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軍이 訓鍊이 잘 안 돼 있고 武器도 舊式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直接 戰場에서 싸우는 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最前線의 러시아 軍人들은 最新 武器에 訓鍊도 잘 돼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軍을 沒殺시키겠다는 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죽일 때도 最大限 殘忍하게 죽이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語學科 敎授는 러시아가 故國을 侵攻한 지난해 2月 末 以後 1年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家族, 知人들과 連絡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父母는 隣近 國家로 避難을 갔지만 많은 親戚들이 아직 故鄕에 남아있다. 四寸동생의 男便들, 六寸 男동생은 現在 最前線에서 러시아軍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文字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째 答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한 番은 六寸동생이 繼續 答狀이 없다가 十字架 模樣의 特殊符號 하나만 딸랑 보내온 거예요. 戰死한 줄 알고 너무 걱정했는데 동생이 携帶電話를 잠깐 볼 수 있었던 틈에 ‘오케이’란 뜻으로 보낸 거였어요.” 쉐겔 敎授는 2月 14日 京畿道의 自宅 隣近에서 記者와 만나 우크라이나 軍人들과 住民들의 ‘지난 1年’을 淡淡히 傳해줬다. ―戰場에 있는 親戚들의 安全은 어떤가.“육촌동생이 小隊長인데 只今 負傷을 當해서 暫時 집에 와있다. 벌써 4番째 負傷이다. 지난番 3番째 負傷 땐 腹部가 크게 다쳐 排便주머니를 달아야 했는데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로 復歸했더라. 姨母는 동생이 외아들이라 걱정이 많다. 동생은 말한다. ‘내가 復歸 안 하면 나대신 누군가가 小隊長을 맡을 텐데 經驗 不足한 사람이 가면 小隊員들 100% 죽는다고. 戰鬪 經驗이 많은 내가 가야 살아남은 確率이 조금이라도 높다’고.” ―軍人들은 어떤 얘기를 많이 解悟나.“연락 닿을 때마다 보내달라는 物件들이 많다. ‘바주카砲 하나 보내달라’고 弄談도 하고(웃음). 추운데 있다보니 內服, 洋襪 같은 게 重要한데 韓國 內服이 우크라이나 軍人들에게 人氣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고 한다. 韓國産 登山用 洋襪도 反應이 좋다. 才質이 좋아서 3, 4日씩 行軍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軍 補給品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行軍하면 洋襪이 皮膚랑 눌러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 ―‘K內服’李 도움이 됐다니 多幸이다.“수십 벌 씩 보내는데 六寸동생의 小隊員들이 고맙다면서 內服 입은 團體 寫眞을 보내줬다. 普通 같은 洞네 出身들로 部隊가 꾸려지기 때문에 저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어느덧 커서 다 아저씨가 돼 있었다. 근데 며칠 뒤 姨母한테 連絡이 왔다. 小隊員들이 戰鬪에서 많이 죽었다고 했다. 姨母는 ‘그래도 네가 보내준 內服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보내준 內服 며칠 입어보지도 못하고….“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힘닿는 데까지 物品을 보내고 있다. 止血帶나 鎭痛劑는 勿論이고, 意外로 感氣藥과 痔疾藥을 正말 必要로 한다. 軍人들이 塹壕에서 1年 내내 있다보니 늘 感氣를 달고 산다. 戰爭 中에 感氣 程度는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日常을 支配하는 苦痛이라고 한다. 근데 韓國 感氣藥이 또 그렇게 藥效가 좋다고 한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口號 藥品은 1週日 먹어도 나을까 말까인데 韓國 感氣藥은 하루치만 먹어도 바로 나아진다고 한다. 痔疾藥度 처음엔 얘기를 못 꺼내다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털어놓더라. 化粧室도 없이 늘 緊張되는 環境이다 보니 痔疾이 많을 수밖에 없고, 말 못할 苦痛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로 物品은 어떻게 보내나.“그게 늘 어렵다. 바로 보낼 方法은 없고 周邊國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知人이나 自願奉仕者들이 空港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配達하는 式이다. 一般 小包는 너무 비싸서 韓國에서 폴란드로 들어가는 분들을 搜所聞해 物品을 傳達해달라고 付託한다. 20萬 원 程度 드는 手貨物 費用은 제가 負擔한다. 1年 間 物品을 求해서 보내는데 2000萬 원 程度 들었는데 折半이 手貨物 費用이다. 돈도 돈이지만 物品을 가져다줄 奉仕者를 求해 現地 知人들과 空港에서 만나게 連結해주는 作業이 쉽지 않다.” ―住民들도 爆擊과 停電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키이우에 있는 知人 中에 60代인 敎育 公務員이 있다. 이 분이 아파트 14層에 사는데 얼마 前 連絡이 닿았을 때 ‘한 달 넘게 집 밖을 안 나가고 있다’고 했다. 電氣가 안 들어와 엘리베이터가 거의 作動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番 待避 사이렌이 울리지만 每番 14層을 걸어 내려갔다 올라오기가 힘들어 그냥 집에 있는다고 한다. 電氣와 首都도 끊겨 늘 춥고 깜깜한데 그보다 힘든 건 化粧室 問題다. 물을 못 내리니까. 나는 韓國에서 너무 便하게 있구나 하는 생각에 罪責感이 든다.” ―戰場이 아니더라도 日常 自體 戰爭인 것 같다. “外三寸 夫婦가 激戰地인 헤르손 近處 農場에서 일하시는데 몇 百 미터 近處에서 미사일이 種種 터진다고 한다. 三寸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이러神다고 한다. 