슬람國家(IS)를 패배시킨 것처럼 하마스를 패배시킬 것이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總理)“이스라엘이 우리 國民을 標的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民間人 人質을 한 名씩 處刑할 것임을 宣言한다.”(아부 右바이다 하마스 代辯人)팔레스타인 武裝團體 하마스의 奇襲 攻擊으로 最少 900名의 自國民이 숨진 이스라엘이 ‘피의 報復’에 나선 가운데 네타냐후 總理는 “힘으로 하마스를 물리칠 것이며 (이番 戰爭을 통해) 中東을 변화시키겠다”는 攻擊 意志를 밝혔다. 이스라엘은 戰爭 始作과 함께 豫備軍 30萬 名을 動員한데 이어 하마스의 根據地인 가자지구를 全方位로 包圍하고 있어 地上軍 投入이 臨迫했다는 展望이 나온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서 끌고 온 民間인 人質들을 ‘人間 防牌’로 삼겠다고 威脅하는 等 極端的인 報復戰 樣相이 펼쳐지고 있다.● “하마스 指揮部 除去 作戰 着手”戰爭 나흘째인 10日(現地 時間) 現在 兩側의 死亡者는 1700名에 肉薄했다. 이스라엘 現地媒體 하레츠는 이스라엘 保健當局을 引用해 이날까지 이스라엘人 約 900名이 숨지고 2400名이 負傷을 當했다고 傳했다. 이스라엘 防衛軍(IDF)은 이날 브리핑에서 “하마스가 浸透한 가자地區 接境地를 掌握하고 南部地域 統制權을 거의 回復했다”면서 民間人 死亡者와 別途로 하마스 武裝隊員의 屍身 1500具를 發見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 對한 이스라엘의 報復 攻襲으로 팔레스타인 死傷者도 크게 늘었다. 가자地區 保健部에 따르면 이날까지 770名이 숨지고 3700餘 名이 다친 것으로 集計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潰滅을 目標로 大大的인 雪辱戰을 準備하고 있어 死亡者는 繼續 늘어날 展望이다.이스라엘은 하마스 指揮部 暗殺 作戰에도 着手한 것으로 傳해졌다. 英國 日刊 더 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政府 高位 官吏는 “西方이 (테러團體) IS에 했던 것처럼 하마스를 겨냥해 모든 行動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하마스의 指導部와 戰鬪員을 除去하겠다는 意味”라고 말했다.하마스를 壓迫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對한 ‘考査 作戰’도 始作됐다. 要아브 갈欄트 이스라엘 國防長官은 9日 “電氣도 食糧도, 燃料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며 “人間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對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封鎖 政策으로 2007年부터 生必品과 醫藥品 搬入이 制限된 가자地區에 電氣, 食糧, 燃料 供給이 追加로 制限되면 住民 約 237萬 名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유엔 人道主義業務調整國(OCHA)은 住民 約 12萬 名이 이미 避難길에 올랐다고 集計했다.● “地上軍 投入” 公言해도 걸림돌 많아 네타냐후 總理가 하마스에 對한 ‘끝장 報復’을 宣言한 만큼 가자地區에 이스라엘 地上軍이 投入할 可能性도 적지 않다. 美 媒體 악시오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總理는 8日 조 바이든 大統領과 電話 通話에서 “우리는 (가자地區에) 進入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이 中東에서 懦弱함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傳해졌다. 바이든 大統領은 이 通話에서 네타냐후 總理의 地上 作戰 計劃을 挽留하지 않았다고 악시오스는 傳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地上軍 投入을 實行하기에는 負擔이 적지 않다. 于先 가자지구로 끌려간 人質 約 150名이 아킬레스腱이 될 수 있다. 10日 월스트리트저널(WSJ) 等에 따르면 리처드 헤흐트 이스라엘 防衛軍 代辯人은 이날 “人質을 죽인다고 狀況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無理한 作戰으로 人質들이 連이어 殺害될 境遇 國內外 批判에 直面할 수 있다.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爆擊에 따라 19歲 이스라엘 軍人을 包含해 人質 4名이 死亡했다고 主張하며 이스라엘의 弱點을 攻掠하고 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도 自體 映像 分析을 土臺로 이스라엘人 4名이 殺害된 것으로 推定된다고 報道했다.팔레스타인 住民들이 大規模로 犧牲될 수밖에 없다는 點도 걸리는 대목이다. 가자지구는 世界에서 人口密度가 가장 높은 地域인 데다 하마스 隊員들이 民間人 틈에 깊숙이 숨어있어 攻擊 對象을 識別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2014年 兵力 6萬 名을 가자地區에 派遣해 하마스와 戰爭했을 때 팔레스타인人 2000餘 名이 死亡했다. 民間人 犧牲이 續出하면 國際 輿論이 이스라엘에 不利하게 바뀔 수 있다.지상전이 長期化될 境遇 이番 戰爭에 一部 參戰한 시아派 武裝團體 헤즈볼라와 두 團體를 後援하는 이란으로 戰線이 擴大될 수 있다는 點도 變數로 꼽힌다. 하마스 高位 關係者는 이스라엘 現地 言論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番 攻擊에 關與하지 않았지만 가자地區가 危機에 處하면 戰爭에 介入할 수 있다”고 말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카이로=김기윤 特派員 pep@donga.com박효목 記者 tree624@donga.com}

    •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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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半導體補助金 받는 企業… 中國內 增産 5% 制限 確定

    美國 政府가 自國 半導體法(CHIPS Act) 補助金을 받는 企業들을 對象으로 中國 內 尖端 半導體 生産 能力을 擴張할 수 있는 範圍를 5%로 制限하는 方案을 確定해 22日(現地 時間) 發表했다. 우리 政府는 이 같은 ‘補助金 가드레일(安全措置)’ 條項을 緩和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等 韓國 企業들의 中國 內 半導體 生産 擴張 基準을 두 倍인 10%로 늘려 달라고 要請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美 商務部는 自國의 半導體 補助金을 받은 企業이 10年間 中國 等 憂慮 國家에서 半導體 生産을 ‘實質的으로 擴張(material expansion)’하는 重大 去來를 할 境遇 補助金 全額을 返還하도록 하는 規定을 마련했다. 이날 상무부가 發表한 ‘實質的 擴張’은 尖端 半導體의 境遇 5% 以上, 以前 世代의 汎用 半導體는 10% 以上이다. 對中國 半導體 投資 10萬달러 上限은 빠져 美, 中 半導體 規制裝備 搬入 規制 猶豫는 言及 안海産業部 “國內企業 中事業 問題없어” 美國 政府는 앞서 3月 가드레일 條項 草案을 發表한 뒤 韓國 等 關聯 國家와 企業들로부터 意見 收斂을 進行해 왔다. 우리 政府는 中國 內 生産 擴張 基準 擴大와 함께 汎用 半導體의 基準도 緩和해 달라고 要請했지만 이날 發表에 關聯 內容은 包含되지 않았다. 美 商務部는 老職 半導體는 28nm(나노미터), D램은 18nm, 낸드플래시는 128段 以下를 汎用 半導體로 分類하고 있다. 상무부는 다만 草案에서 10萬 달러의 限度를 넘는 中國 投資를 中隊 去來로 分類해 規制 對象에 包含시켰으나 最終案에선 빠졌다. 블룸버그통신은 “10萬 달러 投資 上限 廢止는 三星電子와 인텔, 臺灣 半導體 企業들을 代表하는 情報技術産業協議會가 反對 목소리를 낸 結果”라고 分析했다. 이날 發表에 中國 內 半導體 裝備 搬入 規制 猶豫 關聯 內容은 言及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中國에서 半導體 工場을 稼動하고 있다. 美 상무부는 지난해 10月 中國에 尖端 半導體 裝備를 搬入할 수 없도록 規制案을 마련했지만 韓國 企業에 對해 1年間 規制를 猶豫했다. 우리 政府는 이 規制의 猶豫 期間을 延長해 달라고 美 政府에 要請한 狀態다. 産業通商資源部는 美 상무부의 最終案을 分析해 協商 戰略을 마련할 計劃이다. 産業部 關係者는 “現在 水準으로 中國 內 生産 能力 擴張 基準이 定해져도 國內 企業들이 中國에서 事業을 持續하는 데는 問題가 없을 것으로 展望된다”며 “補助金 限度가 늘어난 部分 等 一部 달라진 內容이 있어 各 企業들이 補助金을 最大로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記者 neo@donga.com김형민 記者 kalssam35@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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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半導體補助金 받는 企業, 中國內 增産 5% 制限 確定

    美國 政府가 自國 半導體法(CHIPS Act) 補助金을 받는 企業들을 對象으로 中國 內 尖端 半導體 生産 能力을 擴張할 수 있는 範圍를 5%로 制限하는 方案을 確定해 22日(現地 時間) 發表했다. 우리 政府는 이 같은 ‘補助金 가드레일(安全措置)’ 條項을 緩和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等 韓國 企業들의 中國 內 半導體 生産 擴張 基準을 두 倍인 10%로 늘려달라고 要請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미 商務部는 自國 半導體 補助金을 받은 企業이 10年 間 中國 等 憂慮 國家에서 半導體 生産을 ‘實質的으로 擴張(material expansion)’하는 重大 去來를 할 境遇 補助金 全額을 返還하도록 하는 規定을 마련했다. 이날 상무부가 發表한 ‘實質的 擴張’은 尖端 半導體의 境遇 5% 以上, 以前 世代의 汎用 半導體는 10% 以上이다.미국 政府는 앞서 3月 가드레일 條項 草案을 發表한 뒤 韓國 等 關聯 國家와 企業들로부터 意見收斂을 進行해왔다. 中國 內 生産 擴張 基準 擴大와 함께 汎用 半導體의 基準도 緩和해달라고 要請했지만 이날 發表에 關聯 內容은 包含되지 않았다. 美 상무부가 老職 半導體는 28나노미터(nm), D램은 18나노, 낸드플래시는 128段 以下를 汎用 半導體로 分類하고 있다.상무부는 다만 草案에서 10萬 달러의 限度를 넘는 中國 投資를 中隊 去來로 分類해 規制 對象에 包含시켰으나 最終案에선 빠졌다. 블룸버그 通信은 “10萬 달러 投資 上限 廢止는 三星電子와 인텔, 臺灣 半導體 企業들을 代表하는 情報技術産業協議會가 反對 목소리를 낸 結果”라고 分析했다.이날 發表에 中國 內 半導體 裝備 搬入 規制 猶豫 關聯 內容은 言及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中國에서 半導體 工場을 稼動 中이다. 美 상무부는 지난해 10月 中國에 尖端 半導體 裝備를 搬入할 수 없도록 規制案을 마련했지만 韓國 企業에 1年 間 規制를 猶豫했다. 우리 政府는 이 規制의 猶豫 期間을 延長해달라고 美 政府에 要請한 狀態다. 訪韓 中인 돈 그레이브스 美國 상무부 副長官은 21日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韓美 尖端産業 技術協力 포럼’에서 猶豫 期間 延長 與否와 關聯 “韓國 半導體 企業들의 中國 內 合法的인 事業은 繼續할 수 있도록 許容한다는 點을 確實히 하고 싶다. 美國과 協力하는 國家들의 半導體 企業들을 不必要하게 옥죄고 싶지 않다”면서 肯定的인 立場을 밝힌 바 있다. 産業通商資源部는 美 상무부의 最終案을 分析해 協商 戰略을 마련할 計劃이다. 産業部 關係者는 “現在 水準으로 中國 內 生産 能力 擴張 基準이 定해져도 國內 企業들이 中國에서 事業을 持續하는 데는 問題가 없을 것으로 展望된다”며 “補助金 限度가 늘어난 部分 等 一部 달라진 內容이 있어 各 企業들이 補助金을 最大로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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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民主主義가 最高의 耐震 設計

    “政府를 批判하면 저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그러자니 여기서 벌어진 일이 없었던 일이 될까 봐 무서워요.” 大地震이 덮친 모로코 中部 아미즈미즈의 한 山間 마을 住民은 日本 아사히신문에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마을에선 住民 400∼500名 中 最少 80名이 목숨을 잃었다. 死亡者가 5名 中 1名꼴이다. 아직 數十 名이 殘骸에 갇혀 있는 이곳에 地震 發生 3日이 지나도록 救助隊는 오지 않고 있다. 救急車가 없어 오토바이로 重傷者를 移送하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住民들은 밤마다 全蠍科 뱀의 攻擊을 걱정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政府는 어디 있느냐’는 목소리는 좀처럼 울려 퍼지지 않는다. 모로코는 國王 中心의 中央集權國家다. ‘어떤 公務員도 國王보다 앞설 수 없다’는 原則을 只今도 固守하고 있다. 620餘 名이 숨졌던 2004年 地震 때도 모로코 總理는 王이 먼저 現場에 갈 때까지 기다리느라 事故 한참 뒤에야 被害 地域을 訪問했다. 이番 地震 때도 國際社會가 救助隊 派遣을 提案하고 나섰지만 모로코 政府는 ‘國王의 承認이 必要하다’는 等의 理由로 머뭇거리고 있다. 그나마 救助隊를 받기로 한 4個國인 스페인 英國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는 모두 王室이 있는 나라다. 國家的 災難의 컨트롤타워가 國王이지만 모로코 王室의 態度는 ‘골든타임 死守’라는 基本 守則과 距離가 멀다. 무함마드 6歲 國王은 地震 4日째가 되도록 對國民 演說을 하지 않았다. 地震 當時 프랑스 파리 豪華 邸宅에 머물고 있었던 國王은 지진 다음 날 內閣 會議를 主宰한 寫眞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以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中東 專門家들은 “王은 大衆 앞에 서기 前 愼重하게 이미지를 計算하고 모든 狀況에 徹底히 對備한다”고 한다. 王室 統治가 慘事 對應에 얼마나 脆弱한지 이番 地震으로 滿天下에 드러나고 있지만 모로코에서 王은 神聖不可侵의 領域이다. 王이나 政府를 批判하면 處罰할 수 있는 王室冒瀆罪가 鞏固히 維持되고 있어 國民들의 숨筒을 쥐고 있다. 모로코가 2004年 큰 地震을 겪고도 災難 對備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背景에는 權力에 對한 審判과 檢證을 할 수 없는 構造 탓도 클 것이다. 올 2月 5萬 名 가까운 死亡者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大地震도 民主主義가 定着되지 않은 나라에 災難이 닥쳤을 때 國民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여준다. 當時 70餘 個 國家에서 救助隊를 支援받았던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國際社會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루트가 遮斷됐다. 自國民을 毒가스 等으로 虐殺해 ‘시리아의 屠殺者’로 불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 政權은 2011年 ‘아랍의 봄’ 民主化 運動 以後 北西部 叛軍을 壓迫하기 위해 外部 口號團體가 오갈 수 있는 國境을 한 곳만 남기고 모두 閉鎖했다. 그런데 地震으로 이 國境 道路가 破壞되자 海外 救助隊가 接近할 수 있는 길이 完全히 막히게 된 것이다. 시리아는 오랜 內戰으로 自體 構造 裝備가 턱없이 不足했고 醫療陣마저 大部分 海外로 떠난 狀態였다. 獨裁 治下에 있는 閉鎖 國家의 致命的 弱點은 災難 속에서 더욱 如實히 드러나고 國民들이 그 代價를 치른다. 民主主義는 日常에선 皮膚에 와닿지 않는 模糊한 觀念이지만 國民의 生命이 위태로운 慘事가 벌어지면 비로소 存在感을 드러낸다. 바로 그럴 때 ‘政府는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는 熾烈하게 묻게 된다. 2014年 세월호 事件이 朴槿惠 政府 崩壞의 始作點이 됐고, 지난해 梨泰院 壓死 慘事가 尹錫悅 政府의 重大한 危機로 번질 뻔했던 것도 事故 現場에서 民主主義가 가장 생생히 體感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正常的인 民主主義 國家라면 災難에 對備한 危機管理 시스템을 點檢하고 狀況이 벌어지면 政權의 命運을 걸고 對應에 나서게 된다. 民主主義의 美德은 執權 勢力이 政權 維持를 위해서라도 國民의 生命을 重視하게 만드는 데 있다. 모로코 大地震을 取材하며 눈에 띄는 部分은 死傷者 規模가 제때 更新되지 않고, 構造 狀況에 對한 政府 發表도 거의 없다는 點이다. 우리나라에선 政治人들이 災難 現場에 앞다퉈 얼굴을 비치고 當局者가 (때로는 부풀려서 문제인) 構造 狀況 브리핑을 隨時로 하는 것과는 對照的이다. 最小 2800餘 名이 숨진 地震에 ‘政府 失踪’ 事態까지 겹친 모로코 罹災民들을 보면서 民主主義가 最高의 ‘耐震 設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광영 國際部 次長 neo@donga.com}

    •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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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奇襲키스 憤怒 擴散… “女選手들 常習 性差別 頂點”

