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로서의 비디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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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 形式으로서의 비디오 게임 이란 槪念은 엔터테인먼트 産業 分野 안에서 論難이 많은 主題이다. 美國 聯邦 大法院 비디오 게임 이 創意的인 作業임을 認定하고 法的으로 保護하였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이 藝術作業인가’ 라는 哲學的인 問題는 如前히 疑問으로 남아있다. 甚至於 그래픽 音樂 같은 創意的인 要素로서 기여될 때조차도 그러하다. 甚至於 意圖的으로 創意的인 表現 作業이 되도록 디자인된 아트 게임 도, 몇몇 批評家들에 依해 果然 그것이 藝術 作業인지 異議를 提起당하고 있다.

歷史 [ 編輯 ]

藝術 形式으로서의 비디오 게임을 制度的으로 考慮한 初期의 事例로는 1980年代 後半 美術館들이 舊式인(outdated) 1世代 2世代 게임들 을 展示한 回顧展들의 例가 있다. 1989年 뉴욕 動映像 博物館 에서 열린 <뜨거운 回로 : 비디오 아케이드 Hot Circuits : A Video Arcade>前을 企劃한 큐레이터는 비디오 게임을 藝術的 質이 豫見된 (只今은 藝術作品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作業들로 報告書 展示를 했다. [1] 이러한 主題에서 더 나아간 探究의 例로는 1990年代 末에서 2000年代 初에 이뤄진 몇몇 展示들의 事例가 있다. 워커 아트센터 의 <인터페이스를 넘어서 Beyond Interface> (1998), [2] , 온라인에서 이뤄진 <迷路를 크래킹하기 ? 해커 藝術로서의 게임 플러그인들 Cracking the Maze - Game Plug-Ins as Hacker Art> (1999) [3] , 캘리포니아 大學校 벨 센터 에서 열린 <시프트-컨트롤 Shift-Ctrl> (2000) [1] , 그리고 그 外 2001年에 열린 몇몇 行事들 [2] 이 그러한 事例들이다.

마르셀 뒤샹 스타일의 레디메이드 나 “發見된 藝術”로서 비디오 게임을 바라보는 觀念은 初期에 아트 게임 을 발전시킨 사람들 사이에서 反響을 일으켰다. 티퍼니 홈스(Tiffany Holmes) 敎授는 2003年 "디지털 藝術과 文化(Digital Arts and Culture)"에 실은 <苦戰 아케이드 게임은 藝術을 包括하는가? 아트 게임 장르의 最近 動向 Arcade Classics Span Art? Current Trends in the Art Game Genre> [4] 에서 그는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 內의 最近 重要 動向 中 하나는 < 브레이크 아웃 >, < 아스트로이드 >, < 팩맨 >, < 버거타임 > 같은 初期 古典 게임들을 參照하거나 그에 對한 오마주를 담은 플레이 可能한 비디오 게임 作品을 開發하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이들은 初期 게임들의 코드를 修正해 極히 單純化시키거나, < 퀘이크 > 같은 複雜한 게임들의 藝術 모드 (旣存 게임의 要素들을 바꿔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것)를 만들었다. 아트 게임 장르는 商業 게임과 同時代 디지털 아트의 交叉 地點으로 登場했다. [1]

셀리아 퍼스 敎授는 2010年 조지아州 애틀랜타 에서 열린 게임藝術史學會에서, 마르셀 뒤샹 의 藝術 生産과 1960年代 플럭서스 運動, 그리고 1960年代 後半에 있었던 뉴 게임 運動 을 함께 엮으면서 보다 現代的인 “ 아트 게임 ”의 길을 닦았다. 퍼스에 따르면, 藝術家 란츠의 < 팩 맨해튼 > 같은 作業은 퍼포먼스 아트 作業 같은 것이 되었다. [3] 보다 最近에는, 아트 게임 인디 게임 사이에서 剛한 共通分母가 나타나고 있다. 퍼스는 아트 게임을 보다 많은 觀衆들에게 선보이고 인디 게임 안에서 아트 게임의 보다 큰 探究可能性 許諾하는 限에서는, 아트 게임 運動과 인디 게임 運動의 만남이 重要하다고 强調한다. [3]

