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숙여 “付託합니다”…YS의 ‘조용한 補佐官’ 손명순 女史 別世|東亞日報

허리숙여 “付託합니다”…YS의 ‘조용한 補佐官’ 손명순 女史 別世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7日 20時 24分


코멘트
2011년 3월 4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 부부의 결혼 60주년 회혼식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감사말씀을 하고 내려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와 뽀뽀를 하고있다. 동아일보 DB
2011年 3月 4日 김영삼 前 大統領과 손명순 女史 夫婦의 結婚 60周年 回婚式이 서울 中區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感謝말씀을 하고 내려온 김영삼 前 大統領이 손명순 女史와 뽀뽀를 하고있다. 東亞日報 DB
故 김영삼(YS) 前 大統領의 夫人 손명순 女史는 YS 在任 時節 參謀 婦人들과의 모임을 모두 없애고, 입는 옷의 商標를 모두 떼고 입을 程度로 口舌에 오르는 것을 避했다. 하지만 ‘政治 9段’ YS의 곁에는 恒常 함께했다. 孫 女史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손님을 맞고 支持者들을 다독이며 民主化 鬪爭의 길을 걷는 男便을 도왔다.

● YS의 ‘조용한 補佐官’
孫 女史는 1929年 1月 2男 7女 中 長女로 태어났다. 孫 女史는 6·25戰爭 中이던 1951年 3月 6日 釜山으로 避亂을 갔다가 YS와 百年佳約을 맺었다. 이화여대 藥學科 3學年 在學 때였다. 當時 이화여대는 在學生의 結婚을 禁止하는 規定이 있었지만 孫 女史는 周邊의 도움으로 첫아이를 낳고도 卒業 때까지 結婚 事實을 祕密에 부치고 學業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멕시코를 방문하는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가 1997년 6월 22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출국하기에 앞서 환송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멕시코를 訪問하는 김영삼 大統領과 夫人 손명순女史가 1997年 6月 22日 午後 서울空港에서 出國하기에 앞서 환송客들에게 손을 들어 人事하고 있다. 東亞日報 DB
故人은 YS가 逝去한 2015年 11月까지 64年 동안 男便 곁을 지키며 默默히 內助했다. 男便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조용히 補佐하는 ‘內造形’ 스타일이었다.

孫 女史는 YS 大權 挑戰에서도 一等 功臣으로 꼽힌다. 孫 女史는 篤實한 基督敎 信者였음에도 1992年 大選에 本人이 直接 全國 有名 査察과 有力 宗團을 訪問하며 YS 支持를 呼訴했다. 또 遊說 現場에서 허리를 90度로 숙이고 “付託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기도 했다.

大統領 夫人 時節 公式的인 役割 外에는 조용한 行步를 하던 孫 女史이지만, 歷代 大統領 夫人 中 처음으로 1995年 베이징 世界女性會議에 參席해 當時 美國 빌 클린턴 大統領의 夫人 힐러리 女史를 만나기도 했다.

● YS “가장 잘한 일은 아내를 만난 일”
YS도 自身의 곁을 平生 지킨 孫 女史를 끔찍이 아꼈다. YS는 生前에 상도동 自宅 한쪽에 아내와 戀愛할 때 찍은 寫眞을 額子로 만들어 걸어놓고 흐뭇한 表情으로 자주 바라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固執쟁이 氣質의 YS도 孫 女史가 作心하면 固執을 꺾었다. 孫 女史는 重要한 約束을 받아낼 때면 저녁床을 물린 直後 同甲인 YS에게 “니, 이리 온나!” 하면서 談判을 지었다고 한다. 孫 女史가 “니, 꿈이 大統領 아이가”라고 半말로 내지르면 YS도 꼼짝 못 하고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孫 女史에 對한 YS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逸話는 많다. YS는 特有의 慶尙道 사투리로 孫 女史를 “孟荀아(명순아), 孟荀아”로 불렀다. 孫 女史는 “애들도 있는데 왜 자꾸 이름을 부르느냐”고 하면 “내가 안 불러주면 누가 맹순이 이름 불러 주노. 니도 내한테 ‘英삼아, 英삼아’ 해라”라고 農 섞인 말을 했다. 잠자리에 함께 누울 때는 늘 “맹순이 잘 자라” 하며 손을 꼭 잡았다. 同甲내기 아내는 그런 그에게 늘 깍듯한 尊待말을 했다.

2011년 3월 4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 부부의 결혼 60주년 회혼식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동아일보 DB
2011年 3月 4日 김영삼 前 大統領과 손명순 女史 夫婦의 結婚 60周年 回婚式이 서울 中區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東亞日報 DB
YS는 2011年 結婚 60周年을 맞아 回婚式(回婚式)을 열어 “人生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두 가지 있다”며 “하나는 同志들과 더불어 軍事獨裁政權을 물리치고 民主化를 이룩해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60年 前 손명순을 제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YS는 “김영삼의 오늘이 있음은 손명순의 한결같은 사랑과 內助 德澤이었음을 여기서 告白한다”며 “이 자리에서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참으로 고마웠어. 맹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年을 살았지. 사랑하오.”라고 말했고 孫 女史에게 입을 맞췄다. 回婚式場에선 YS가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孫 女史를 “最高의 補佐官”이라고 치켜세우는 內容이 動映像으로 紹介되기도 했다.

YS는 1995年 2月 以前까지의 慣例를 깨고 孫 女史의 母校인 이화여대 卒業式에 參席해 卒業生들을 激勵하기도 했다. 現職 大統領이 國立大나 士官學校가 아닌 私立大 卒業式에 參席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YS는 “여러분의 先輩 한 分科 家族을 이룬 나도 이화의 家族”이라고 말하며 孫 女史에 對한 남다른 感情을 감추지 않았다.

大統領 退任 以後 YS 夫婦는 힘든 나날을 보낸 것으로 傳해졌다. 外換危機로 國家가 휘청거린 데다 次男 賢哲 氏는 裁判 中이었다. 孫 女史는 2015年 11月 22日 YS 逝去 當時 상도동 自宅에 머물고 있어 男便의 臨終을 지키지 못했다. 이날 아침 消息을 傳해 들은 孫 女史는 衝擊으로 손을 떨며 “춥다. 안 추웠는데 춥다”는 말로 傷心을 나타낸 것으로 傳해졌다. 孫 女史는 YS의 逝去 直後부터 健康이 惡化됐고 平素 타지 않던 휠체어를 탈 程度로 몸을 가누기 힘든 狀態였다.

7日 서울大病院에 따르면 孫 女史는 2022年 12月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으로 인한 肺炎으로 入院한 뒤 別世 前까지 入院 治療를 받고 있었다.

國民의힘은 이날 哀悼 論評에서 “孫 女史는 平生을 大韓民國 民主主義의 巨木이었던 金 前 大統領의 곁을 지키셨다”며 “오랜 歲月 民主主義 鬪士로, 野黨 政治人으로, 또 第14代 大統領으로, 大韓民國의 現代史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金 前 大統領의 가장 큰 버팀木은 65年의 伴侶者 孫 女史”라고 했다. 이어 “孫 女史와 金 前 大統領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내 後代에 물려주신 自由와 民主主義라는 所重한 價値를 다시금 되새긴다”고 했다. 더불어民主黨은 8日 哀悼 論評을 낼 豫定이다.
김준일 記者 ji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