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瓷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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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國立中央博物館에 展示된 靑瓷飛龍形注子 , 國寶 第61號

陶瓷器 (陶瓷器, 英語 : porcelain, fine china )는 을 빚어 높은 溫度의 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裝飾物을 말한다. 크게 1,300°C以下의 溫度에서 구운 陶器(陶器 earthenware/pottery)와 1,300∼1,500°C에서 구운 自己(瓷器 [1] , porcelain)로 나눌 수 있으며, 陶器와 自己 및 詐欺(沙器/砂器)그릇 [2] , 질그릇을 통틀어 [3] 陶瓷器라고 한다. 所持의 狀態나 燒成 溫度에 따라 土器, 陶器, 石器 , 自己로 나뉜다. [3]

陶瓷器 原料의 3要素 [ 編輯 ]

흙을 반죽하여 陶瓷器를 만드는 데는 3種의 性質을 가진 原料가 必要하다.

  • 반죽할 때에 힘을 加하면 形態가 變하고, 힘을 除去해도 形態를 維持하는 性質 卽, 小成(塑性)이 있어야 한다. 이 小成을 가진 것이 粘土인데, 萬若 粘土가 없다면 건조시킬 때 부서져 버린다.
  • 熱을 加해 成形된 形態로 高化시킬 때, 흙가루와 흙가루 사이를 굳게 結合하는 役割을 하는 材料가 必要한데 이 役割을 하는 것이 長石 으로서, 1,000°C 程度가 되면 長石 속에 들어 있는 알칼리 成分이 녹아서 琉璃質이 되어 粒子와 粒子 사이를 메운다. 이 琉璃質은 若干만 溫度가 내려가도 곧 굳어 버리므로 粒子와 粒子는 굳게 結合된다.
  • 또 하나의 原料는 陶瓷器의 本體가 되는 것으로, 만들어진 陶瓷器의 比重이라든가, 어느 程度의 溫度에서까지 使用할 수 있는가 等 陶瓷器의 主要 性質을 決定하는 人者가 되며, 石英質의 흙, 卽 규석이 쓰인다. 이 成分이 많이 含有된 陶瓷器는 처음 成形했을 때의 形態와 구워냈을 때의 形態가 別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粘土質의 原料는 구우면 水蒸氣가 빠져나가고, 長石質 原料는 有利化되어 부피가 작아지는데, 이와 같은 現象을 塑性數軸(燒成收縮)이라 부른다.

陶瓷器의 成型法 [ 編輯 ]

陶瓷器 原料를 반죽하여 成形하는 데는 다음 3가지 方法이 있다.

轆轤에 依한 方法 [ 編輯 ]

前述한 3代 主原料를 適當한 方法으로 섞고 잘 반죽하여 原版 위에 올려놓고 이 圓板을 회전시킨다. 손이나 臺나무주걱 等으로 原料에 힘을 加하면서, 待接이나 접시 或은 꽃甁 等 목적하는 形態로 만든다. 技術的으로는 相當히 어려운 方法인데 꽤 오래前부터 써 오던 方法이며, 現在도 工藝品 等을 製作할 때 利用되고 있다.

石膏로 된 거푸집을 쓰는 方法 [ 編輯 ]

흙을 반죽할 때 물을 많이 使用하면 걸쭉하고 잘 흘러내리는 반죽이 된다(이것을 slip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石膏로 만든 틀에 부으면 餘分의 물이 吸收되어 묽었던 흙이 굳어진다. 이 方法은 같은 形態의 陶瓷器를 大量 生産할 때 利用된다.

粘土·長石을 原料로 使用하지 않는 方法 [ 編輯 ]

陶瓷器에 따라서는 粘土나 長石 成分이 들어 있으면 性質이 떨어지는 것이 있다. 이런 種類의 陶瓷器는 成型하는 데 粘土를 쓰는 代身, 澱粉 等의 풀을 使用하거나 높은 壓力을 加해 굳힌다. 또 長石의 役割을 하는 材料를 넣지 않고 아주 높은 溫度로 하여 主成分 中의 一部가 녹을 程度로 剛하게 굽는 때도 있다.

