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質問 받는 것 極度로 싫어하는 皇帝 스타일|新東亞

質問 받는 것 極度로 싫어하는 皇帝 스타일

李明博 大統領의 言論忌避症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取材本部長 song@yeongnam.com

    入力 2011-03-22 15:39: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변변한 記者會見 한 番도 없어
    • 個別 인터뷰·個別 取材도 封鎖
    • CEO 時節 部下에 君臨하던 習慣 그대로
    • 言論自由·民主主義 後退 憂慮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2010年 11月12日 李明博 大統領이 G20頂上會議 成果를 說明하는 目的의 記者會見 途中 기침을 하고 있다.

    質問: “大統領은 왜 (質疑應答을 하는) 記者會見을 하지 않느냐는 指摘이 많다.”

    對答: “설날이 지나고 國會도 열리고 하면 記者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機會도 생각하고 있다.”

    지난 2月1日 李明博 大統領의 放送座談會에서 討論者로 나선 정관용 翰林大 國際大學院 敎授가 李明博 大統領의 ‘言論忌避症’을 慇懃히 찔렀다. 李 大統領은 言論과의 接觸을 꺼리는 理由는 說明하지 않고 “機會를 만들어보겠다”고 넘어갔다.

    靑瓦臺 出入記者들은 그 機會가 이番에는 實現될 것으로 믿었다. 大統領이 公開的으로 約束했기 때문이다. 그 時點은 2月25日 李明博 政府 出帆 3周年쯤이 될 것으로 豫想했다. 하지만 이 大統領은 就任 1, 2周年 때와 마찬가지로 3周年 記者會見도 하지 않았다.

    代身 2月20日 靑瓦臺 뒷山인 北岳山을 出入記者들과 함께 오른 뒤 午餐 懇談會를 하는 것으로 代替해버렸다. 그것이 이 大統領이 생각한 ‘記者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機會’인 셈이었다.



    하지 않은 것만 못한 懇談會

    李 大統領이 質問 받는 걸 極度로 싫어하는 皇帝 스타일이라는 點은 이 懇談會에서도 드러난다. 靑瓦臺 附屬建物인 沖正冠에서 열린 懇談會에서 그는 執權 3年의 小會 等을 簡略하게 밝힌 뒤 記者들의 質問에 具體的인 答辯을 하지 않거나 原論的인 言及만 했다.

    東南圈 新空港과 國際科學비즈니스벨트 같은 各 地域이 熾烈한 誘致競爭을 벌이고 있는 事案에 對해 “法的節次를 밟아 進行을 해서 上半期 中에는 整理가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自身의 大選 公約事業이기도 한 이 두 가지 懸案이 極甚하게 國論을 분열시키고 있음에도 責任 있는 說明은 없었다.

    當時 政治 이슈로 떠오른 改憲과 關聯한 質問이 나오자 “이 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 登山 갔다 와서 그런 딱딱한 質問을 하는 것 自體가 雰圍氣에 안 맞다”고 避해갔다. 記者들의 質問이 이어지자 “이럴 줄 알았으면 記者會見을 한 番 할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勿論 以後에 記者會見을 하지 않았다.

    이날 懇談會는 事前에 質問을 5個로 調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實際로는 4個의 質問만 받고 懇談會는 끝났다. 答辯을 하던 이 大統領이 直接 “以上으로 記者懇談會를 모두 끝내도록 하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整理해버렸다. 口蹄疫, 物價急騰, 傳貰大亂 等 庶民生活과 直結된 懸案이 적지 않지만 大統領의 입을 통해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李 大統領은 山行 途中 쉬는 時間에도 記者들과 健康 問題 等에 關한 가벼운 談笑만 나눴다고 한다.

