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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萬 敎職員 100歲 時代 共濟會 資産 100兆 時代 準備”|新東亞

“72萬 敎職員 100歲 時代 共濟會 資産 100兆 時代 準備”

이규택 韓國敎職員共濟會 理事長

  • 최호열 記者 | honeypapa@donga.com

    入力 2015-08-20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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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未來 먹을거리 發掘할 ‘2020未來創造推進團’
    • “透明하고 客觀的인 基金 運用管理 시스템 定着”
    • 總選 不出馬, 아내 癌鬪病…“아내 따라 죽고 싶었다”
    • “與野 싸우면 國民만 被害…的 아닌 同志로 對해야”
    “72만 교직원 100세 시대 공제회 자산 100조 시대 준비”
    韓國敎職員共濟會(以下 共濟會)는 幼稚園, 初中高, 大學의 敎員과 事務職員, 敎育公務員들의 生活 安定과 福利 增進을 目的으로 設立된 公共機關이다. 1971年 會員 7萬 名, 資産 13億 원으로 出發해 只今은 會員 72萬 名, 資産 26兆 원으로 成長했다. 資産 規模가 財界 10位圈 CJ그룹, 新世界그룹과 비슷한 水準.

    共濟會는 會員들이 每달 納付한 共濟會비(長期貯蓄給與)를 運用해 一時金, 또는 年金 形態로 돌려준다. 會員들을 對象으로 貸與事業(生活資金 等), 福利厚生事業, 敎育文化事業度 한다. 子會社로 The-K損害保險, The-K豫多함상조, The-K貯蓄銀行, The-K호텔, 라마다프라자濟州호텔, The-K소피아그린(골프場), The-K서드에이지(실버타운), The-K敎職員나라 等이 있다.

    共濟會를 이끄는 이규택(73) 理事長은 9月로 就任 2年을 맞는다. 4選 議員 出身인 그는 代表的 親朴(親朴槿惠) 政治人으로 꼽힌다. 그러니 이른바 ‘政治權 落下傘’으로 分類될 수도 있지만, 웬만한 專門經營人 못지않은 實績을 이뤄냈다는 評價를 받는다. 韓國經濟 ‘韓國 基金·資産運用對象’을 2年 連續 受賞했고, 每日經濟 ‘公共機關 資産運用 評價’에서도 2年 連續 最高等級을 受賞했다.

    理事長 執務室에 들어서자 ‘敎職 安定’이라고 쓴 額子가 눈에 들어온다. 1971年 共濟會가 創立할 때 朴正熙 當時 大統領이 親筆로 써준 것이다. 兩 옆으로 ‘이 社會의 촛불과 소금이 되자’ ‘初心으로 돌아가자’는 文句가 나란히 걸렸다. 이규택 理事長은 古稀(古稀)를 훌쩍 넘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였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새벽 4時면 일어나 洞네 뒷山에 오릅니다. 平地를 걷는 것보다 若干 가파른 山을 오르는 게 肺活量 늘리는 데 좋아요. 내려오는 길에 體育施設이 있는데, 力器를 每日 20番 以上 들어요. 이걸 안 하면 運動한 것 같지가 않아요.”



    “몇 kg쯤 드냐”고 묻자 “70kg까지 든다”고 했다. 젊은이 못지않은 筋力이다.

    “赤字를 낼 순 없다”

    ▼ 理事長에 就任하게 된 契機가 있었습니까.

    “2013年 여름에 公募 消息을 들었습니다. 敎育界에 몸담고 계신 분들을 위해 奉仕할 수 있는 機會라는 생각도 들었고, 敎育 分野라면 어느 程度 專門性이 있다고 自負해 적어도 ‘落下傘 人事’라는 非難을 받지 않을 自身이 있었습니다.”

    ▼ 敎育界와는 어떤 因緣이….

