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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職者의 時急, 어딜 가도 1萬 원이더군요”…어느 大企業 任員의 退職日記[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退職者의 時急, 어딜 가도 1萬 원이더군요”…어느 大企業 任員의 退職日記[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8月 26日 03時 00分


코멘트

정경아 前 新世界그룹 常務
“올라가는 데 30年, 내려올 땐 3秒”
“會社는 언젠가 떠나야 할 곳”
“退職 後 내 모습, 想像이라도 해보세요”
職場人 履歷, 社會에선 一回用 消耗品
退職者 時急은 1萬 圓이 常識
退職者들의 롤모델 아쉬워

大企業 任員 人事는 大體로 金曜日 午後에 있다. ‘任員=臨時職員’이란 우스개가 있을 程度로 파리 목숨 身世인 任員들. 이들에게 退職 通報를 할 때는 더욱 金曜日이 有用하다. 週末 새 그들의 痕跡을 지워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새로운 한 週를 始作할 수 있으니까.

정경아 前 新世界그룹 常務(54)가 30年 職場生活을 끝낸 2019年 10月 그날도 金曜日 午後였다.

그날, 한 會議室에 불러모아진 10餘 名의 任員들을 둘러보며 代表가 무거운 입을 뗐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올해가 마지막인 분들입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名 한 名 握手를 請했다.

“墜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던가요. 30年間 아등바등 일하며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딱 3秒 걸리더군요.”

退職 4年次라고 스스로를 紹介하는 정경아 全 常務. 準備되지 못한 退職 以後 힘들었던 過程을 돌이켜보며 옛 同僚와 後輩들에게 會社보다 自身을 삶의 中心에 놓으라고 强調한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이마트 時節 野遊會에서. 會社 없는 人生을 想像할 수 없을 程度로 業務에 올인하는 나날이었다. 정경아 氏 提供
사내 體育大會에서 팔씨름에 挑戰했다. 後輩들이 撮影해 社內 消息紙에 올린 寫眞을 재촬영했다. 정경아 氏 提供


● 滿 50歲, 하루아침에 白手가 되다
유튜브 알고리즘 德에 정경아 全 常務를 알게 됐다. 앳돼 보이는 女性이 退職 體驗을 얘기하길래 아나운서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本人 얘기였다. 그가 最近 낸 冊 ‘어느 大企業 任員의 退職日記’(RHK)도 言及됐다. 退職 4年次로 접어들었다는 鄭 氏를 17日 서울 鍾路區 東亞日報 本社에서 만났다.

-金曜日 退職 通報를 받고도 月曜日 아침에 出勤하려 했다면서요.


“事實 아무도 ‘來日부터 나오지 말라’고 明示的으로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雰圍氣로 제가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꿈을 꾼 것 같았거든요. ‘이제 出勤할 必要 없잖아’라는 男便의 말에 들었던 핸드백을 놓고 주저앉았지요.”

冊은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그가 써온 退職 關聯 글들이 基盤이 됐다. 退職의 當惑感과 以後 겪은 心境 變化, 迂餘曲折을 거치며 社會에서 홀로서기 위해 努力하는 過程들이 담겼다.

너무 率直한 描寫에 “名色이 大企業 任員이었는데 이미지 생각은 안 하느냐”는 反應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말 듣고 더 熱心히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體面 따지며 쉬쉬하다 보니 退職者들의 삶은 世上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잖아요. 退職의 實相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해요.”

-50代 初盤쯤 大企業 任員이 됐다가 2年 만에 나온(잘린) 분들을 여럿 만나봤는데 다들 衝擊을 삭이지 못해 힘들어하시더군요.

“멘털이 털린다고 할까. 平生을 바쳐온 會社에 버려진 느낌? 背信感이라기보다는 一方的으로 依存하고 짝사랑하다가 잘린 느낌 같은 거죠. 會社는 무심한데. 그게 會社의 屬性이에요.”

2017年 末 48歲에 常務補로 昇進했을 때만 해도 그해 新世界그룹 數十名 昇進人事에서 唯一한 女性任員으로 注目받았다. 하지만 任員 生活은 滿 2年으로 끝났다.

任員 1年次의 實績不振이 致命的이었는데, 때마침 環境 이슈가 터져 그가 맡은 商品 分野가 直擊彈을 맞았다. 2年次는 所謂 ‘退職 前 마지막 關門’이라 불리던 자리에 發令받았다.

會社에 올인하다시피 살아온 그에게 ‘現打(現實自覺타임)’가 찾아왔다.

● “最大 復讐는 退職 前보다 더 잘사는 것”
職場生活을 오래 한 사람 大部分이 鄭 氏처럼 ‘現打’가 오는 瞬間을 만난다. 會社와 自身의 關係가 어느덧 變했음을 깨닫는 瞬間이다. 會社는 좋은 新入社員을 뽑고 이들을 잘 키워 成果를 내도록 努力하지만 一定 時間이 흐른 뒤엔 이들을 부담스러워한다. 잘나가던 職場人이 瞬息間에 退物 取扱받게 되는 때다.