    20日 濠洲 시드니에서 열린 2023 國際蹴球聯盟(FIFA) 女子 월드컵 施賞式 舞臺에 스페인 女子 蹴球 代表팀 選手들이 올라섰다. 조금 前 決勝에서 잉글랜드를 1-0으로 꺾고 스페인 女子 蹴球 史上 처음으로 優勝컵을 거머쥔 瞬間이었다. 攻擊手 제니 에르侮笑 選手(33)가 스페인 레오노르 公主와 人事를 나눈 뒤 스페인王立蹴球聯盟(RFEF) 루이스 루비알레스 會長(46) 앞에 섰을 때였다. 루비알레스 會長은 에르侮笑 選手를 兩팔로 껴안더니 두 손으로 에르某所의 얼굴을 잡고 1, 2秒假量 입을 맞췄다. 이 ‘奇襲 키스’ 事件으로 스페인 女子 蹴球界는 월드컵 優勝이란 警査를 滿喫할 틈도 없이 大混亂에 빠졌다. 이番 事件으로 最近 急成長하는 女性 스포츠界에 如前히 蔓延한 性差別 實相이 드러났다는 指摘도 나온다.● 코치 6名 抗議性 辭退…FIFA도 職務停止事件 後 一週日 새 波長은 一波萬波로 커졌다. 事件 直後 “氣分이 좋지 않았다”고 했던 에르侮笑 選手는 25日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비알레스 會長의) 當時 行爲를 正當化하는 發表를 하라는 持續的인 壓力을 받았지만 屈服하지 않았다”고 强調했다. 그러면서 “어떤 職場에서도 同意 없는 行動으로 被害者가 나와선 안 된다. 이런 容納할 수 없는 行動이 스페인 女子 蹴球 歷史上 가장 큰 成果를 毁損하고 있다는 事實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奇襲 키스’가 論難이 된 直後 루비알레스 회장은 “다들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狀況을 撫摩하려 했다. 이에 22日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總理까지 나서서 “우리가 본 것은 容納할 수 없는 제스처였다”고 批判했다. 빅토르 프랑코스 스페인 體育長官度 루비알레스에 對한 業務 停止 節次에 着手하며 “스페인 蹴球를 爲한 ‘미투(Me too·나도 告發한다)’의 瞬間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비알레스 會長은 “내가 失手를 했다. 惡意 없이 卽興的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傷處를 받은 사람이 있고 重要 機關 首長인 만큼 더욱 操心할 것”이라고 뒤늦게 謝過했지만 辭退 輿論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擴散됐다. 英國 BBC放送 等은 이番 優勝 主役 23名을 비롯해 81名의 選手가 루비알레스가 會長職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스페인 女子 蹴球 代表팀에서 競技하지 않겠다는 署名乙했다고 傳했다. 26日에는 女子 代表팀 코치陣과 다른 年齡別 代表팀 코치 6名이 루비알레스 會長을 糾彈하며 辭退했다. 같은 날 FIFA도 루비알레스 會長에게 90日 職務停止 懲戒를 내린 뒤 調査에 着手했다. 스페인 男子 蹴球 代表팀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監督 亦是 “祝賀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最小限의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女 選手들에 對한 常習 差別의 頂點”스페인 女子 축구팀의 位相을 올려놓는 데 核心的 役割을 했던 루비알레스 會長이 ‘奇襲 키스’ 論難으로 蹴球界의 功績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分析도 나온다. 그는 2018年 就任 때부터 “男女 모두를 爲한 協會를 만들겠다”는 抱負를 밝혔고, 女子 選手들에게도 2027年까지 월드컵·유럽蹴球選手權大會(유로) 等 主要 大會 參加에 따른 褒賞金을 男子 選手들과 同等하게 支給하는 協定에 지난해 署名했다. 이 때문에 美國 뉴욕타임스(NYT)는 26日 “루비알레스의 行動은 (個人의 逸脫이 아닌) 女性 選手들에게 이뤄진 數年間 差別(mistreatment)의 一環이자 그 頂點”이라고 分析했다. NYT에 따르면 스페인 女子 蹴球 代表팀은 體系的인 訓鍊施設이 不足한 環境에서 練習해왔고 유니폼도 女性의 身體에 맞춰 製作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代表팀 選手 15名은 호르헤 빌다 監督의 訓鍊과 選手 管理가 權威主義的이라며 RFEF에 解任을 要求했다. 20日 잉글랜드와의 決勝戰에서 스페인이 先取 得點에 成功하자 빌다 監督이 옆에 있던 女性 코칭스태프를 끌어안으며 가슴을 만지는 場面이 카메라에 捕捉되기도 했다. 스포츠界의 性暴力과 性差別이 스페인만의 問題가 아니라는 指摘도 있다. 이番 월드컵에서 스페인에 敗해 脫落한 잠비아 女子 蹴球 代表팀에서도 監督이 選手들의 몸을 만지는 等 性醜行 嫌疑로 調査를 받고 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이기욱 記者 71wook@donga.com}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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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칵테일 홀짝이던 사람들 뒤로 山불이 다가왔다

    8日 午後 4時頃 하와이의 有名 休養地인 마우이섬 리조트 로비에는 줄지어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체크인 順序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前 체크인을 했던 덴턴 퓨콰 氏는 房 窓門 너머로 보이는 受賞한 演技를 보고 리조트에서 나오던 中이었다. 그가 野外 水泳場을 지나쳐 갈 때 한 젊은 夫婦는 子女들과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驚歎하는 表情을 지으며 칵테일 盞을 홀짝였다. 몇 分 뒤 리조트에 닥쳐올 일을 豫想한 사람은 없었다. 퓨콰 氏가 駐車場에서 車를 몰고 나올 때였다. 리조트를 向해 불기둥이 進擊해 오고 있었다. 颱風에 올라탄 山불은 폭주기관차처럼 海岸가로 猛烈히 下降했다. 불에선 巨大한 엔진 소리가 났다. 空氣 中 酸素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우는 소리였다. 그는 遑急히 市內로 통하는 海岸가 道路로 들어섰다. 좁은 道路에 이제 막 待避에 나선 車輛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車輛들 위로 불이 뿌려졌다. 곳곳에서 燃料桶이 爆發했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땅을 向해 火焰放射器를 쏘는 것 같았다”고 한 生存者는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사람들은 車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向해 내달렸다. 老弱者들은 車에서 暫時 망설이는 사이 불길에 갇혔다. 伴侶動物과 함께 海邊에 닿은 사람들은 물속에까지 動物들을 데려갈 수 없어 그냥 놔줬다. 어리둥절해하던 강아지들은 主人을 따라 바닷물로 몸을 던졌다. 물도 避難處가 되진 못했다. 하늘에서 蹴球공만 한 불씨와 불타는 破片들이 떨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다시 들기를 反復했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 짙게 내려앉은 煙氣가 숨筒을 조여 왔다. 窒息과 低體溫症으로 사람들은 氣力을 잃어갔다. 强風은 널빤지나 나뭇조각에 依支해 겨우 떠 있던 이들을 먼바다로 밀어냈다. 하와이 山불 2週째인 22日 現在, 失踪者는 850餘 名에 達한다. 確認된 死亡者는 114名. 이 中 27名만 身元이 確認됐다. 아직 發見되지 않은 屍身이 훨씬 많고, 發見되더라도 身元 確認이 어렵다는 얘기다. 只今 하와이에는 9·11테러 現場에서 遺骸를 收拾했던 退役 軍人들이 活動 中이다. 러시아의 爆擊에 犧牲된 우크라이나人들의 屍身을 調査한 法醫學者들도 投入됐다. 考古學者들도 參與해 잿더미에서 사람 뼛조각을 찾고 있다. 建物이나 車輛 殘骸를 채로 걸러서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를 識別한다. 火災 當時 집이나 호텔, 車에 있었던 家族이 失踪됐다는 申告가 쏟아지지만 痕跡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戰爭이나 테러 못지않은 이 慘事가 ‘氣候의 逆襲’이라는 데는 專門家들 사이에서 거의 異見이 없다. 地球溫暖化로 空氣가 뜨거워지면 植物은 急激히 乾燥해지고, 땅에서 蒸發한 水分을 듬뿍 빨아들인 颱風은 더욱 强力해진다. 그 結果 더 쉽게 불붙고, 더 빠르게 擴散된다. 하와이는 地球溫暖化가 가장 빠른 地域 中 하나다. 産業化를 거치며 地球 溫度가 1.1度 오를 때 하와이는 2度 上昇했다. 이番 山불은 颱風에 電信柱 戰線이 흘러내렸고, 바싹 마른 풀과 摩擦하며 불이 붙어 强風을 타고 퍼져 나갔다는 分析이 많다. 最近 10年 새 하와이에선 비슷한 패턴의 山불이 자주 났다. 이番 亦是 어느 程度 豫想된 山불이었다. 하지만 불이 山만 태우지 않고 섬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란 想像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하와이의 9∼18歲 靑少年 14名은 “山불과 暴炎 없는 世上에서 살고 싶다”며 週(州) 政府를 相對로 訴訟을 냈다. 州 政府가 高速道路 開發을 促進하는 等 化石燃料 使用을 부추기고 있으니 막아 달라는 呼訴였다. 美國 全域에서 靑少年들의 이 같은 氣候危機 訴訟이 여러 番 提起됐다가 ‘世上 物情 모르는 소리’로 置簿돼 棄却되기 일쑤였지만 이젠 法院도 달라지고 있다. 하와이주 法院은 올 4月 “氣候變化가 未來 世代의 生命과 安全을 威脅하고 있어 이에 對備하는 것은 州 政府의 憲法的 責務”라며 正式 裁判에 回附했다. 몬태나주 法院 亦是 14日 “石炭·石油 開發을 奬勵하기 위해 溫室가스 排出量 調査를 免除해 준 株 政策은 違憲”이라며 靑少年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와이 訴訟에 同參한 칼리코 테루야(13)는 이番 山불로 집이 모두 탔다. 불이 날 當時 훌라(하와이 傳統 춤) 授業을 받던 中이어서 목숨을 건졌다. “어른들은 얼마나 더 큰 悲劇을 겪어야 저희처럼 切迫해질까요”라고 테壘야는 NYT에 말했다. 그동안 많은 氣候災難이 그랬듯 이番 하와이 山불도 곧 記憶에서 무뎌져 갈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불기둥이 다가오는 걸 모른 채 칵테일을 홀짝이는 사람이 바로 우리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番쯤 해 볼 必要가 있다. 신광영 國際部 次長 neo@donga.com}

    •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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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칵테일 홀짝이던 사람들 等 뒤로 山불이 다가왔다

    8日 午後 4時頃 하와이의 有名 休養地인 마우이섬 리조트 로비에는 줄지어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체크인 順序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前 체크인을 했던 덴턴 퓨콰 氏는 房 窓門 너머로 보이는 受賞한 演技를 보고 리조트에서 나오던 中이었다. 그가 野外 水泳場을 지나쳐 갈 때 한 젊은 夫婦는 子女들과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驚歎하는 表情을 지으며 칵테일 盞을 홀짝였다. 몇 分 뒤 리조트에 닥쳐올 일을 豫想한 사람은 없었다. 덴튼이 駐車場에서 車를 몰고 나올 때였다. 리조트를 向해 불기둥이 進擊해 오고 있었다. 颱風에 올라탄 山불은 폭주기관차처럼 海岸가로 猛烈히 下降했다. 불에선 巨大한 엔진 소리가 났다. 空氣 中 酸素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우는 소리였다. 그는 遑急히 市內로 통하는 海岸가 道路로 들어섰다. 좁은 道路에 이제 막 待避에 나선 車輛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車輛들 위로 불이 뿌려졌다. 곳곳에서 燃料桶이 爆發했다.“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땅을 向해 火焰放射器를 쏘는 것 같았다”고 한 生存者는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사람들은 車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向해 내달렸다. 老弱者들은 車에서 暫時 망설이는 사이 불길에 갇혔다. 伴侶動物과 함께 海邊에 닿은 사람들은 물속에까지 動物들을 데려갈 수 없어 그냥 놔줬다. 어리둥절해하던 강아지들은 主人을 따라 바닷물로 몸을 던졌다.물도 避難處가 되진 못했다. 하늘에서 蹴球공만 한 불씨와 불타는 破片들이 떨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다시 들기를 反復했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 짙게 내려앉은 煙氣가 숨筒을 조여 왔다. 窒息과 低體溫症으로 사람들은 氣力을 잃어갔다. 强風은 널빤지나 나뭇조각에 依支해 겨우 떠 있던 이들을 먼바다로 밀어냈다.하와이 山불 2週째인 22日 現在, 失踪者는 850餘 名에 達한다. 確認된 死亡者는 114名. 이 中 27名만 身元이 確認됐다. 아직 發見되지 않은 屍身이 훨씬 많고, 發見되더라도 身元 確認이 어렵다는 얘기다. 只今 하와이에는 9·11테러 現場에서 遺骸를 收拾했던 退役 軍人들이 活動 中이다. 러시아의 爆擊에 犧牲된 우크라이나人들의 屍身을 調査한 法醫學者들도 投入됐다. 考古學者들도 參與해 잿더미에서 사람 뼛조각을 찾고 있다. 建物이나 車輛 殘骸를 채로 걸러서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를 識別한다. 火災 當時 집이나 호텔, 車에 있었던 家族이 失踪됐다는 申告가 쏟아지지만 痕跡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전쟁이나 테러 못지않은 이 慘事가 ‘氣候의 逆襲’이라는 데는 專門家들 사이에서 거의 異見이 없다. 地球溫暖化로 空氣가 뜨거워지면 植物은 急激히 乾燥해지고, 땅에서 蒸發한 水分을 듬뿍 빨아들인 颱風은 더욱 强力해진다. 그 結果 더 쉽게 불붙고, 더 빠르게 擴散된다. 하와이는 地球溫暖化가 가장 빠른 地域 中 하나다. 産業化를 거치며 地球 溫度가 1.1度 오를 때 하와이는 2度 上昇했다.이번 山불은 颱風에 電信柱 戰線이 흘러내렸고, 바싹 마른 풀과 摩擦하며 불이 붙어 强風을 타고 퍼져 나갔다는 分析이 많다. 最近 10年 새 하와이에선 비슷한 패턴의 山불이 자주 났다. 이番 亦是 어느 程度 豫想된 山불이었다. 하지만 불이 山만 태우지 않고 섬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란 想像은 하지 않았다.지난해 하와이의 9~18歲 靑少年 14名은 “山불과 暴炎 없는 世上에서 살고 싶다”며 週(州) 政府를 相對로 訴訟을 냈다. 州 政府가 高速道路 開發을 促進하는 等 化石燃料 使用을 부추기고 있으니 막아 달라는 呼訴였다. 美國 全域에서 靑少年들의 이 같은 氣候危機 訴訟이 여러 番 提起됐다가 ‘世上 物情 모르는 소리’로 置簿돼 棄却되기 일쑤였지만 이젠 法院도 달라지고 있다. 하와이주 法院은 올 4月 “氣候變化가 未來 世代의 生命과 安全을 威脅하고 있어 이에 對備하는 것은 州 政府의 憲法的 責務”라며 正式 裁判에 回附했다. 몬태나주 法院 亦是 14日 “石炭·石油 開發을 奬勵하기 위해 溫室가스 排出量 調査를 免除해 준 株 政策은 違憲”이라며 靑少年들의 손을 들어줬다.하와이 訴訟에 同參한 칼리코 테루야(13)는 이番 山불로 집이 모두 탔다. 불이 날 當時 훌라(하와이 傳統 춤) 授業을 받던 中이어서 목숨을 건졌다. “어른들은 얼마나 더 큰 悲劇을 겪어야 저희처럼 切迫해질까요”라고 테壘야는 NYT에 말했다. 그동안 많은 氣候災難이 그랬듯 이番 하와이 山불도 곧 記憶에서 무뎌져 갈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불기둥이 다가오는 걸 모른 채 칵테일을 홀짝이는 사람이 바로 우리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番쯤 해 볼 必要가 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

    •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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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몸들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장애, 테크로 채우다/에필로그]