陶瓷器 굽는 法 [ 編輯 ]

慶州 民俗工藝村에 있는 甕器 가마

陶瓷器를 굽는 데는 1,000°C 以上의 高溫이 必要한데, 이를 위한 裝置가 가마 라 불리는 것으로, 最小限의 燃料를 使用하여 最高의 溫度를 얻을 수 있도록 考案되어 있다.

登窯 [ 編輯 ]

登窯 (登窯)는 全國 各地에서 오래前부터 使用되어 온 것이다. 原料를 반죽·成形한 것을 가마 위쪽 部分의 선반模樣으로 된 받침 위에 여러 層으로 쌓는다. 이어서 가장 밑層에서 나무를 때면 그 火焰이 上層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 때 溫度가 떨어지지 않도록 가마 옆에 뚫린 구멍으로 長斫을 던져 넣는다. 이렇게 해서 次例로 가장 윗部分까지 熱이 퍼지는데, 가마 全體가 階段式으로 되어 있으므로 굴뚝 役割을 하게 되어 燃料가 繼續 타게 되는 것이다.

터널(tunnel) 요 [ 編輯 ]

登窯의 境遇는 구워진 陶瓷器를 꺼내려면 불을 끄고 가마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不便을 덜기 위해 가마를 터널式으로 만들어 出口와 入口를 낮은 溫度로, 中央을 高溫으로 만든다. 舊憂慮는 材料를 臺車(臺車) 위에 얹고 터널 속을 천천히 통과시켜서 굽는 方式이다. 陶瓷器를 工業的으로 大量生産하는 데는 이 方法이 利用된다.

陶瓷器의 彩色과 裝飾 [ 編輯 ]

原料를 반죽하여 가마에서 구워 낸 것을 질그릇·土器(土器)라 부르며, 이것은 表面이 거칠고, 잘 구워지지 않는 것은 表面에서 水分을 吸收하거나 속에 담은 물이 스며나오기도 한다.

釉藥 [ 編輯 ]

질그릇·토기의 缺點을 補完하기 위해 그 위에 釉藥(釉藥:잿물)을 바르고, 다시 가마 속에 넣어 구우면, 光澤이 있고 水分을 통과시키지 않는 表面을 만들 수 있다. 또 粘土를 成形한 뒤 미리 釉藥을 발라 굽는 方法도 있다. 釉藥은 琉璃質이므로 光澤있는 表面이 될 뿐 아니라 뜨거운 有利 를 갑자기 식히면 갈라지는 性質을 應用하여, 火病 等의 表面에 잘게 갈라진 무늬를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잔 무늬로 갈라진 것을 關由(貫乳)라고 부른다. 釉藥은 나트륨·칼륨·마그네슘·칼슘·납·硼素·알루미늄의 酸化物 等을 고르게 混合한 것으로, 이 成分은 普通 琉璃와 大體로 같으나 陶瓷器의 種類·굽는 溫度 等에 따라 달라진다.

彩色·그림붙이기 [ 編輯 ]

陶瓷器는 模樣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무늬나 그림을 넣는 것이 普通이며, 着色·그림 붙이기의 方法에는 2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色素地(色素地)란 方法으로, 흙을 반죽할 때 미리 着色劑를 섞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色釉(色釉)라 하여 釉藥에 着色劑를 섞어 初벌 구운 것 위에 바른 다음 다시 굽는 方法이다. 그림을 넣는 方法으로는 初벌 구운 것에 直接 그림을 그리고(或은 轉寫紙를 붙이거나), 그 위에 釉藥을 바르는 것, 釉藥을 발라 구워 낸 다음 그림을 그리고 다시 굽는 等의 方法이 있다.