-德分에 退職準備할 時間을 얻은 셈이네요. 그런데 ‘退職의 關門’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對外 營業인데, 會社의 新規 收入源을 찾는 일이에요. 돈 되는 건 뭐든지 찾아서 하는 거죠. 그 1年 間은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났어요. 事實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지요. 名色은 任員이지만 사내 모든 關係에서 排除되는 느낌이었어요.

個人的으로 週末이나 밤 時間을 풀로 活用해 사이버 大學 講義도 듣고 民間 資格證도 5個쯤 땄습니다.

그 代身 會社 일은 더 熱心히 했어요. 有終의 美를 거두고 싶었고 或是나 여기서 成果를 내면 雰圍氣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未練도 없지 않았지요.”

-그동안 쌓은 功이 있는데, 1年 삐끗했다고 내치는 건 會社가 너무한 것 아닌가요.

“時代的 狀況도 제 몫이니까, 會社에 對한 서운함은 全혀 없습니다. 不斷히 새로워져야 하는 게 會社의 生理죠. 온라인에 밀리고 있는 流通 分野는 特히 그렇습니다.”

空氣처럼 自身을 감싸주던 會社를 떠난다는 것,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구멍이 뻥뻥 뚫리는 經驗이었다. 銀行에서 마이너스 通帳 貸出 延長이 안 된다는 通報가 왔고 健康檢診, 保險 等 生活 全般에 問題가 생겼다.

“가볍게 떠나는 週末旅行도 事前調査를 하고 計劃을 세우는데, 退職 後 數 十 年 남은 人生 旅程을 全혀 準備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鄭氏는 첫 職場 이랜드에서 10年間 衣裳디자인을 했다. 新世界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마트에서 20年間 일했다. 中途入社者의 限界를 克服하기 위해 더욱 齷齪같이 일했다고 回顧한다. 寫眞은 1993年 이랜드 時節 寺院練修會에서. 정경아 氏 提供


● 會社 안은 정글, 會社 밖은 戰爭터
退職 뒤 많은 일이 있었다. 2021年 첫 冊 ‘독한 언니의 職場生活白書’를 냈고 지난 6月 두番째 冊인 ‘어느 大企業 任員의 退職日記’를 펴냈다. 놀라운 것은 退職한 뒤에 첫 冊을 썼지만 冊 內容에 退職 얘기가 거의 없다는 點이다. 本人은 職場生活 가이드 槪念이라 그렇다고 說明하지만, 그만큼 退職의 衝擊이 컸기 때문은 아닐까.

5個月 程度 서울 江南의 面接學院에 相談室長으로 就職해 備品管理, 化粧室 淸掃를 度맡기도 했다. 代價는 時急 1萬 원에 點心으로는 김밥 한줄이 提供됐다.

-相談室長이 왜 淸掃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 하지요?

“會社 나오면 어디나 그래요.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를 選擇할 뿐, 다른 餘地는 없어요. 이게 世上이에요. 給與도 無條件 時間當 1萬 원이에요. 어딜 가도 1萬 원. 稀罕한 일이죠. 退職者들은 다 알아요. 會社 나갔을 때 나의 價値는 時間當 1萬 圓이라는 것을. 職場 門을 딱 나오면 正말 무엇이든지 想像 그 以上이더라구요.”

그 渦中에 힘든 사람을 등치는 者들은 꼭 있다.

어느날 헤드헌팅 業體에서 00期業 00자리에 有力 候補로 올랐다며 連絡하더니 履歷書를 넘겨주자 消息을 끊었다. 클라이언트에게 涉外力을 誇示하기 위해 利用됐다는 걸 깨달았다. 한때 衣類流通業 關聯 스타트업에 오픈 멤버로 參與해 땀을 흘렸지만 經營이 어려워지자 瞬息間에 解雇되기도 했다.

“社會에서는 履歷이 있는 職場人을 一回用 消耗品으로 利用하려는 境遇가 많아요. 例를 들면 流通業界에 있던 사람은 納品處를 찾는 분들이 販路를 뚫는 役割을 期待하며 接近하죠. 大部分 단물만 빨리고 버려집니다. 아무리 華麗하게 再就業한 退職者도 1,2年이면 會社를 떠나야 하죠.”

● “會社 없이도 내가 成長할 수 있구나”
이런 그에게 보람을 안겨준 것은 區廳에서 主管하는 敎育 프로그램이었다.

脆弱階層 靑少年에게 1對 1로 進路指導를 해주는 멘토링 事業이었는데 처음에는 對答도 하지 않던 中學生 閔준이가 漸次 마음을 열며 成長하는 모습이 큰 慰勞가 됐다.

멘토링 期間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민준에게서 文字 하나가 왔다. ‘先生님 저예요. 感謝합니다!’ 달曆을 보니 스승의 날. 눈물이 핑 돌았다.

“그 前까지 저를 성장시키는 動力은 會社가 唯一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會社에 매달렸고요. 이런 생각이 민준이를 通해 깨졌어요. 아이가 成長하는 모습이 제게 뿌듯함과 慰勞를 줬고 저 스스로 徐徐히 回復되고 있다고 느끼게 됐어요.”