繼續 놀랄 수는 없기 때문에 自己保護 機制가 作動하는 것 같다. 外三寸은 待避 사이렌이 울려도 무덤덤하다. ‘地下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地下室에서 죽는 거지’ 이러신다.” ―러시아軍과 맞닥뜨리는 境遇도 있지 않나.“지난 聖誕節에 集會를 하는데 韓國으로 避難 온 젊은 우크라이나人 女性이 저한테 다가오더니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열손가락 손톱이 다 빠져서 새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 분이 말했다. ‘그 짐승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봐봐.’ 그 분은 故鄕인 東部에서 南部로 移動하던 中 러시아軍에 붙잡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人들은 러시아 占領地域 쪽을 지날 땐 잡힐 것에 對備해 携帶電話를 모두 初期化 한다. 러시아軍이 民間人을 잡으면 携帶電話부터 빼앗아 男便이나 男子 兄弟, 男子親舊가 우크라이나 軍人인지 確認한다고 한다.” ―그 女性의 携帶電話에 뭔가가 있었던 것인가.“당시 이 분은 러시아 占領地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고 미처 携帶電話를 初期化 하지 못한 狀態였다. 근데 男子親舊가 徵集된 狀況이어서 軍服 입은 寫眞과 ‘살아 돌아올게’ 같은 對話 內容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軍人들은 이 女性의 두 손목에 우크라이나 國旗色人 파란色과 노란色으로 된 꽃 文身이 있는 것을 보고 ‘네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는 들지 않게 해주겠다’면서 손톱을 모조리 뽑았다고 한다.” ―이 戰爭을 보는 러시아人들의 생각을 接한 적이 있나. “제 우크라이나人 親舊가 이런 얘기를 했다. 切親한 러시아人 親舊가 있는데 平素 푸틴 (러시아 大統領)에 批判的 性向이 强해서 戰爭이 난 뒤에도 잘 지내보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우크라이나 狀況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러게 왜 너희는 푸틴한테 까불었어?’라고 말해 너무 失望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原因 提供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侵攻을 正當化하는 視角이다. 우리는 儼然히 獨立的인 主權國家인데 繼續 러시아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인가. 最近 러시아에서 軍 徵集이 이뤄지면서 反對 輿論이 나오긴 하지만 徵集에 反對할 뿐 戰爭에 反對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다.” ―우크라이나人들에게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가.“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侵略과 支配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苦痛의 歷史가 알려지지 않도록 徹底히 統制했다. 저는 歷史를 專攻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저지른 일들을 詳細히 알지만 蘇聯 體制에서 자란 저희 엄마만 해도 잘 모른다. 甚至於 1930年代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集團農場化 하기 위해 恣行한 ‘홀路度모르(대기근)’ 事態로 數百萬 名이 굶어죽었는데 엄마는 이 마저 잘 모르셨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外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따져 물었다. 할머니는 몸소 겪어봐서 잘 아실 텐데 왜 엄마한테 얘길 안 해주셨냐고. 할머니는 ‘네 엄마와 우리 家族을 保護하려고 그랬다’고 하셨다. 아이가 學校에서 말 잘 못했다간 아이도 다치고 온 家族이 KGB(蘇聯 情報機關)에 끌려갔을 거라고. 이番 戰爭도 러시아가 100年 넘게 反復해온 行動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蘇聯 때는 父母가 子息에게도 말 못할 程度로 다들 숨죽였다면, 이젠 러시아의 惡行이 눈에 그대로 보이게 됐다.” ―우크라이나人들은 버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지금 우크라이나人들은 하나의 强力한 情緖를 共有하고 있다. ‘이番에 무너지면 正말 끝’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러시아에 짓밟히고 다시 일어나기를 反復해왔는데 이番 戰爭을 契機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라는 民族의 DNA를 抹殺하려는 것 아닌가, 永遠한 屬國으로 만들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番에 러시아에 屈服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決然함, 切迫感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 戰爭을 이길 수 있을지는 壯談할 수 없다. 하지만 但只 푸틴 한 名이 죽는다고 끝나는 戰爭이 아니다. 그가 죽어도 10, 20年 뒤 ‘第2의 푸틴’ 또 나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占領 對象으로 보는 푸틴式의 思考方式이 다시는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드는 게 重要하다. 그런 點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勝利해야 하는 戰爭이다.” 올레나 쉐겔△우크라이나 키이우 出生△2003年 키이우國立大 韓國學 專攻(학, 碩士)△2008年 서울대 國文科 韓國現代文學 博士 修了△2010年 우크라이나 國立科學院 우크라이나學 博士 修了△2009年~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語學科 敎授△韓-우크라이나 頂上會談 等 主要 外交行事 通譯신광영 記者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