2006年 프랑스 文化部 長官 은 비디오 게임을 文化的 生産物로서, 그리고 “藝術的인 表現의 形式”으로서 最初로 公式化했다. 그리고 이들 産業에 稅金 支援을 承認하고 [5] , 두 프랑스 게임 디자이너 미셸 앙셀 프레데리크 헤이날 科 日本 게임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 에게 文化藝術 功勞勳章 을 追敍했다. 2011年 5月 美國 國立藝術基金 은 2012年度에 藝術 프로젝트 補助金을 받을 수 있는 分野에 “ 相互作用 게임 ”을 包含시켰다. [6] 이는 비디오 게임을 藝術形式으로서 再認識한 것이었다. 비슷하게, 美 聯邦大法院 은 2011年 6月 브라운 v. 엔터테인먼스 商人聯合會 事件과 關聯된 判決에서 비디오 게임의 表現은 다른 藝術 形式들처럼 保護받아야 한다고 法的으로 規定했다.

비디오 게임 藝術 사이의 境界는 게임 相互作用 藝術 두 範疇 모두에 들어맞는 作業들이 나오면서 漸漸 稀微해지고 있다. 2012年 스미소니언 美術館 에서 열린 < 비디오 게임의 藝術 > 展은 비디오 게임의 藝術的인 面이 發揮될 수 있도록, 苦戰 게임들과 以後 비디오 게임들이 創意的인 文化에 끼친 影響力을 包含해 디자인됐다. [7] 비슷하게, 뉴욕현대미술관 은 歷史的으로 重要한 40個의 비디오 게임들을 컬렉션에 包含시켰다. [8]

論難 [ 編輯 ]

藝術 形式으로서의 게임에 對한 定義는 論爭的이다. 批評家들이 그래픽 아트, 音樂, 이야기 같은 傳統的인 形式들이 가지는 藝術的인 要素를 게임도 가질 수 있음을 絶對 否認하지 않는 瞬間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게임이 藝術作品이 아니며, 藝術이라 불리는 存在로서의 能力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主唱해왔다. 나아가 論爭을 부채질하는 것은 “藝術”과 “게임”이란 單語의 規定과 關聯된 差異에서 비롯된다. (藝術의 境遇 政敵인 分析의 藝術(analyzing static)과 相互作用 藝術 ( interactive art )의 例가 있고, 게임의 境遇 敍事構想(plot) 中心의 게임과 非(非) 게임 ( nongame )의 類型의 例가 있다.)

2010年 라디오 쇼 ‘ 스파크 ( Spark )’의 노라 영 (Nora Young)과의 인터뷰에서, 짐 먼로 ( Jim Munroe )는 藝術로서 게임을 認定하는 것과 關聯해 一部 問題들, 卽 비디오 게임들은 매우 새로운 媒體를 代表하며, 몇몇 批評家들은 이런 새로움에서 不安을 느낀다는 事實에 對하여 論했다. 먼로는 비디오 게임이 種種 二重의 標準에 直面한다는 點에 對해 指摘했다. 萬若 비디오 게임이 게임은 어린애들의 장난감에 不過하다는 傳統的인 觀念에 따른다면 그것은 些少하고 非藝術的인 것으로 가볍게 默殺되고 만다. 하지만 反對로 萬若 그들이 게임 속에 深刻하고 어른스러운 主題를 提示함으로써 限界를 超越한다면, 그것은 傳統的인 觀念에 依해 要求된 바로 그 非藝術的인 些少함이라는 標準을 考慮하는데 失敗했다는 否定的인 批判과 論難에 直面하게 된다. 그는 나아가 비디오 게임 같은 種類의 藝術을 잘못 定義하는 것에 對해 指摘한다. 비디오 게임이 張에 直面한 어떤 問題를 描寫하고 說明하는 것은, 文學이 映畫에 맞게 脚色될 때 線的인 敍事構造 ( plot )에 따라 一方的이고 非相互作用敵으로 構成되는 것과는 다르다. 비디오 게임의 發展은 그보다는 建築의 디자인과 比較될 만하다. 게임 디자이너는 (種種 3次元 의) 假想 空間이나 世界를 만든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안에서 그들만의 方式으로 그것을 經驗한다.