    出入記者團 山行의 援助는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이다. 國會의 彈劾을 받아 職務停止 狀態이던 2004年 3月12日 첫 山行을 한 데 이어 每年 봄이면 出入記者들과 北岳山을 올랐다. 그때마다 깊은 對話가 오갔다. 中間 中間 쉼터와 山 頂上에서 ‘簡易 記者懇談會’가 열렸다. 山을 내려와서는 食堂(主로 孝子洞 蔘鷄湯집人 ‘토속촌’)에서의 午餐懇談會로 이어졌다.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李明博 大統領이 2月20日 靑瓦臺 出入記者團과 北岳山 山行 中 休息을 取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盧 前 大統領은 敏感한 事案들을 避해가지는 않았다. 靑瓦臺 弘報首席室은 波長이 豫想되는 發言에 對해 ‘오프 더 레코드(非報道)’를 要請했다. 이 때문에 盧 前 大統領의 山中 發言 가운데 言論에 報道된 內容은 折半도 채 되지 않는 게 普通이었다. 그러나 記者들은 大統領의 말을 記事로 다 쓰지 못했다고 不滿을 갖지는 않았다. 大部分은 大統領으로부터 詳細하게 背景 說明을 듣게 된 데 對해 滿足했다.

    靑瓦臺 뒷山은 警護 問題로 一般의 出入이 統制돼 事實上 大統領의 專用 登山路다. 李 大統領은 테니스를 즐기고 登山은 잘 하지 않는 탓에 거의 利用하지 않았다. 이番에 盧 前 大統領을 벤치마킹해 처음으로 出入記者들과 山行을 했다. 그러나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評價가 많이 나온다. 李 大統領의 言論 忌避症을 再確認하는 結果만 낳은 셈이기 때문이다.

    軍事政權 時節로 되돌려놔

    李 大統領은 就任 3年 동안 20餘 次例 記者會見을 열었다. 그러나 外國 國家元首와의 頂上會談을 끝낸 뒤 結果를 說明하는 儀禮的인 會見을 빼면 6次例만 公式 記者會見을 했다. 그나마 國政 懸案 全般을 놓고 記者들과 열띠게 一問一答을 벌이는 제대로 된 記者會見은 事實上 한 番도 없다. 美國·日本 巡訪(2008年 4月13日), 美國産 쇠고기 波動(2008年 6月19日), UAE 原電 數週(2009年 12月27日) 때와 G20頂上會議 誘致 關聯 세 次例(2009年 9月30日, 2010年 11月3日, 2010年 11月12日) 等 모두 特定 主題에 限定됐다. 이를 두고 “자랑할 일이 생기거나 解明할 때만 大統領이 直接 나선다”는 指摘이 나온다. 지난 1月21日 海軍 特殊部隊가 소말리아 海賊에게 拉致된 우리 船舶을 救出한 ‘아덴灣 餘名作戰’이 成功한 直後 國民談話를 通해 이 消息을 가장 먼저 알린 것도 마찬가지다.

    李 大統領은 就任 後 新年 記者會見을 單 한 次例도 열지 않았다. 2009·2010·2011年 初 ‘新年 特別演說’로 代替했다. 記者會見과 演說은 差異가 크다. 記者會見은 雙方向이고 演說은 一方通行이다. 3年 連續 質問을 一切 받지 않은 채 一方的으로 말하고 끝냈다. 미리 準備한 原稿를 機械的으로 읽는 것으로는 國民의 가슴에 다가가기 어렵다는 指摘이다.

    李 大統領의 新年 演說은 朴正熙 前 大統領 時節 初期에 있었던 ‘大統領 年頭敎書 發表’나 전두환 前 大統領 때의 ‘新年 國政演說’을 떠올리게 한다. 當時 새해가 始作되면 大統領이 한 해 동안 國政運營의 方向을 說明했는데 그 內容은 事實上 國民에게 指針을 내리는 水準이었다.