    동아일보 特別企劃 [障礙, 테크로 채우다] 시리즈가 7月 29日 幕을 내렸습니다. 이番 企劃의 에필로그는 各 回別 主人公들이 直接 말하는 ‘나의 삶, 나의 日常’입니다. 삶은 이렇게 다시, 始作될 수 있다는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펼쳐집니다. 紙面 制約으로 미처 傳하지 못했던 ‘손끝으로 世上을 보는 마케터’ 고미숙 氏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다양한 몸들의 아름다운 삶을 威嚇餘金예솔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릴라 엘리펀트 創業)‘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의 힘은 커서, 한 사람의 人生을 바꾸기도 하고, 그 周邊을 바꾸기도 합니다.어렸을 때부터 障礙를 갖고 살아오면서 밥을 먹고 자고 놀고 싶은 欲求는 親舊나 저나 비슷했는데, 世上은 저를 다르게 對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을 텐데, 자꾸만 다른 게 마치 缺點인 것처럼 人生의 成績表에 減點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 成跡의 基準은 大體 누가 定한 걸까요?스웨덴에는 ‘얀테의 法則(Jantelagen)’이라는 오래된 社會的 規範이 있습니다. 當身이 남보다 특별하다거나, 똑똑하거나,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이 法則이 現代에 와서는 個人主義와 相反되고 舊時代的인 思想이라는 意見도 있긴 합니다.하지만 이런 規範 德分인지 스웨덴에서는 저의 障礙가 그렇게 神奇한 일로 비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저처럼 휠체어를 타며 社會 構成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것이 可能한 것은 스웨덴 社會가 ‘모든 사람은 平等하다‘라는 信念아래 만들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認識 때문인지 障礙學生이 學校에 入學한 뒤에야 便宜施設이 마련되는 게 아니라, 障礙學生의 在學有無에 相關없이 모든 學校는 障礙人이 接近可能하게 지어져야 합니다. 敎育 시스템 亦是 障礙 學生 個別의 要求에 따라 모든 支援을 國家와 地自體가 無償으로 提供합니다.반면, 제가 成長期를 보냈던 韓國에선 아빠가 저를 一般高에 보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했어요. 저를 ‘받아준‘ 唯一한 學校는 建物에 엘레베이터가 없었는데요. 學校 側은 旣存 階段 위에 臨時로 나무 傾斜路를 만드는 費用을 저희 父母님이 學校 發展基金 次元에서 負擔한다는 條件을 걸었습니다. 父母님은 그 條件을 받아들인 뒤에야 저를 입학시킬 수 있었어요.저의 中高校 時期 6年 間의 通學 亦是 父母님의 몫이었습니다. 當時에(현재도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는 아닙니다) 제가 사는 地域에는 휠체어로 탈 수 있는 大衆交通이 全혀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美術을 하겠다는 저를 위해 여름放學이면 엄마는 生業을 뒤로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美大 入試를 위해 서울 홍대 앞 美術學院에 다니겠다는 저를 따라서 홍대 앞 月貰집에서 같이 살면서 活動 補助 兼 工夫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어쩌면 韓國 社會는 個人의 努力과 熱情으로 무언가 成就를 이루는 데에는 歡呼하지만, 그런 可視的인 成功의 代價로 치러야했던 보이지 않는 犧牲에 對해선 當然視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現在 運營되는 障礙인 活動 補助 서비스가 저의 成長期에도 있었다면, 엄마는 親舊들도 만나고 趣味 生活을 즐길 餘裕가 있었을 거예요. 또 只今처럼 障礙人 移動 支援 車輛이나 저상버스 같은 모두를 위한 大衆交通 인프라가 있었더라면 아빠는 저의 ‘365日 運轉技士’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그런 犧牲을 기꺼이 甘受해준 父母님이 없었다면 저에겐 배움의 機會가 애初부터 없었을지 모릅니다.2007년 서울대 美大에 入學했을 때 디자인과 建物에 便宜施設 改善을 要請했던 적이 있습니다. 感謝하게도 學科 敎授님들과 助敎님들을 包含해 學校 構成員들이 한 마음으로 제 要求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그 要求가 大學 總長님께 傳達되어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設置되고 난 後, 學科 助敎님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當然히 있었어야 했던 便宜施設이지만, 그럼에도 總長님께는 感謝를 表現하는 게 좋을 것 같다.“그 助敎님의 말은 제 心臟을 두근거리게 했어요. 엘리베이터가 障礙 學生 單 한名을 위해 1億원을 投資한 施設로 解釋되는 게 아니라, 障礙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普遍的인 接近性을 保障하는 基本權으로 바라보는 觀點이 담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스웨덴에서는 障礙人이 非障礙人과 同等한 배움의 機會를 갖습니다. 그 結果 障礙人 亦是 職業 能力을 갖추게 되고, 雇用市場에서도 非障礙人과 同等한 機會를 얻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障礙人은 非障礙人과 마찬가지로 稅金을 내며 다시 社會에 還元합니다. 이처럼 ‘平凡한’ 日常을 살아가는데 저의 障礙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自由를 저는 비로소 他國에서 누리고 있습니다.저는 이제 많은 에너지를 創作에 쏟고 있어요. 平素 휠체어를 타면서 必要했던 日常 道具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機能的일 뿐만 아니라 집안 한 켠에 두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物件들입니다. 집안의 다른 物件들과도 調和를 잘 이루는, 튀지 않는 美感을 追求합니다.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家口이면 좋겠거든요. ‘릴라 엘리펀트’에서 만드는 저의 家具들이 世上에 나와 薰薰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봅니다. 얀테의 法則처럼 말이죠. 謙遜하게 自己 할일을 默默히 하는 ‘믿음직한 사람’같은 家口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양한 몸을 가진 저와 우리가 如前히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 家具들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나에게 걷는다는 것의 意味김승환 (‘입는 로봇’ 硏究員·KAIST 機械工學科 웨어러블로봇 硏究室)아침에 눈 뜬 뒤 寢臺에서 내려와 디디는 첫발, 隱隱하게 흙냄새가 나는 餘裕로운 散策길, 시끌벅적한 飮食店의 門턱을 넘어 들어갈 때의 설렘… 日常 속에서 내딛는 수많은 걸음은 많은 이들에게 當然한 日常의 一部입니다. 제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하지만 下半身이 完全히 痲痹된 뒤 ‘걷기’가 지니는 意味는 完全히 달라졌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까”라는 質問에 對한 答은 한때 ‘不可能’에 가까웠지만, 技術이 發展하면서 徐徐히 ‘可能’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家族과 함께 散策하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對話를 나누고, 가고 싶은 곳을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든 갈 수 있는, 한때는 當然하게만 생각했던 日常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꿈과 希望도 더 自由롭게 實現할 수 있을 것이고요. 웨어러블 로봇은 아직 完璧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障礙人들이 日常 속에서 自由롭게 움직일 수 있는 ‘可能性’을 의미합니다. 障礙人들의 自立과 社會 參與를 增進시킬 通路가 될 것이며, 휠체어를 타던 障礙人들의 日常生活에도 革新을 가져올 것입니다. 障礙人이 걸을 수 있게 된다면 障礙에 對한 偏見을 克服하는 데에도 寄與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發展한 技術은 障礙人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肯定的 影響을 미치고 變化의 可能性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공경철 敎授님을 筆頭로 한 카이스트 機械工學科 엑소랩(Exoskeleton Laboratory)에서 저를 包含한 20名의 硏究陣들은 더 나은 로봇 技術을 硏究·開發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로봇이 만들어지고 發展하는 硏究室 속 日常을 SNS 等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疏通하고 싶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이 우리의 삶에 어떤 肯定的인 變化를 가져올 수 있는지 끊임없이 苦悶하고, 可能한 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技術을 開發하는 데에도 寄與하고 싶습니다.저희는 2024年에 열리는 로봇·障礙人 融合 國際 올림픽인 사이배슬론(Cybathlon) 大會에서 다시 한 番 優勝을 目標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繼續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로봇이 휠체어를 代身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내가 이래서 音樂을 못 끊나보다임채섭(시력을 잃어가는 作曲家·뮤직프로듀싱팀 ‘티스푼’ 所屬)30年 前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매미의 强烈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침 오늘도 30年 前 그런 强烈한 매미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를 媒介로 過去를 回想해봅니다. 혼자서 뭔가를 가지고 놀고 觀察하기 좋았던 저는 그 때 리코더를 불고 있었습니다. 30年이 흐르며 그 리코더는 이제 鍵盤과 컴퓨터로 바뀌어있습니다.음악을 始作하게 된 時點부터 音樂을 연주하고,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經驗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 中 어느 것이 優先인지 알기 어렵지만 各各의 魅力이 다르기 때문에 音樂 안에서 職業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요즘은 아침이 되면 散策 때 메모 했던 音源 修訂事項을 反映해 音樂的인 스케치를 조금 더 具體化시킵니다. 이런 修正 作業은 視力이 남아있던 예전에도 했던 일이지만 이걸 보이스 오버(畵面을 읽어주는 서비스) 機能으로 하려고 하니 새로운 訓鍊처럼 느껴집니다. 컴퓨터가 發展해도 아직은 假想 樂器의 여러 가지 값을 正確하게 딱 一致시켜서 읽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어떤 技術이 좀더 便하고 適應할 수 있는 代案인지를 繼續 찾아가는 訓鍊을 하게 됩니다.컴퓨터로 音樂 作業을 하다보면 畵面 擴大를 했을 때 鍵盤 一部가 안 보이기도 합니다. 音의 높낮이가 區分이 안 될 때도 있죠. 强弱 調節이 잘 되는지 보기 위해 畵面 아래쪽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音標를 보기 위해 畵面 위로 올라가다보면 커서가 엉뚱한 곳에 가 있기도 합니다. 多幸히 요즘 저는 PC를 活用해 音樂을 만들 때 ‘logic remote’라는 앱을 活用해 아이패드를 컨트롤러로 使用하는 代案을 發見해가고 있어요.예전에는 鍵盤으로 音標를 入力했던 方法을 썼지만 只今은 視覺障礙人 音樂人에 맞는 環境을 構築하고 있는 것이죠. 作業 速度는 過去보다 조금 느릴 수 있지만 마우스로 音標를 一一이 찍고 强弱을 修正하거나 假想 樂器 等을 걸어줄 수 있어 할 수 있는 作業의 範圍가 繼續 넓어지고 있어요. 이런 方法을 쓰면 좀더 客觀的인 모니터링이 되기도 하고, 特異한 火星이나 리듬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좋기도 합니다.제가 音樂을 만들기 爲해 必要한 技術들은 이 瞬間에도 繼續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技術들을 가까운 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익혀나가고 있어요. 그런 過程을 통해 저에게 맞는 멋진 機械나 프로그램들을 꼭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全盲이 오더라도 이런 技術들에 接近할 수 있도록 요즘은 틈틈이 點字 工夫를 하고, ‘한소네’라는 點字 端末機를 익히고 있어요.서서히 視力을 잃어가는 進行性 障礙로 인한 憤怒들이 저에게는 젊은 날의 血氣였던 거 같기도 합니다. 이런 憤怒들은 어찌 보면 熱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살고 싶은 熱情, 音樂을 하고 싶은 熱情, 稱讚받거나 뽐내고 싶은 熱情 같은 거 말이죠. 이런 것들이 가라앉고 있는 附表가 奇跡的으로 水面 위로 올라오듯, 저를 다시 떠오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게임을 즐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임의 世界에선 ‘켠 김에 王까지’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을 듣고 ‘無條件 끝까지 가서 엔딩을 본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只今은 잘 살든 못 살든, 제게 주어진 只今 이대로의 人生을 끝까지 즐겨본다는 意味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이런 意味에서 音樂은 미우나 고우나 저의 親舊입니다. 사람 속은 알 수 없고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지만, 音樂은 努力의 領域이므로 저에게서 永遠히 떠나가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제가 音樂을 못 끊나봅니다.첫 發은 千斤萬斤이지만… 내딛고 나면 어떻게든 나아가는 것이 삶이규환 (重症障礙에 맞선 齒科醫師·분당서울대병원 健康增進센터 齒科클리닉 敎授)다치고 나서 重患者室에 누워있을 때, 擔當 醫師는 제게 “더 좋아지지 않는다. 平生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全身痲痹가 된 몸으로 뭘 하다가 죽을까’ 萬 番을 생각해도 齒科 醫師가 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反對했고 미쳤냐고 辱했지만, 正말 0.1秒라도 齒科醫師로 살아보고 싶었어요.그래서 再活院을 나와 1年 만에 齒大에 復學했습니다. 再活을 오래 하면 할수록 怯쟁이가 되고, 社會로 나오는 게 더 두려워질 것 같아서요. 復學 後 처음엔 휠체어로 門턱을 못 넘어서, 門 앞에서 눈치 보며 하루 終日 繼續 버텼습니다. 敎授님들은 한숨만 쉬셨죠. 그러다 豫防齒科 敎授님, 放射線科 敎授님께서 처음으로 “들어와,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資料를 줄 테니까, 여기서 判讀을 해”라면서요. 그렇게 始作했습니다.가장 힘든 건 첫 발이에요. 저는 講演을 할 機會가 있을 때면 “障礙人은 非障礙人만큼 努力해선 안 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그냥 버티는 것도 힘들겠지만 거기서 한 발짝씩만 더 나아가라는 거죠. 그 過程에서 補助機器와 技術, 最新 裝備를 活用하는 건 正말 重要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重要한 건 抛棄하지 않는 마음인 거 같아요.사실 한 발 내미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 한 發이 數萬斤의 무게입니다. 근데 그것만 내딛으면 어떻게든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요. 삶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한 番뿐인 人生, 眞짜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어야죠. 최重症 障礙人인 저도 이렇게 해냈잖아요.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래서 보여드리는 거예요. 0.1%의 希望만 있어도 絶對 抛棄하지 마시라구요. 저도 重患者室에서 누워있을 때 어려움을 克服해낸 분들의 記事들을 읽고 希望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絶望으로 삶을 抛棄하고 있는 분들께서 제 이야기를 보고 “그래, 까짓 거 나도 한番 해보자”라는 希望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色으로 그려진 하루하루지만 예쁜 꽃처럼 피어나게 가꿀 距例요高미숙 (손끝으로 世上을 보는 마케터·소셜벤처 ‘닷’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저의 하루는 한 가지 色으로 그려진 그림이에요. 하지만 사랑을 받는 날엔 몽글몽글해지고, 視線을 集中받는 날엔 스크래치가 생겨서 하루하루가 모이면 드라마처럼 다채로운 스케치북이 만들어진답니다. 그날을 떠올려볼까요. 살랑 부는 봄바람에 氣分도 설렜던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親舊를 보러 흰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섰는데요. 點字 블록이 없는 길을 ‘超集中’하며 걷다가 앞에 오던 사람과 부딪치면서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거예요. 親切한 그분은 흰 지팡이를 손에 쥐여 주며 謝過도 해 주셨죠.‘역시 世上엔 좋은 분들이 많아’ 흐뭇해하며 地下鐵驛에 到着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操心하며 걸었지만 週末이라 붐비는 通路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方向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小心한 저는 망설임 끝에 勇氣를 내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죠. “저… 제가 눈이 안 보여서요. 地下鐵 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돌아오는 건 對答 代身, 反對 方向으로 걸어가는 ‘터벅터벅’ 하는 발소리뿐이었습니다. 혼자서라도 길을 찾으려 記憶을 더듬고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같은 곳만 빙빙 돌 뿐이어요. 時間이 흐르며 多急해진 마음에 다시 勇氣를 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쪽으로”라며 제 옷을 냅다 잡아당기는 거예요. 約束場所에서 만나 제 이야기를 들은 다른 視覺障礙人 親舊는 말했습니다. “난 내 흰 지팡이에 걸린 사람이 오히려 나한테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하던걸?” 視覺障礙人으로서 世上을 살아가기 위해선 마음부터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죠. 제가 視力을 잃기 前에 좋아했던, 비 오는 날도 떠올려봅니다. 눈이 보일 땐 빗방울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스며드는 모습이나 窓門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보는 게 좋았죠. 雨傘을 쓰고 걸을 때면 들려오던 ‘吐毒吐毒’하고 떨어지던 빗방울의 소리도요. 그런데 只今은 비 내리는 날이면 걱정을 먼저 하게 돼요. 비 내리는 소리로 인해 周邊 소리가 가려지고, 길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를 避하기도 힘들거든요. 私設第 人生의 冊갈피는 이렇듯 幸福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언제나 傷處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좋아하던 것들도 즐기기를 망설이게 되죠. 저뿐 아니라 누구나 크기가 다른 苦悶과 걱정의 씨앗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健康하게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저는 肯定의 물과 사랑의 햇살로 잘 키워 보려고요.<특별취재팀>▽기획·취재: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 송은석 記者▽디자인: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全體 시리즈와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홍정수 記者 hong@donga.com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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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老人도 쉽게 탈 수 있게… 次 椅子 90度 돌아갑니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老人이 되면 當然했던 것들이 더 以上 當然해지지 않는 때가 온다. 집 안에서 혼자서 앉고 일어서거나 밖에 나가 知人을 만나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身體的·精神的 制約이 本格化되는 때 말이다. 老衰로 인한 ‘障礙’를 안고 살아갈 人生의 黃昏期는 모두에게 豫定된 未來다. 이 때 技術은 老人들이 旣存 삶의 質을 維持하고 尊嚴한 삶을 사는 데 核心的 役割을 할 수 있다. 4月 19日 日本 오사카에서 열린 ‘2023 베리語 프리’ 博覽會場. 미야자키현에서 女同生을 태우고 10時間을 運轉해 이곳까지 온 모리시타 야스나리 氏(65)가 自動車企業 토요타 부스 앞을 서성였다. 야스나리 氏는 車輛 왼便에 있는 助手席이 ‘윙’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90度 回轉해 車輛 밖으로 나오는 光景을 神奇한 듯 바라봤다. 그는 부스 職員에게 물었다.“이 回戰 座席을 쓰면 동생을 車에 태우는 게 좀 수월해질까요?”“고령자나 障礙人이 허리나 다리에 힘을 덜 쓰고도 車에 탈 수 있게 한 거예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助手席에 타는 게 可能해질 겁니다.”(직원)흰머리가 거뭇거뭇한 야스나리 氏는 “휠체어를 타는 女同生을 車에 태우는 게 늘 나의 몫이었는데 座席이 回轉하면 제가 몸을 조금만 굽혀도 돼 허리가 덜 아플 것 같다”고 했다.이 博覽會는 高齡者와 障礙人, 그리고 야스나리 氏처럼 家族을 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尖端技術이 紹介되는 場이었다. 主催 側은 “博覽會가 始作된 28年 前만 해도 이런 技術이 있다는 것 自體를 사람들이 몰라서 아주 작게 始作했는데 그 사이 高齡化가 빠르게 進行되면서 요즘은 數萬 名이 찾아오는 大型 이벤트가 됐다”고 했다.삶의 質의 核心은 ‘마음껏 움직이기’토요타 부스의 또 다른 人氣 製品은 휠체어 移動裝置였다. 高齡이 되면 老衰나 疾患 等의 理由로 電動휠체어를 타는 境遇가 많은데 휠체어가 무거워 車 트렁크에 싣는 게 큰 負擔이다. 夫人이 휠체어를 타는 60代 日本人 夫婦는 토요타 職員이 휠체어 移動裝置를 試演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직원이 車 트렁크를 연 狀態로 移動裝置의 全員 버튼을 누르자 휠체어를 固定시킬 수 있는 裝置가 車輛 밖 바닥까지 내려왔다. 휠체어를 올려놓고 다시 버튼을 누르니 트렁크 안으로 쏙 들어갔다. 사람이 힘을 쓸 일이 없었다. 擔當 職員은 “平均 30kg 程度인 電動휠체어를 들어 올릴 수 있고 모든 車輛에 設置 可能하다”고 했다. 그러자 男便은 말했다. “只今 아내가 타고 있는 휠체어가 全東이라 엄청 무겁거든요. 올해 저희 夫婦 나이가 69살이라 힘이 부치는데 이런 게 있으면 휠체어를 車에 싣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네요.”김영선 慶熙大 디지털뉴에이징硏究所長(老人學科 敎授)은 “國內에선 휠체어를 실을 수 있게 車를 改造하려면 約 1500萬 원이 들 程度로 負擔이 큰데 (토요타 製品은) 車輛을 改造하지 않고 簡單히 設置만 하면 되는 方式이어서 活用度가 높을 것 같다”고 했다.‘고령자를 위한 스쿠터’ 부스도 人波로 북적였다. 이 스쿠터는 혼자 힘으로 걷을 수는 있지만 먼 거리를 다니긴 힘든 高齡者들을 위해 開發됐다. 記者가 運轉免許가 없는데 試乘이 可能한지를 묻자 職員은 “李 스쿠터 自體가 免許를 返納한 高齡者들이 밖에 다니기 便하도록 開發된 것”이라며 記者에게 스쿠터를 내밀었다.스쿠터에 타보니 1~6段階까지 速度 調節이 可能했다. 코너 區間을 通過하며 핸들을 살짝 돌리자 速度가 自動으로 느려졌다. 다른 觀覽客이 스쿠터를 탄 記者 앞으로 지나가려 할 땐 警報音이 울렸다. 外觀은 象牙色의 깔끔한 바탕에 검은色으로 若干의 포인트만 줬다. 토요타 關係者는 “高齡者가 스쿠터를 타고 밖에 나가는 것을 躊躇하지 않도록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에 各別히 神經을 썼다”고 했다. 當然하던 것들이 當然해지지 않을 때“와, 自轉車를 正말 오랜만에 타보네요.”오사카에 사는 카와치 케이스케 氏(75)는 부스에 展示된 ‘高齡 親和 自轉車’를 타면서 이렇게 말했다. 否認 리츠코(71)는 “男便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집에 自轉車를 두고도 타기를 躊躇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다르다”고 했다. 이 自轉車는 一般 自轉車와 다른 特徵이 몇 가지 있다. 于先 세발 自轉車여서 安定感이 있다. 鞍裝에는 허리 받침臺가 있어 몸을 기댈 수 있다. 페달 쪽에는 暫時 다리를 올려놓고 쉴 수 있도록 발板도 附着돼있다. 高齡者들이 筋力 低下로 均衡을 잡기 어렵고, 발목과 무릎 等 關節이 弱해지며 體重 部下를 堪當하기 어렵다는 問題點을 解決한 것이었다. 케이스케 氏는 “몇 年 前 오른쪽 다리에 痲痹가 온 뒤부터는 집에 있는 自轉車를 한 番도 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이 自轉車는 발板이 있어 발을 올리기가 쉽고, 허리 받침臺가 몸을 固精해 주니 페달에 힘을 싣기도 쉬웠다”고 했다. 金 敎授는 “老人들은 身體 機能이 低下되면서 밖으로 잘 안 나오게 되는데 이렇게 高齡 親和型으로 디자인된 自轉車가 普及되면 무엇보다 外部 活動을 持續하게 해주는 效果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초고령자 돌보는 高齡者를 위한 技術 博覽會에서는 高齡者와 障礙人을 돌보는 旗族 等 周邊人을 위한 技術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擧動이 어려운 사람을 집안 內部에서 옮기는 裝置인 全東 리프트가 그 中 하나다. 自動車 엔지니어 히로시 氏(59)는 茶를 만드는 技術을 椄木해 이 리프트를 開發했다. 寢臺에 누워 지내는 瓦商 老人들을 휠체어로 옮긴 뒤 化粧室, 廚房 等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쓰이는 機構다. 瓦商 老人들은 筋力과 認知 機能이 低下되는데 最小限의 움직임을 통해 狀態가 惡化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身體的 負擔을 크게 줄일 수 있다. 金 敎授는 “英國 濠洲 等에서는 ‘들지 않기 政策(no lift policy)’을 導入해 돌봄 人力이나 醫療陣이 患者를 直接 드는 代身 機器의 도움을 받게 하는 政策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 氏는 “10年間 이 製品을 製作해오면서 91歲 男性이 88歲 婦人을 돌보려고 製品을 보러 왔을 때가 記憶에 남는다. 本人도 老衰해 집안에서 婦人을 옮기는 게 어려웠는데 이 리프트 德에 수월해졌다며 기뻐했다”고 傳했다.또 다른 全東 리프트 業體인 ‘카네打 코포레이션’은 椅子形 리프트를 開發했다. 旣存의 全身型 리프트는 부피가 커서 家庭집에서 使用하기 어려웠다. 이를 補完해 부피가 작고 造作이 쉬운 椅子形으로 開發한 것이다. 이 業體 職員은 記者에게 한 父女 顧客의 寫眞들을 보여줬다. 아버지를 홀로 돌보는 딸이 椅子形 리프트를 利用해 寢臺에 누워만 지내는 아버지를 부엌으로 옮기는 場面이 담긴 寫眞이었다. 딸은 “예전엔 穩全히 팔 힘으로 아버지를 寢臺에서 꺼내드려야 했는데 이젠 한層 便해졌다”고 했다.기자가 博覽會場을 둘러보는 동안 혼자 구경 온 高齡者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個人 資格’이라고 적힌 名札을 달고 여러 技術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고이즈미 유타카 氏(73)는 “인터넷에서 看病 用品을 찾다가 이 行事를 알게 됐다. 6, 7年 前부터 빼놓지 않고 每年 訪問하고 있다”고 했다. 93歲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유타카 氏는 휠체어를 타는 어머니를 위한 製品을 찾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의 房과 房 사이를 다닐 때 門턱에 걸려 휠체어에서 튕겨나갈 뻔한 境遇가 잦았는데 自身도 高齡이라 一一이 돌볼 수가 없어 落傷 防止用 휠체어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휠체어를 처음 탄 8年 前만 해도 제가 60대라 괜찮았는데 저도 이젠 70代가 되니 어머니를 돌보기가 漸漸 버거워지네요. 저의 빈자리를 채워줄 技術을 잘 찾아보려 합니다.”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기획·취재: 오사카=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 송은석 記者▽디자인: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全體 시리즈와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오사카=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신광영 記者 neo@donga.com 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 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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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테크(low-tech)로 人生 바뀐 全身痲痹 齒科醫師[障礙, 테크로 채우다]

