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
韓國 漢字
:
朴正民,
1987年
3月 24日
~ )은
大韓民國
의
俳優
이다.
生涯 및 經歷
[
編輯
]
박정민은
京畿道
安山市
고잔동
에서 태어났으며
서울特別市
蘆原區
上溪洞
을 거쳐
京畿道
城南市
盆唐區
에서 成長하였다. 박정민은 全國區로 募集하는 寄宿舍學校의 高等學校에 進學한다.
中學校 時節, 박정민은 親舊들과 偶然히 江原道에 놀러갔다가 俳優
박원상
을 만나게 되었는데 박원상 自身이 演劇俳優이며 곧 '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가 開封한다면서 該當 作品을 꼭 보러와달라는 付託을 했다고 한다. 이를 記憶한 그는 後에 映畫를 찾아서 봤는데, 한 인터뷰에서 박정민은 이 映畫를 契機로 하여 演技에 魅力을 느끼게 되었다고 밝혔다.
[1]
박정민은 高等學生 當時에도 演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他地에서 學校를 다닐 뿐더러 近處에 演技學院이 없어 獨學으로 배울 수 있는 演出을 工夫했다. 그는 演出을 工夫하며 自身이 直接 映畫를 찍어 出捐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3年 동안 시놉시스를 쓰고 映畫를 보며 工夫를 한 後
韓國藝術綜合學校
映像院 映畫科 試驗에 應試했지만 不合格을 받고 그 해
高麗大學校
安岩캠퍼스 人文學部에 入學한다. 그러나 演技를 專攻으로 배우고 싶었던 박정민은 入學한지 몇달만에 中退를 決心하고 다시 試驗을 봐서 이듬해
韓國藝術綜合學校
映像院 映畫科에 入學하게 된다.
[2]
인터뷰에서 말하길,
韓國藝術綜合學校
에서 映畫 演出을 배우면서도 演技에 對한 渴症이 解消되지 않았다고 한다. 演劇을 準備하면 할수록 舞臺에 서고 싶다는 熱望이 剛해졌고 撮影이 始作되는 同時에 舞臺에서 사라지는 自身이 힘들었다고 한다. 結局 演劇科로 轉科를 하자는 決心을 했지만 各 과의 特色이 强한
韓藝綜
에서의 前과는 매우 어렵고 映畫科에서 演劇科로 轉科를 한 事例가 없었기에 周邊의 視線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정민은 먼저 演劇을 副專攻으로 申請하고는 모든 演劇과 授業을 들었다. 그리고 副專攻인 演劇과 試驗에서 올A+를 받아 敎授님이 좋게 봐주시기 始作했고, 前科 入試試驗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3]
2011年 獨立映畫 《
把守꾼
》으로 데뷔했다. 以後 《
傳說의 주먹
》, 《
感氣 (映畫)
》, 《
思春期 메들리
》, 《
너희들은 包圍됐다
》, 《
들개 (2014年 映畫)
》 等에 出演하며 作品活動을 이어오다가 2016年 映畫 《
同舟
》에서
獨立運動家
송몽규
烈士 役을 맡아 熱演하며 그해
靑龍映畫賞
,
백상藝術大賞
,
黃金撮影賞
의 新人賞을 受賞하였다.
[4]
또한 《
應答하라 1988
》에도 端役으로 出演했는데 10分 남짓한 出演에도 뛰어난 演技力으로 存在感을 드러냈다.
2017年度에 開封한 《
그것만이 내 世上
》에서 서번트 症候群을 앓는 피아노 天才 '진태' 役을 熱演하며 好評을 받았고, 2018年度 《
변산 (映畫)
》에서 뛰어난 랩實力을 보여주며 俳優로서의 能力과 함께 努力이 더해진 演技派 俳優로서 作品活動을 이어나가고 있다.
學歷
[
編輯
]
出演 作品
[
編輯
]
映畫
[
編輯
]
드라마
[
編輯
]
舞臺
[
編輯
]
鳶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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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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役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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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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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機 미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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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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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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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코드의 脫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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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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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
로미오와 줄리엣
|
로미오
|
演技 外 活動
[
編輯
]
텔레비전 프로그램
[
編輯
]
뮤직 비디오
[
編輯
]
鳶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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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手
|
노래
|
公式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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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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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選(신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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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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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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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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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片窟 處女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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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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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수 a.k.a 審뻑(박정민)
|
<DONE>
<HERO>
<노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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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아이유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
2019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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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너야>
|
|
2022
|
강민경
,
최정훈
|
<우린 그렇게 사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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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盤
[
編輯
]
題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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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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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考
|
《Byunsan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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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發賣日: 2018年 7月 4日
- 레이블: (週)인터파크
- 포맷:
디지털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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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映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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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san Monologue
[
編輯
]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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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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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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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曲
|
編曲
|
1
|
Hero(With.
김고은
,
얀키
(Yan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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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얀키(Yankie)
|
프라이머리(Primary) , 얀키(Yankie)
|
프라이머리(Primary)
|
2
|
'노을'
|
박정민
|
얀키(Yankie)
|
Padi
|
3
|
審뻑
|
박정민, 얀키(Yankie)
|
박정민, 얀키(Yankie)
|
얀키(Yankie)
|
4
|
야야야
|
박정민, 얀키(Yankie)
|
얀키(Yankie)
|
얀키(Yankie)
|
5
|
Done
|
박정민, 얀키(Yankie), 金在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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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키(Yankie)
|
얀키(Yankie)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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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卓(With. 얀키(Yankie))
|
박정민, 얀키(Yankie)
|
Avec Plaisir
|
Avec Plaisir
|
7
|
에라이
|
박정민
|
Avec Plaisir
|
Avec Plaisir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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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Driver
|
박정민
|
Avec Plaisir
|
Avec Plaisir
|
9
|
鄕愁
|
박정민
|
Avec Plaisir
|
Avec Plaisir
|
弘報大使
[
編輯
]
鳶島
|
弘報大使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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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回 常綠樹多文化國際短篇映畫祭
|
廣告모델
[
編輯
]
著書
[
編輯
]
박정민曰 '"'글을 말로 옮기는 俳優' 일을 하다 말을 또 글로 表現해보고 싶어서 이 일을 始作하게 됐다"'
平素에 冊을 좋아하고
高麗大學校
人文學部에 入學했던 박정민은 作家로서의 팬도 相當히 保有하고 있다. 박정민은 映畫
把守꾼
의 弘報用 블로그
[6]
의 '귀여운 베키의 日記' 코너에 撮影 비하인드 스토리를 連載하면서 글 좀 쓰는 俳優로 이름을 알렸다. 以後 2013年부터 4年 동안 매거진 《topclass》에 '言희(言喜)'라는 筆名으로 칼럼을 실으며 才致있고 유머러스한 筆力으로 讀者層을 넓혀 갔다. 그 後 이 때 쓴 글을 冊으로 묶어 出版 했으며, 題目은 '쓸 만한 人間'.
[7]
- 《쓸 만한 人間》: 박정민 散文集(2016年)
- 《쓸 만한 人間》(스페셜 에디션)
首相 및 候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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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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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內容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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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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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年 3月 19日 放映分(342回)
- ↑
2018年 4月 22日 放映分(397回)
- ↑
2018年 8月 5日 放映分(412回)
參照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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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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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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