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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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軍도
楸子群島
地圖

지리

位置 濟州海峽
座標 北緯 33° 56′ 50″ 東經 126° 19′ 13″  /  北緯 33.9471142° 東京 126.3201824°  / 33.9471142; 126.3201824
軍도 추자도

主要 섬 上楸子島 , 下楸子島
面積 7.05 km 2

行政 區域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濟州特別自治道
時·麵 濟州市 추자면

人口 統計
人口 1,906 (2019年 12月 31日 基準)名

추자軍도 (楸子群島)는 濟州市 에서 가장 北쪽 濟州海峽 에 位置한 軍도 로, 行政區域上 濟州特別自治道 濟州市 추자면 에 屬한다.

週 섬인 上楸子島 下楸子島 추자大橋 로 서로 連結되어 있고, 횡간도 , 秋浦島를 包含한 4個의 有人島, 38個의 無人島로 이루어져 있다. 추자群盜의 全體 面積은 7.05 km 2 이며, 人口는 2019年 12月 31日 住民登錄 基準으로 1,733 名이다.

歷史 [ 編輯 ]

추자群盜는 行政區域上 濟州特別自治道에 屬해 있으나, 地理的으로 全羅南道 莞島郡 과 接해 있고 言語·文化的으로도 全羅南道 에 가깝다.

추자도는 高麗 時代부터 韓半島 陸地部에서 羅州, 海南, 康津을 거쳐 濟州로 건너가기 위한 關門 役割을 한 곳이었다. 김방경 (金方慶)李 三別抄 를 鎭壓하기 위해 추자도에 碇泊한 적이 있고, 다시 1374年 崔瑩 (崔瑩)李 牧胡의 난 鎭壓을 위해 濟州로 向하던 中 風浪을 만나 추자도에 碇泊하여 추자도 漁民들에게 그물 짜는 法을 알려주었다는 傳說이 있으며, 崔瑩 將軍의 祠堂이 세워졌다.

元士 》(元史)에는 支援 (至元) 30年(高麗 충렬왕 30年, 1293年)에 詔書를 내려 耽羅(濟州島)에서 鴨綠江 에 이르는 물길의 要衝地마다 30곳의 水域(水驛)을 세우게 했다는 記錄이 있으며, 그 가운데 한 곳이 추자도로써 朝鮮 初期까지 當時 세운 水站(水站)의 痕跡이 추자도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 濟州 本섬에서 추자도로 고기잡이하러 나갔다가 風浪을 만나 日本이나 中國에 漂流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朝鮮 後期 實學者 한치윤 (韓致奫)의 《 海東繹史 》(海東繹史)는 靑 乾隆 5年(1740年) 中國 江南의 소前現 百姓이 바닷가에서 貿易하다가 風浪으로 漂流해 朝鮮의 추자도까지 떠내려가서 救助되어 돌아왔다는 《 大淸會典 》(大淸會典)의 記錄을 紹介하고 있다.

高麗 충숙왕 (忠肅王) 10年( 1323年 )에 群山도 에 侵入한 倭寇가 추자도에 出沒해 老弱者를 잡아간 것을 始作으로, 朝鮮 成宗 25年( 1494年 )에도 倭船 4隻이 추자도에 出沒해 濟州島에서 進上하던 貢物을 掠奪하기도 하였다.

朝鮮 時代에는 全羅道 靈巖郡 월경지 人 이진진(梨津鎭, 現 全羅南道 海南郡 북평면 이진리)에 屬하였다. [1] 1896年 에 全羅南道 莞島郡 에 編入되었다. 1914年 4月 1日 全羅南道 제주군 에 編入되었고, 1946年 8月 1日 濟州道 와 함께 美軍政 軍政法令 第94號 (1946.7.2 恐怖)에 따라 全羅南道 에서 分離되었다.

1926年 추자도의 漁業組合長 김상진이 殖産銀行 祭主支店에서 借入한 4千 원으로 소금을 사서 市中價보다 비싸게 組合員들에게 팔고, 漁民이 캔 天草를 理事 황석희 等 職員들과 짜고 强制로 買收하려 하였다. 이에 漁民들이 抵抗하자 김상진은 추자警察官 駐在所에 連絡해 이들을 拘束시켰다. 그러나, 그에 屈하지 않고 예초리 漁民 7百餘 名이 5月 11日 추자도 漁業組合의 不正을 糾彈하면서 共同 販賣 廢止와 組合長 處罰을 외치며 漁業組合으로 闌入하였다. 이에 김상진은 木浦 로 달아나고 추자도 駐在所 警察들이 空砲彈을 쏘아 群衆을 解散시켰다. 이 事件으로 21名이 檢擧되고, 김종만 等 7名이 獄苦를 치렀다.( 추자도 漁民抗爭 ) 1932年 5月에도 日本 漁夫들의 流刺網 漁業으로 沿岸 魚族들이 거의 枯渴되다시피 하자 추자도 漁民들은 生存權을 지키기 위해 抵抗하였고 많은 漁民들이 拘禁되었으며, 當時 김봉수(영흥리), 朴炳錫(영흥리) 外 11名이 有罪 宣告를 받았다.