    “제가 조금 느립니다. 하지만 世界에서 第一 꼼꼼하고 安全하게 봐 드리겠습니다.” 盆唐서울大病院 健康增進센터 齒科클리닉 이규환 敎授(44)가 患者들에게 건네는 첫人事다. 그냥 人事치레는 아니다. 그는 손을 쓰지 못하는 醫師다.손을 쓰지 못하는 ‘重症障礙 齒科醫師’叫喚은 어깨와 손목을 若干 움직일 뿐, 목 아래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重症障礙 齒科醫師다. 그의 診療室은 두 가지가 다르다. 醫師가 電動휠체어에 앉아 있고, 齒科 道具를 잡을 때 손가락에 透明한 플라스틱 器具를 끼운다는 點이다. “3段으로 付託드립니다. 한 段만 더 올릴까요? 네, 感謝합니다.”규환의 要請에 따라 看護師가 페달을 밟자 患者가 앉은 診療 椅子가 機械音을 내며 올라갔다. 看護師는 叫喚의 검指손가락에 끼워진 플라스틱 機構에 銅錢만 한 齒科用 거울을 固定시켰다. 叫喚은 어깨와 손목을 천천히 움직이며 거울에 비친 患者 입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齒石 管理를 아주 잘하셨네요. 훌륭합니다.”이 病院에서 일한 지 올해로 19年 次인 叫喚은 檢査와 判讀, 相談, 豫防클리닉을 主로 맡는다. 叫喚은 弄談처럼 “저도 이제 年次가 좀 쌓여서요. 잘하는 것에 더 集中하고 있는 거죠”라며 웃었다. 2005年부터 여기서 일했으니, 벌써 20年次가 다 되어간다. 初盤에는 一般 診療도 直接 했지만, 이제는 專門分野에 焦點을 맞추는 것이다. 그를 찾는 診療 豫約은 大部分 꽉 차 있다.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가슴에 鋼鐵을 깔다규환은 늘 웃는 印象이다. 無表情日 때에도 그렇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決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鐵壁으로 武裝돼있다. 齒大 本科 3學年이던 2002年, 重患者室에서 읽은 武俠誌에 나온 말이다.“‘네 가슴에 鋼鐵을 깔아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사람이 살아간다고.”키 188cm의 健壯한 靑年이었던 그는 病院 實習을 마치고 水泳場에서 다이빙을 하다 목뼈가 부러져 全身이 痲痹됐다. 늘 하던 대로 물에 뛰어들었지만, 그날은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목이 꺾였다. 한동안 스스로 숨을 쉬기 어려울 程度로 重傷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艱辛히 어깨까지 感覺이 돌아왔지만 그뿐이었다. 擔當醫는 叫喚에게 “平生 이렇게 살 準備를 하라”고 했다.밤낮으로 悲鳴과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重患者室에서 버티기 위해 看護師들에게 付託했다. 正말 바쁘겠지만, 或是라도 짬이 나면 제게 冊을 보여주실 수 있느냐고, 무슨 冊이든 상관없고, 한 張씩 넘겨만 주시면 된다고. 重患者室에서 지낸 한두 달 동안 그렇게 100卷 가까이 冊을 읽었다. 聖經부터 始作해 日本漫畫 ‘슬램덩크’ 시리즈, 小說 ‘갈매기의 꿈’까지 種類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人生 한 줄’李 된 文章들은 武俠誌에서 나왔다. 앞으로의 삶은 分明 傷處로 가득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일도 많을 것이었다. “그들이 네게 傷處를 내지 못하게 가슴에 鋼鐵을 깔아라.” 그는 이 文章을 가슴에 품고 障礙와 함께 살아가는 方法으로 ‘剛해지기’를 擇했다.모두가 말린 ‘1年 만의 復學’叫喚은 사고 1年 만에 齒大에 復學했다. “全身痲痹 齒科醫師가 世上에 어디 있느냐”며 모두가 말렸다. 法學으로 進路를 바꾸라는 說得도 많았다. 하지만 叫喚은 事故를 當했다고 가던 길을 틀고 싶지는 않았다.“중환자실에서 ‘내가 이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萬 番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正말 0.1秒라도 齒科醫師로 살아보고 싶더라고요.”당시 校內에는 障礙人 施設이 거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建物에선 同期들이 규환이 탄 휠체어를 들고 階段을 올랐다. 敎授 硏究室이나 實習室에도 門턱이 하나씩 있었다. 혼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누군가 도와줄 때까지 無限定 ‘뻗치기’를 했다.손을 쓸 수 없으니 筆記도 할 수 없었다. 同期들과 先後輩들이 챙겨준 筆記와 敎科書를 눈으로만 보고 외웠다. 그는 “元來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다치고 나서 더 좋아진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남들처럼 밤늦게까지 實習을 하고, 하루終日 筆記를 노려보며 工夫하다가 褥瘡이 생겼다. 그래도 버티다 精神까지 잃었다.진료 實習 땐 齒科用 器具를 손가락에 固定시키기 위해 고무줄로 피가 안 통할 程度로 꽉 동여맸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器具가 많아 손에서 빠지면 患者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診療를 하며 患者의 입안에 傷處를 내지 않으려다 보면 손가락이 機構에 찔리고 베이는 일이 많았다. 그의 손은 늘 傷處투성이였지만 그렇게 부딪히며 機會의 門을 하나씩 열어갔다.맨땅에 헤딩 代身 ‘헬멧 쓰고 헤딩’어렵게 重症障礙 齒科醫師의 길을 開拓해 온 규환이 모두에게 ‘無識하고 至毒한’ 方法을 勸誘하지는 않는다. 그가 늘 後輩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헬멧 쓰고 헤딩’하는 건 天地差異”라는 것.가만히 앉아 더 좋은 新技術과 尖端裝備가 開發되기를 기다리는 代身, 가진 것을 總動員하고 없는 것을 直接 만들어내며 한 발짝씩 나아갔다. 아무 情報도 없이 ‘맨땅에 헤딩’을 너무 많이 하다가 文字 그대로 죽을 고비도 數次例 넘겼다.의사를 꿈꾸는 後輩들뿐 아니라, 障礙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앞선 ‘先輩 障礙人’들의 經驗과 노하우 等 動員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積極的으로 活用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한다. ‘헤딩’을 망설이지 말되, 可能한 좋은 ‘헬멧’을 쓰라는 것이다.특히 든든했던 헬멧으로 그는 韓國障礙人雇傭工團과 國立再活院을 꼽았다. 電動휠체어와 褥瘡防止龍 方席 等을 支援받았고, 무엇보다 齒科 診療에 必要한 機構를 맞춤 製作할 機會도 얻었다.국립재활원에서 補助機器를 맞추는 經路는 普通 두 가지다. 하나는 叫喚처럼 國立再活院 附屬 再活病院에 入院하는 境遇, 또 하나는 外來로 訪問해서 直接 依賴하는 境遇다. 需要者의 狀態와 生活패턴 等을 考慮해 만들고 事後管理까지 해준다. 旣存에 없던 機器를 新規 製作하는 境遇엔 길면 數個月까지 所要된다.규환은 이곳에서 齒科 道具들을 簡便하고 빠르게 손가락에 固定할 수 있도록 해주는 ‘世上에 없던 器具’를 國立再活院 專門家들과 함께 開發했다. 透明한 플라스틱을 圓筒처럼 말고, 끝엔 道具를 꽂을 수 있도록 固定用 고무를 裝着했다. 고무 部分이 道具를 단단하게 固定시켜주는 强度를 세 段階로 區分해 各各 色깔을 달리 했다. 또 폴리염화비닐(PVC) 素材로 만들어 끓는 물에 살짝 담그면 模樣을 손쉽게 다시 잡을 수 있도록 했다. 尖端 하이테크는 아니지만 障礙人마다 各其 다른 需要에 딱 맞게 製作한 로테크(low-tech), 미들테크(middle-tech) 機器들은 가볍고 低廉하면서도 큰 效果를 낸다. 서울 江北區 國立再活院에서 만난 再活病院部 김온유 脊髓損傷再活誇張과 補助機器製作실 김지민 主務官은 그동안 開發한 補助機器들을 製作室 作業臺에 한가득 펼쳐 보였다. 두 사람은 叫喚의 補助器具 製作에도 參與했다. “팔과 손이 痲痹된 분이 계셨는데 自身의 손으로 물을 마시고 싶어해 專用 컵 홀더를 만들어 드렸어요.”“비슷한 障礙가 있는 다른 분에겐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할 수 있도록 손가락을 끼워서 쓸 수 있는 터치펜을 만들어 드렸고요.”장애를 갖는다는 건 아주 日常的인 일조차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境遇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必要로 하는 ‘日常’은 各自 다르다. 컵을 잡거나 물을 마시거나 畵面을 터치하는 것은 非障礙人에게는 엄청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맞춤型 器具를 使用하는 障礙人들은 “잃어버렸던 日常을 하나씩 되찾을 때마다 삶이 한 뼘씩 擴張되는 것 같다”고 傳한다. ● “障礙人에게 診療받기 싫다” 화내던 患者들을 넘어叫喚은 힘겹게 齒大를 卒業했다. 하지만 곧바로 醫師가 될 수는 없었다. 自身을 받아주는 病院을 찾기가 힘들었다. 書類를 通過해도 휠체어를 타고 가 面接을 보고 나면 더 以上 連絡이 오지 않았다.“그래도 抛棄할 수는 없잖아요. 病院長, 副院長, 企調室長 等 各種 ‘室長님’들이 電話를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電話했어요. 單 10분이어도 좋으니 診療를 보여 드릴 機會를 달라고요.”오랜 두드림 끝에 受話器 너머에서 긴 한숨과 함께 “한番 와 보세요”라는 答이 돌아왔다. 叫喚은 그 機會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휠체어를 탄 狀態로 試驗 診療를 하던 날, 病院 醫療陣들이 우르르 구경을 와서 好奇心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齒科醫師가 된 뒤에도 고비는 남아있었다. “診療室에 들어와서 저를 보고는 財數 없다고 ‘퉤’ 하며 침을 뱉는 患者분도 있었어요. ‘내가 왜 病身한테 診療를 받아야 하느냐’고 病院에 컴플레인(抗議)하는 분도 많았고요.”환자 열 名 中 일곱 名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나머지 두세 名은 쭈뼛대며 診療 椅子에 앉았다. 叫喚은 그들에게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不便하고 좀 느립니다. 근데 實力은 最高입니다. 世界에서 가장 꼼꼼하고 安全하게 봐 드리겠습니다”라며 다가갔다.점차 그를 다시 찾는 患者들이 생겨났다. “그때 깔끔하게 診療해줘서 시원했다” “꼼꼼하게 說明해줘서 고맙다”는 人事와 함께.거친 손에 새겨진 20年의 痕跡다치기 前, 叫喚은 위만 보고 살았다. 不足함 없는 家庭形便, 어디 가서 밀리지 않았던 頭腦와 健康한 身體를 가진 그였다. 齒大에 進學한 것도 使命感 때문은 아니었다. 工夫를 잘 하면 醫師가 되어야 하나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좋은 집, 좋은 車를 사고, 돈 많이 벌며 便하게 살지 않을까 斟酌했다. 다친 뒤, 그는 스스로 ‘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에 닿았다. 처음으로 胃 代身 아래와 옆을 보게 됐다. 重患者室에 누워 瞬間마다 祈禱했다. 제 몸을 다시 예전처럼 돌려놓아주신다면, 이 몸을 正말正말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쓰겠노라고. “울면서 數없이 企圖했는데, 하나님이 다 주진 않고 八萬 이렇게 조금 돌려주셨네요.”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며, 叫喚은 말했다. ‘조금’ 돌려받은 팔로 醫師가 된 뒤, 重患者室 寢臺에서의 約束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事故 때문에, 絶望 때문에, 後遺症 때문에, 叫喚은 數次例 거의 죽어봤기 때문에 오히려 하루하루의 最善과 眞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아이를 낳은 뒤, 叫喚은 育兒 先輩들의 助言에 따라 自身의 育兒 哲學도 “넘치게 사랑하고 不足하게 키우자”로 定했다. 잔소리 代身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6살배기 딸은 아빠의 무릎과 어깨 위로 기어올라가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장난을 친다. 조그마한 손가락으로는 아빠의 굳은 손을 쥐고 흔들며 “아빠 손은 怪物 손!”이라고 놀린다. 그의 두 엄지와 손마디는 큼직한 굳은살이 뒤덮어 얼룩졌다. 筋肉이 빠져 가늘고 긴 팔과 어울리지 않게 울퉁불퉁한 손을 보며 “榮光의 傷處”라고 말했다. 20年도 더 前부터 道具에 베이고 찔리고 津물이 나도록 끈과 고무줄로 동여맨 痕跡이다. 이제 규환이 診療 때마다 손가락에 끼는 透明한 플라스틱 機構는 簡單해 보이지만 그에겐 簡單치 않다. 그의 손에 더 以上 피와 津물이 흐르지 않게 해주고, 齒科醫師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機構이기 때문이다. 그냥 주저앉지 않고, 0.1%의 可能性에도 抛棄하지 않고 20年 넘게 싸워왔다는 證據가 그 손에 담겨있다.