    “大學에서 敎育學을 專攻했고, 京畿道 驪州의 中學校에서 英語敎師를 하기도 했어요. 國會議員 時節 敎育委員會 委員長도 지냈고요. 그때부터 韓國敎職員共濟會에 많은 關心과 愛情을 갖고 있었습니다.”

    ▼ 共謀였으니 競爭이 熾烈했겠군요.

    “10代 1이었으니, 總選 競爭率보다 더 높았죠. 應募 後 두 달 동안 國會圖書館에서 살았어요. 正말 熱心히 工夫했죠. 그렇게 準備했는데도 面接 볼 때 떨리더군요. 다른 志願者들께 累가 되지 않도록 渾身의 힘을 다하겠다는 覺悟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3年 9月, 그가 就任할 當時 共濟會 總 資産은 22兆3795億 원. 올해 6月 末 現在 約 26兆 원이니 3兆5000億 원 增加했다. 勿論 저절로 늘어난 건 아니다. 只今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世界經濟의 長期 沈滯, 國內 企業의 成長 潛在力 低下 等으로 當時 經濟 狀況은 最惡이었다. 經濟成長率은 3%臺를 밑돌았고, 預金·債券金利는 ‘제로 金利’에 가까웠다.

    “2013年 資産運用 收益率이 4.6%였어요. 그런데 會員들이 納入하는 長期貯蓄給與에 對한 給與율(利子率)은 5.75%였으니 事實上 赤字였죠. 勞組 任員들을 만나 ‘우리가 아무리 公共機關이지만 赤字를 내서야 되겠나, 任職員이 合心해 뼈를 깎는 努力을 하자’고 督勵했어요. 危機에 積極的으로 對應할 수 있도록 內部 革新을 이루고, 組織體系圖 改編했죠.”

    ▼ 勞組의 反撥은 없었나요.

    “革新 方案도, 組織體系 改編도 職員들과 相議하면서 進行해 아무 問題가 없었어요. 그 結果, 2014年에는 年末 코스피指數가 1915.59까지 下落하는 等 어려운 經濟與件에서도 資産運用收益率 5%, 當期純利益 220億 원을 記錄했습니다. 올해 6月 末 基準으로는 資産運用收益率 約 6%, 當期純利益 1310億 원을 達成했습니다. 2年 동안 全 任職員이 變化와 革新에 同參한 結果입니다.”

    “72만 교직원 100세 시대 공제회 자산 100조 시대 준비”


    攻擊的 投資, 安全性 確保

    ▼ 具體的으로 어떤 變化를 줬습니까.

    “任職員 中에서 職級, 年齡帶別로 20餘 名을 뽑아 2020未來創造推進團을 만들었어요. 1年 동안 서로 머리를 맞대고 改善해야 할 것을 찾고 未來 먹을거리 發掘에 힘쓰도록 했죠.”

    ▼ 結果物이 있다면.

    “지난해 3月 海外投資部를 新設했어요. 新設 當時 3兆2000億 원이던 海外投資資産을 올 6月 末 現在 2倍 가까운 5兆7000億 원으로 늘렸죠. 그게 孝子 노릇을 했어요. 海外投資는 國內보다 複雜하고 리스크도 크지만, 國內 投資家 限界에 到達한 狀況에서 이젠 ‘必要’를 넘어 ‘必須’가 됐다고 봅니다. 또한 美國 敎職員退職年金基金(TIAA-CREF)과 1兆 원 規模의 合作 펀드를 設立하고, 웰스파고 銀行過度 業務協約을 맺어 다양한 投資線 確保를 꾀하는 等 海外 優良投資 比重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 새롭게 推進한 投資 分野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未來 먹을거리人 新成長動力에 對한 投資를 多邊化하고 있어요. 2013年엔 國內 機關投資者 最初로 航空機金融에 投資했고, 創造經濟의 核心 附加價値事業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 醫藥品 複製藥) 分野와 映畫펀드에도 300億 원씩 投資했습니다. 또한 5000億 원 規模의 블라인드펀드를 造成해 인프라, M·A, 헬스 케어, 新藥 等 多樣한 分野의 投資處를 探索하고 있습니다.”