‘藝術로서의 비디오 게임’에 對한 이버트의 意見 [ 編輯 ]

2000年代 中盤 美國의 映畫 評論家 爐底 이버트 는 一連의 論難이 많은 論爭에 參與하고 對談을 出版하였다. 이는 大衆 사이에서 비디오 게임이 公平하게 藝術로서 考慮될 수 있는가에 對한 물음이 廣範圍하게 提起되게끔 만들었다. 게임 < >의 知識이 映畫 《 》(이버트는 이 映畫에 別 한 個를 줬다)에 對한 適切한 理解를 바탕에 두고 있는가에 對한 2005年의 온라인 討論에 對한 答辯으로서 [9] , 이버트는 비디오 게임을 認定받는 藝術 形式과 比較가 不可能한 非藝術的인 媒體로 描寫했다.

나의 知識에 따르면, 偉大한 드라마 作家, 詩人, 映畫製作者, 小說家, 作曲者와 比較해볼 때, 그 (게임) 領域 안의 或은 밖의 그 누구도 게임의 相對的 價値에 對한 根據를 들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그 게임은 視覺的인 經驗의 藝術的인 重要性을 渴望할 수 있다. 그러나 大部分의 게이머들에게, 비디오 게임은 우리가 우리自身을 보다 문화화된, 文明化된, 理解心 있는 存在로 만들 수 있을 값진 時間의 浪費를 의미할 뿐이다. [10]

2006年에 이버트는 國際 情勢에 關한 會議 (Conference on World Affairs)에서 열린 “厖大한 論爭: 비디오 게임은 藝術 形式인가?”라는 題目의 公開討論會에 參與했다. 그 討論會에서 그는 비디오 게임은 다른 藝術처럼 人間 存在의 意味를 探究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1] [12] 1年 뒤 討論會 參與者였던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에게 應答하는 答辯에서, 이버트는 보다 더 나아가 비디오 게임은 順應的인 特性을 보여주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藝術 形式들을 망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例로 이버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게임) 버전이 選擇的인 해피엔딩을 許諾한다면 어떨지 問題를 提起했다. 이버트는 이러한 選擇이 原作의 藝術的인 表現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主張했다. [13] 2010年 4月에 그는 댓게임컴퍼니 ( thatgamecompany )의 켈리 산티아고 ( Kelee Santiago )가 2009年에 技術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會議(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Conference )에서 했던 發表를 解剖하는 글을 出版했다. 그 글에서 그는 또 다시 게임은 規則을 가지고 있으며 目標 基盤의 相互作用性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絶對 藝術이 될 수 없다고 主張했다. [14] [15]

藝術과 게임의 當然한 한 가지 差異는 當身은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規則(rules), 點數(points), 目的(objectives), 結果(outcome)를 가지고 있다. 산티아고는 아마 點數나 規則 없이 沒入的인 게임의 例를 들것이다. 그러나 이는 게임이 되기를 中斷하는 것이며, 이야기, 小說, 演劇, 춤, 映畫의 再現이 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藝術들에서 當身은 이길 수 없다. 當身은 오직 그것들을 經驗할 수만 있다. [14]

산티아고를 包含해, 비디오 게임을 藝術的인 媒體라 믿는 사람들, 先史時代의 洞窟繪畫 비슷하게 但只 게임은 藝術 上 草創期 段階에 있을 뿐이라 믿는 [16] 게임 커뮤니티 사람들은 에버트의 글을 强力하게 批判했다., [17] [18] [19] 以後 2010年에 이버트는 自身의 答辯을 訂正했다, 그는 게임이 非傳統的인 側面에서 正말 藝術이 될 수도 있을 것임을 認定했다. 그리고 그는 < 교토의 宇宙論 Cosmology of Kyoto >을 플레이하길 즐겼었다고 本來 썼던 主張 글에 몇몇 大글을 달았다. [20]