    大統領의 新年 記者會見은 朴正熙 大統領 時節인 1968年부터 ‘年頭 記者會見’이란 名稱으로 始作됐다. 美國 白堊館式처럼 質問이 자유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靑瓦臺가 미리 質問 內容을 記者室에 내려보내 記者에게 配當했다. 大槪 “새마을運動의 成果를 評價해달라” “北傀의 威脅에 對備한 安保 態勢 强化 方案은 무엇인가” 等 政權 弘報性 答辯을 誘導하는 質問이었다.

    權威的 統治를 繼續한 전두환 前 大統領은 新年 記者會見을 國會에서의 新年 國政演說로 代替했다. 與黨인 민정당과 ‘管制 野黨’인 민한당·國民黨 議員들을 議事堂에 앉혀놓고 一場 訓示를 하는 듯 비쳤다. 專 前 大統領은 1985年부터 年頭 記者會見으로 還元했다. 當時 言論基本法에 따라 言論社가 桶·廢合돼 있는 狀態여서 靑瓦臺 出入記者가 不過 10名 남짓했다. 잘 짜인 脚本에 따라 會見이 이뤄졌다.

    되도록 言論接觸을 꺼렸던 노태우 前 大統領도 新年 會見만은 거의 빠짐없이 했다. 民主化運動 經歷이 있는 김영삼·金大中 前 大統領은 新年 記者會見을 國民說得이나 輿論造成에 適切히 活用했다. 이때도 事前 시나리오가 없는 新年 記者會見이 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軍事政權 때와는 水位가 달랐다. TV로 生中繼되는 만큼 混線을 防止하기 위해 質問順序를 定하고 質問內容이 重複되지 않도록 記者室 內에서 自體 調停한 뒤 이를 祕書室에 通報하는 方式이었다.

    盧武鉉 前 大統領은 新年 記者會見에서 되도록 事前 시나리오를 排除하려고 努力했다. 記者室에서 質問順序와 簡單한 質問要旨만 받아갔다. 重大 懸案이 發生하면 몇 時間 前에 靑瓦臺 出入記者들이 머무는 春秋館에 通報한 뒤 記者懇談會를 열기도 했다.

    李 大統領은 事前에 質問內容이 거의 調律되지 않은 노무현式 記者會見은 말할 것도 없고 事前에 質問內容이 調律되는 記者會見도 外面하고 있다. 몇 次例 放送으로 中繼된 ‘大統領과의 對話’ 자리를 가졌지만 緊張感 있는 質疑·應答이 오가지 않았다. 出入記者가 아니라 靑瓦臺나 放送社가 選定한 패널들이 質問에 나선 것이 가장 큰 理由다.

    말失手 잦고 語彙 不正確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오바마 美國 大統領이 2009年 4月29日 就任 100日 記者會見 中 記者의 質問에 答하고 있다.

    李 大統領은 2007年 한나라당 大選候補 競選과 大選 때도 다른 候補들에 비해 言論과의 接觸을 되도록 最少化했다. 當時 各 新聞社와 放送社에서 ‘이명박 候補’를 擔當했던 記者 大部分은 이 候補에 對한 直接 取材에 애를 먹었다. 代身 이 候補는 몇몇 記者와는 자주 만나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고 한다. 當時 記者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禿수리 5人坊’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大統領이 就任할 때 이들은 모두 靑瓦臺로 出入處를 옮겼다.

    李 大統領이 言論을 忌避하는 理由는 무엇일까.

    與圈의 한 人士는 “大企業 CEO는 部下에 君臨하는 傾向이고 言論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 李 大統領의 境遇도 現代建設 CEO 時節의 그러한 習慣이 이어져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한다. 이 人士는 “李 大統領은 批判的인 質問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大統領이 記者에게 質問할 機會 自體를 주지 않는 건 言論自由와 民主主義의 後退를 부를 수 있는 憂慮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李明博 政府 初期 靑瓦臺 弘報라인에 있었던 한 人士는 “周邊의 核心 參謀들이 大統領을 그렇게 만든 側面이 있다”고 했다. 李 大統領은 말門이 터지면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記者會見을 통해 자유롭게 말하도록 놔두면 말失手를 할 憂慮가 크다는 것이다. 이런 說話(舌禍)를 뒷收拾하는 데 애를 먹고 또한 아무리 뒷收拾을 잘해도 輿論이 나빠지기 때문에 參謀들이 아예 言論과의 接觸을 遮斷한다는 說明이다.