鄭氏는 한 달 女 前부터 유튜브 채널 運營에 빠졌다. 主로 집이나 南山圖書館에서 혼자 作業한다고 한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 우리 모두에게 世上의 中心은 自身
-드디어 會社없는 生活에 適應하는 거군요.

“退職後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會社가 아니라 내 人生이 삶의 中心에 놓여야 한다는 點이에요. 只今도 後輩나 同僚들, 會社에 미친 듯이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會社 일은 當然히 熱心히 해야 하지만 會社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會社를 나온 뒤의 삶에 對해서도 생각하고 準備해야 한다고.

世上의 中心은 바로 當身이란 걸 잊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새로운 目標를 세웠다. 職場 生活과 退職 關聯 專門家로서 關係者들에게 動機를 附與하는 役割을 하겠다는 것이다. 글쓰기, 講義, 콘텐츠 만들기 等 方式은 여러 가지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冊을 내고 關聯 講義를 準備하는 데 이어 最近에는 유튜브 채널을 2個 開設했다. 이 中 退職 經驗者들의 直接 인터뷰를 담은 채널 ‘退職學校’는 開設 한 달餘 만에 購讀者가 4000名을 넘어섰다.

2005 年頃 이마트 분당店에서 팀長으로 일하던 時節. 그 뒤 2011年 牧童店 店長, 2014年 良才店 店長을 맡아 좋은 成果를 이뤄냈다. 정경아 氏 提供


● ‘잘려서’, ‘잘릴 豫定이라서’… 工場서 마주치는 大企業 任員들
그는 요즘 유튜브 撮影을 위해 많은 退職者를 만나고 있다.

-會社 밖에서 만난 退職者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가요.

“任員을 했던 분이건 아닌 분이건 제대로 자리잡은 분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모두 힘들죠. 쿠팡같은 配達일, 工事판, 單純 아르바이트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분들이 오히려 깨어 있다고 생각해요.

最近 인터뷰한 大企業 任員 出身 退職者 얘기가 재미있었어요. 잘리자마자 어느 企業 工場에 일하러 갔는데 거기서 다른 企業의 現職 任員을 마주쳤대요. ‘왜 왔느냐’고 물으니 ‘곧 잘릴 豫定이라 어떤 職種이 있는지 練習삼아 다니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退職者件 在職者件 이런 現實 얘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各自 뿔뿔이 흩어져 아무 情報도 없이 退職해 時間만 흘려보내며 悔恨을 쌓는 것보다 말이죠.”

退職한 지 3年 넘었지만 會社다닐 때의 루틴을 維持하려 애쓴다. 午前 8時부터는 어디에 있건 業務를 始作한다. 노트북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그의 일터가 된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유튜브 채널을 위해 맨처음 인터뷰했던 中堅企業 前 代表 얘기는 여러모로 가슴아팠다고 한다. 業界에서는 꽤 알려진 百貨店체인을 만들고 10年間 社長을 맡았던 그는 派遣勤勞法 違反으로 會社가 困境에 處하자 그 責任을 지고 辭職했다.

하지만 이 事件탓에 3年間 訟事를 거쳐 執行猶豫 2年刑을 받으면서 都合 5年間 아무것도 할 수 없는 狀態가 됐는데 이런 現實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 中에는 이런 씁쓸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現役時節 유난히 잘 따르던 後輩가 父親喪을 當했다. 道理라고 생각해 釜山까지 아내와 함께 내려갔는데, 問喪을 한 뒤 1時間을 앉아있어도 後輩가 나와보지를 않더라. 社長 時節 現場 巡視가면 ‘그만 들어가서 볼 일 보라’고 아무리 勸해도 끝까지 남아 遂行하던 親舊였는데…. 그대로 葬禮式場을 나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제 弔問같은 건 가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鄭 氏는 ‘이런 얘기가 繼續 알려져야 退職者들은 조금이라도 慰勞받고 在職者들은 精神차릴 수 있다’고 말한다.

● 退職者 世界에도 롤 모델이 必要하다
-요즘 우리 社會가 시니어世代나 나이에 對해 宏壯히 薄한 待遇를 하지요.

“그래도 늘어나는 머릿數의 힘을 無視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요즘 시니어들은 新人類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같이 살자, 내 삶도 價値가 있다. 너희도 늙는다’ 程度는 堂堂히 말할 수 있어야죠.”

그는 3年 後에 ‘大企業 任員의 退職 日記 3年 後’를 쓸 豫定이다. 只今까지 職場물을 빼는 데 3年 걸렸고 다시 3年 뒤엔 어디쯤 가 있을지, 그걸 確認해야 이 退職 壯丁이 어느 程度 一段落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退職者 世界에도 롤모델이 必要합니다. 제 境遇도 그랬지만 退職者들에게 가장 絶望的인 게 보고 따라갈 里程標가 없다는 거예요.

退職의 成功 事例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많은 退職者에게 꿈과 希望을 줄 수 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길은 없지만,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그냥 뚜벅뚜벅 가보려 합니다.”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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