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기획·취재 :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 : 송은석 記者▽디자인 :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主人公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 홍정수記者 hong@donga.com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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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倍 擴大期, 보이스오버…技術로 ‘作曲의 길’ 찾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中2 때였어요. 當時 先生님이 쪽紙試驗을 보고 틀린 個數만큼 머리채를 잡고 漆板에 얼굴을 들이박았거든요. 저도 불려나가서 漆板에 여러 番 세게 부딪혔는데 갑자기….” 作曲家 임채섭 氏(41)는 過去 敎師의 體罰로 왼쪽 눈을 失明했다. 拳鬪選手들이 試合 中 눈을 正統으로 맞았을 때 種種 發生하는 網膜 剝離가 甚하게 왔다. 채섭은 남은 한 쪽 눈에만 依支하다보니 오른쪽 視力도 徐徐히 惡化됐다. 事故 後 27年이 지난 只今, 그는 進行性 視覺障礙人으로 살고 있다. 어제까지 보이던 게 오늘은 보이지 않고, 어제는 할 수 있었던 일이 오늘은 어려워지기도 한다.그는 視力을 잃어가면서도 作曲 經歷을 차곡차곡 쌓았다. 올해로 17年次다. 드라마 OST, K팝 等 다양한 作業에 參與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여러 番 音樂을 斷念하려 했다. 疲勞가 累積된 날은 殘存 視力이 거의 나오지 않아 樂譜조차 보이지 않았다. 鍵盤에 닿는 손의 記憶에 依存하는 데에도 限界가 있었다. ‘이만하면 해볼 만큼 해봤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音樂을 놓지 않았다.“어떻게든 音樂을 繼續 할 方法이 없을까 苦悶하다보니 눈을 代身해 줄 技術과 裝備들을 發見하고 익히게 되더라고요. 視力을 잃는 速度보다 技術에 適應하는 速度를 더 높이면 나중에 完全히 못 보게 되더라도 音樂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안내견과 電鐵驛 가는 길지난달 1日 아침 채攝餌 함께 사는 視覺障礙人 案內犬 ‘호연’이와 서울 道峰區 집을 나섰다. 地方 公演에 가는 날이다. 채攝餌 隣近 電鐵驛인 창동驛까지 가려면 橫斷步道가 3군데를 건너야 한다. 세 곳 모두 信號燈이 없어 건널 때 車가 오는지 잘 살펴야 한다. “進行性 視角障礙가 있다보니 橫斷步道 건너는 게 갈수록 조심스러워져요. 호연이에게 50%는 依支하지만 저 亦是 案內犬의 安全을 지켜줘야 하니까 橫斷步道 앞에 서서 귀를 最大限 기울입니다. 車 소리가 完全히 안 들리고 사람들 건너는 소리가 들리면 그 때 움직이죠.”채섭이 호연이와 함께 地下鐵 플랫폼에 들어서자 마침 列車가 들어오고 있었다. 線路에 멈춰선 列車 門이 닫히기까진 4, 5秒의 餘裕가 있었지만 채섭은 列車에 바로 타지 않고 搭乘口 앞에 멈춰 섰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다음 列車가 到着하면 門이 열리자마자 타야 安全하거든요.”호연이는 다음 列車가 올 때까지 隨時로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瞳子로 ‘兄아(채섭)’를 살폈다. ‘앉아’ ‘일어서’ 같은 口令을 듣기 위해 귀도 쫑긋 세웠다. 채섭과 호연이가 列車에 오르자 乘客들의 視線이 이 래브라도 리트리버 案內犬에게 온통 쏠렸다. “호연이를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 感謝하긴 한데 눈으로만 봐주시면 좋겠어요. 가끔 말없이 寫眞을 찍거나, 제가 視覺障礙人인 걸 알고 제 얼굴 바로 앞에서 찍는 분도 있거든요. 만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근데 案內犬이 낯선 刺戟을 繼續 받게 되면 平素 訓鍊받은 役割을 하는데 妨害가 될 수 있어요.”장애인마다 ‘障礙 MBTI’가 있다 채攝餌 이런 日常을 갖게 되기까진 적지 않은 時間이 걸렸다. 敎師의 暴力으로 視力을 잃고 집에서만 채섭은 房 琉璃窓 너머로 親舊들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人事를 건네지 못했다. “落伍者가 된 것처럼 너무 萎縮이 되고 中2甁까지 겹쳐서 그랬던 거 같아요. 마음의 블랙홀이 쉽게 메워지진 않더라고요.”그는 加害 敎師에 對한 怨望과 憤怒로 思春期를 보냈다. 하지만 結局 現實을 받아들이는 쪽을 擇했다. “드라마 ‘더글로리’ 보셨나요. 復讐를 하고나면 結局엔 虛無해지지 않던가요. 저는 이미 너무 큰 것을 잃어버렸는데 남은 삶마저 미움과 憤怒로 채우면서 더 슬프게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눈 手術 後 中學校를 休學한 채攝餌 하루 日課를 보낸 곳은 洞네 피아노學院이었다. 當時 좋아하던 게임을 할 수도 없었고 冊을 읽기도 어려워, 代身 피아노 앞에 앉았다. 鍵盤 位置는 손끝으로 鮮明히 느껴졌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로 樂譜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피아노 學院이 그에겐 學校이자 놀이터였다. “當時 라디오로 音樂을 들으며 하루하루 보내곤 했는데 音樂이 마음속 빈 空間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이 曲을 만들었던 사람과 疏通하는 것 같아서 혼자 남겨진 氣分도 덜 느껴지고, 나 亦是 누군가를 위해 이런 걸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채섭의 할머니는 音樂을 통해 世上으로 나오려는 孫子에게 電子피아노를 마련해줬다. 할머니는 “너한테 가장 必要한 것을 사라”며 每달 몇 萬원씩 十數 年間 모아온 쌈짓돈을 내준 것이었다. 채섭은 그 電子피아노로 獨學을 해 釜山大 音大에 入學했다. 집에 손을 벌릴 形便이 아니었던 채섭은 音大 時節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週中에는 化粧品과 淨水器 訪問 販賣를 하고, 週末엔 結婚式 祝歌 演奏를 다니며 登錄金과 生活費를 벌었다. 가장 쏠쏠했던 알바는 노래房에 들어갈 曲을 만드는 일이었다. 當時만 해도 音源을 디지털로 自動 變換하는 技術이 없어서 사람이 한 曲 한 曲 귀로 듣고 音標와 拍子를 그려가며 노래房 버전으로 受動 轉換했다. 그렇게 數百 曲의 노래를 完全히 解剖해서 再組立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채섭에겐 ‘實戰型’ 作曲 工夫이기도 했다.그는 “障礙人도 性向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一種의 ‘障礙 MBTI’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自身의 狀況에 對한 憤怒가 커 攻擊的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周邊과 協調的으로 살아가려는 部類도 있다는 뜻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건 每日 每瞬間 의식하게 돼요. 아무리 時間이 흘러도 障礙와 親해지긴 어렵죠. 그렇다고 障礙라는 巨大한 돌덩이를 어디로 보내버릴 순 없어요. 보낼 때마다 期於이 返送돼서 오더라고요. 於此彼 같이 가야할 存在라면 예쁘게 包裝하고 부피를 最少化해서 마음 속 ‘冷藏庫’ 깊숙이 넣어두는 수밖에요.”시력의 빈틈을 메워준 技術들지난달 21日 채涉疑 집을 찾았을 때 新曲 作業이 한창이었다. 그의 집은 曲을 함께 만드는 멤버들과의 作業室이기도 하다. 編曲과 믹싱 專門人 채섭은 作曲家 兼 보컬리스트인 서재윤 氏, 피아노 베이스 等 재즈 演奏家인 황영훈 氏와 2年 前 ‘티스푼’이란 밴드를 結成했다. K팝이나 드라마, 뮤지컬 等에 쓰일 曲을 만들기 위해 各自 臟器를 티스푼으로 모아보자며 힘을 합쳤다. 재윤이 基本 멜로디에 作詞, 보컬을 擔當하고 영훈은 여러 樂器로 旋律에 살을 붙인다. 채섭은 신디사이저 等을 利用해 믹싱과 編曲을 하며 完成度 높은 曲으로 버무려낸다. 한 때 音樂을 抛棄하려던 채섭을 잡아준 게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20년 넘게 해온 音樂이지만 到底히 못 하겠다 싶더라고요. 근데 두 분이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며 힘을 줬죠. ‘이렇게 曲 잘 만드는 사람이 抛棄하면 國家的 損失을 넘어 宇宙的 損失’이라고 弄談도 해주고….”채섭을 일으켜 세운 건 사람이지만 그가 힘겹게 되살린 用器를 實現하도록 해준 건 技術이었다. 그의 作業室에는 視力의 限界를 메워주는 여러 技術이 모여 있다. 그는 아이脈(iMac) PC 앞에 앉아 能熟하게 作曲 프로그램을 다뤘다. 커서의 位置 等 모니터 畵面을 說明해주는 ‘보이스 오버’와 畵面을 크게 擴大해주는 機能을 자주 썼다. 樂譜를 集中的으로 봐야 할 땐 ‘조디’라는 特殊 擴大機器를 머리에 쓴다. 이걸 쓰면 눈앞의 事物이 30倍 程度 擴大돼 보인다.채섭이 PC에 아이패드를 連結하자 태블릿 畵面이 電子 피아노 鍵盤으로 바뀌었다. 그가 믹싱을 할 때 즐겨 쓰는 로직 리모트(Logic Remote)라는 애플리케이션(앱) 德分이었다. “이 앱은 音樂을 만드는 一種의 스케치북이에요. 10年 넘게 써와서 익숙하고, 畵面도 크지 않아 웬만한 버튼이 어디 있는지 제 손이 다 알죠. 그래서 纖細한 精密 作業도 可能해요.” 그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疲困할 날에는 點字 端末機를 PC에 連結해 作業한다. 이런 尖端機器들은 社會福祉法人 ‘따뜻韓同行’ 等에서 支援을 받았다.시력을 잃고 마음의 視野를 넓히다채섭과의 인터뷰가 무르익어 가는데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좁은 食卓을 사이에 두고 記者와 마주 앉은 채攝餌 손으로 食卓 아래를 가리켰다. 호연이가 긴 몸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코를 골며 熟眠 中이었다. 호연이는 채涉疑 다리 맡에 머리를 두고, 통통한 엉덩이로는 記者의 두 발등을 깔고 앉은 狀態였다. 조금 前부터 느껴지던 발등의 낯선 溫氣는 그 엉덩이에서 傳해져온 것이었다.“호연이는 제가 平素 食卓에 혼자 있으면 寂寂할까봐 제 옆에 착 붙어 앉아요. 제가 밥을 다 먹거나 일을 마치면 호연이度 그제야 같이 일어나죠. 오늘은 비도 오는 渦中에 ‘兄아’랑 멀리 다녀오느라 疲困했을 거예요.”비 내리는 날이면 채섭과 好演은 外出할 때 平素보다 神經이 곤두선다. 周邊에 車輛이나 사람이 있는지를 歸路 살펴야 하는데 빗소리 때문에 소리의 干涉이 많아진다. 채涉疑 口令 소리가 호연이에게 잘 안 들리기도 한다. 호연이가 비옷을 입고 있어 ‘도그 토일렛’의 英文 弱者인 DT1(小便), DT2(大便) 狀況이 생기면 이 亦是 만만치 않다.평소에는 호연이가 길가에서 大便을 볼 땐 엉덩이 쪽에 비닐封紙를 固定시켜 處理한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는 호연이에게 입혔던 비옷을 벗기고 하네스(伴侶動物의 몸을 固定하는 벨트)를 解體한 뒤 엉덩이 쪽에 비닐을 걸어야 한다. “案內犬의 變異 아예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敎育을 받았어요. 變異 땅에 떨어지면 視覺障礙人들은 어디에 어떻게 떨어졌는지 안 보여서 줍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엉덩이에 비닐을 잘 채워야 하는데 비 오는 날에는 좀더 難易度가 높죠.”채섭이 하루 中 가장 기다리는 時間은 호연이와 洞네 公園을 散策할 때다. 함께 걸으며 作業해놨던 音源을 다시 차분히 들어본다. 그러다 修正할 게 떠오르면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 보이스 機能을 켜서 또렷한 發音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 音聲은 바로 文字로 轉換돼 ‘나와의 채팅房’에 電送된다. 집에 가선 이 文字를 다시 音聲으로 轉換해 들으며 曲을 고친다. 이런 機能이 있어 채섭은 知人들과도 活潑히 카톡을 주고받는다.그는 요즘 點字 工夫에 어느 때보다 熱心이다. 언젠가는 찾아올 ‘前맹(完全히 보이지 않는 狀態)’의 삶을 只今부터 對備하려는 것이다. 14살에 失明해 ‘障礙 나이’로 치면 올해 27歲인 그는 “視力을 잃어가며 오히려 마음의 視野가 넓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차라리 처음부터 全盲이었다면 더 나았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눈이 더 안 보이는 狀況에 每番 適應해야 하는 게 平生의 宿題거든요. 하지만 뒤집어보면 感謝한 일이에요. 제가 繼續 音樂을 할 수 있도록 미리 準備할 時間이 주어진 거니까요.”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기획·취재: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 송은석 記者▽디자인: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主人公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임채섭 作曲家가 屬한 뮤직프로듀싱 팀 ‘티스푼’ 유튜브 채널신광영 記者 neo@donga.com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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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kg 견디는 모터로 人間 關節·筋肉 具現”[障礙, 테크로 채우다]