陶瓷器의 着色劑 [ 編輯 ]

여러 가지 着色劑
着色劑 着色劑
크롬산칼륨 鹽基性炭酸구리
크론山衲 黃酸구리
산화코발트 酸化第二鐵
鹽化第一코발트 MnSO4·7H2O
산화제일코발트 NiO
중크롬산칼륨 TiO2

色깔이 마음에 들어 산 옷이 1年도 안 가서 色이 바랜다거나, 洗濯할 때 물이 빠져 다른 옷까지 버리게 되는 境遇가 種種 있다. 그러나 陶瓷器의 境遇는 그런 일이 絶對로 없다. 그 理由는 陶瓷器의 色彩는 高溫으로 구워서 발색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끓는 물에 담가도, 오랜 歲月이 흘러도 變色하지 않으며, 몇 千年 前의 陶瓷器가 只今도 아름다운 色彩를 잃지 않고 美術品·骨董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高溫으로 구워 목적하고 있는 色彩를 얻는 일은 몹시 어려운 作業으로서, 着色藥品의 差異·굽는 溫度·가마 속의 燃料가 完全히 燃燒하고 있는지의 與否 等에 依해 色彩가 微妙하게 變化한다.

着色劑로는 코발트·망간·철·九里·티탄·크롬·金·銀·납 等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같은 藥品이라도 굽는 方法에 따라 全혀 다른 色을 내는 境遇가 많다.

陶瓷器의 區分 [ 編輯 ]

陶瓷器의 區分
區分 自己 陶器 土器
굽는온도 가장 높다. 普通이다. 比較的 낮다.
初벌구이 때 물을 거의 吸收하지 않는다. 물을 吸收한다. 물을 吸收한다.
비쳐 보았을 때 밝게 비친다. 빚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빚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가볍게 튀겼을 때 맑은 소리 濁한 소리 濁한 소리
有 約 使用 使用 使用하지 않았거나 조금 使用.
龍 도 얇은 식기 두꺼운 식기, 衛生 陶器 기와, 土官, 花盆

찰흙이나 돌을 原料로 하고 그것에 依하여 兄을 만들어 가마에서 高熱處理하여, 化學變化를 일으키게 한 人造鑛物을 總稱하여 陶瓷器라고 하는데, 이것을 性質에서 分類하면 大別하여 土器, 陶器, 石器, 自己의 네 種類가 된다.

土器 [ 編輯 ]

암사동 先史遺跡地 빗살무늬土器

土器(土器)는 多孔質로서 撫柔(無釉)의 것이고, 一般的으로 原料는 有色의 量土質(壤土質) 또는 석氣質이 使用되나, 정도기(精陶器)와 아주 비슷한 소지토(素地土)의 것도 있다. 約 9000年前부터 人類는 土器를 만들어 왔으나, 現在에는 검은 기와, 붉은 甓돌, 花盆의 一部 等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程度氣質(精陶器質)의 것에는 電池用 애벌구이, 電解用 膈膜, 機體濾過, 細菌 그 밖의 餘瓜遞 等이 있다. 一般的으로 土器는 부서지기 쉽고, 陶瓷器 中에서는 가장 原始的인 것이다. 韓國에서는 즐문式(빗살무늬), 채문식(彩紋式) 土器 等이 있다. 土器와 陶器의 差異는 크지 않으며, 土器라는 用語는 日本에서 처음 使用된 것이기에 使用을 排除하는 사람도 있다.