비록 이버트는 以後 이 爭點에 對해 말하지 않았고, 그의 觀點은 論難 속에서 窮地에 빠진 채 남아있지만, 비디오 게임이 商業的인 魅力과 選擇-驅動의 敍事 構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純粹 藝術 ( fine art )로서 不適格이라는 槪念은 수많은 비디오 專門家들에게 어떠한 確信을 주었다. 브라이언 모리아티 (Brian Moriarty)는 2011年 3月에 <로저 이버트에 對한 辨證論 ( Apology )>이라는 이름의 講演에서, 비디오 게임은 거의 傳統的인 規則 基盤 게임의 擴張이었으며 그 게임들 속에는 체스 바둑 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藝術로 宣言하려는 要請이 없었다고 强調했다. [9] 그는 이버트가 보여준 觀點, 그리고 쇼펜하우어 의 美學을 되짚어보며 (卽 純粹 藝術 또는 崇古의 藝術) 게임을 藝術로서 考慮한 浪漫主義 敵人( Romantics ) 自身(모리아티)의 觀點은 極히 例外的으로 稀貴한 예였으며, 이버트는 “거의 어떤 映畫도 藝術이 아니다” [9] 라고 이미 主張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 도 한결 같이 藝術的인 價値가 없는 것으로 보려 했다는 點을 指摘했다. 모리아티는 비디오 게임을 키치 (kitsch)와 比較하고, 비디오 게임의 美學的 感想을 캠프 ( camp )로 描寫하면서 近代 以後에 “藝術”이라는 定義가 로우 아트 ( low art )를 包含해 擴張되는 것을 非難했다. 그는 또한 商業的 힘의 影響에 依해 汚染된 인디 게임 과, 게임 디자이너가 使用하는 “미끄러운(다루기 힘든, slippery)” 道具를 주어진대로 使用해 藝術을 만드는 것의 어려움에 對해 말했다. 窮極的으로 그는 플레이어의 選擇이 게임에 反映되며, 作家의 操縱에 依해 억지로 歪曲된 채 作品과 聽衆의 相互作用이 일어나는 비디오 게임은 構造的으로 “藝術”이란 用語가 適用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藝術에 對한 表現을 否定하게 된다고 結論을 내렸다. [9] 비디오 게임 藝術家 잭 게이지 (Zach Gage)는 이 講演을 次例次例 날카롭게 批判했다. [9]

다른 注目할 만한 批評들 [ 編輯 ]

著名한 게임 디자이너 코지마 히데오 는 2006年 美國 플레이스테이션 2 公式 잡지 ( US Official PlayStation 2 Magazine )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비디오 게임이 藝術이 아니라는 에버트의 評價에 同意한다고 말했다. 코지마는 게임이 藝術作品을 包含하고 있음을 認定했다. 그러나 그는 藝術이 志向하는 틈새의 關心과 對照的으로 비디오 게임은 本質的으로 大衆的인 性向을 가짐을 强調했다. 코지마는 藝術이 적게는 한 사람만을 對象으로 삼는데 反해, 모든 비디오 게임은 100% 플레이어의 滿足을 達成하는 것을 志向한다고 하면서, 비디오 게임 創作은 藝術的인 試圖보다는 서비스에 主眼點을 주어야 한다고 主張했다. [21]

2010年 게임藝術史學會에서 미카엘 社民 (Michael Samyn)과 오리어 하비 (Auriea Harvey (인디 게임 스튜디오 테일 오브 테일즈 ( Tale of Tales )의 創立 멤버)는 確實하게 “게임은 藝術이 아니다”라고 主張했다. 그리고 그들은 大體로 “時間을 浪費한다”고 말했다. 게임과 藝術 間 差異에 對한 테일 오브 테일즈의 中心的인 생각은 藝術의 反對하면서 目的意識이 分明한 게임의 本質을 만드는 것이다. [22]

다른 地域의 事例 [ 編輯 ]

大韓民國 [ 編輯 ]

主要 行事 [ 編輯 ]

大韓民國에서 具體的으로 게임을 主題로 다룬 行事로는 다음의 行事들이 있다.