지리 [ 編輯 ]

추자群盜는 黃海 南海 가 交叉하는 地點에 位置하여 魚族이 豐富하고 漁場이 잘 發達되어 있다. 住民 大部分이 漁業 및 漁業 關聯 産業에 從事한다. 主要 魚種으로는 早期 · 멸치 · 삼치 · 防禦 等이 있으며, 멸치젓의 맛이 좋기로 有名하다.

週 섬인 上楸子島 下楸子島 는 總길이 212 m의 추자大橋 에 依해 서로 連結되어 있다. 面事務所 上楸子島 의 대서리에 있다.

추자도는 예로부터 영산포 에서 濟州道 를 오가던 배들의 避港地로, 高麗 공민왕 23年( 1374年 )에 崔瑩 將軍이 牧胡의 난 을 平定하러 영산포에서 濟州島를 오가는 過程에서 風浪을 避하고 艦船을 整備하기 위해 추자도에 머물렀다. 上楸子島 에는 崔瑩 將軍 祠堂 이 있다.

行政 區域 [ 編輯 ]

  • 대서리, 신양리, 신상리, 신하리, 영흥리, 使動, 長斫리, 墨吏, 예초리, 秋捕吏

水産業 [ 編輯 ]

신양항 [ 編輯 ]

신양항 은 申孃1里에 있는 國家魚缸 으로, 索莫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아치형의 드넓은 몽돌 海邊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漁港이다. 長斫評事(長作平沙)라 하여 추자 10景에 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2]

참치 樣式 [ 編輯 ]

濟州道 는 추자도 沿岸 海上에 참치 가두리 養殖 을 推進하고 있다. [3]

觀光 [ 編輯 ]

추자 올레 코스 [ 編輯 ]

추자항 ~ 崔瑩將軍 祠堂 0.4km ~ 鳳글레山 正常 1.5km ~ 純孝角 入口 2.5km ~ 處事角 2.7km ~ 나바론 絶壁正常 3.1km ~ 추자燈臺 3.3km ~ 墨吏 고갯마루 5.1km ~ 신양항 7.7km ~ 모진이 몽돌海岸 8.4km ~ 황경헌의 墓 9.3km ~ 신대산 展望臺 10.2km ~ 嚴바위 장승 11.6km ~ 돈대산 頂上 12.8km ~ 秋自校 15.4km ~ 永興 쉼터 16.2km ~ 추자항 17.7km [4] [5]

主要 볼거리 [ 編輯 ]

  • 모진이 작지 몽돌밭: 200餘미터가 넘는 몽돌 海邊으로, 波濤의 拍子에 맞춰 부르는 몽돌들의 노래는 夢幻的이다.
  • 추자도 燈臺: 國內에서 唯一하게 南海의 多島海와 濟州의 漢拏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燈臺 아래로 펼쳐지는 추자도 風景 또한 그림같이 아름답다.

大衆交通 [ 編輯 ]

旅客船
  • 濟州 ↔ 추자, 하루 2回 運行, 1時間 所要(퀸스타2號)
  • 海南右水營 ↔ 추자 하루 2回 運行, 1時間 30分騷擾 (퀸스타 2號) / 木浦↔海南右水營 區間은 셔틀버스가 無料로 提供된다.
  • 莞島 ↔ 추자, 하루 1回 運行, 2時間 40分 所要
마을버스

섬內 交通 手段은 버스 가 하루 1時間 配車 間隔으로 대서리와 신양리를 오가며 運行을 한다. 버스의 保有 臺數는 고작 2代 뿐이며, 起點은 대서리, 終點은 신양리이다. 그러나 停留場은 따로 없으며 손만 들면 버스가 停車하는 特徵이다.

唯一한 交通手段인 버스의 境遇 短點은 點心 時間 1時間이 따로 包含되어 있기 때문에, 點心 時間代가 끼이는 境遇이면 2時間間隔으로 運行하고, 週末 같은 境遇도 平日 點心時間代와 비슷하며, 택시 는 없다.

各州 [ 編輯 ]

  1. http://mirror.puzzlet.org/ddy/ Archived 2018年 9月 4日 - 웨이백 머신  : 大東輿地圖를 인터넷 指導처럼 볼 수 있다.
  2. 韓國漁村魚缸協會 發刊 'KFPA 漁村語港漁場 消息' 2010年 8月號
  3. 임창준 記者 (2011年 6月 29日). “濟州 추자도, 참치 樣式産業의 메카로 뜨나” . 世界日報 . 2011年 6月 29日에 確認함 .  
  4. ' 섬속의 섬' 추자올레 開場” . 한겨레. 2010年 6月 28日 . 2011年 7月 8日에 確認함 .  
  5. 이한기 (2010年 6月 30日). ' 낚시꾼의 로망' 추자도에 올레길 생겼다” . 오마이뉴스 . 2011年 7月 8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