陶器 [ 編輯 ]

陶器(陶器)는 外觀에 依하여 程度氣(精陶器)와 朝到記(粗陶器)로 分類되는데, 程度氣는 大體로 白色이므로 그 素地(素地)는 緻密하고 硬度가 높다. 그리고 애벌구이를 한 뒤에 本구이를 하는 것(半磁器 等)과 本구이 卽 맺음구이를 한 뒤에 財閥구이를 하는 것(硬質陶器, 半熔化陶器 等)의 區別이 있다. 朝到記는 어느 것이나 素地가 有色으로서, 韓國 것은 低火度 朝到記와 高火度 朝到記로 나뉜다. 性質에 따라 分類하면 粘土質, 長石質, 白雲石질 陶器로 나뉜다. 粘土質 陶器에는 韓國 古來의 陶器가 該當되고, 長石質 陶器는 硬質陶器(硬質陶器), 반용화陶器(半熔化陶器) 等으로 나뉜다. 1250°C ~ 1350°C에서 맺음구이를 하고 釉藥을 발라 먼저 溫度보다 低溫에서 財閥구이恨 것이 많다. 主로 타일, 부엌 식기, 衛生陶器 等이 만들어진다.

石器 [ 編輯 ]

굽는 溫度가 높고 釉藥을 使用하지 않은 不透明한 것을 石器(石器)라 부르기도 한다. 石器의 種類에는 成形된 것을 굽기 前에 짚으로 싸서, 짚에서 나온 裁可 釉藥과 같은 作用을 하여 그 部分만 무늬가 생긴 것, 燃料로 使用한 소나무의 裁可 柔弱作用을 한 것, 숯불의 炭素가 材料 속의 鐵分과 和合한 것 等이 있다. 使用 찰흙의 빛깔, 釉藥의 狀態 等에 따라 粗石器(粗石器)와 精石器(精石器)로 나뉜다. 土器나 陶器에 비하여 素地(素地)에 吸收性이 없고, 陶器와 自己 사이의 것으로서 一般的으로 素地는 有色이며, 個中에는 釉藥이 없는 것도 있다. 조석氣는 石器 찰흙 그대로를 使用할 境遇가 많고, 原料中의 不純物이 굽는 동안에 溶劑가 되어서 素地가 잘 구워진다. 食鹽釉를 바른 것이나 陶器에 釉藥을 바른 것이 있다. 精石器는 比較的 精製된 原料를 使用하고 粗石器보다 高溫에서 小成(燒成)된 것이 많으며 素地는 白色에 가까운 淡色으로 撫柔(無釉)의 것이나, 食鹽釉, 一般乳(一般釉)를 漆한 것이 있다. 化學工業用의 전해탄크(電解槽), 耐酸타일(耐酸 tile) 等이 있고 스웨덴 等의 工藝品 中에 대단히 아름다운 釉藥을 바른 高溫度小成(燒成)의 것이 있으며, 中國의 송시대의 것에서 많이 볼 수 있다.

自己 [ 編輯 ]

自己(磁器)는 質的으로 陶瓷器 中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고 歷史的으로도 가장 새로운 材質이다. 一般的으로 素地는 白色으로서 吸收性이 없고 透光性이 있어서 두드리면 金屬性 소리를 낸다. 自己도 다시 細分하면 年自己(軟磁器), 경자기(硬磁器), 特殊陶瓷器의 3種으로 된다. 硏子氣는 1250°C 前後에서 透光性이 생길 때까지 맺음구이를 하고 市有(施釉)韓 뒤 1000°C 前後에서 財閥구이를 한다. 釉藥의 程度가 낮은 것이 缺點이지만 光澤이 좋고 顔料의 發生이 아름답다. 古代 中國瓷器, 본차이나, 프리트 自己 等이 여기에 屬한다.

陶瓷器는 小成溫度가 높고, 釉藥의 經度度 높아 實用性에 뛰어나다. 경자기는 다시 低火度自己(1250°C ~ 1350°C 小成), 중화도自己(1350°C -1400°C 小成), 高火度自己(1400°C 以上 小成)으로 나뉜다. 一般的으로 유럽 自己는 古畫 陶瓷器가 많고(영국의 본차이나 等을 除外함), 中國의 自己, 韓國의 西洋式 自己는 中華陶瓷器에 屬하고 三國時代 統一新羅의 陶瓷器에 楮貨陶瓷器에 屬하는 것이 있다.