    “경수야, 내 다리 한 짝 어디 있어?” 모터 소리로 웅웅대는 硏究室. 김승환 氏(35)가 건너便에 앉아있던 博士課程 시경수 硏究員을 불러 묻는다.“이거요?”경수가 선반에서 꽤 커다란 金屬 物體를 꺼내온다. 언뜻 보면 씨름選手의 굵직한 종아리도 넉넉히 들어갈 保護臺 같다. 승환이 自己 ‘다리 한 짝’을 들고 說明한다.“꽤 크죠? 이게 제가 지난番에 입었던 로봇의 다리에요. 다 分解해서 어디로 가고 이거 하나 남은 걸 겨우 찾았어요.”이곳은 大田 科學技術員(카이스트) 本願 機械工學桐 3層에 있는 웨어러블 로봇 硏究室, 一名 ‘엑소(exo)랩’이다.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해주는 로봇을 만드는 곳에 올해 1月 硏究員으로 正式 合流했다. 여기에서 승환이 환한 얼굴로 ‘過去의 다리 한 짝’을 붙들고 있는 理由는 單 하나, 來年에 直接 입고 뚜벅뚜벅 걸을 ‘未來의 두 다리’를 만들기 爲해서다.‘사이보그 올림픽’을 向해연구실에 들어서자 어른 키만 한 로봇 4臺가 記者를 맞았다. 天障 레일에 주렁주렁 매달린 웨어러블(着用型) 로봇 네 臺 中 가장 壓倒的이었던 것은 映畫 ‘아이언맨’을 聯想시키는 ‘워크온수트4’. 허리와 다리 全體를 튼튼한 몸體로 감쌌고, 關節 部位엔 큼직한 驅動機(모터)가 存在感을 誇示했다. 가슴팍에는 太極마크까지 붙어있었다.“2020년 사이배슬론에 나가서 金메달을 딴 로봇이거든요.” 승환이 팔을 들어 로봇을 만지며 말했다.‘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리는 사이배슬론은 身體障礙人들이 尖端 補助 裝備를 利用해 누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 겨루는 國際大會다. 4年마다 數十 個 國家 參加팀들이 스위스에 모여 眞劍勝負를 벌인다. 2020年 大會 當時 카이스트 硏究팀이 參與한 ‘엔젤로보틱스’팀은 下半身 完全痲痹 障礙人이 步行 로봇을 입고 겨루는 慶州에 出戰했다. 障礙物을 避하고, 앉았다가 일어나고, 傾斜路와 階段을 걷는 等의 ‘任務’를 完遂해야 하는 競技였다. 첫 出戰인 2016年엔 銅메달, 2020年엔 金메달을 따며 全 世界의 耳目을 單番에 끌어모았다.▶2020년 大會 決勝戰 映像 步기승환은 來年 10月 스위스에서 열리는 사이배슬론 2024에 出戰해 自身이 直接 입을 새 로봇을 硏究 中이다. 그는 배꼽 아래로는 움직이는 것은 勿論, 아무 外部感覺을 느낄 수 없는 ‘下肢 完全痲痹’ 障礙를 가졌다. 非障礙人에게 ‘걷기’는 本能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行爲지만 下半身 痲痹 障礙人들에겐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렵다. 이들이 걸을 수 있도록 로봇은 여러 機能을 遂行한다. 지난 두 番의 사이배슬론에 모두 出戰했던 金炳旭 選手가 2020年 大會 때 使用했던 로봇을 着用하고 걷기 示範을 보였다.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動作이 아닌, 수많은 過程의 連續體다. 먼저 다리를 整列하고, 몸을 45도 앞으로 기울인 뒤, 木발로 단단히 땅을 짚으면서 일어서 均衡을 잡아야 비로소 完成된다.몸을 앞뒤로 조금만 움직여도 中心을 잃기 일쑤다. 木발을 바닥에서 떼고 두 다리로만 버티는 것에도 尖端 技術이 動員된다. 걷는 것은 더욱 複雜하다. 다리를 얼마나 들어올려야 하는지, 무릎을 언제 굽혀야 하는지, 발이 바닥에서 언제 떨어지고 닿는지, 그 무엇도 本能的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로봇의 움직임을 精密하게 具現해야 한다.연구실 한쪽에선 壁面 据置臺에 매단 로봇 다리가 機械音을 내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푸른色과 붉은色 그래프가 물결 模樣을 그렸다. 파란 線은 ‘이렇게 움직여라’라고 미리 入力해둔 稼動 計劃이고, 빨간 線은 實際로 다리가 움직인 軌跡을 記錄한다. ‘랩場’을 맡고 있는 博士課程 김형준 硏究員은 “빨간 線이 파란 線에서 많이 멀어지지 않아야 目標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意味”라고 說明했다.비어있는 로봇이 혼자 움직이게 하는 건 比較的 쉽다. 하지만 몸무게가 數十kg인 사람이 着用한 狀態에서 隨時로 바뀌는 무게重心을 實時間으로 補正하는 것은 複雜하다. 이때 휠체어 발板에 놓인 승환의 다리가 갑자기 덜덜 떨리기 始作했다. 그가 익숙하다는 表情을 지으며 말했다. “痲痹 患者들에게 자주 오는 一般的인 症狀이에요. 로봇에 탔을 때 이렇게 豫告 없이 다리가 떨려도 저 ‘빨간 線’李 함께 흔들리지 않도록 安定的으로 잡아줘야 제대로 걸을 수 있어요.”관절에 달린 모터는 200kg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强力하다. 萬에 하나 誤作動한다면 關節과 筋肉을 다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 動作은 極度로 精巧하게 計算해야 한다. 그냥 로봇이 아닌, 사람이 입는 로봇이기 때문이다.수많은 ‘關節’과 ‘筋肉’의 機能을 特殊 設計하기 위해 資材를 直接 空輸한다. 見本도 종이를 오리고 粘土를 붙여 만든다. 승환의 表現에 따르면 “戰線과 볼트, 너트 빼고는 ‘톱니 하나까지’ 全部 直接 設計하는” 水準이다. 硏究室 구석엔 着用部를 만들 때 쓰는 裁縫틀까지 있다.걷겠다는 渴望, 두 番의 고비元來 승환은 工學이나 硏究와는 距離가 먼 사람이었다. 會社員으로 全國으로 出張을 다니며 1年에 自家用 走行距離가 6萬km를 훌쩍 넘겼다. 그 時節 집은 ‘잠자는 곳’이자 ‘씻고 옷 갈아입는 곳’에 不過했다. 그러다 交通事故가 났다. 그해 스물아홉 살이었다. 重患者室에서 깨어난 승환은 下半身을 내려다봤다. 멀쩡해 보였지만 感覺이 없고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는 痲醉가 안 풀렸다고 생각했다. 몇 年 前 傷處 縫合手術을 받던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番에는 달랐다. 이 痲醉는 永永 풀리지 않았다. 脊髓 完全 損傷이었다. 2年 넘는 再活 期間 내내 挫折과 希望이 번갈아 승환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의 中心을 굳건하게 잡아준 것은 女子親舊였다. 자꾸만 入院室로 찾아오는 女子親舊에게 몇 番씩이나 헤어지자는 말을 건넸지만, 女子親舊는 못 들은 척을 했다. 週末에는 승환의 어머니와 看病을 交代했다. 다치기 前엔 한 番도 뵙지 못한 女子親舊의 어머니도 病室로 찾아와 첫人事를 나눴다.그렇게 時間이 지났다. 結局은 女子親舊의 아버지가 電話를 걸어 ‘불號令’을 내렸다. 受話器 너머로 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어떤 方式이든 좋으니, 式場에는 걸어서 들어와라.”결혼을 許諾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女子親舊의 아버지는 승환의 몸 狀態를 正確히는 모르고 있었기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豫備 丈人’의 말에 승환은 가슴이 뛰었다. “어떻게든 걷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受話器에 대고 되물었다.승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로봇’이었다. 步行 로봇을 타볼 方法, 도와줄 사람을 必死的으로 찾아 헤맸다. 얼마 뒤 ‘2020年 사이배슬론 參加者 募集 公告’를 發見하고선 單숨에 支援했다. 여러 關門을 通過해 最終 候補 7人에 選定됐다. 豫備用 로봇도 맞췄다. 난生처음으로 ‘김승환’ 석 字를 써 붙인 로봇을 타고 걸음을 내디뎠다. 高地가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이튿날이었다. 갑자기 손발이 차가워지고 高熱이 몰려왔다. 처음 간 病院은 ‘毒感’을 疑心하며 藥을 處方해줬지만, 熱은 떨어지지 않았다. 結局 應急室에 실려 갔다. 醫療陣은 ‘褥瘡’에 敗血症까지 進行됐다는 診斷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몸에 뾰루지 같은 것이 난 걸 하나 보긴 했다. 그런데 敗血症이라니… 重患者室로 실려 가면서도 現實이 믿기지 않았다. 筋肉까지 全部 녹인 巨大한 피고름집을 긁어내는 手術을 받았다. 그 자리에 남은 건 텅 빈, 주먹보다도 큰 구멍이었다. 大會 出戰을 抛棄해야만 했다. ‘김승환’ 이름標가 붙었던 로봇은 낱낱이 分解돼 最終 出戰者用 로봇 두 臺의 豫備部品으로 使用됐다. 現在 남은 것은 硏究室 구석에서 겨우 찾아낸, 硏究員인 경수가 승환에게 갖다준 다리 한 짝뿐이다. 退院에는 거의 半年이 걸렸다. 會社에 復職했고, 結婚을 했다. 아이도 생겼다. 삶은 꽤 順坦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커다란 空虛함과 虛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러다 지난해 末, 마침내 機會가 다시 찾아왔다. 카이스트 웨어러블 로봇 硏究室이 낸 ‘障礙人 採用’ 公告를 發見했다. 當時에도 再活을 위해 病院을 다니며 步行로봇 訓鍊을 놓지 않고 있던 그는 곧바로 支援했다.두 番째 挑戰에서도 亦是나 고비가 찾아왔다. 再活 治療 過程에서 꼬리뼈 쪽에 손바닥만 한 물집이 생겨버린 것. 물집이 터져서 옷이 젖은 걸 알아차린 瞬間, 아찔함이 몰려왔다. 治療에 專念한 結果, 多幸히 傷處는 漸次 回復됐다.다니던 會社에 망설이며 새 挑戰도 알렸다. “合格하면 여기를 그만둬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質問이 떨어지기 무섭게, 代表는 “가야지! 只今 안 하면 언제 할래?”라며 단박에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마침내 카이스트 採用이 確定됐다. 會社 일을 마무리하고 사흘 만에 大田으로 向했다. 午前 9時, 첫 出勤의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들어선 硏究室은… 텅 비어있었다. 한 男子만이 긴 앞머리를 머리띠로 밀어 넘긴 채 疲困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밤을 지새우다 여태 못 들어간 경수였다. 엑소랩에서의 生活이 그렇게 始作됐다.‘무에서 有’를 넘어, ‘油에서 完成’으로下半身 痲痹 障礙人을 걷게 하는 로봇을 硏究하는 이곳에서 승환은 自身의 몸을 穩全히 내놨다. 스무 名 가까운 硏究員들 앞에서 그는 自身의 障礙 程度부터 生理現象을 어떻게 解決하는지까지 낱낱이 브리핑했다.키가 180cm인 승환은 어깨끈을 매고 天障 레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筋肉이 빠져 가늘어진 장딴지와 허벅지를 硏究員들이 直接 만져보게 하기 위해서다. 非障礙人이라면 옷이 잘 맞지 않으면 不便함을 바로 알아채지만 하지마비 障礙人은 다르다. 몸에 딱 맞게 着用하지 않으면 로봇 안에서 몸이 흔들려 均衡을 잃거나 本體와 摩擦하면서 火傷을 입을 수 있다. 3D스캐너로 身體 치數를 재는 것만으론 痲痹된 몸에 맞는 로봇을 設計할 수 없다.사실 旣存 硏究員들은 승환과 거의 接點이 없었다. 大部分이 20代 非障礙人이었고, 平生을 學校 안에서 工夫 잘하는 學生으로 지내왔다. 硏究室을 이끄는 공경철 敎授가 硏究員들에게 “障礙人을 採用하겠다”며 意見을 물었을 때, 적잖은 이들이 이메일로 負擔을 표했다. 自身의 硏究 成果를 제대로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障礙人 同僚까지 잘 챙길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걱정과 달리, 이제는 많은 것들이 물 흐르듯 이뤄진다. 함께 일한 지 2, 3달 만에 硏究員들과 승환은 스스럼없이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點心을 먹으러 우르르 構內食堂으로 가는 길, 휠체어에 탄 승환이 앞서가자 한 硏究員이 성큼성큼 다가가 휠체어를 代身 밀면서 말했다. “自律走行~!” 휠체어가 알아서 食堂으로 갈 테니 몸을 맡기라는 弄談이었다. 建物 밖으로 나갈 때에도 굳이 누군가 뒤에서 뛰어나와 ‘승환을 위해’ 門을 代身 밀어주지 않는다. 그저 앞에 있던 승환이 門을 열자 다른 硏究員들이 뒤따라 나왔다. 승환이 合流하면서 硏究의 速度와 效率性도 껑충 뛰었다. 想像 속 몸이 아닌, 實際 障礙가 있는 몸에 테스트하고 意見을 나누며 바로바로 修正할 수 있게 되면서다. 승환이 엑소랩의 ‘競爭力’이 된 셈이다. 밤샘을 밥 먹듯 하는 다른 硏究員들과 달리, 승환은 아직까진 可能한 6, 7時 退勤 原則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서는 제 몸이 資産이자 自願이니까, 健康管理를 잘하는 것도 제 重要한 役割이에요” 그는 덧붙였다.다시 걸어보니 ‘걷는 로봇’ 抛棄 못 해來年 사이배슬론 競技 難易度는 4年 만에 훌쩍 높아진다. 아직 步行로봇의 ‘必需品’인 木발 없이 박스를 든 채 걸어야 하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높은 부엌 饌欌에 있는 物件도 꺼내야 한다. 日常生活에 必要한 거의 모든 機能을 遂行할 수 있는지 겨루는 水準이다.2016년 첫 挑戰을 앞두고 硏究팀과 出戰者들은 事實上 未完의 로봇으로 訓鍊을 始作했다. 無數한 施行錯誤와 合宿까지 不辭한 結果, 經歷과 資本으로 武裝한 海外 팀들을 相對로 두 番 連續 奇跡을 일궜다.그때 ‘無에서 有’를 創造했다면, 只今은 ‘劉’를 ‘完成’으로 만들어가는 過程이다. 博士課程 박정수 硏究員은 “이제 다음 目標는 障礙人이 도움 없이 스스로 着用할 수 있는 로봇”이라고 했다.“패러다임 自體가 바뀌는 거예요. 只今은 完全히 ‘一對一 맞춤’이라 臺當 1億 원이 넘거든요. 입는 것도 두세 名이 도와야 艱辛히 3分 걸리고요. 이젠 本體는 共有하고, 몸에 密着되는 ‘着用部’만 3D프린터로 精巧하게 맞추는 方法을 硏究하는 거예요.”가격이 내려가고 입기도 簡便해지니까 누구나 로봇을 입을 수 있는 段階로 한 걸음 더 앞서간다는 것. 정수는 “大會에서는 金메달이라는 最大 成果를 거둬봤잖아요”라며 “이番엔 사람들에게 正말 必要한 걸 만들어서 더 큰 ‘임팩트’를 주는 게 目標”라고 强調했다. 勿論 下半身 痲痹 障礙人이 로봇만 입으면 非障礙人과 같은 日常을 즐길 程度의 商用化가 單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商用化는 技術 發展뿐 아니라 社會 인프라와 法律, 文化까지 複雜하게 얽힌 問題이기 때문이다. 相對的으로 低廉하고 移動性이 좋은 휠체어를 넘어서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승환이 步行 로봇 開發에 매달리는 理由는 다시 걸어봤기 때문이다. 로봇을 처음 탄 瞬間 ‘걸었던 삶’의 記憶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家族과 散策하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對話하고, 맛집에도 門턱 걱정 없이 드나들던 예전의 日常이 눈에 선했다. 승환은 “어떻게든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걸 느껴보니, 더 抛棄할 수가 없어졌다”고 그는 말했다.하반신 障礙人에게 걸음은 그 自體로 挑戰이자 스포츠다. 휠체어가 몸의 一部라면, 로봇은 極限에 挑戰하려 서킷을 달리는 스포츠카다. 승환이 덧붙였다. “自動車도 100年 前에는 尖端 技術의 集約體였잖아요. ‘걷는 로봇’이 只今은 스포츠카처럼 少數를 위한 高度의 技術이지만 10年 뒤에는 달라지지 않을까요.”대회까지 남은 日程을 說明하는 승환의 휠체어 등받이에 노란色 虎狼이 模樣 뜨개 人形이 달랑거렸다. “아들이 虎狼이띠거든요. 台命이 ‘빅토리(勝利)’ 할 때 토리였어요.”얼마 前 돌을 앞두고 家族寫眞을 찍을 때, 토리는 카이스트의 마스코트인 ‘넙죽이’ 人形을 작은 손으로 꼭 붙잡았다. 마치 이곳이 아빠에게 얼마나 큰 意味를 갖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했다.승환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始作한 아들이 언젠가 “아빠는 왜 못 걸어?”라고 물어 올 때 “아빠는 다쳤지만 로봇을 만들어서 이렇게 걷잖아”라고 말하는 모습을 想像해본다. 아들이 親舊들에게 “너희, 로봇 타봤어? 우리 아빠는 탄다!”라고 자랑하는 얼굴도 想像하곤 한다.6년 前 交通事故로 두 다리가 굳어졌을 때 승환을 일으켜 세운 건 家族이었다. 이제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서고 싶다는 無數한 꿈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再活을 처음 始作했을 때, 로봇을 처음으로 타 봤을 때, 硏究室에 들어온 只今, 승환의 마음은 한 番도 變한 적이 없다. 승환은 虎狼이 人形을 바라보며 말했다.“저한테는 로봇을 타다가 다쳐도 그 自體가 過程이에요. 設令 제 다리가 부러져도 로봇만 탈 수 있다면 괜찮아요. 아팠던 적, 絶望했던 적은 많지만 걷겠단 생각을 抛棄한 적은 없으니까요.”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기획·취재: 大戰=홍정수 hong@donga.com 신광영 이채완 記者▽寫眞: 大戰=송은석 記者▽디자인: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主人公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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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 3月 美國 미니애폴리스 空港 入國場에 軍服 차림의 男性 10餘 名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섰다. 軍服 어깨 部分에 우크라이나軍을 象徵하는 三枝槍 標示가 있었는데, 길게 늘어뜨린 팔소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바짓단 아래로는 둥글게 봉합된 무릎이 드러나 있었다. 이들은 헤르손, 바흐무트, 마리우폴 等 죽음의 激戰地에서 팔다리를 잃은 우크라이나 軍人들이었다. 그中 한 名인 필로넨코(22)의 事緣이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傳해졌다. 그는 지난해 負傷當한 戰友를 옮기던 中 地雷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軍 入隊 前 오른쪽 다리에 새겼던 ‘新(God)’이란 文身은 戰爭터에 남겨졌다. 함께 入國한 다른 軍人들 亦是 砲擊을 當하거나, 地雷를 밟거나, 負傷兵을 부축하다가 러시아軍의 攻擊을 받았다. 이들은 美國 非營利團體의 支援으로 미네소타州 再活센터에서 尖端 義手와 義足을 맞춘 뒤 生涯 첫걸음을 떼는 아기처럼 걷는 法을 배운다. 美 메릴랜드 再活센터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運營된다. 2年 前까지만 해도 ‘切斷 障礙’ 美軍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우크라이나 軍人이 續續 到着하고 있다. 退役 美軍들이 寄贈한 醫族들은 이들 新規 入所者들의 다리가 되고 있다. 偵察 任務 中 砲彈에 맞아 두 다리를 잃은 페둔(24)은 그렇게 支援받은 義足을 우크라이나 國紀 索引 노랑과 파랑으로 漆했다. 美國에는 이들을 空港에서 픽업해 再活센터로 데려다주거나 自身의 집 房 한 칸을 내어주는 自願奉仕者들이 적지 않다. 한 自願奉仕者는 NYT에 “美國에 到着할 땐 靈魂이 부서진 듯 보였던 이들이 첫걸음을 내딛기 始作하면 새로 태어난 듯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2月 戰爭이 始作된 以後 死亡한 우크라이나 軍人은 10萬 名에 이를 것으로 推定된다. 이는 數十萬 名의 負傷者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民間인 負傷者까지 合하면 規模는 훨씬 커진다. 이들 中 海外에서 再活 機會를 얻는 건 少數에 不過하다. 戰爭이 나면 再活 需要가 暴增하지만 再活 인프라는 脆弱해진다. 病院이 攻擊을 받게 돼 病床은 줄고, 醫療 人力은 흩어진다. 藥品이나 補助器具度 貴해진다. 電力難까지 겹친다. 只今 우크라이나가 正確히 이런 狀況이다. 팔다리를 잃거나 永久 脊椎損傷 等 障礙를 입은 軍人과 市民들이 應急手術만 받고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30代 女性 나탈리野는 지난해 4月 딸과 汽車驛에서 避亂 列車를 기다리다가 러시아의 砲擊을 받았다. 暫時 氣絶했다가 눈을 떴을 때 11歲 딸의 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遑急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自身의 한쪽 다리도 사라져 있었다. 그날 汽車驛에선 50名이 숨지고 두 母女처럼 100餘 名이 負傷을 當했다. 待避所에서 暫時 물을 求하러 나왔다가 砲彈에 다리를 잃은 16歲 少女, 아파트 殘骸 속에서 팔 없이 救助된 妊娠婦 等 수많은 民間人이 障礙를 갖게 됐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世界 어느 나라보다 障礙人 인프라가 切實해지고 있다. 向後 우크라이나 再建의 核心은 人的資源의 復舊다. 다르게 말하면 무너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유럽聯合(EU)李 會員國 再活病院에 우크라이나 重傷者 2000餘 名을 나눠 受容한 것도 이런 趣旨가 反映된 것이다. 日本도 每年 10∼20名의 負傷兵을 받기로 했다. 尖端 醫療와 技術을 갖춘 우리 亦是 再活 支援에 積極 同參할 必要가 있다. 最近 우크라이나에서 찍힌 寫眞 한 張이 世界人의 心琴을 울렸다. 戰場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은 男便을, 夫人이 따뜻하게 끌어안은 寫眞이다. 이 20代 夫婦는 눈과 팔의 빈자리를 채워줄 技術과 再活機關을 애타게 찾고 있다. 1年 半이 되어가는 戰爭은 언젠가 끝날 테지만 障礙人으로 다시 삶을 始作하는 그들은 앞으로도 自身과의 戰鬪를 치러야 한다. 잘 디자인된 補助器具들이 몸의 一部로 채워진다면 그들의 戰鬪가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다. 신광영 國際部 次長 neo@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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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 3月 美國 미니애폴리스 空港 入國場에 軍服 차림의 男性 10餘 名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섰다. 