2012年 1月 20日 : 313 Art Project 갤러리에서 넥슨 社에서 企劃한 企劃展 'BORDERLESS'가 열렸다. [23]

2012年 6月 25日 : 京畿道美術館에서 바츠 解放戰爭 을 主題로 展示會가 開催되었다. [24]

2013年 10月 11日~13日 : 大邱 에서 'e-Fun 2013' 祝祭가 열렸다. 이 行事는 게임의 文化藝術化를 標榜하며 거리祝祭를 열었다. [25]

2016年 6月 20日 : 白南準아트센터에서 企劃展<뉴 게임플레이(New Gameplay) [26] >展이 開催되었다.

2017年 1月 20日 : 白南準아트센터에서 <게임잼: 藝術, 政治, 디지털 게임 [27] >이 開催되었다.

게임과 藝術을 主題로 열린 討論會는 다음과 같다.

2013年 12月 11日 : 서울 驛三洞 D.CAMP에서 ‘게임은 文化다!’ 컨퍼런스가 열렸다. [28]

2014年 6月 18日 : 國會圖書館 講堂에서 ‘게임 中毒인가, 藝術인가?’ 政策 討論會가 열렸다. [29]

2014年 6月 26日 : 韓國 게임學會가 숭실대학교 벤처中小企業센터 309號에서 '第1回 大韓民國 게임포럼' 行事를 열었다. [30]

大韓民國 내 게임과 藝術의 關係에 對한 論議 狀況 [ 編輯 ]

2013年 大韓民國의 狀況을 볼 境遇, 게임은 藝術로서 熟考되고 성찰되기보다는 有害産業으로서 認識되고 있다. [31] 전길남 敎授는 게임 셧다운制 등을 向해 "韓國은 걸핏하면 規制부터 하려고 한다"고 批判했다. [32] 이는 政府 主導의 産業 發展 政策과 過去의 戰犯(典範)을 重視하는 社會的 通念에 依해 漫畫같은 産業이 檢閱 制限을 받았던 狀況과 類似하다. [33] [34] 藝術과 檢閱의 問題는 非但 漫畫, 게임에만 局限되는 問題가 아니다. 公共美術 같은 다른 藝術分野에서도 政府中心의 下向式 政策에 對한 副作用을 指摘하는 意見이 많다. [35]

藝術을 비롯한 文化 創作物은 만들어지는 過程의 特性上 工場에서 商品을 만들어내듯 一括的으로 生産해낼 수 없다. 文化 創作物을 만드는 過程에서는 '完成된 創作物을 보았을 때 觀客(或은 利用者)李 滿足할 것인가?', '觀客을 만족시키려면 어떤 要素를 創作物 創作 過程에 投入하여야 하는가?', '그 滿足의 持續時間을 길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等과 같은 물음에 對한 省察과 熟考의 過程을 必要로 한다. 이는 所謂 '創意力'을 必要로 하는 過程이며, 創作物 創作者가 이러한 創意力을 發揮하기 위해서는 餘裕나 思索을 할 수 있는 環境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成果志向主義的인 官僚文化의 雰圍氣, 政府의 統制에 거스르는 要素들을 排除하려는 雰圍氣는 앞서 言及한 餘裕로운 創作物 創作 環境 造成을 어렵게 만든다. 또한 支配者로서의 政府 政策 뿐 아니라, 創作物의 本質的 意味(그 創作物이 말하고자 하는 바, 或은 扶餘可能한 意味)는 無視하고 商品的 價値와 生産性 向上(收益, 觀客數 等 數値上의 價値)만을 重視하는 社會 文化 構造와 雰圍氣 또한 이런 創作物 創作 環境 造成에 惡影響을 미친다. 消費者(觀客) 뿐만 아니라 創作物 生産者(作家) 또한 創作物 創作에 對해 苦悶하지 않고 惰性에 젖어 엇비슷한 創作物만 量産한다면, 文化强國이라는 目標는 口號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6]