特殊陶瓷器는 機械的인 强度, 耐酸性, 電氣的인 제 性質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하여 특수한 原料를 많게 하거나 또는 한 成分에 依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燒成溫度, 性質은 여러 가지이다. 高周波 絶緣物, 콘덴서 , 高級 點火플러그 高級 도가니 等, 大部分은 自己인데, 個中에는 石器의 性質을 가진 것도 있다.

陶瓷器의 種類 [ 編輯 ]

小成溫度 外의 色깔, 文樣, 生産地에 따라 特別히 부르는 이름이 定해져 있는 境遇가 있다.

靑瓷 [ 編輯 ]

靑瓷(靑磁)는 極小한 鐵分을 含有한 釉藥을 高火度의 還元焰으로 小成하면 푸른 氣를 띠어 發色한다. 옛 中國 한時代에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 後 宋時代로 접어들어 대단히 아름다운 청자가 구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韓國의 高麗靑瓷 는 世界的으로 有名하다.

白瓷 [ 編輯 ]

白瓷(白磁)는 靑瓷보다 뒤늦게 만들어져 當時代에 생겼다. 素地는 희고 透明性이 있는 것이 많고 노르스름한 빛깔을 띤 白瓷와 푸르스름한 白瓷가 있다. 前者는 酸化焰, 後者는 還元焰에서 小成된 것이다. 朝鮮時代 白瓷 等을 들 수 있다.

薦目 [ 編輯 ]

薦目(天目)은 一種의 철유(鐵釉)로서, 陶瓷器에 鐵分이 飽和狀態인 釉藥을 발라 黃褐色 基調로 發色하는 方法이며 釉藥이 두꺼워질수록 검은色 기운이 많이 나타난다. 이 釉藥은 巖石의 鐵分이 물에 녹아 흐르다가 다시 沈澱된 褐鐵鑛을 그대로 쓰는 것이며 高麗時代의 천목은 宋自己의 千목을 模倣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薦目에는 무늬를 白土로 象嵌하거나 彫刻한 것이 있고 特히 上監의 例에서 보면 검정 바탕에 白土가 效果的으로 나타나고 있어 一般的으로 생각하는 薦目과는 다른 印象을 준다.

한時代에 생긴 柔弱이나 聽者와 마찬가지로 송시대에 特히 뛰어난 것이 나오고 있었다. 高麗瓷器에서도 千목이 特히 發達하였었다. 천목은 日本語의 덴모쿠(天目)가 普遍語로 쓰이면서 생긴 이름이다. 유조(釉調), 山地名(産地名) 等에 따라 妖變薦目(曜變天目), 油滴天目(油滴天目), 待避薦目(玳披天目), 건잔薦目(建盞天目), 河南천목(河南天目) 等이 있다.

眞사 [ 編輯 ]

眞사(辰砂)는 구리를 含有한 釉藥을 高火度還元焰으로 小成한 赤色을 띤 釉藥을 말한다. 中國의 願時代, 名時代에 九里 그림물감으로 밑그림을 그린 有利洪(釉裏紅)이 있고, 淸時代에는 一面에 赤色油를 바른 것이 나왔다. 高麗瓷器나 朝鮮時代의 百字에서 찾아볼 수 있다.

靑華 [ 編輯 ]

코발트狂(鑛)李 靑色을 띠게 하는 그림물감에 使用된 것은 中國 當時代에 唐三彩의 低火度油(低火度釉)에서 볼 수 있는데, 高火度油 아래 使用된 것은 宋時代 末期에 비롯되고, 遠視臺에 西域에서 코발트光이 輸入되어 自己 그림 그리는 데에 使用되었고, 名時代에서 淸時代를 거쳐 오늘날에도 一般的인 自己의 그림을 그리는 데 愛用되고 있다. 그 技術은 韓國, 安南(安南)으로 傳해지고 韓國에서 日本으로 傳하여졌다. 또한 유럽의 陶瓷器에도 影響을 주어 코펜하겐 王立制度소의 自己, 네덜란드의 델프트 의 陶器 等은 現在도 東洋的인 靑畫風(靑華風)의 製品을 生産하고 있다.