軍服 어깨 部分에 우크라이나軍을 象徵하는 三枝槍 標示가 있었는데, 길게 늘어뜨린 팔소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바짓단 아래로는 둥글게 봉합된 무릎이 드러나 있었다. 이들은 헤르손, 바흐무트, 마리우폴 等 죽음의 激戰地에서 팔다리를 잃은 우크라이나 軍人들이었다.그중 한 名인 필로넨코(22)의 事緣이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傳해졌다. 그는 지난해 負傷當한 戰友를 옮기던 中 地雷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軍 入隊 前 오른쪽 다리에 새겼던 ‘新(God)’이란 文身은 戰爭터에 남겨졌다. 함께 入國한 다른 軍人들 亦是 砲擊을 當하거나, 地雷를 밟거나, 負傷兵을 부축하다가 러시아軍의 攻擊을 받았다. 이들은 美國 非營利團體의 支援으로 미네소타州 再活센터에서 尖端 義手와 義足을 맞춘 뒤 生涯 첫걸음을 떼는 아기처럼 걷는 法을 배운다.미 메릴랜드 再活센터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運營된다. 2年 前까지만 해도 ‘切斷 障礙’ 美軍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우크라이나 軍人이 續續 到着하고 있다. 退役 美軍들이 寄贈한 醫族들은 이들 新規 入所者들의 다리가 되고 있다. 偵察 任務 中 砲彈에 맞아 두 다리를 잃은 페둔(24)은 그렇게 支援받은 義足을 우크라이나 國紀 索引 노랑과 파랑으로 漆했다.미국에는 이들을 空港에서 픽업해 再活센터로 데려다주거나 自身의 집 房 한 칸을 내어주는 自願奉仕者들이 적지 않다. 한 自願奉仕者는 NYT에 “美國에 到着할 땐 靈魂이 부서진 듯 보였던 이들이 첫걸음을 내딛기 始作하면 새로 태어난 듯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2月 戰爭이 始作된 以後 死亡한 우크라이나 軍人은 10萬 名에 이를 것으로 推定된다. 이는 數十萬 名의 負傷者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民間인 負傷者까지 合하면 規模는 훨씬 커진다. 이들 中 海外에서 再活 機會를 얻는 건 少數에 不過하다. 戰爭이 나면 再活 需要가 暴增하지만 再活 인프라는 脆弱해진다. 病院이 攻擊을 받게 돼 病床은 줄고, 醫療 人力은 흩어진다. 藥品이나 補助器具度 貴해진다. 電力難까지 겹친다. 只今 우크라이나가 正確히 이런 狀況이다. 팔다리를 잃거나 永久 脊椎損傷 等 障礙를 입은 軍人과 市民들이 應急手術만 받고 집으로 돌려보내진다.30대 女性 나탈리野는 지난해 4月 딸과 汽車驛에서 避亂 列車를 기다리다가 러시아의 砲擊을 받았다. 暫時 氣絶했다가 눈을 떴을 때 11歲 딸의 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遑急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自身의 한쪽 다리도 사라져 있었다. 그날 汽車驛에선 50名이 숨지고 두 母女처럼 100餘 名이 負傷을 當했다. 待避所에서 暫時 물을 求하러 나왔다가 砲彈에 다리를 잃은 16歲 少女, 아파트 殘骸 속에서 팔 없이 救助된 妊娠婦 等 수많은 民間人이 障礙를 갖게 됐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世界 어느 나라보다 障礙人 인프라가 切實해지고 있다.향후 우크라이나 再建의 核心은 人的資源의 復舊다. 다르게 말하면 무너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유럽聯合(EU)李 會員國 再活病院에 우크라이나 重傷者 2000餘 名을 나눠 受容한 것도 이런 趣旨가 反映된 것이다. 日本도 每年 10~20名의 負傷兵을 받기로 했다. 尖端 醫療와 技術을 갖춘 우리 亦是 再活 支援에 積極 同參할 必要가 있다.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찍힌 寫眞 한 張이 世界人의 心琴을 울렸다. 戰場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은 男便을, 夫人이 따뜻하게 끌어안은 寫眞이다. 이 20代 夫婦는 눈과 팔의 빈자리를 채워줄 技術과 再活機關을 애타게 찾고 있다. 1年 半이 되어가는 戰爭은 언젠가 끝날 테지만 障礙人으로 다시 삶을 始作하는 그들은 앞으로도 自身과의 戰鬪를 치러야 한다. 잘 디자인된 補助器具들이 몸의 一部로 채워진다면 그들의 戰鬪가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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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cm 낮은 눈높이로 ‘無障礙’를 디자인하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金예솔 氏(35)가 바라보는 世上은 걷는 사람들보다 50cm가 낮다. 그의 눈높이에선 걷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올해로 스웨덴 生活 6年 次. 예솔이 다니는 公共圖書館에는 圖書 檢索臺의 높이가 제各各이다. 스웨덴人 平均 伸張에 맞춘 것부터 키가 작은 사람, 어린이 等에 맞춰 다양한 높이의 檢索臺가 나란히 있다. 옷가게에서 쇼핑을 하다 휠체어 리프트를 發見하기도 한다. 賣場 내 單 높이가 달라 두 걸음만 올라가면 되는 階段인데 말이다. 市內버스를 타면 내리는 門 앞에 휠체어 空間이 널찍하게 있다. 그곳은 乳母車를 가지고 버스에 탄 父母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선 마치 누군가의 狀況을 미리 헤아려보고 빈틈을 채워준 것처럼 配慮가 곳곳에 녹아 있어요.”철저히 ‘걷는 사람’에 맞춰진 家具들하지만 스웨덴에서도 집에 들어오면 韓國과 다를 게 없다. 인테리어, 特히 家口는 徹底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의 觀點에서 設計돼 있다. 휠체어 利用 經歷 28年 次인 예솔에게도 하루하루가 挑戰이다. 휠체어에 앉아 가스레인지 불을 켜면 바로 눈앞에서 불이 타오른다. 싱크臺가 높아 材料 손질이나 칼질도 만만치 않다. 水道꼭지에도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찌개가 잘 끓고 있는지 냄비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휠체어를 탄 채 뜨거운 料理를 居室 食卓으로 옮기려면 외줄타기를 하듯 妙技를 부려야 한다. 食卓이나 冊床은 휠체어 탄 사람에겐 너무 높거나 낮을 때가 많다. 다리 사이 間隔도 좁아서 사람들과 같이 테이블에 앉으려면 바퀴에서 딱 걸린다.예솔은 “障礙人이어서 도움이 必要한 게 아니라, 障礙가 있으면 혼자 日常을 꾸려가기 어렵게 디자인된 環境 탓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必要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家具 디자인에는 이런 問題意識이 담겨 있다. ‘다른 몸’을 가진 사람에게도 安全하고 便安한 家具를 만들자는 것이다. 예솔은 韓國의 大學에서 産業디자인을 專攻했다. 卒業 後엔 KT에 入社해 온라인서비스 畵面을 디자인했다. 일은 適性에 맞았지만 모니터 畵面이 아닌, 現實의 空間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가 4年間 다니던 職場을 그만두고 擇한 것이 바로 家口였다. 2018年 스웨덴 家口企業人 이케아(IKEA) 奬學生으로 選拔돼 留學길에 올랐다. 스웨덴 南西部에 있는 룬드臺에서 産業디자인 碩士課程을 마쳤다.예솔이 휠체어 利用者를 위한 家具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 逸話가 있다. 그날은 스웨덴人 親舊 안나(52)의 招待로 저녁食事 자리에 간 날이었다. 50年 가까이 ‘걷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2年 前 下半身이 痲痹된 後에도 집으로 親舊들을 불러 料理해주는 걸 如前히 즐겼다. 그날도 안나는 平素처럼 廚房과 居室을 오가며 直接 飮食을 날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를 錚盤에 담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바퀴를 밀 때마다 錚盤 위 접시가 달그락거렸다. 예솔과 親舊들은 居室 食卓에서 不安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봤다. 障礙人이 도와 달라고 하기 前까진 나서지 않는 게 스웨덴式 매너였다.“안나가 왜 直接 飮食을 나르려 했는지 理解가 돼요. 휠체어를 탄다고 依存的일 必要는 없잖아요.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飮食을 나르는 모습이 優雅해 보이지 않았어요. 안나는 親舊들에게 近似하게 待接하는 게 重要한 사람인데 그러려면 안나에게 뭐가 必要할까 생각하게 됐어요.”그녀를 자유롭게 해준 家具들記者가 3月 末 스웨덴 룬드에 있는 예솔의 집에 들어섰을 때 크림色 壁面에 原木 家具들이 配置된 洗練된 北유럽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仔細히 살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현관에 들어서자 허리 높이에 손바닥만 한 正四角形 버튼이 있었다. 휠체어에 탄 狀態로 버튼을 눌러 玄關門을 自動으로 여닫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各 房 門에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긴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房은 勿論이고 浴室까지 門턱이 모두 除去돼 있었는데 턱을 除去한 곳을 壁 色깔과 같은 톤으로 마감해 눈에 잘 띄지 않았다.가구들도 仔細히 살펴봐야만 微細한 差異를 드러냈다. 휠체어 타는 1人 家口로 스웨덴에서 每年 移徙를 다니면서, 휠체어 타는 親舊들의 不便을 보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예솔이 直接 具現해낸 家具들이었다. 于先 廚房에 바퀴가 달린 原木의 푸드 트레이가 있었다. 안나와의 저녁食事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로 그 家口였다. 휠체어에 탄 채 가볍게 밀기만 하면 飮食이나 무거운 物件을 옮길 수 있게 했다. 구멍 뚫린 織物로 사이드바를 만들어 휠체어에 앉아서도 안에 뭐가 놓여 있는지 잘 보였다.거실의 原形 테이블은 다리가 3個였다. 普通 4個인 테이블 다리를 3個로 줄이고, 代身 다리 사이 間隔을 넓혔다. 테이블 다리 사이가 좁아 휠체어 바퀴가 걸리는 問題를 改善한 것이었다. 옷欌을 열자 위쪽에 있는 옷걸이 棒에 긴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이걸 잡아당기면 옷걸이 鳳이 아래로 내려와 휠체어에 앉아서도 옷을 쉽게 걸고 꺼낼 수 있었다.“이 家具들이 제겐 自由의 첫걸음이에요. 自由가 대단한 게 아니에요. 願할 때 門을 여닫을 수 있고, 옷 걸고 싶을 때 옷 걸고, 料理한 飮食을 食卓에서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집에서 이런 걸로 苦悶하지 않잖아요. 휠체어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야 해요.”예솔은 휠체어 利用者들도 쓰기 便한 家口를 만들기 위해 스웨덴人 木手인 페더 칼슨과 힘을 합쳤다. 페더는 예솔의 룬드臺 在學 時節 木工藝 實習 講師였다. 예솔이 디자인을 그려서 넘기면 페더가 試製品으로 만들었다. 예솔은 試製品을 써보며 設計를 補完했고, 어느 程度 完成品이 나오면 휠체어를 타는 知人들에게 보내 피드백을 받았다.두 사람은 2021年 ‘릴라 엘리펀트(작은 코끼리)’라는 家具會社를 차려 製作을 始作했다. 1年 사이에 5點의 家口가 世上에 나왔고, 푸드 트레이 ‘클룸픽(Klumpig)’은 韓國에도 進出해 販賣되고 있다. 페더는 “저 亦是 障礙人의 삶을 잘 몰랐는데 예솔과 作業하면서 世上을 다르게 보게 됐다”고 했다.‘장애 招來하는 環境’ 바꾸는 디자인의 힘예솔은 스웨덴에서 틈틈이 家口 디자인을 하면서 職場 生活도 竝行하고 있다. 全 世界 主要 旅行地의 宿所나 博物館, 各國의 大型마트, 百貨店 等의 障礙人 接近性 情報를 提供해주는 情報技術(IT) 플랫폼 會社에 다닌다. 휠체어用 傾斜路나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視覺障礙人用 點字나 聽覺障礙人用 補助 裝置가 具備돼 있는지 等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디자인하는 게 예솔의 業務다.회사 이름은 ‘障礙人들 世上을 發見하다(Handicap people discovers the world)’란 말을 줄인 ‘핸디스커버’다. 이 會社 創業者 세바스티甇에겐 筋肉病으로 다섯 살 때부터 휠체어를 타온 아들이 있다. 그는 故鄕인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로 家族旅行을 갈 때마다 휠체어 바퀴로 넘어설 수 없는 障壁에 數없이 부딪혔다. 障礙人 施設이 없으면, 없다고 알려만 줘도 헛걸음을 줄여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세바스티앵(사진)은 高齡化 等으로 身體 機能에 制約이 생긴 人口가 늘고 있고, 障礙를 갖게 된 後에도 旅行과 쇼핑을 즐기며 삶의 質을 維持하려는 需要가 많아진다는 點에 着眼했다. “經濟力을 갖춘 隱退者들이 많고, 障礙人들은 만족스러운 서비스에 기꺼이 代價를 支拂하려는 性向이 剛해 市場性이 있습니다. 企業들도 유럽聯合(EU) 政策에 따라 障礙人 施設 投資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를 알리고 싶어 해 兩쪽의 必要가 맞아떨어지는 거죠.”장애 後에도 삶이 優雅하도록3월 말 스웨덴 룬드는 連日 비가 내렸다. 記者는 룬드臺 안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예솔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窓門 너머로 예솔이 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가로질러 오는 게 보였다. 휠체어 앞에 動力裝置를 結合해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카페로 들어온 예솔은 오토바이 앞部分처럼 생긴 動力裝置를 分離해 구석에 ‘駐車’했다. 그러곤 빗방울이 맺힌 바람막이 잠바를 탈탈 털어 휠체어 椅子에 건 뒤 記者와 마주 앉았다.―스웨덴에 살아보니 어떤가.“한국과 比較하자면 障礙人이 살기에 스웨덴은 制度가 좋고, 韓國은 사람이 좋다. 스웨덴은 돌봄 시스템이 탄탄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障礙人이 곤란한 狀況에 處해도 도움을 請하지 않는 限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 障礙人이 도움의 對象으로 認識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면 失禮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韓國은 制度에 빈틈이 많지만 그 틈을 사람들이 메운다. 韓國에선 휠체어를 타고 가다 問題가 생기면 꼭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왜 家具 디자인에 關心을 갖게 됐나.“휠체어를 타다 보면 世上이 내 얼굴에 대고 ‘너는 여기 들어오지 마’라면서 밀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排他的인 環境을 만드는 첫 障壁이 家具인 것 같다. 家口는 身體가 環境과 맞닿는 첫 地點이니까. 집에 있는 家具마저 障礙人에게 差別的인 境遇가 많다. 一部 障礙人用 醫療器具가 있긴 하지만 入院할 때만 一時的으로 쓴다. 退院 以後 집에서 보내게 될 餘生을 위한 디자인이 必要하다.”―가구도 商品인데 많이 팔려야 하지 않나.“물론이다. 휠체어 障礙人에게 最適의 디자인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魅力的인 디자인을 하고 싶다. 스웨덴에서 乳母車를 가지고 市內버스에 탄 父母들이 휠체어用 空間을 愛用하듯 障礙人을 于先 考慮한 디자인은 普遍的으로도 有用할 수 있다. 요즘 스마트폰 畵面 背景을 검은色으로 設定하는 다크모드도 마찬가지다. 元來 視覺障礙人들이 携帶電話를 볼 수 있도록 導入한 機能인데 看護師들이 많이 쓴다. 夜間에 入院 患者들 點檢할 때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다크모드로 하면 患者들이 덜 妨害받기 때문이다.” (예솔이 만든 푸드 트레이 ‘클룸픽(Klumpig)’을 製作·販賣하는 ‘아이엠히어’ 정혜원 代表는 “購買 顧客들 中 相當數가 40, 50代 非障礙 女性들이다. 本人들이 써보시고 父母님께 드리려고 再購買하는 境遇도 많다”고 傳했다.)―어떤 家口를 志向하나.“아름답고 優雅한 家口를 만들고 싶다. 삶의 어느 瞬間 障礙를 갖게 되더라도 만족스러운 環境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저 亦是 그랬고, 障礙를 갖게 되면 그동안 追求했던 삶을 抛棄해야 한다는 挫折感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디자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事故를 當할 수 있고, 女性들은 出産을 한다. 삶의 一定 期間은 몸이 不便한 狀態로 살아간다. 障礙가 障礙로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家口는 많은 사람에게 必要할 수 있다.”―디자이너란 어떤 사람인가.“디자이너가 世上을 보는 눈을 통해 만들어진 結果物이 디자인이다. 그래서 平素 他人의 삶을 섬세하게 觀察하려고 努力한다. 그래야 그들의 눈이 되어줄 수 있다.”내 몸의 所重한 一部, 휠체어記者는 예솔의 집으로 옮겨 寫眞 撮影을 하며 조심스럽게 提案을 하나 했다. 平素에 휠체어에서 내려와 쉴 때는 어떻게 하는지 찍고 싶다고 하자 예솔은 居室의 그네 椅子에 옮겨 앉았다. 撮影을 始作하려는데 예솔이 말했다.“저기 휠체어 좀요.”기자가 無心코 카메라 앵글 밖으로 옮겨놨던 휠체어를 갖다 달라는 말이었다. 예솔은 휠체어를 自己 옆으로 끌어당기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寫眞記者는 휠체어의 검은色이 周邊 크림色 背景에 비해 너무 色感이 强해 暫時 빼놓고 찍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예솔은 휠체어가 寫眞에 함께 담겼으면 좋겠다는 意見을 굽히지 않았다. 記者는 다음 날 예솔과 인터뷰를 하며 휠체어가 寫眞에 淡基길 願했던 特別한 理由가 있는지 물었다.“저는 脊髓炎이 찾아온 일곱 살 때부터 28年間 휠체어를 타온 사람이에요. 제 몸의 自然스러운 一部죠. 特別히 어떤 理由가 있어서라기보다 撮影을 하는데 휠체어가 옆에 없어서 瞬間 가까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날 인터뷰에서 예솔은 “障礙라는 것을 안타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저의 障礙를 眞率하게 對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나 自身의 민낯을 마주보는 게 힘들지만 勇氣 내서 直視하고 나면 그때부턴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저 亦是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기까지 오랜 時間이 걸렸지만 이젠 몸에 있는 하나의 點처럼 느껴져요.”가구로 스웨덴 뒤흔들다예솔은 4月 末 기다리던 電話 한 通을 받았다. 그가 만든 家具들이 룬드市가 屬한 스웨덴 스코네週(州) 主管 ‘2023 디자인 어워드’ 大賞作으로 選定됐다는 消息이었다. 예솔은 스웨덴의 디자인 公募展에 여러 番 挑戰했지만 落榜을 거듭했다. 마침내 디자인 先進國 北유럽에서 眞價를 인정받은 것이다. 主催 側은 “어떤 身體 條件을 갖고 있든 充滿한 日常을 보낼 價値가 있다는 接近法은 스웨덴에도 如前히 남아 있는 通念을 뒤흔들었다”고 選定 理由를 밝혔다.“가구 디자인을 繼續하려면 아직은 持續的인 펀딩이 必要해요. 그래서 公募展 때마다 繼續 냈는데 이番엔 眞짜 될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番番이 떨어졌어요. ‘이 作業을 世上이 果然 알아봐 줄까’ 하는 自己 疑心이 들 때도 많았죠. 제가 너무 失望하니까 페더가 그러더군요. ‘우리가 椅子 하면 딱 떠오르는 디자이너, 照明 하면 생각나는 그 디자이너… 그 스타 디자이너들이 알려지기까지는 平生이 걸렸다’고요. 제가 너무 빨리 인정받고 싶다는 欲心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예솔은 4月 16日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걸즈온휠즈’라는 토크콘서트에 參席했다. 휠체어를 타는 2030世代 女性들이 모여 各自의 일과 日常을 共有하는 자리였다. 初等學生부터 30代까지 多樣한 年齡의 女性들이 탄 휠체어 50餘 臺가 舞臺 앞을 가득 메웠다. 行事 招待를 받고 스웨덴에서 날아온 예솔이 舞臺에 올랐다. 휠체어들 사이로 한 20代 女性이 自身의 視覺障礙人 案內犬을 쓰다듬으며 椅子에 앉아 있는 것을 예솔은 有心히 바라봤다. 예솔은 그 女性의 귓가에 펼쳐놓듯이 自己紹介를 始作했다.“여러분, 제 紹介를 해볼게요. 只今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짙은 灰色의 手動 휠체어예요. 제 머리는 검은色에 斷髮머리이고, 위아래로 베이지色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습니다. 오늘 좀 밝은 느낌을 내보고 싶어서요. 자 그럼, 제 이야기를 始作해 볼까요.”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특별취재팀>▽기획·취재:룬드(스웨덴)=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룬드(스웨덴)=송은석 記者▽디자인: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主人公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김예솔 디자이너 유튜브 計定룬드(스웨덴)=신광영 記者 neo@donga.com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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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代身 로봇팔로 라이딩 “世上에 한발짝 더”[障礙, 테크로 채우다]