現在 韓國에서 寫眞, 映畫, 漫畫 等의 分野는 이미 文化媒體로서 認定받고 있다. 西洋에서 寫眞, 映畫, 漫畫 같이 19-20世紀에 登場한 機械媒體는 발터 베냐민 技術複製時代의 藝術作品 같은 著述을 통해 考察하면서 이미 藝術로서 인정받는 過程을 거쳤다. 勿論 그 以前에는 寫眞, 映畫, 漫畫 亦是 그저 興味거리 娛樂으로만 여겨졌다. 한 例로, 20世紀 初 프랑스에서 映畫는 '低俗한 文化'로 輕蔑당하기도 했다.

  • "프랑스에서 誕生 初期의 映畫는 專用 上映館 없이 場터劇場(fete forain)을 떠돌며 上映되었고, 1896年에야 겨우 파리 리옹 에 專用 上映館이 나타났다. 大部分의 大都市에서는 映畫業者들이 一定 期間을 賃貸로 上映館을 確保하여 上映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7年 5月 4日의 파리 慈善 바자會 火災로 富裕層 人士 128名이 죽는 事故가 일어나자 映畫는 危險한 娛樂이라는 認識이 널리 퍼져 本格的인 映畫 上映館 建立이 不可能하게 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神奇하기 짝이 없던 活動寫眞이 그 길이가 너무 짧고 千篇一律 的인 內容 때문에 中産層 以上의 사람들과 大多數 知識人들은 映畫를 輕蔑하는 風潮까지 나타났다. 當時의 場터를 中心으로 한 劇場에서는 映畫 1篇當 한 쇼트로 構成된, 大略 1分 程度의 上映時間을 가진 필름을 10餘 篇 程度 보여주고 1프랑 乃至 50 賞팀을 받는 것이 一般的이었다. 上映 中에는 變死 의 解說이나 손風琴 따위의 音響效果가 뒤따랐고, 初期의 뤼미에르 式의 記錄映畫 爲主에서 차츰 벗어나 喜劇的이거나 男女關係에 關한 內容이 加味되면서 庶民들이 즐기는 娛樂으로 자리 잡게 된다." [37]

現在 게임 分野는 單純한 娛樂거리로 여겨지는 段階에서 나아가 多樣性을 確保하고 社會, 文化的으로 인정받는 段階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아직 娛樂이나 눈療飢거리 水準으로밖에 認定받지 못하고 있는게 現實이다. 大多數 大衆은 映畫나 漫畫家 게임보다 水準이 높고 큰 滿足感을 주는 媒體로 認識한다. 전길남 敎授조차 "온라인게임 2時間과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映畫 2時間을 比較하면 아직은 映畫의 滿足感이 높다. 온라인게임의 歷史는 고작 20~30年일 뿐이고, 映畫는 100年이 넘었기 때문이다. 쉽게 競爭할 수 없겠지만, 온라인게임은 앞으로도 挑戰해야 한다." 고 말하였다.

2013年의 1/4分期의 狀況을 보면, 現在 成熟過程에 있는 게임과 關聯된 文化 속에서는 이를 藝術(或은 獨創的 創作物)로서 認識하고 省察하는 土壤이 造成되지 못하고 있다. 單純히 商業的 價値로만 評價하는 雰圍氣속에서 게임같은 새로운 媒體를 藝術로서 熟考하는 姿勢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商業 生産者 側에서는 게임을 製作할 때 商業的 利潤만을 目的으로 하는 雰圍氣가 剛하다. 한 例로, 모바일 게임 市場에서는 剽竊 問題가 深刻한 副作用으로 擡頭되고 있다. [38] 이 過程에서 돈만 벌면 된다는 思考 方式이 澎湃하면서 運營未熟 問題나 剽竊 問題 等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需用者인 유저들 亦是 以前의 韓國型 게임 文化를 一方的으로 受容하면서 踏襲할 뿐, 西歐地域의 게이머들처럼 積極的으로 어떤 要求나 注文을 하진 않고 있다.

