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 戰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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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 海戰
6.25 戰爭 의 一部
날짜 1950年 6月 25日
場所
結果 大韓民國의 勝利
交戰國
대한민국 大韓民國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指揮官
대한민국 김성삼 統制府 司令官 大領
대한민국 김충남 第2正大 司令官 中領
대한민국 김두찬 墨湖經費部 司令官 中領
대한민국 최용남 PC 701艦長 中領
대한민국 양해경 YMS 512艦長 少領
대한민국 박창제 YMS 518艦長 少領
대한민국 김상도 YMS 509艦長 少領
不明
被害 規模
YMS 509梃 函數 被擊 上陸艇 1隻 沈沒
上陸艇 1隻 鹵獲
輸送船 1隻 被害

옥계 戰鬪 1950年 6月 25日 6.25 戰爭 勃發 當時, 東海岸 警備 任務를 맡고 있던 YMS 509情이 北韓軍이 東海岸에 上陸한다는 報告를 받고 出動하여, 熾烈한 海上戰鬪 끝에 敵 輸送船 한 隻을 擊退, 上陸艇 한 鄭 擊破, 上陸艇 한 鄭 捕獲이라는 戰果를 거둔 戰鬪이다.

이 戰鬪의 結果로 YMS 509程度 若干의 被害를 입었으나 北韓軍이 더以上 東海岸으로 上陸하지 못하도록 하는 戰果를 거두었다.

背景 [ 編輯 ]

戰爭 當時 海軍이 保有하고 있던 唯一한 戰鬪艦이면서 海軍의 主力艦 이었던 PC 701艦은 當時에 强한 火力을 지니고 있는 戰鬪艦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海軍의 全將兵과 國民들의 誠金으로 購入한 戰鬪艦이다.

海軍은 釜山 김충남 中領이 이끄는 第2정대가 掃海艇 6隻을 保有하고 東海岸 經費를 擔當하고 있었는데, 이때만 하여도 38度 分界線을 中心으로 한 間接的인 挑發行爲는 頻繁하였으나 全面的인 侵攻은 豫想外의 일이었으며 特히 海上은 별다른 徵候가 없었으므로 第2正大는 1隻의 警備艇으로 하여금 墨湖와 注文鎭肝을 警備하도록 하였으며 墨湖警備部는 江陵 으로부터 墨湖 에 이르는 各 海岸에 海上監視所를 設置하고 萬一의 事態에 對備하고 있었다.

6月 24日 에는 墨湖 海上에서 警備 中이던 민현식 少領이 이끄는 JMS 304情이 김상도 少領이 이끄는 YMS-509鄭에게 警備任務를 引繼하고 釜山의 第 2政府司令部로 歸航 中에 있었으며 YMS-509定은 이날 警備出動 期間 中에 必要로 하는 副食品적再次 墨湖港에 碇泊 中에 있었다.

戰鬪 過程 [ 編輯 ]

6月 24日 JMS 304梃과 東海岸 警備任務를 交代한 YMS 509定은 副食品을 積載하려고 墨湖港에 碇泊하고 있던 中 東海岸을 따라 南侵한 北韓軍의 第788 게릴라(Guerilla) 部隊는 攻擊 目標를 옥계 等地의 海岸으로 定하고 6月 25日 04:00에 이미 海岸上陸을 開始하고 있었다.

이에 김두찬 中領이 이끄는 墨湖經費部의 옥계海岸哨所로부터 海軍의 上陸을 報告 받은 司令官은 卽時 海岸本部로 打電하는 同時에 YMS 509梃의 現地出動을 命令하였다.

그 當時 38度 分界線 近海의 經費는 體系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港口에 碇泊 待機하고 있다가 特別한 景況이 있으면 出動을 하는 時期였으며 YMS 509程度 墨湖港에 碇泊中이고 6月 24日 은 土曜日인데다 모두 陸上에 外出하였다가 돌아왔으며 이튿날은 日曜日이므로 乘組員 모두가 깊은 잠에 醉해 있었다.