    “그날 사이클 트랙에 들어서는데 컨디션이 最高였어요. ‘이래도 나를 國代(國家代表)로 안 뽑아?’ 이런 생각이 들 程度였죠. 新記錄을 낼 거 같아서 競技 前에 主催 側에도 얘기해놨어요. 元來 뒤에서 出發한 選手가 앞 選手를 따라잡으면 試合이 途中에 끝나는데 제가 앞 選手 따라잡더라도 흐름을 끊지 말아달라고요.”지난해 10月 全國體典 사이클 競技가 열린 講院 襄陽 벨로드롬에 場內放送이 울려 퍼졌다. ‘이番 競技는 追越 勝負가 아니고 記錄競技입니다. 審判陣은 競技 中斷 없이 끝까지 進行해주세요.’장애인 사이클 國家代表 常備軍인 나형윤 選手(39)는 이날 自信感에 부풀어있었다. 出發線에 선 형윤은 한바퀴가 333m인 달걀形 트랙을 찬찬히 살폈다. 勝負를 겨룰 다른 選手는 半 바퀴 앞인 맞은便에서 出發待機 中이었다. 이 트랙을 12바퀴(銃 4km) 道는 競技였다. 형윤은 몇 週 前 非公式 4km 競技에서 旣存 新記錄을 훌쩍 넘겼다. 國家代表 選拔戰人 이番 體典에서 그때처럼만 달려준다면 太極마크를 달 수 있었다.형윤은 出發線 옆 觀衆席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딸 하나린(8)과 否認 朴美善(39) 氏였다. 하나린은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는 뜻의 純우리말이다. 딸아이는 이날 아침에도 平素처럼 형윤에게 ‘로봇팔’을 건네며 “아빠, 오늘도 一等 해”라고 말했다. 두 팔이 없는 형윤은 딸이 로봇팔이라고 부르는 電子義手를 着用하고 사이클을 탄다. 팔뚝 切斷 部位 筋肉의 微細한 움직임으로 義手의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다.“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린, 아빠 팔 좀 갖다 줘’ 이렇게 말하곤 해요. 競技 있는 날 아침엔 드라이器나 손 扇風機로 義手를 꼼꼼히 말려요. 義手와 皮膚 接觸面에 땀이 차면 誤作動이 날 수 있어서요.”국가대표 選拔戰 그날出發 信號가 울리자 형윤은 ‘댄싱’을 始作했다. 鞍裝에서 엉덩이를 뗀 채 사이클을 左右로 흔들며 매섭게 치고 나갔다. 사이클 選手들은 速度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핸들 손잡이를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춤을 추듯 左右로 무게重心을 옮긴다. 이 때 페달을 힘껏 구르면서 同時에 핸들을 强하게 잡아당길수록 速度가 빨리 붙는다. 형윤에겐 電子義手가 빠지지 않도록 힘 調節을 잘 해야 하는 瞬間이다. 이 때만 해도 競技는 順調로운 듯 했다.댄싱으로 半 바퀴쯤 달려 速度가 붙자 형윤은 鞍裝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사이클 바퀴에서 나는 ‘쐐’ ‘쐐’ 소리가 고요해진 競技場을 가득 채웠다. 이제 형윤은 핸들 손잡이에서 손을 떼서 핸들 가운데 세로로 뻗어있는 티티바(TT바·Time Trial Bar)로 옮겨 잡을 타이밍이었다. 티티바를 잡아야 몸이 공처럼 모아져 空氣 抵抗을 最小化시킬 수 있다.“왼손부터 티티바로 옮겨 잡으려고 하는데 핸들을 쥔 손이 펴지지가 않는 거예요. 손이 그 狀態로 잠겨버린 거죠. 댄싱할 때 팔을 살살 당긴다고 당겼는데 힘이 들어갔는지 義手가 살짝 들려서 배터리 接觸 不良이 된 거 같더라고요. 急한 마음에 배터리가 單子와 잘 맞붙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른팔을 핸들에서 떼서 왼팔을 막 때렸어요. 근데 왼손이 움직이기는커녕, 오른손마저 衝擊 때문에 誤謬가 나서 손이 벌려진 채로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응원석에 있던 미선은 비틀비틀 트랙을 달리는 男便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승부욕이 强한 형윤에게 미선은 “欲心 내지 말고 다치지 말자”는 말을 자주 해왔다. 미선에게 男便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를 들려왔다.“손이 망가졌어! 손이 안돼!”형윤은 오른손이 空中에 들린 채로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死力을 다해 페달을 구르고 있었다. 사이클 專用 競技場인 밸로드롬은 트랙 兩끝에 있는 半圓 模樣 曲線走路의 傾斜가 40度 程度로 가파르다. 빠른 速度로 달리는 選手들이 트랙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막기 爲해서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형윤은 波濤 꼭대기에 선 서퍼처럼 아슬아슬하게 曲線走路를 달렸다. 몸이 부서지고 난 뒤 형윤이 두 팔을 잃던 날 저녁은 强風이 불었다. 그가 江原道 最前方인 22師團 GOP 部隊 中士로 勤務하던 2006年 11月이었다. 强風에 高壓線이 끊어져 北쪽을 비추는 鐵柵 警戒等이 모두 꺼져버렸다. 夜間에 北韓軍의 動態를 살피기 어렵게 된 非常事態였다. 上級部隊에서 電氣 技術者를 急派했다. 그 技術者는 바람이 繼續 불어 危險하다며 復舊 作業을 抛棄했다.그러자 部隊長은 형윤에게 作業을 請했다. 형윤은 部隊 幹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電報대에 올랐다. 하지만 몇 時間 뒤 그가 精神을 차렸을 땐 高壓電氣가 兩팔과 겨드랑이, 허벅지 等을 貫通해 몸 곳곳이 터져나간 狀態였다. 8次例 手術을 받았지만 두 팔은 切斷해야 했다. 이듬해 轉役할 當時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형윤은 中高校 同窓이자 同甲인 미선이 처음 問病을 왔던 날 짓궂게 人事를 건넸다. “야 이 기집애야, 오빠가 다쳤는데 이제야 오냐.” 미선은 應酬했다. “女子 同窓들 中에 나 혼자 왔거든. 고마운 줄이나 알아.”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5年間의 戀愛 後 2014年 結婚했다. 結婚式 날 형윤은 실리콘으로 된 義手 손가락에 結婚半指를 끼었다. 結婚에 이르기까지 迂餘曲折을 지켜봐온 賀客들은 저마다 눈물을 쏟았지만 新郞 新婦는 禮式 내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이듬해 딸이 태어날 때만해도 형윤은 撞球場을 運營하고 있었다. 팔을 잃은 靑年 障礙人이 生計를 위해 마련한 나름의 代案이었지만 結局 處分했다. “아이에게 번듯한 職場에 다니는 아빠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社會福祉士 資格證을 따서 福祉施設에 就業했어요.” 형윤은 社會福祉士로 일하며 跆拳道와 鐵人3種을 하는 障礙人들을 알게 됐고 그들의 勸誘로 運動을 始作했다. 금세 素質을 보인 형윤은 鐵人3種 가운데 하나인 사이클 選手가 됐다. 그는 “제가 (사이클을) 잘은 못 打倒, 할 수 있는 거라서 挑戰하게 됐다”고 했다.전자 義手를 着用하면 自轉車를 타는 게 可能했다. 브레이크는 鞍裝 바로 밑 프레임에 옮겨 달아 허벅지를 誤므里면 잡을 수 있게 改造했다. 또 고개만 숙이면 물을 마실 있도록 긴 透明 빨대를 물桶에서 핸들 앞까지 連結했다. 포스코1%나눔財團 等에서 支援받은 補助器具들度 ‘빈틈’을 메워줬다. 형윤은 마음이 답답한 날이면 親舊들과 집이 있는 加平에서 서울까지 自轉車로 다녀오기도 했다. 自轉車는 障礙를 갖게 된 뒤 움츠려드는 형윤이 다시 世上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親舊였다.장애인 사이클은 障礙 程度에 따라 5等級으로 나뉘고 1等級에 가까울수록 重症인데 형윤은 4等級으로 分類됐다. 等級에 따라 加重値를 適用하기 때문에 輕症人 選手가 重症 選手보다 順位가 높으려면 記錄이 越等히 좋아야 한다. 형윤은 지난 4年 間 한 段階씩 올라서며 國家代表 常備軍이 됐다.장애인이 運動選手를 職業으로 維持하려면 國家代表가 돼야 한다는 게 형윤의 생각이었다. 그래야 國際大會에 出戰할 수 있고 거기서 포인트를 쌓아야 패럴림픽에도 나가며 後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부서지고 난 뒤 비로소 始作한 사이클은 그에게 家長으로서 責任을 다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게 해줬다.멘탈이 터지고 딸의 목소리萬짧은 時間 동안 暴發的인 스피드로 勝負하는 사이클 트랙 競技에선 몸을 最大限 낮춰 空氣抵抗을 줄여야 한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리던 형윤은 均衡을 잡으려 몸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페달을 굴러도 速度가 나지 않았다. 이番 競技를 통해 國家代表가 되고자 했던 형윤은 平靜心을 維持하기 어려웠다.“정말 重要한 瞬間에 誤作動이 와버리니까 멘탈이 터져버렸어요. 코치는 ‘그냥 달려!’ 이러는데 저는 그냥 멘탈이 나가버리더라고요.”관중석에 있던 8살 딸이 미선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오늘 왜 그래?”“아빠가 손이 故障 나서 넘어질지도 몰라. 하나린이 아빠 잘 타라고 應援해줄래.”네 살 때부터 아빠 競技를 따라다녔던 딸은 형윤이 疾走할 때면 자그마한 몸으로 競技場이 떠나가도록 應援했다. 꼬마의 우렁찬 목소리에 다른 觀衆들도 拍手를 치며 추임새를 넣는 일이 많았다. 아이는 初等學生이 되면서부터는 수줍음을 느끼게 됐는지 應援소리가 작아졌지만 이날만큼은 예전처럼 온 힘을 다했다. ‘쐐~’ ‘쐐~’ 소리만 나던 競技場에 여리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 아빠!”, “아빠 파이팅!”, “아빠 이겨라!” 試合을 繼續해야 할지, 抛棄할지 精神이 昏迷했던 형윤은 이 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딱 그 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아이가 꼬맹이 때처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형윤은 다시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오래 달리지는 못했다. 딸아이의 눈앞에서 相對 選手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이기는 건 當然하고 新記錄을 目標로 試合에 나섰던 형윤은 追越 敗를 當해 트랙에서 내려왔다. 意氣銷沈해진 그는 競技 後 襄陽 앞바다에서 돌 틈에 숨은 꽃게를 같이 잡자는 아이와의 約束을 지키지 못했다.국가대표 選拔戰에서 苦杯를 마신 형윤은 “그래도 로봇팔이 있어서 只今의 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의수는 제 몸의 一部인데 어떻게 怨望하겠어요. 더 徹底히 對備하지 못한 제 잘못이죠.”결혼 前에 형윤은 義手를 밖으로 내놓고 半팔 차림으로 外出하곤 했지만 딸이 태어난 뒤부턴 여름에도 밖에 나갈 땐 긴팔을 입는다. 義手를 낀 아빠 때문에 아이가 不便한 視線을 받을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형윤은 딸의 學校 親舊들이 집에 놀러와 나누던 對話를 偶然히 들은 적이 있다. 한 親舊가 “애들이 敎室에서 ‘하나린 아빠는 障礙人’이라면서 웃고 떠든 적이 있다”고 하자 딸이 “나 그 때 敎室에 없었는데…”라며 말을 흘렸다. 그러자 親舊는 “너 그때 敎室에 있었잖아”라며 天眞하게 말했다. 형윤은 딸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봤다.딸은 暫時 숨을 고르더니 親舊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 障礙人인데 그게 뭐가 어때서. 우리 아빠, 나라 지키다가 다친 거야. 障礙人이 猖披한 거 아냐.”몇 週 뒤 미선은 딸 擔任敎師와 面談하며 이 逸話를 꺼냈다. 敎師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미선을 안심시켰다. “하나린이 班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 팔은 로봇팔이야. 軍隊에서 다쳐가지고 國家有功者이고 사이클 選手야’라고 자랑하듯 얘기하더라고요.”엄마는 똥손, 아빠는 金손미선이 出産 以後 혼자 外出을 해본 건 딸이 태어난 지 952日만이었다. ‘獨박育兒’를 覺悟하긴 했지만 팔이 자유롭지 않은 男便의 빈자리는 컸다.“처음으로 혼자 外出한 날짜를 正確히 記憶할 程度로 獨박育兒를 했어요. 제가 肉體的으로 힘들었다면 新郞은 精神的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눈앞의 아기를 얼마나 안아보고 싶었겠어요. 다른 아빠들처럼 기저귀 갈고, 沐浴시키면서 小小한 幸福을 느끼고 싶었을 거예요. 多幸히 아이가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新郞이 기저귀를 갈았어요. 社會福祉士로 일할 때 어르신들 기저귀 갈아드리는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맨손으로 곧잘 하더라고요.”딸을 맘껏 안아주기 어려운 형윤은 背囊처럼 메는 캐리어에 아이를 태우고 틈만 나면 나들이를 다녔다. “新郞은 몇 時間이고 아이를 어깨에 메고 山에 가고 바다도 가고 全國을 다녔어요. 물고기도 같이 잡고, 스키도 같이 타고, 부루마블 게임도 하고…. 요즘은 新郞이 아침에 누룽지 끓여서 아이 밥 먹이고 登校까지 시켜서 저는 많이 便해졌어요. 다른 어떤 아빠들보다 아이와 많은 걸 함께 해요. 하나린은 아빠의 障礙를 느낄 겨를이 없을 거예요.”형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의 그림 親舊이기도 하다. 義手에 鉛筆을 끼워 쓱쓱 그려낸다. “新郞이 옛날에 學校 다닐 때부터 版畫 같은 걸 엄청 잘 했었거든요. 나비 한 마리를 그려도 저는 幼稚園生처럼 그리는데 新郞은 虎狼나비도 거의 똑같이 그려줘요. 그래서 하나린이 저한테 만날 그러죠. 엄마는 똥손이고 아빠는 金손이야.”금메달도 메우지 못한 빈자리형윤은 지난해 4月 네델란드에서 열린 世界 傷痍軍人 體育大會人 ‘人빅터스 게임’에 出戰해 男子 사이클 部門(個人獨走 로드바이크1)에서 優勝했다. 世界 各國 傷痍軍人 出身 選手들이 모이는 이 大會에선 메달 授與式이 獨特했다. 金·銀·桐 메달리스트가 높이 車가 없는 演壇에 나란히 서고, 子女나 配偶者 等 家族이 選手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한 女子選手에겐 男子親舊가 메달을 걸어준 뒤 무릎을 꿇고 請婚하기도 했다. 형윤은 딸아이 또래의 女子아이가 휠체어에 탄 아버지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목을 끌어안는 場面을 가만히 바라봤다.“가족들 同行은 支援이 안 된다고 해서 저 혼자 오긴 했는데 딸과 아내가 함께 왔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韓國에선 傷痍軍人이라고 自負心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여기 選手들과 家族들은 正말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제가 딸에게 아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다쳤다고 얘길 해주긴 했지만 아이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수 있잖아요. 金메달 딴 거 많이들 祝賀해주셔서 感謝하긴 한데 事實 남들 評價가 重要한 건 아니에요. 내 家族이, 내 딸이….”형윤은 말을 暫時 멈추고 촉촉하게 붉어진 눈瞳子를 깜박였다. 記者와 인터뷰할 때마다 개구쟁이 같은 눈빛으로 거침없이 말하던 平素와는 다른 눈瞳子였다.그는 人빅터스 大會에 함께 出戰한 同僚 選手들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軍 幹部가 公務 中 負傷으로 障礙를 얻으면 傷痍年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除隊 後 15年이 지났지만 형윤은 늦게나마 傷痍年金을 받을 수 있는지 國防部에 問議했다. 하지만 擔當者는 障礙 發生 5年 內에 年金을 申請해야 한다는 規定 탓에 받을 수 없다는 立場을 固守했다. 이 ‘5年 時效’가 지났더라도 障礙가 惡化된 境遇 申請이 可能했지만 형윤은 이미 가장 重症인 障礙1級으로 轉役해 該當될 수 없었다.“제 權利에 無知했다는 것에 自責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轉役 當時 傷痍年金에 對한 案內가 全혀 없었고, 5年 內 申請해야 한다고 하는데 23살에 兩팔을 切斷하고 어떻게 살지 寞寞하던 時期여서 다른 건 神經 쓸 餘力이 없었어요.”“아빠 가슴에 왜 내가 있어?”올해 첫 全國 大會가 열린 5月 6日 全南 靈巖國際自動車競走場 選手 待機室은 ‘쐐’ 소리로 가득했다. 競技 始作 30分을 앞두고 몸 풀기가 한창이었다. 사이클 뒷바퀴를 据置臺에 올려놓고 페달을 구르는 형윤의 허벅지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형윤은 핸들 위에 깔아놓은 흰 手巾 위에 맨 팔뚝을 기댄 채 페달을 굴렀다.조금 뒤 사이클에서 내려온 그는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냈다. 이제 出發線으로 移動할 次例였다. 형윤은 젖은 訓鍊服을 벗고 맨 팔뚝으로 유니폼 上衣를 꺼내들었다. 옷 아래쪽을 입으로 물고 能熟하게 한 팔 씩 소매에 집어넣는데 그의 가슴팍에 주먹만한 文身이 살짝 비쳤다. 딸의 앳된 얼굴이 왼쪽 가슴에 새겨져있었다.“아빠 가슴에 왜 내가 있어?”라고 아이가 물을 때면 형윤은 “하나린이랑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서”라고 말해준다.유니폼 지퍼를 올린 그는 사이클 옆에 놓아둔 때 묻은 로봇 팔을 한 짝씩 꼈다. 이어 오른손으로 왼손을 한 番 툭, 왼손으로 오른손을 한 番 툭 쳤다. 그래야 두 팔에 全員이 켜진다. 형윤은 鞍裝에 몸을 실으며 이제 한 몸이 된 두 손으로 사이클 핸들을 굳게 쥐었다. 그러곤 탁 트인 트랙을 向해 페달을 밟았다.동아일보는 障礙의 빈틈을 技術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職業인’ 5名의 이야기를 傳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選手, 視力을 잃어가는 作曲家, 손을 못 쓰는 齒科醫師,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硏究員과 스웨덴에서 活動하는 家口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특별취재팀>▽기획·취재: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記者▽寫眞: 송은석 記者▽디자인: 김수진 記者※아래 住所에서 [障礙, 테크로 채우다] 主人公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具現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記者 neo@donga.com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이채완 記者 chaewani@donga.com}

    •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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