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監督
| 李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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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本
| 김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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製作
| 호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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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演
| 강신성일, 문정숙,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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撮影
| 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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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현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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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 前精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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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
| 韓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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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晩秋
》(晩秋)는
李萬熙
監督,
김지헌
脚本의 1966年 韓國의 黑白 映畫이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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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호현찬이 企劃하고 李晩熙가 監督한 이 映畫의 特徵은, 從來의 韓國映畫가 가졌던 形式인 '이야기 中心'에서 脫皮하여 映像 爲主로 作品을 몰고간 點이다. 다시 말하면, 臺詞를 可及的 排除하고 映畫 言語로 이미지를 傳達했다는 點에 크게 意義를 둘 수 있으며, 1960年代 韓國映畫의 秀作으로 꼽을 수 있다. 該當 映畫의 主演을 맡았던
신성일
亦是 生前
釜山國際映畫祭
를 訪問해 가진 記者들과의 만남에서 "'晩秋'라는 필름이 最高의 映像 作品"이라며 回顧하기도 했다.
[1]
다만 아쉬운 點이 있다면 該當 映畫의 필름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國內 開封 當時의 필름이 모두 消失되거나 사라진 탓에 該當 映畫가 現在까지 傳해 내려오지 않고 있다.
[2]
다만
北韓
에는 該當 映畫의 필름 等이 남아있다는 主張이 있는데, 《晩秋》의 企劃을 맡았던 護憲贊 氏는 生前 인터뷰에서
申相玉
監督과
최은희
俳優가 北韓에 拉致되었을 때
金正日
當時 國防委員長의 所長 필름에서 《晩秋》를 보았다고 證言했던 것을 들며 "後날 北韓과의 交流가 이루어지면 《晩秋》의 複寫本이라도 찾기를 바란다"고 發言했던 적이 있다.
[3]
特히 이러한 證言으로 인해 南北交流가 活潑해지는 時期, 北韓을 訪問해 《晩秋》의 필름을 複寫하여 韓國에 돌아온 뒤 디지털化하여 公開하자는 映畫界에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4]
필름의 流失과는 別個로 映畫의 포스터나 시놉시스 等은 現在까지 傳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該當 映畫를 實際로 보았던 이들의 證言, 當時 出演했던 俳優 等의 證言 等이 남아있어
리메이크
가 活潑하게 벌어지고 있다.
1972年
日本
에서 《約束》이라는 이름으로 開封한 데 이어,
1975年
에는
김기영
監督의 《
肉體의 約束
》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에 나섰다. 이어 1980年代에
김수용
監督이 《
晩秋
》라는 이름으로
김혜자
等의 主演을 投入해 映畫를 開封했으며, 2010年에는
김태용
監督이
현빈
과
탕웨이
를 主演으로 《
晩秋
》를 製作하기도 했다. 特히 이러한 리메이크 試圖를 叢集便한 上映會를
한국영상자료원
에서 開催하기도 했다.
[5]
하지만 1944年 美國에서 上映된 《아윌 비 씨 有》(I'll be seeing you)와 類似하다는 指摘이 있다. 이 映畫는 國內에서도 1954年 9月 18日에 《다시 만날 때까지》란 題目으로 上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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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 必要
]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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模範囚로 暫時 休暇를 얻은 女子(문정숙 分)와 刑事에게 쫓기는 僞造 紙幣犯(신성일 分)이 偶然히 서울行 列車 안에서 마주앉게 된다. 時間과 사람에 쫓기는 不安한 사람끼리 곧 친숙해지고, 그것은 抑制되었던 欲情으로 發展된다. 다음 날 昌慶苑에서 만나 즐거운 時間을 보내기도 하고, 썰렁한 仁川의 갯가를 거닐기도 한다. 사흘이라는 짧은 時間을 보낸 後 女人은 監獄으로 되돌아간다. 男子는 못내 서운해하며 內의(內衣) 한 벌을 그女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警察에 逮捕되어 간다. 女人이 出監하는 날, 昌慶苑 그 벤치에서 만나기로 約束했지만, 그 男子는 안 나타나고 女人만이 흩어지는 落葉을 바라보며 回想에 잠기고 있다.
出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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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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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5回 청룡상 撮影賞
- 第10回 不日常 作品·여우 主演賞
- 第3回 韓國演劇映畫藝術賞 對象 및 演出·延期·脚本·撮影賞
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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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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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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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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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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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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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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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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