積貨 [ 編輯 ]

赤化(赤畵)는 송시대에 本具이된 自己에 덧그림을 그리고 低溫度에서 굽는 技法으로 원臺 말에 自己에 利用되었다. 붉은 무늬에 依한 赤色이 主로 使用되었으므로 一括하여 赤化라 한다. 名時代에는 훌륭한 赤化를 구웠었는데, 그 年代에 따라 善德赤化(宣德赤畵), 聖火赤化(成化赤畵), 家庭的火(嘉靖赤畵), 萬曆赤化(萬曆赤畵) 等으로 불리고 저마다 趣向이 다르게 되어 있다. 赤色 以外에는 노랑, 草綠色, 자주빛, 파랑 따위 빛깔이 使用된다. 色化(色畵)라고도 한다. 淸朝時代로 접어들어 技術的으로 매우 훌륭한 것이 나왔다.

畫靑瓷 [ 編輯 ]

畫靑瓷(畵靑磁)의 境遇 釉藥 밑에 그림을 그린 것을 琉璃(釉裏), 有表面에 그린 것을 유표(釉表)라고 한다. 琉璃畫(釉裏畵)는 白土, 黑土, 鐵絲(鐵砂), 眞사(辰砂)로 胎土(胎土) 위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린 다음, 그 위에 釉藥을 발라 구운 것으로서 송시대의 수무요(修武窯), 願時代의 자주요(磁州窯)의 影響으로 생긴 것이다. 流布化는 金니(金泥)로 瓷器 表面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린 다음, 그 위에 釉藥을 바른 것으로 裝飾的인 奢侈品이다.

高要地 [ 編輯 ]

高要地(古窯趾)는 韓國의 製圖紙(製陶地)로 高麗瓷器나 李朝瓷器를 굽던 옛 터를 가리켜서 말한다. 京畿道의 光州를 爲始하여 高陽, 全羅道의 扶安, 鎭安, 强震, 鷄龍山 等地에 있고, 光州 等地처럼 現在에도 生産되고 있는 곳도 있으나 거의가 妖賊(窯跡)이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陶瓷器 [ 編輯 ]

中國의 陶瓷器 [ 編輯 ]

中國 明나라 때의 陶瓷器

中國 東아시아 에서 가장 먼저 陶瓷器를 발달시켰으며 周邊의 韓國 , 베트남 , 日本 等은 勿論 멀리 西아시아 유럽 等地의 陶瓷器에도 많은 影響을 미쳤다. 中國의 陶瓷器는 殷나라 때부터 發達되기 始作한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唐三彩 [ 編輯 ]

唐三彩(唐三彩)는 中國 當代의 陶器로 三채 釉藥을 使用한 것을 말한다.

週로 長安·洛陽 貴族들의 葬禮用으로 製作되었고, 墓陵에 副葬되었다. 도질(陶質)의 所持에 化粧한 다음 綠·갈·黃·白의 緣由로 華麗하게 漆하였으며, 또는 코발트의 남유(藍釉)를 漆한 것도 있다. 畸形은 龍守護, 萬年號와 反(盤), 완 外에 여러 가지 形態의 男女 人物像, 身上, 鎭墓獸(鎭墓獸), 말, 駱駝 等의 各種 明記. 當代 貴族의 趣味, 生活樣相을 잘 나타내고 또 當時 流行한 鉏아시아風 議長과 服飾이 가끔 보인다. 아마도 則天武后(在位 690∼705) 頃부터 出現하여 後場(厚葬)의 風習이 높아짐에 따라 크게 流行하였으나, 안록산의 亂(756) 以後에는 製作되지 않았다. 그러나 渤海三채, 要三채, 宋三彩 等과 페르시아 三채 等에까지 그 影響이 미쳤다고 한다.

