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夜의 鐘
(除夜-鍾)은 陰曆으로
섣달 그믐날
에서
설날
로 넘어가는
밤
12時(
子正
)에 울리는
種
또는 그 鐘소리를 가리키는 單語이다.
[1]
元來는 절에서 아침 저녁으로 鐘을 108番 울리는 것을 의미했는데, 오늘날에는 한 해의 마지막 밤에 울리는 鐘을 意味한다. 韓國에서는 12月 31日 밤 12時를 期해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普信閣
鐘을 33番 打鐘하는 것으로 除夜의 鐘을 代身한다.
[2]
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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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敎
에서 人間의 모든 煩惱를 除去하는 意味로 삼았고, 1年 12달, 24節氣, 72氣候를 合하면 108番이 나오는 것으로 象徵한다.
東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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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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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섣달이 아닌 陽曆
12月 31日
밤 12時(자정)
를 期해
서울特別市
鍾路區
관철동
에 있는
普信閣鐘
을 33番 치는 것으로 除夜의 鐘을 代身한다. 33番 鐘을 울리는 理由는
帝釋天
(佛敎의 守護神)李 이끄는 하늘 世上인
忉利天
(33千)에 닿으려는 꿈을 담고 있으며, 나라의 太平과 國民의 便安함을 祈願하기 위해서다.
1394年
朝鮮 建國에서
李成桂
의 漢陽 天道와 함께
景福宮
과
한양성
이 築造된다. 이의 設計者는
정도전
이 漢陽의 4大門을 儒敎의 4德(四德)인 仁義禮智에 맞추고, 東쪽은
興仁之門
, 南쪽은
崇禮門
, 西쪽은
敦義門
, 北쪽은
弘智門
의 構造가 갖추어진다.
1396年
에
한양성
이 完成되었고,
1398年
에 鐘樓가 갖춰진다. 이때부터 새벽 4時에 33番 鐘을 쳐 城門을 열고, 저녁 10時에는 28番 쳐 門을 닫는 意識이 始作된다.
[3]
朝鮮 後期인
1895年
에 鐘閣에서 普信閣이라는 名稱으로 바뀌면서
正午
와 子正에 打鐘하는 것으로 變更되었고,
1908年
4月
부터 砲(砲)를 쏘는 것으로 代替됐다가, 結局
日帝强占期
에 依해 打鐘이 中斷되고,
1929年
에
日本
京城放送局
이 特別企劃으로 正初에 '除夜의 鐘소리'의 生放送으로 보냈다.
解放
과
大韓民國
政府 樹立 以後
1953年
부터 除夜의 種 打鐘이 再開되었고, 오늘날까지
普信閣鐘
이 使用되었다가,
[4]
除夜의 種으로 使用된 後 國民의 誠金에 依하여 새로 鑄造된 종이
1985年
8月 14日
普信閣에 걸렸고,
8月 15日
光復節
에 처음 打鐘되었다.
2020年
과
2021年
에는
코로나19 汎流行
과 關聯된 憂慮로 인해 行事가 取消되었으며, 온라인으로 進行하였다. 그러다가
2022年
에 오프라인 打鐘 行事가 再開되었다.
解放 以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도 除夜의 鐘을 打鐘하고 있으며,
平壤
重九譯
大同門
北쪽에 있는
平壤種
을 使用하고 있다.
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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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部
誤微笑카
(大晦日)와
오쓰고모리
(大つごもり)를 두 가지 뜻의 섣달이 아닌 陽曆
12月 31日
밤 12時
를 期해, 各
節
과
神社
에서
108
番 치는 것으로
種
을 울린다. 放送에서는 每年
NHK
가 《
가는 해 오는 해
》의 特別 生放送으로 中繼한다.
打鐘行事 中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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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韓民國
[
編輯
]
라디오 放送은
1929年
正初부터
[5]
, 텔레비전 放送은
1963年
-
1964年
부터 每年 12月 31日 現在까지 放送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編輯
]
라디오 放送은
1929年
正初부터, 텔레비전 放送은 國營 放送사인
조선중앙TV
에서
1963年
-
1964年
부터 每年 12月 31日 現在까지 放送하고 있다.
日本
[
編輯
]
라디오 放送은
1927年
-
1928年
부터, 텔레비전 放送은
1953年
-
1954年
부터 每年 12月 31日 現在까지 放送하고 있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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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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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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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미디어 公用에
除夜의 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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