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畫는 實存 人物에서 出發했다. 光州 한 福祉院에서 10餘 年을 한 몸처럼 살아온 遲滯障礙人 최승규 氏와 知的障礙人 박종렬 氏의 實話다. 한 名은 머리가 되고, 다른 한 名은 몸이 돼 함께 生活하며 大學을 卒業하고 社會福祉士 資格證도 따 世間의 關心을 받은 이야기. 어쩌면 不足함이 많은 두 사람이 意氣投合해 不可能한 꿈을 꾸다 實際로 그것을 이뤄내는 薰薰하고 뻔한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映畫 ‘나의 特別한 兄弟’는 그런 뻔한 휴머니즘 映畫가 아니다.
‘弱한 사람은 서로 도와야 더 强해진다’는 主題가 분명하게 傳達되는 映畫인데, 그것보다 더 큰 意味들이 操心스럽게 스며든다. 科하거나 뻔뻔하지 않고, 嘲弄하거나 울리지 않는다. 愉快하고, 人間的이며, 眞情性이 있고, 킥킥거리는 웃음과 한 방울 눈물 뒤에 남은 따뜻함이 世上을 좀 더 意味 있게 바라보게 하는 映畫다.
非常한 頭腦를 가졌지만 동생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兄 세하(신하균 分), 水泳 實力이 뛰어나지만 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동생 東區(李光洙 分)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20年 동안 한 몸처럼 살아온 特別한 兄弟다. 가톨릭 神父(권해효 分)가 運營하는 障礙人돌봄센터 ‘責任의 집’에서 生活하던 이들은 어느 날 神父님이 死亡하자 모든 支援金이 끊기고 헤어질 危機에 處한다. 英特한 세하는 ‘責任의 집’을 지키고자 區廳이 運營하는 水泳場의 아르바이트生 迷眩(이솜 分)을 水泳코치로 迎入하고 洞口를 大會에 출전시킨다.
‘말아톤’ ‘언터處블 : 1%의 友情’ ‘그것만이 내 世上’처럼 障礙人과 非障礙人의 關係를 다루는 映畫는 많지만, ‘나의 特別한 兄弟’는 障礙人 視角으로 自身을 바라보고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方法을 보여준다. 그들이 만드는 世上은 허술하고 素朴하지만 豐盛하다. 神父님의 持論처럼 사람에게는 ‘世上을 살아야 할 責任’이 있고, ‘藥函이 서로 더해져 强해진다’는 것을 生活로 證明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世上에 血緣家族과 非障礙人들이 介入하면서 이들 스스로가 만든 相互補完的인 補綴의 힘은 그냥 짐짝이 돼버린다. 障礙를 不足한 것, 克服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세하와 東區는 돌봐야 할 負擔스러운 짐이다. 하지만 세하와 東歐는 그런 視線의 사냥감이 되기를 拒否한 채 自尊感과 品位를 갖춘 人間임을 스스로 證明한다.
세하는 適當히 속여 利得을 取하는 方法을 아는 處世術에 能한 社會人이고, 다섯 살 知能의 東區는 잘하는 게 正말 많다. 障礙人과 非障礙人을 가리지 않고 登場人物들 모두 不足하고 問題 있는 人間이지만 理解하려는 마음을 갖고 結局엔 連帶하려 한다. 이것으로 世上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가슴 따뜻한 메시지가 映畫를 통해 傳해진다.
입담만으로 유머와 敎訓을 빚어내는 신하균의 演技뿐 아니라, 藝能프로그램 能力者이기에 앞서 얼굴 筋肉으로 말하는 뛰어난 演技者임을 立證한 李光洙의 熱演이 놀랍다. 싱그럽고 健康한 이솜은 이 時代 靑春의 얼굴로 記憶될 것이다. 家族의 달에 어울리는 正말로 사랑스러운 家族映畫다. 브라보, 우리 모두의 特別한 世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