    한 言論社 靑瓦臺 出入記者度 “參謀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되도록 言論과의 直接 接觸을 挽留하고 싶어하더라. 只今도 如前히 ‘不安하다’는 것이다. 大統領이 一問一答式 記者會見에 나서지 않는 것도 參謀들이 말리고 있기 때문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政治權 一角에선 ‘李 大統領이 不適切한 表現이나 正確하지 않은 語彙를 種種 驅使하는 便’이라는 評價가 나온다.

    實際로 이 大統領은 지난 大選 當時 여러 番 說話를 일으켜 困辱을 치렀다. 2007年 8月28日 日刊紙 編輯局長 10餘 名과 저녁食事를 하는 자리에서 “特殊 서비스業에 從事하는 女性을 고를 때 덜 예쁜 女子를 골라야 誠心誠意껏 서비스를 한다고 하더라. 人生의 智慧다”라는 趣旨의 弄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마사지 걸’ 發言이다.

    ‘샐러리맨과의 對話’ 자리에선 “尊敬하는 指導者가 누구냐”는 質問에 “海外에선 간디高 國內에선 島山 安昌浩氏를 尊敬한다”고 答했다. 映畫 ‘마파도 2’에 出演한 여운계 김수미 김을동氏에 對해선 “한물 살짝 간 中堅俳優들”이라고 했다. “아기가 不具로 태어날 것으로 豫想될 境遇 落胎가 容納될 수 있다” “(民主化 人士들을 指稱한 듯) 70, 80年代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保育을 얘기할 資格이 있다”는 發言도 했다.

    이에 對해 當時 鄭東泳 豫備候補 側 金賢美 代辯人은 “人間의 生命과 價値, 歷史와 民族이 이명박 候補에겐 重要하지 않다는 것” “李 候補에게 重要한 것은 오직 돈과 땅일 뿐”이라고 批判했다.

    또한 이 大統領은 “當身들의 犧牲을 決코 잊지 않겠읍니다. 繁榮된 祖國, 平和統一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다”(2007년 6月6日 芳名錄), “國民을 섬기며 先進一流國家를 만드는 데 온몸을 바치겠읍니다”(2008년 2月25日 芳名錄) 等 種種 맞춤法이나 文法에 맞지 않게 文章을 驅使한다.

    “事案에 對한 理解力 不足도 原因”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靑瓦臺 春秋館 前景.

    최영묵 성공회대 敎授(新聞放送學)는 이 大統領이 生放送으로 中繼되는 記者會見을 꺼리는 데 對해 “事案에 對한 全般的인 理解力 不足도 原因”이라고 말했다. “複雜한 事案에 對해 說明하다가 잘못 理解하고 말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波長이 일어날 것을 憂慮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어 崔 敎授는 “李 大統領은 前任者인 盧武鉉 前 大統領과 正反對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 盧 前 大統領이 言論에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自身은 言論과 距離를 두는 側面도 있다”고 分析했다.

    그러나 이 大統領은 盧 前 大統領이 마련한 言論對應 守則 두 가지를 이어받는 二重性(?)도 보이고 있다. 個別 言論社와의 인터뷰를 極히 制限하고 靑瓦臺 出入記者의 靑瓦臺 訪問取材를 禁止한 일이 그것이다.