6月 25日 05:00 YMS 509定은 海軍 本部로부터 다음과 같은 緊急 電文을 받았다.

『緊急 出動 指示

① 北韓 守城先端 南侵
② 옥계 海岸에 赤軍 上陸中
③ YMS 509定은 緊急出動하여 擊沈하라.』

海軍 本部

通信社가 想起專門을 艇長에게 報告한 時間은 05:10이었고, 509定은 卽刻 出動 準備를 서둘러 06:00에 墨湖 를 出港하여 北上하였다. 當時의 海上 狀態는 안개가 끼어 있어 是正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歲饌 海風은 없었으나 船體는 左右로 40度씩이나 기울어지기도 하였다.

2時間의 亢進 끝에 509定은 안개 속에서 배 한隻을 發見하였는데 배의 形體로 보아 我軍의 警備艇이 아닌가 疑訝心을 품고 發光信號를 보내기 始作하였다.

賊船은 아해군의 掃海艇과 類似한 點이 있어서 YMS 509情보다 더 빨리 現地에 到着한 亞海軍警備艇으로 錯覺하고 發光信號를 繼續했으나 아무런 應答이 없자 509鄭에서는 戰鬪 配置를 하고 甚한 波濤를 가르며 相對線으로 接近해갔다.

509情이 繼續 發光信號를 하면서 1리정도 接近해가자 相對船으로부터 번쩍하는 閃光이 있었는데 正裝은 發光信號로 應答이라도 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군함을 目標로 砲擊을 加한 것이었다.

同時에 509鄭에서도 『敵艦이다!』는 喊聲과 함께 모두들 正裝의 砲擊命令에 따라 37mm砲와 中期로 射擊을 加하기 始作하니 조용한 아침바다에는 熾烈한 砲聲이 울려 퍼졌다. 砲擊을 繼續하면서 積善을 觀察한 結果 船體는 모두 다 鐵善이고 甲板에는 40mm 2聯長 機關砲가 있었으며 速度도 我軍보다 빠른 便이었다.

509梃의 砲要員들은 처음 맞이하는 實戰이었으나 興奮과 망설임을 忘却한 채 37mm 砲로 正確한 命中彈을 집중시켰다. 船舶의 마스트에는 붉은 北韓旗가 휘날리고 있었으며 509線은 砲의 照準裝置가 未備한 點을 挽回시키려고 500야드까지 接近하면서 射擊을 繼續하였다.

積善과의 近距離에서 509定은 敵手에 1發이 命中되었지만 목線이 되어서 별다른 被害는 없었고 砲의 照準裝置가 未備했던 同情은 波濤를 利用하여 船體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瞬間에 정조준하여 射擊限 까닭으로 37mm包는 正確하게 敵의 鐵板에 命中되어 灼熱하고 있었다.

50分間 繼續된 交戰으로 北韓軍의 火力도 弱하여지고 速度도 微弱하여 진 듯이 검은 煙氣를 吐하면서 北으로 逃避하였다. 水平線 멀리 검은 煙氣를 내면서 사라지는 積善을 뒤로한 509定은 被擊된 選手 舷側甲板의 水枕을 막기 위하여 墨湖로 돌아와서 緊急修理를 끝마치고 다시 交戰하던 海域으로 出動하였으나 海岸線에 敵의 發動船만 3~4隻만 있었고 北韓軍은 이미 上陸해버린 後였다.

509定은 같은 날 15:00에 옥계 北上 3里 地點에 上陸 中이던 北韓軍을 發見하자 近距離까지 接近하여 砲擊을 加하니 적은 이미 上陸하여 荷役作業을 하고 있던 것을 中止하고 山속으로 分散逃走 하였다가 15分後에 迫擊砲 水門으로 509艇에 對抗하여 왔으나 아무런 被害가 없었다.

같은 날 17:30에 509定은 海岸線에 있던 上陸艇 1隻을 完全擊破하고 다른 發動船 1隻을 鹵獲하여 墨湖港에 入港한 다음 墨湖經費部에 引繼함과 同時에 北韓軍의 全面的인 南侵狀況을 알게 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