韓國의 陶瓷器 [ 編輯 ]

韓國의 陶瓷器는 비록 中國의 影響을 받았으나 宗主國이었던 中國조차도 感歎할 만큼 그 品質과 아름다움이 뛰어나 東아시아 各國에서 韓國의 陶瓷器를 輸出하기도 했다.

先史時代 [ 編輯 ]

빗살무늬土器 .

新石器時代 사람들은 土器를 만들어 食糧을 貯藏하기 始作하였다. 이는 舊石器時代의 流浪生活에서 벗어나 江가에서 漁撈 狩獵 을 하고, 나중에는 農事를 짓게 되면서 發生한 일이었다. 新石器時代에 만들어진 土器는 野外에서 말리거나 구덩이를 파고 700度 程度의 溫度에서 구운 것이었다. 낮은 小成溫度로 인해 耐久性에 限界가 있었다. 考古學的으로 살펴보면 韓國에서는 덧무늬土器, 눌러찍기무늬土器, 빗살무늬土器 , 번개무늬土器 等이 만들어졌으며, 各各의 土器는 指標連帶를 가늠하는 重要遺物이 된다.

古朝鮮 [ 編輯 ]

이 時期에는 表面을 갈아 潤氣를 낸 土器가 登場한다. 붉은 肝토기(紅島), 검은 肝토기(黑陶) 等이 그것이다. 以外에 漸次 裝飾이 적어지는 민무늬 土器(덧띠 土器)가 登場하였는데, 이는 生産力이 增加하면서 容量이 큰 土器를 大量生産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斟酌된다. 이 時期의 土器는 고조선의 勢力圈을 알려주는 主要 指標遺物이 되어준다.

三國 時代 [ 編輯 ]

動物 模樣 土器, 京畿道 博物館 所長

三國時代에는 技術이 發達하여 陶器가 만들어지기 始作하였다. 特히 新羅와 伽倻에서는 人物型, 動物形 模樣의 土器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新羅 [ 編輯 ]
陶器 騎馬人物型 明記 .
土偶裝飾 장경호 .

初期 新羅는 伽倻와 함께 各種 模樣의 陶器를 生産하였으며, 特히 國寶 91號 陶器 騎馬人物型 明記 가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릇의 말탄 人物 모습은 當時의 生活相을 推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以外에도 陶器에 土宇 를 裝飾한 土偶裝飾 장경호 또한 當時 新羅人들의 思考와 生活相을 斟酌하는데 도움을 준다. 新羅人들은 樂器를 연주하거나 性行爲를 하는 모습 뿐 아니라, 코끼리나 개미핥기 같은 動物의 모습도 土雨로 만들어 붙였다. [4]

伽倻 [ 編輯 ]
伽倻 오리模樣 陶器 .

伽倻는 高句麗, 백제, 新羅와 달리 中央集權國家로 나아가지 못하고 聯盟國家 段階에서 新羅에 吸收되었다. 伽倻의 美術品으로는 伽倻 古墳에서 出土된 大量의 陶器들이 有名하다. 이 時期에는 道機들이 殉葬 時에 같이 埋葬되는 品目이었으며, 大量으로 陶器를 製作하여 埋葬하는 것이 權力者의 權力水準을 誇示하는 役割을 했다. 伽倻土器는 新羅土器와 마찬가지로 받침이 길고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特徵이며, 이 구멍 模樣이나 配置는 各 國家나 地域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高麗 [ 編輯 ]

