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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神供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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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文明 의 人神供養으로 死亡한 것으로 推定되는 女子의 미라

人神供養 (人身供養, 英語 : human sacrifice )은 祭祀 때 산 사람 을 神에게 犧牲物로 바친 것을 말한다. 옛날의 祭祀에서 供養의 犧牲物로 人間을 神에게 바친 일이며 '人身供與', '人신공희'라고도 한다. [1] 人權 槪念이 稀薄하던 高大에 地域·宗敎·人種을 가리지 않고 普遍的으로 나타나던 風習이었다. [2]

歷史 [ 編輯 ]

사람을 犧牲으로 바치는 提議는 죽은 者를 위한 永遠한 奉仕를 뜻하는 ‘ 殉葬 (殉葬)’의 形態이지만 人類學的으로 볼 때 人身供養은 全 世界에 걸쳐 狩獵時代·유목時代를 거쳐 農耕時代까지 폭넓게 存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神話와 傳說, 考古學的 資料로 미루어 볼 때 페루 · 잉카 · 古代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팔레스타인 · 이란 · 印度 · 그리스 · 로마 · 中國 等 古代 文明의 發祥地에서는 大部分 人身供養이 있었다. 그러므로 祭物을 神에게 바치는 宗敎的 行爲의 起源이 人身供養에 있다는 說도 있다.

特히 考古學社에서 멕시코 地域(테오티우아칸 [3] )에 注目하는 理由는 바로 달의 피라미드 때문이다. 이 피라미드는 都市 全體를 貫通하며 設計된 길인 이른바 ‘죽은 者의 길’ 끝에 우뚝 솟은 巨大 피라미드였다. 宗敎的 象徵性이 剛했던 王國답게 이 곳에서는 사람의 心臟과 피를 祭物을 바쳤던 것으로 硏究됐다.

로마의 王政 時代에 그리스도 敎人들은 食人의 風習이 있는 것으로 疑心을 받아서 로마인들로부터 迫害를 받기도 하였다. [4]

神에게 바치는 祭物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人神供養’가 다른 地域에서 사라진 뒤에도 唯獨 테오티우아칸 [3] 을 中心으로 한 中南美 地域에서는 오래 維持됐다는 部分이다. 테오티우타칸 [3] 이 7世紀 忽然히 자취를 감춘 뒤에도 無慮 16世紀 , 에스파냐가 이 地域을 占領한 뒤까지 이 意識이 維持됐다는 記錄이다. [1] [5]

韓國史 [ 編輯 ]

新羅의 人神供養 [ 編輯 ]

2000年 여름 國立慶州博物館 美術館 敷地의 發掘에서 우물 바닥 가까운 곳에서 遺骨이 發見된다. [6] 學者들은 이 8~9歲 어린아이 遺骨을 9世紀 統一新羅 提議(祭儀)의 犧牲物로 推定하였다. [6] 이 우물은 新羅 王室에서 管理하는 것이 明白하였으며, 統一新羅 末 混亂期에 王室의 安全과 豐饒를 비는 祭祀였을 수도 있었다. [6] 이 우물은 新羅에 佛敎 가 들어와 公認되기 前 人身供養의 痕跡으로 分析되었다. [7]

慶州 月城 垓子 에서도 여러 人骨들이 나왔다. [8] 2015年부터 發掘 中이던 慶州 宮터인 月城 城郭의 城壁 土層部에서 健壯한 聖人의 遺骨이 發見되는데 意圖的으로 주검을 넣은 情況이 뚜렷하다. [8] 이 城郭에서 遺骨의 發掘은 다른 韓半島 一帶의 事例들에 비해 人神供養 祭禮의 實體가 가장 具體的으로 드러난 첫 事例이다. [8]

문무왕 이 創建하여 護國 法會를 열었던 봉덕사에 [9] 聖德大王神鐘 의 傳說도 있다.