    金永三·金大中 前 大統領 때까지 新聞社 創刊記念日이 되면 中央紙는 2年 週期로, 地方紙는 5年 週期로 大統領 單獨인터뷰를 特輯으로 싣는 慣例가 있었다. 編輯局長과 出入記者가 大統領을 인터뷰하면서 여러 가지 質問을 하는데 意外의 特種이 나오기도 했다. 盧武鉉 前 大統領은 이런 慣行을 없애버렸다. 그는 言論社와의 個別 인터뷰에 一切 應하지 않았다. 言論을 통해 國民에게 할 말이 있으면 大統領이 春秋館을 찾아가 모든 言論을 相對로 말하겠다는 게 理由였다.

    李 大統領은 盧 前 大統領과 마찬가지로 言論과의 個別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春秋館도 잘 찾지 않는다. 李 大統領이 國內 言論과의 單獨 인터뷰에 應한 것은 지난해 11月 ‘東亞日報’ 인터뷰가 唯一하다. 代身 國內 言論과 外國 言論의 合同 인터뷰에는 몇 番 應했다. ‘聯合뉴스-日本 교도통신’, ‘朝鮮日報-英國 더 타임스-日本 마이니치新聞’, ‘中央日報-美國 워싱턴포스트-中國 인민일보-日本 니혼게이자이新聞’이 各各 組를 짜서 인터뷰했다.

    代身 이 大統領은 外國 言論과의 單獨 인터뷰에는 熱誠的으로 應하는 便이다. 2010年에만 해도 美國의 CNN과 워싱턴포스트, 英國의 BBC,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타임스, 引渡의 타임스 오브 인디아, 말레이시아의 스타 等 6個 海外 言論과 인터뷰를 했다. 靑瓦臺 側은 “海外에 우리나라를 알릴 機會가 되기 때문에 外國 言論의 인터뷰 要請에 積極 應하는 것”이라고 說明한다.

    李明博 大統領은 出入記者들의 祕書洞(棟) 出入을 막고 있다. 盧武鉉 前 大統領이 만들어놓은 取材시스템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祕書陣 業務에 支障을 주고 保安이 되지 않는다는 게 주된 理由다.

    그러나 김영삼·金大中 前 大統領 때까지는 靑瓦臺 祕書洞 訪問取材가 許容됐다. 김영삼 前 大統領 時節에는 祕書洞 出入이 完全히 자유로웠고 金大中 前 大統領 時節에는 하루 두 次例, 한 時間씩 記者들이 祕書洞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祕書室長이나 政務首席 等 比重 있는 參謀들과 티타임도 자주 가질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記事거리가 나왔다. 或은 오프 더 레코드를 前提로 수많은 高級情報가 傳해졌다. 金永三 政府 時節 靑瓦臺에서 일한 한 政治權 人事는 “言論과 國民에게 되도록 透明하게 開放하는 것이 政權의 失手를 막고 民主主義를 健康하게 한다”고 했다.

    最近 一部 靑瓦臺 出入記者들은 “우리는 春秋館 出入記者”라고 自嘲하기도 한다. 한 出入記者는 “相當數 記者의 境遇 主要 參謀들과는 通話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春秋館에 孤立돼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最近까지 靑瓦臺를 出入했던 다른 記者는 “只今은 個別取材가 거의 不可能한 狀況”이라면서도 “登錄된 記者가 많고 取材裝備度 發達한 狀況에서 祕書洞을 全面 開放하기 어렵다는 點을 理解한다”고 했다.

    “便한 記者들 爲主로 풀 構成”