    收益率을 높이기 위한 攻擊的 資産運用도 必要하지만 安全性도 重要하다. 透明하고 客觀的인 基金 運用管理 시스템이 要求되는 理由다. 敎員共濟會의 基金運用 시스템은 여러 共濟會 中에서도 가장 體系的이고 先進化했다는 評價를 받는다.

    “外部 專門家들이 參與하는 資産運用委員會에서 5年 單位의 中長期 資産運用計劃案을 樹立해 資産을 運用합니다. 資産運用委員會와 리스크管理委員會 委員長을 外部 人士가 맡아 公正性을 期하고, 理事長은 아예 運用에 介入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한 投資의 公正性과 리스크 管理 强化를 위해 投資部署와 獨立된 組織인 未來戰略室에 리스크管理팀과 投資審査팀을 둬 危險要素를 徹底히 分析합니다. 以外에도 다양한 視角에서 危險을 分析하고 合理的인 投資를 이끌어내기 위해 投資 關聯 實務者 全員이 職級에 相關없이 個別 投資 案件에 對해 意見을 開陳할 수 있도록 하고, 投資한 後에는 第3의 機關에서 公正한 價値 評價를 통해 危險을 管理합니다.”

    資産 100兆 時代 準備

    “72만 교직원 100세 시대 공제회 자산 100조 시대 준비”
    韓國敎員共濟會는 會員들이 納入하는 長期貯蓄給與에 對해 높은 給與率을 保障해왔다. 2013年 5.75%에서 2014年 5.15%로 낮췄지만 如前히 市中 金融商品보다 높은 利率이다. 會員들에게야 좋은 일이지만 共濟會 經營엔 큰 負擔이 됐다.

    “監督機關인 敎育部를 비롯해 監査院, 國民權益委員會로부터 財政 健全性 强化를 위해 給與율 引下를 持續的으로 勸告받았습니다. 이에 代議員會, 運營委員會 等 會員 代表들로 構成된 다양한 意思決定機構를 통해 充分히 理解를 求하고 意見을 收斂해 지난 3月 給與率을 4.32%로 引下했습니다.”

    ▼ 會員들의 反撥이 甚했을 것 같은데요.

    “會員들도 높은 給與率보다는 安定性이 重要하다는 데 共感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年末, 長期貯蓄給與를 年金式으로 受領할 境遇 利子所得稅를 15.3%에서 2%로 낮추는 法案을 國會에서 通過시켜 會員들의 損失을 最少化했습니다. 共濟會에서는 앞으로도 한層 强化된 財政 安定性을 基盤으로 持續的으로 收益 創出에 힘쓸 겁니다.”

    ▼ 任期가 1年 程度 남았는데, 앞으로 가장 注力하려는 部分은 무엇입니까.

    “100歲 時代입니다. 停年退任 後에도 40年쯤 더 살아야 합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會員들의 福利 增進과 生活 安定을 위한 다양한 制度와 서비스, 商品을 開發하려고 합니다. 30年 後인 2044年엔 共濟會 資産이 100兆 원에 達하게 됩니다. 長期的 眼目에서 經營 刷新, 組織 改編, 人的資源 充員 等 모든 部分을 새롭게 整備하고 準備해나갈 생각입니다.”

    ▼ 在任하는 동안 가장 記憶에 남는 일이라면.