百濟의 人神供養 [ 編輯 ]

三國時代 330年에 築造된 [10] 全羅北道 金堤 碧骨堤 에서 調査 때에 여러 人骨들이 나와서 땅기운을 다스리는 風習을 보여주었다. [8]

伽倻의 人神供養 [ 編輯 ]

昌寧 松峴洞 伽倻古墳群의 10代 殉葬少女, 慶尙北道 高齡 지산동 大伽倻 古墳群의 무더기 殉葬 痕跡 等이 있다. [8]

朝鮮의 人神供養 [ 編輯 ]

400餘年 前 靑松 에서는 선비 尹班을 살리기 위해서 童子僧이 缸아리에 담겨서 속에 들어갔다는 人神供養 民譚 이 傳해진다. [11] 김필 先生이 築造한 長興 어인步 [12] 는 補宜 둑이 잘 터지니 산 사람을 祭物을 바쳤다는 說話가 있으나 因果應報를 담은 內容도 있다. [13]

國寶 305號 統營 洗兵館 建物을 지을때 에밀레鐘 傳說처럼 統制使 가 比丘尼 스님을 人身供養했다는 傳說이 있다. [14]

舌禍 [ 編輯 ]

韓國 의 人神供養 關聯 說話는 大體로 人身을 祭物로 바치는 惡習이 없어지게 된 由來談이 많다. 個性의 지네山傳說, 淸州 지네場터傳說, 濟州島의 金寧蛇窟傳說 等이 있다.

이러한 人神供養 說話는 古典小說 『 沈淸傳 』의 根源說話(根源說話)가 되기도 하였다. 『 沈淸傳 』에 影響을 끼친 '居陀知' 說話도 亦是 人身供養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巨大한 土木工事를 할 때에 어떤 사람을 물 속이나 흙 속, 或은 그 材料 속에 파묻는 것을 인주(人柱)라 하고, 人身을 提供하는 人身供與는 이를 素材로 한 說話로 人神供養 說話의 한 種類이다. 人身供與라는 說話는 新羅 聖德大王神鐘 傳說( 에밀레鐘 傳說)李 有名하다. [1]

人神供養 說話는 人身供養을 통하여 神과의 對話를 뜻한다. 이 說話는 世界的으로 널리 퍼져있어 各種 口碑傳承과 神話에서 發見된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文學批評用語辭典(2006年 국학자료원 出版) 參照
  2. “[論說委員의 뉴스 料理] '人神供養'은 正말 사라졌을까” . 釜山新聞. 2021年 9月 25日.  
  3.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은 멕시코시(市)에서 北東쪽으로 52km 떨어져 있었던 王國으로 紀元前 2世紀頃 建設되기 始作하여, 紀元 後 4世紀부터 7世紀 사이에 全盛期를 맞았다고 하는데 全盛期 人口는 大略 12萬 名에서 20萬 名으로 推定하고 있다. 테오티우아칸은 廣範圍한 交易을 통해 經濟力을 蓄積하고, 强力한 軍事力을 保有해 中美 全域에 勢力을 떨쳤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대유적, 모리노 多쿠미·마쓰시로 모리히로 지음, 이만옥 옮김, 2007年 들녘 出版) 參照
  4. 그리스도교 西洋文化의 어머니 1强 그리스도교의 胎動과 最初의 土着化 過程 Archived 2019年 9月 21日 - 웨이백 머신 가톨릭평화방송 2014-06-03
  5. 고승희 記者 (2013年 1月 31日). “멕시코서 骸骨 150具 發見…“人間祭物 痕跡”” . 헤럴드經濟 . 2013年 7月 15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6. “우물에 던져진 아이… 9世紀 新羅엔 무슨 일이?” . 朝鮮日報. 2011年 6月 3日.  
  7. “葬禮式만 27個月? 公州 艇止山 ‘武寧王非 殯所’의 祕密 [김상운 記者의 發掘王]” . 東亞新聞. 2019年 11月 18日.  
  8. “慶州 月城城壁 속에서 ‘人神供養’ 新羅人骨이 나왔다” . 한겨레新聞. 2017年 5月 16日.  
  9. “護國信仰 (護國信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學中央硏究院 . 2023年 11月 14日에 確認함 .  
  10. “金堤 碧骨堤 미스터리…三國時代 貯水池 맞나” . 中央日報. 2013年 1月 11日.  
  11. “「尹班과 維持」” . 《디지털靑松文化大展》. 韓國學中央硏究院 . 2023年 10月 10日에 確認함 .  
  12. “(特別寄稿) 長興 死認定 바로알기” . 長興투데이. 2022年 5月 20日.  
  13. “人株說話 (人柱說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學中央硏究院 . 2023年 10月 10日에 確認함 .  
  14. “比丘尼 스님의 人神供養으로 세워진 洗兵館?” . 프레시안. 2012年 12月 1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