    記者들이 이 大統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唯一한 通路는 ‘풀(pool) 記者’로 들어갈 때다. 풀 記者는 記者室을 代表해 大統領의 公式日程을 取材한 뒤 記者室에 그 內容을 알려준다. 取材記者의 境遇 社別로 돌아가면서 2~3名으로 構成된다. 勿論 이들이 이 大統領에게 直接 質問할 機會는 없다. 먼발치서 行事만 지켜볼 뿐이다. 한 出入記者는 “以前에는 順番대로 풀 記者를 짰는데, 요즘은 (靑瓦臺가) 便한 記者들 爲主로 풀단을 構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政權 出帆 初期부터 國民과의 疏通不足 問題가 擧論됐다. 그러자 靑瓦臺 弘報라인은 李明博 大統領의 定例 라디오 演說을 企劃해 實行 中이다. 月曜日 午前 大統領이 라디오에 出演해 政府의 主要 政策을 國民에게 傳하고 있다. 2008年 10月13日 첫 放送이 電波를 탔고 여러 가지 論難 속에서 現在 60次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李 大統領의 라디오 演說은 美國 프랭클린 루스벨트 前 大統領의 ‘爐邊情談’(fireside chats)을 본뜬 側面이 있다. 言論學者들에 따르면 루스벨트의 爐邊情談 라디오 演說은 1930年代 大恐慌期의 美國民에게 勇氣와 希望을 줬다는 게 支配的 評價다. 그러나 이 大統領의 라디오演說은 國民 사이에서 별다른 感興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指摘이 많다.

    李 大統領이 言論과의 直接 接觸을 끊다시피 한 만큼 靑瓦臺 弘報라인이 이 大統領의 뜻을 間接的으로 言論에 傳하는 役割을 한다. 그러나 弘報首席室 內部의 雜音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月 불거진 暗鬪說이 代表的이다. 當時 李東官 弘報首席 밑에 박선규·金恩慧 共同代辯人이 活動하고 있었다.

    暗鬪의 內容은, 靑瓦臺 參謀陣 改編을 앞두고 朴 代辯人이 ‘弘報首席室 發展 方案’이란 報告書를 만들어 이 大統領에게 直報했고 이를 눈치 챈 金 代辯人이 報告書를 빼내 李 首席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이 過程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激烈한 言爭이 오갔다고 한다. 以後 세 사람 모두 靑瓦臺를 떠나고 홍상표 弘報首席-金姬廷 單獨 代辯人 體制가 들어섰다.

    “大統領 蒸發하고 만다”

    現 靑瓦臺 弘報體系는 複雜한 便이다. 歷代 政權에선 弘報首席(或은 公報首席)李 代辯人을 겸하는 게 普通이지만 只今은 次官級인 홍상표 弘報首席 傘下에 1級 祕書官인 金姬廷 代辯人이 있다. 放送記者 出身인 洪 首席과 國會議員을 지낸 金 代辯人이 業務上 間或 부딪친다는 얘기도 들린다.

    靑瓦臺의 새로운 實勢로 떠오른 김두우 企劃管理室長度 政務와 政策뿐만 아니라 弘報에도 폭넓게 干與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大統領의 核心側近인 이동관 前 弘報首席度 돌아왔다. 지난 年末 大統領 常勤 弘報特報로 任命된 뒤 靑瓦臺 隣近 창성동 別館에 머물면서 隨時로 이 大統領의 呼出을 받아 다양한 諮問을 한다고 靑瓦臺 關係者가 傳했다. 李 特報는 任命狀도 받기 前에 朴亨埈 社會特報(前 政務首席)와 함께 이 大統領의 新年 特別演說 原稿 讀會에 參席했다고 한다. 靑瓦臺 弘報라인 內部의 葛藤과 反目은 언제든 再發할 素地가 많다는 視角이다.

    李 大統領의 言論忌避症은 任期 末에도 繼續될 것으로 보인다. 大統領 自身의 基本的인 認識이 바뀌지 않은데다 參謀들도 如前히 言論 接觸을 挽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靑瓦臺 政務라인 一角에선 記者들과의 一問一答을 통해 國政 全般을 說明하는 것이 낫겠다는 建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大統領은 一方的인 演說을 擇했다.

    美國에서 大統領이 國民을 代身한 記者들의 質問에 答辯하지 않고 任期를 보내는 것은 想像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영묵 敎授는 “言論을 통한 國民과의 疏通이 없는 것은 深刻한 問題”라며 “失手를 甘受하더라도 直接 부딪치지 않으면 大統領은 蒸發하고 만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