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승
(高明昇,
1935年
7月 18日
~ )은
前 陸軍 第3軍
司令官을 지낸 軍人이며 以後 政治家로 活動하였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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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年
當時
하나회
의 멤버였던 고명승은
全斗煥
의 命令에 따라
陸士
15期 出身이며 亦是 하나會議 멤버였던 靑瓦臺 警護室長 職務代理였던
정동호
准將과 靑瓦臺 警護兵力을 當時 大統領이었던
최규하
大統領 權限代行의 承認 없이 無斷으로 출동시켜 總理公館의 警備를 맡고 있었던 陸本 憲兵 警護隊長 구정길 中領 隸下의 憲兵 兵力들을 制壓하고 總理公館을 武力으로 接受하여 12.12 쿠데타의 成功에 一助했다.
12.12 쿠데타
가 成功으로 끝난 後, 全斗煥 政權 때는 軍事 政權에서 首警司令官, 保安司令官 等
[1]
, 昇進을 거듭하여 3軍 司令官까지 昇進하였다. 하나회 內에서도 全斗煥 系列이었으며, 노태우가 大統領이 된 後, 陸軍 參謀 總長이 되고 싶어 하였으나, 3軍 司令官을 끝으로 더 以上 昇進하지 못하고
陸軍
大將
階級을 끝으로 退役한 것으로 膾炙된다.
1992年
第14代 國會議員 選擧
에서 민주自由黨 候補로 全羅北道 扶安郡 選擧區에 出馬하였으나 민주당 이희천 候補에 밀려 落選하였다.
1996年
第15代 國會議員 選擧
에서도
신한국당
候補로 같은 選擧區에 出馬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진배 候補에 밀려 落選하였다. 허화평, 허삼수, 정호용, 권정달 等 多數의 쿠데타 加擔者들이
第6共和國
에서도 最小 1番 國會議員에 當選된 反面 하나會에서도 몇 안되는 湖南出身인 고명승은 新軍部와
第5共和國
에 對한 反感이 컸던 故鄕의 憤怒를 이겨내지 못했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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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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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陸軍大領, 靑瓦臺 警護室 作戰擔當官
- 陸軍少將, 第9步兵師團長
- 陸軍中將, 國軍保安司令官
- 陸軍大將, 第3野戰軍司令官
- 大韓民國 豫備役 將星모임 성우회 拷問
고명승을 演技한 俳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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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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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 選擧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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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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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首警司令官과 機務司令官(保安司令官)은 軍事 政權에서 實勢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