    “共濟會에서는 會員들의 풍요로운 生活을 위해 다양한 生活 · 文化 福祉서비스를 提供하고 있습니다. 지난 年末 ‘The-K幸福나눔콘서트’를 열었습니다. 先生님들로 構成된 合唱團, 밴드 等이 出演해 公演을 펼쳤는데, 하는 분도 보는 분도 다들 反應이 좋았습니다. 올 1月에 벌인 海外奉仕活動度 보람차고 뜻깊은 經驗이었습니다. 우리 共濟會 支援으로 建立된 베트남 띵者 希望職業敎育센터에서 10名의 敎師 會員이 2週 동안 150餘 名의 學生에게 音樂, 美術, 科學, 體育, 컴퓨터, 韓國語 等을 가르치고 돌아왔습니다. 함께 간 職員이 痢疾에 걸려 苦生했을 程度로 劣惡한 環境이었지만, 돌아올 때 先生님과 學生들이 부둥켜안고 울 程度로 情을 듬뿍 나눴습니다.”

    程度와 原則, 그리고 親朴連帶

    이규택 理事長의 履歷은 波瀾萬丈하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몸담은 職場이 12곳이나 되네요. 中學校, 中央日報, 동양방송, 제일제당, 三星電子, KBS…. 프로野球團 三星라이온스와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前身)는 제가 直接 創團하기도 했죠. 그 因緣으로 지난 5月 三星과 한화 競技에서 記念 始球를 했는데 氣分이 妙하더군요.”

    ▼ 1980年代 中盤, 安定的인 職場에 다니다 在野 民主化運動에 投身했습니다.

    “이부영, 李敬載 等 解職記者들과 親했어요. 이원홍 當時 KBS 社長이 불러서는 ‘한 番만 더 빨갱이들과 어울리면 자르겠다’고 惹端을 치기도 했죠. 그렇다고 오랜 同僚들과 絶交할 수는 없잖아요. 繼續 因緣을 이어가다 結局 會社에서 잘렸죠. 이를 契機로 백기완 先生을 돕다가 金德龍(민화협 常任議長)의 紹介로 民主山岳會에 參與하고, 民推協 活動을 하다 安企部에 끌려가 拷問도 當하고, 監獄에도 갔죠.”

    그는 6月 民主抗爭을 主導한 民主憲法爭取國民運動本部에서 活動했다. YS(김영삼 前 大統領)가 이끄는 統一민주당 創黨發起人으로 政治에 入門했지만 1990年 3黨 合黨 때 YS를 따르지 않고 盧武鉉, 金正吉 等과 함께 統一민주당에 남았다. 1992年, 1996年 總選 때는 與黨 强勢 地域인 京畿도 驪州에서 連거푸 當選되는 氣焰을 吐했다. 그런데 1996年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한나라당에 入黨했다.

    “3黨 合黨 때 안 따라간 건 單純해요. 엊그제까지 전두환, 노태우 辱을 했는데 어떻게 그 품에 들어가요? 良心이 許諾하지 않았죠. YS가 直接 說得했지만 拒絶했어요. 1996年에도 마찬가지예요. DJ(김대중 前 大統領)가 名分 없이 政界 復歸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民主黨 議員 大部分을 데려갔어요. 程度가 아니다 싶어 한나라당으로 온 거죠.”

    2008年엔 ‘親朴’이란 理由로 總選 公薦을 못 받는 政治 人生 最大 危機가 찾아왔다.

    “公薦 審査에서 탈락한 날 밤, 朴槿惠 大統領에게서 電話가 왔어요. ‘어떻게 해요…’ 하며 걱정을 하는데, 나도 難堪해서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다음날 만나자는 連絡이 와서 나를 비롯한 公薦 脫落者들이 모였는데, 當身도 답답하지만 慰勞하는 것밖에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때 朴 大統領이 한 말이 ‘살아서 돌아오라’였죠.”

    그는 이를 契機로 親朴聯隊를 主導했다. 비록 自身은 落選했지만 親朴聯隊는 24名의 當選者를 排出하며 박근혜 파워의 實體를 확인시켰다. 萬若 親朴聯隊가 總選에서 失敗했다면 朴槿惠의 大選 街道度 거기서 끝났을 것이라는 게 一般的인 評價다. 親朴聯隊가 朴槿惠 大統領을 만드는 決定的 役割을 한 셈이다.

