豐南門

全州 豐南門
(全州 豊南門)
(Pungnammun Gate, Jeonju)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308號
( 1963年 1月 21日 指定)
時代 朝鮮時代
位置
전주 풍남문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전주 풍남문
全州 豐南門
全州 豐南門(大韓民國)
住所 全北特別自治道 全州市 完山區 豐南門3길 1
座標 北緯 35° 48′ 49″ 東京 127° 08′ 51″  /  北緯 35.81361° 東經 127.14750°  / 35.81361; 127.14750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全州 豐南門 (全州 豊南門)은 朝鮮 時代 全羅監營의 所在地였던 全州 를 둘러싼 城郭의 南쪽 出入門으로 城壁이 헐린 後에 唯一하게 남아 있는 門이다. 1963年 1月 21日 大韓民國의 寶物 第308號로 指定되었다.

朝鮮時代 觀察使의 所在地였던 全州에는 市街地를 둘러싼 城郭이 初期부터 있었으며, 그 城郭에는 東西南北에 各各 門이 있었는데 宣祖 30年(1597年) 丁酉再亂 때에 모두 破壞되었다.

城郭과 城門이 다시 收縮된 것은 英祖 10年(1734年)이며 이때 南門을 명견루라 하였다. 그러나 名犬루는 1767年 ( 英祖 43年) 큰 火災로 불타버렸다. 現在의 門루는 그 이듬해에 當時의 觀察使 홍낙인 이 再建한 것으로 豐南門이란 이름도 이때 붙인 것이다. 풍남이란 豐沛의 南쪽에 있는 門이라는 뜻이다. 이는 全州를 豐沛志向(豊沛之鄕)이라고 부른 것과 關聯이 있다. 風牌(豊沛)는 漢나라 高祖 乳房 이 태어난 곳으로 朝鮮王朝의 發源地인 全州를 그 곳에 比喩한 것이다. 北門은 牌北門이라 불리었다. 純宗 때인 大韓帝國 隆熙 元年(1907年) 都市計劃의 一環으로 城郭과 城門은 모두 撤去되고 이 豐南門만 남게 되었다.

豐南門은 그 後 鐘閣 , 砲樓 等이 一部 헐리고 紙面이 묻히는 等 그 옛모습이 크게 毁損 되었는데 지난 1978年부터 3年間의 補修工事로 城郭을 除外하고 다시 元來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아래層 內部에 戰後 두줄로 4個씩 세운 기둥이 그대로 延長되어 위層이 모서리 기둥으로 使用이 되는데 이러한 기둥配置는 韓國 門樓建築에서는 稀貴한 樣式이다.

隣近에는 太祖의 御眞을 모신 慶基殿 과 全州李氏들의 發源地인 오목대 , 그리고 全州 客舍 가 位置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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