게임産業에서 一部 局限된 要素에만 偏重해 게임을 製作하는 態度도 問題로 보인다. 심즈 같은 育成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퍼즐 같은 캐주얼 게임 장르를 除外하면, 現在 게임 市場에서 流通되는 게임들은 大部分 FPS 나 액션 장르같은 것들이며, 이는 젊은 男性 利用者들의 趣向만을 反映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表皮的으로 事實的인 그래픽과 戰鬪에 置重한 액션 描寫에 置重하고 있다. 이는 世界 게임産業이 共通的으로 가지고 있는 問題이다. 메리 플래너건 等의 게임 理論家들은 이에 對해 批判하기도 했다.

게임産業界가 아닌 藝術界 從事者들의 境遇 所謂 뉴미디어 아트 의 一環으로 게임에 注目하나, 이는 一部 少數에 局限된다. 이미 1990年代 때부터 디지털 技術을 媒體로서 다뤄온 事例가 있지만, 아직까진 大韓民國 大衆들에게 藝術로서의 게임이 널리 알려져 있진 않다. 大部分의 境遇 서울市立美術館 , 京畿道美術館 , 아트센터 나비 , 앨리스온 같은 關聯 機關들을 中心으로 散發的인 藝術作業과 展示가 이뤄졌다. 서울市立美術館 은 < 미디어시티 서울 비엔날레 > [39] 를 開催하고 있다. 京畿道美術館 에서는 < 바츠革命前 > [40] 을 열었다. 앨리스온 에서는 뉴미디어아트 國際 심포지엄 <Next Level of Art : Game>을 開催한바 있다. 特別히 넥슨 社의 境遇 2012年 1月 20日부터 2月 2日까지 313 아트 프로젝트 를 통해 <BORDERLESS> 展示會 [41] 를 열기도 했지만, 傳統的인 彫刻이나 繪畫의 方式으로만 接近해 藝術的으로 '게임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하였다는 評價를 받고 있다.

하지만 漸次 게임産業界에서도 게임의 藝術性을 發見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42] 藝術과 게임이 本質面에서 놀이라는 共通된 要素를 지니고 있다는 點에서 비슷하다는 指摘도 나오고 있으며, [43] 海外의 境遇 實際로 게임 技術을 利用해 作品을 製作하는 藝術家도 나오고 있다. [44] 그리고 게임 中毒 論爭과 맞물려 게임과 藝術의 關係를 確認하는 討論會도 開催되고 있다. [45] 하지만 아직은 이런 討論會가 게임은 藝術이라는 쪽으로 大衆의 認識을 바꾸어 놓을 程度로 影響을 미치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年 열린'게임은 文化다!' 討論會에서 陳重權 敎授는 韓國 社會에 蔓延한 게임恐怖症의 原因에 對해 診斷을 내놓았다. [46] 이인화 敎授는 “게임業界가 한참 産業的으로 成長할 때 어느 누구도 게임의 文化的 價値를 苦悶하지 않았다. 一部 사람들은 오히려 文化的 價値는 映畫나 드라마에서 찾으라며 露骨的으로 産業的 價値에만 沒頭하기도 했다. 그 結果 이제 ‘게임은 文化다’는 말은 旣成世代 大多數가 拒否感을 나타내는 프레임이 됐다. 業界 스스로 自身들의 價値를 깎아 내린 셈이다”고 말했다. [47] 김광삼 敎授는 中毒法 論難을 解決하는 方法에 對해서는 基本的으로 ‘화난 사람’들과의 싸움인 만큼, 方法은 다양하지만 效果的인 方法을 取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김광삼 敎授 또한 中毒法을 反對하고 있는 業界가 産業的인 成果만 내세우고 있음을 指摘하며, 이는 成長과 成就만으로 稱讚받고자 하는 幼年期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論理 等으로 對應하는 것은 화난 사람들끼리의 힘 싸움이고, 機會가 보일 때 손을 내미는 動作을 取하는 것 또한 方法이라는 것이다. [48]