高麗靑瓷 는 高麗時代를 代表하는 美術 中 하나이다. 翡翠(綠色 玉)같은 色을 意味하는 比色(翡色, celadon green)을 特徵으로 하는 高麗靑瓷는 門閥 貴族 들이 權力을 잡았던 1050年 頃부터 武臣政權 末期인 1250年 卿까지 製作되었다. 門閥 貴族들이 支配하던 時期의 高麗靑瓷는 儒敎 와 宋의 貴族文化의 影響을 받아 單純하면서 세련된 模樣을 보여주었다. 反面 以後 武臣政權期의 高麗靑瓷는 道敎 의 影響을 받아 華麗한 形態와 文樣을 띄게 된다. 後期의 靑瓷는 靑瓷飛龍形 走者(酒煎子)처럼 複雜한 動物模樣으로 만들어지거나, 靑瓷 象嵌雲鶴紋 呆病 처럼 複雜한 象嵌 技法을 利用해 文樣을 넣었다. 元의 干涉을 받으면서 高麗靑瓷 製作 技術은 衰退하고 中國에서 輸入한 白瓷 를 흉내낸 粉靑沙器 가 만들어지기 始作한다.

朝鮮 [ 編輯 ]

陰刻語文扁甁, 호놀룰루美術館 所長
百字 달缸아리.
粉靑沙器 人和 무늬 病, 京畿道 博物館 所長

朝鮮 前期에는 主로 粉靑沙器 가 만들어지다가, 朝鮮 後期로 갈수록 白瓷 中心으로 바뀌었다.

日帝强占期 및 現在 [ 編輯 ]

日帝强占期 35年을 거치면서 韓國의 陶瓷器 技術은 特有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은 사라지고 急速度로 衰落하였다. 이러한 狀況은 光復 後에도 6·25 戰爭 等을 겪으면서 그리 달라지지 못했다. 그러나 1960年代 부터 다시 發展하여 只今은 大部分 工業化되고 大量生産火 되었다. 그러나 옛날 方式의 陶藝技術을 이으려는 努力도 많은 陶工들에 依해 끊임없이 持續되고 있다.

日本의 陶瓷器 [ 編輯 ]

日本은 東아시아에서 가장 陶瓷器의 發達이 늦은 나라이다. 日本은 土器만을 使用하다가 唐나라 初期의 唐三彩를 模倣한 陶瓷器로서 釉藥으로 加工한 最初의 陶瓷器인 '나라三채'(奈良三彩)라는 陶瓷器가 만들어졌다. 헤이안 時代 以後부터 日本 全國 各地에서 獨自的인 方法을 驅使하며 徐徐히 發達해 나가다가 壬辰倭亂 以後 朝鮮의 陶工들을 데려오면서 陶瓷器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또 메이지 時代부터는 유럽 의 陶藝技術度 傳해지면서 現在는 陶瓷器를 世界 各地에 輸出하는 等 陶瓷器 産業이 매우 發達하였다.

過去 日本에서는 陶瓷器가 宏壯한 貴重品으로 여겨졌으며 壬辰倭亂 當時에도 陶瓷器만 專門的으로 擄掠질을 擔當하는 倭兵이 따로 存在했을 程度였다. 또한 陶瓷器는 當時의 日本人들에게 宏壯한 貴重品으로 여겨졌으므로 陶瓷器를 破損한 倭兵은 卽決 處分되었다.

用度 [ 編輯 ]

粉靑沙器 茶盞

陶瓷器는 觀賞用으로도 쓰이고, 花甁이나 茶盞, 食器 等으로도 쓰이는 等, 옛날부터 다양하게 使用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磁器로 表記하기도 한다. 磁器는 本來 中國 河北省 磁州에서 生産한 瓷器를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一般 瓷器도 두루 指稱하게 되었다. 出戰:《??大?典》(??大?典出版社)
  2. 單語 自體에 그릇이라는 뜻이 包含되어 있으나, 자주 쓰이는 詐欺와 區別하기 위해 詐欺그릇이라고 부른다.
  3. “陶瓷器” . 《標準國語大辭典》. 國立國語院 . 2020年 9月 28日에 確認함 .  
  4. 역사스페셜 2 , 효형출판, 200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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