    “72만 교직원 100세 시대 공제회 자산 100조 시대 준비”
    아내와 색소폰

    하지만 그는 落選했고, 그로 인한 挫折도 컸다. 그때 힘이 되어준 게 색소폰이라고 한다.

    “地域區에 내려가면 黨員들과 燒酒 한잔하고 2次로 노래房을 가는 게 코스였어요. 그런데 2007年에 아내가 느닷없이 색소폰을 배우라는 거예요. 女性 有權者를 홀리는 데는 색소폰 演奏가 最高라나…직접 登錄까지 해주더군요. 選擧 때문에 熱心히 배웠는데, 公薦 脫落으로 써먹지도 못했죠(웃음).”

    아내 이재옥 氏는 그 直後 腦腫瘍이 發病해 4年 동안 鬪病하다 2012年 11月 作故했다. 17年 동안 食堂을 하며 그의 政治인 生活을 온몸으로 뒷바라지해준 아내였다.

    “마지막엔 너무 힘들었어요. 朴 大統領에게 負擔을 주지 않으려고 總選 不出馬 宣言을 한 데다, 아내는 生死를 헤매지…. 긴 病看護에 壯士 없다고, 아픈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苦生만 시켜서 未安하기도 하고…. 아내 죽을 땐 나도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때 큰 힘이 되어준 게 색소폰이죠.”

    配慮하고 尊重하자

    ▼ 只今도 자주 부나요.

    “才能寄附를 통해 많은 分科 즐거움을 共有하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寧越矯導所를 訪問해 慰問公演을 했고, 獨逸 작센 유스윈드 오케스트라와 協演도 했어요. 지난 3月 열린 共濟會 代議員會에서도 색소폰을 연주해 拍手喝采를 받았죠. 이제 색소폰은 人生의 同伴者나 다름없어요. 職員들에게도 무슨 樂器든 좋으니 하나씩 배우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 색소폰의 魅力이 뭔가요.

    “색소폰 音色은 듣는 이의 마음을 氣分 좋게 하는 妙한 魔力이 있어요. 꾸준히 연주하다보니 스트레스 解消는 勿論, 肺活量도 좋아지고, 樂譜를 외우다보면 記憶力 向上에도 좋습니다. 제 演奏에 즐거워하는 聽衆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쁜 일이고요.”

    이규택 理事長은 代辯人, 院內總務, 最高委員 等 要職을 두루 지냈다. 그런 만큼 요즘 政治판을 보는 心境이 남다를 것 같다.

    “우리 때는 與野가 싸우더라도 뒤로는 對話를 많이 했어요. 院內總務 때 파트너였던 정균환 議員과는 只今도 種種 만나 술盞을 기울이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刻薄해졌어요. 相對方을 無視하고 認定하지 않는 傾向이 漸漸 심해지는 것 같고.”

    그는 노무현 政權 初期 한나라당 院內總務를 지냈다.

    “當時 노무현 大統領이 就任 前에 한나라당 黨舍를 訪問하기도 했어요. 며칠 後엔 與野 院內總務를 불러 같이 밥도 먹었죠. 밥 먹으면서 다투기도 했지만 그래도 相對를 尊重하고 認定했죠. 例를 들어 參與政府 첫 總理로 櫜鞬 氏를 임명했는데, 요즘 잣대로 보면 聽聞會 通過가 힘들었어요. 于先 軍隊를 안 갔으니까. 하지만 黨 指導部에서 ‘新接生活 6個月은 봐줘야 한다’며 通過시켜줬죠. 그땐 그런 配慮가 있었어요.”

    ▼ 後輩 議員들에게 忠告를 한다면.

    “相對를 認定하고 待接해줘야 해요. 相對가 있으니까 自己도 存在하는 거예요. 政治란 게 結局 國民을 위한 일인데, 서로 怨讐처럼 對하면 被害는 結局 國民에게 돌아가요. 相對를 敵으로 보지 말고 同志로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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