2014年 6月 18日에 열린‘게임 中毒인가, 藝術인가?’ 政策 討論會의 境遇 김광진 議員 이 '文化藝術振興法 一部改正法律案'에 게임을 包含시키는 案을 發議하는 過程에서 附隨的으로 열린 討論會였다. [49] ‘게임 中毒인가, 藝術인가?’토론회는 參與 討論者들이 게임의 海外 事例들을 羅列하고 藝術的 可能性을 따져보는 式으로 進行되었다. [50] 이 過程에서 一部 傍聽客은 討論者들에게 今日 討論會의 主題가 模糊하다고 指摘하기도 했다. 또한 疑問을 提起한 傍聽客은 게임의 中毒性과 藝術性이 共存할 수 있는 것인지, 或은 相互排他的인 것인지에 對한 疑問을 提起하면서, 게임 中毒法을 막기 위해 '藝術'이라는 點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質問했다. 이어 傍聽客은 "애니팡을 해보면 예전에 어디선가 해봤던 게임같아요. 그런 게임들은 저에게 있어 藝術이 아니에요"라고 發言하며, 새로운 創造物이 아닌 旣存의 文化 콘텐츠와 類似한 게임은 藝術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具體的으로 “너무 藝術的인 事例만 말하는 것 아닌가? <리니지>같이 中毒的인 게임을 藝術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애니팡>을 하며 藝術性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51] 이에 對해 陳重權 敎授는“포르노가 잘나간다고 映畫가 藝術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傍聽客에게 反問하기도 했다. 한便 이동연 敎授는 게임界 從事者들에게 다음과 같은 指摘을 下祈禱였다.

  • "會議 막바지에 算筒을 깨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게임社가 只今보다 賣出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現在 게임産業의 規模는 크지만, 그에 비해 文化 硏究 水準은 中世時代에 머무르고 있는 程度다. 前부터 게임과 文化에 對한 硏究가 必要하다고 持續的으로 말해 왔는데 이득만 追求하는 現在 狀況을 보니 어쩌면 게임 中毒法 發議가 當然히 벌어질만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只今이라도 賣出을 줄이고 企業들이 文化 硏究에 힘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第2, 第3의 重讀法이 나타나 業界의 목을 죌 것이 分明하다. 앞으로 게임과 文化에 對한 硏究도 企業 次元에서 活潑히 展開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2]

2014年 6月 26日 第1回 大韓民國 게임포럼에도 參席한 陳重權 敎授는 '미디어로서의 게임'에 對해 좀더 仔細한 內容을 發表했다. [53] 陳重權 敎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關聯해서 사람의 意識構造와 生活 世界가 어떻게 變하는가를 '파타피지컬(pata-physical)'이란 槪念을 導入해 說明했다. 陳重權 敎授의 槪念 定義에 따르면, 파타피지컬은 假想現實과 增强現實이 同時에 使用되면서 現實과 假想이 重疊되는 世界를 말한다. 그러면서 産業社會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을 要求했다면, 情報社會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遊戱하는 사람)를 要求하고 있다고 主張했다. 그리고 오늘날 情報社會의 勞動者들은 情報 勞動에 必要한 技術的 訓鍊들을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 하고 있다고 主張했다. 그러면서 18世紀에 美學이 藝術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고 哲學的 水準으로 올리는데 貢獻한 것을 言及하며, 게임學 等의 게임 關聯 學問들도 게임의 價値를 再考하는 깊이있는 硏究를 해야 한다고 指摘하였다.

그러나 이런 行事나 活動에 反對하는 움직임도 있다. 게임을 藝術로 '包裝'할 必要가 있느냐고 反論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게임은 게임이고 藝術은 藝術일 뿐이라 區分지어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或者는 게임은 藝術보다는 스포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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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