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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番째 30年엔 藝術 즐기기 좋아… ‘老人과 바다’의 靑새치 每日 낚는 氣分”[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3番째 30年엔 藝術 즐기기 좋아… ‘老人과 바다’의 靑새치 每日 낚는 氣分”[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2月 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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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人生 2幕]金融인 出身 ‘藝術덕후’ 김영균 氏
虛套루 보낸 95歲 老人에 큰 刺戟… 隱退後 書藝-寫眞-그림에 邁進
水彩畫 作品으로 늦깎이 首相까지… 돈 없어도 藝術 즐기는데 問題없어
老年期엔 새 知識보다 經驗 活用… 認定欲求 채워지면 自己滿足 重要

자신의 수채화 작품 ‘페스의 테너리’ 앞에 선 김영균 씨. 모로코의 1000년 도시 페스에서 가본 전통적인 가죽 무두질 공장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2016년 한국수채화협회 우수상을 받았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自身의 水彩畫 作品 ‘페스의 테너리’ 앞에 선 김영균 氏. 모로코의 1000年 都市 페스에서 가본 傳統的인 가죽 무두질 工場의 모습이다. 이 作品은 2016年 韓國水彩畫協會 優秀賞을 받았다. 이훈구 記者 ufo@donga.com

自稱 ‘藝術 덕후’ 김영균 氏(75)는 名銜이 세 가지다. 職業欄에 水彩畫가, 寫眞作家, 書藝家라 붙은 名銜들을 때와 場所에 맞춰 내놓는다. 金融監督院을 停年退職한 뒤 民間企業 監査 等을 거쳐 2008年 모든 職責을 내려놓을 當時, 그가 突然 손에 잡은 것이 붓과 카메라였다. ‘남은 人生 30年은 藝術을 따라가겠노라’며 ‘藝術 덕후’를 宣言했다. 그로부터 14年間, 水彩畫와 寫眞, 書藝를 硏磨했고 지난달 初에는 自身의 工夫 內容을 集大成한 冊을 펴냈다. 題目은 ‘隱退者의 藝術 따라가기’(바른북스 ·寫眞). 글과 寫眞은 勿論, 編輯까지 손수 功을 들였다. 지난달 27日 그를 만났다.

○30+30+30의 人生, 가장 重要한 건 마지막 30年

隱退生活을 始作할 무렵, 오랜 義務와 責任에서 解放됐지만 마음은 뒤숭숭했다. 虛脫感 喪失感 無氣力 等이 몰아쳐왔다. 그가 冊머리에 쓴 글에 當時 狀況이 要約돼 있다.

“社會活動을 하는 동안에는 그 地位가 어떻든 버틸 수 있는 才幹이 있다. 自身의 地位에서 벌어진 이야기, 自身의 處地에서 비롯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隱退 以後에는 自身만의 이야기를 維持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기껏해야 過去 얘기가 中心이 된다. 隱退는 老人을 죽이는 最高의 暗殺者다.”

그 무렵 新聞칼럼에서 본 ‘어느 95歲 어른의 手記’가 그에게 큰 刺戟이 됐다. 63歲로 退職할 때까지 忠實한 人生을 살아온 이 어른은, 隱退 後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그저 苦痛 없이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렇게 덧없고 希望 없이 時間을 흘려보내다가 95歲 生日을 맞이한 것이다. 人生의 3分의 1을 悲痛하게 보내버렸다는 慘澹함에 이 어른은 그날부터 平素 하고 싶었던 外國語 工夫를 始作했다. 10年 뒤 105歲가 되어 다시 後悔하지 않기 爲해서.

“이제 웬만하면 90歲까지 사는 時代입니다. 30年을 배우고 익히며 살았고, 30年은 돈 벌고 家庭 꾸렸지만, 앞의 두 30年보다 더 重要한 게 마지막 30年 아니겠습니까. 前 苦悶 끝에 藝術을 選擇했지요.” 自身만의 幸福을 찾기 위한 金 氏의 旅程은 이렇게 始作됐다.

○藝術은 값비싼 趣味라는 誤解

2018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으로 뽑힌 작품 동행(同行). 금문(金文)체로 썼다.김영균 씨 제공
2018年 大韓民國 書藝大展 特選으로 뽑힌 作品 同行(同行). 今文(金文)體로 썼다.김영균 氏 提供
그는 요즘도 檀國大와 洞서울대 平生敎育院과 水原 書藝博物館에 다니며 水彩畫와 寫眞, 書藝를 硏磨하고 있다. 關聯 協會 會員이면서 個人展과 그룹展, 公募展 等에도 부지런히 參與한다. 2010年부터 모두 합쳐 48回 出品했고 이런저런 賞도 받았다. 그를 만난 서울 中區 同性케미컬 서울事務所 라운지에 그의 作品이 한 點 걸려 있었다. 모로코에서 본 가죽染色工場을 水彩畫로 그린 作品인데, 2016年 韓國水彩畫協會 優秀賞을 받았다고 했다.

―늦깎이 藝術家가 되는 데 成功하셨네요.

“隱退하신 분뿐 아니라 現役이나 젊은 世代도 時間的 精神的 餘裕가 있을 때 創作 活動을 始作해보라고 勸하고 싶어요. 藝術은 값비싼 趣味가 아니에요. 巨創한 知識이 있어야 理解하는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知識이 없어도 藝術作品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潛在的 藝術家예요. 무언가를 始作하면 무뎌진 自身의 感覺을 추스르고 삶과 藝術을 새롭게 즐길 수 있어요.”

―始作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림은 城南아트센터에서, 붓글씨는 圖書館에서 始作했어요. 寫眞은 專門家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住民센터件 平生敎育院이건 아트센터件 배울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實踐에 옮기는 게 重要합니다.”

―藝術은 經濟的 餘裕가 있어야 可能하다고 보는 視角이 적지 않습니다.

“아내 말이 親舊들에게 冊을 주면 ‘너희 正말 잘사나 보네’란 反應이 돌아온대요. 집 한 채에 年金뿐인데 말이죠. 자랑질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봐요. 하지만 幸福은 物質的 側面에서 찾다 보면 限이 없어요. 아무리 잘 먹는다 해도 하루 세 끼 以上 먹을 수 있나요. 幸福을 느끼는 主體는 自身입니다. 스스로 幸福을 어떻게 찾느냐가 重要하지요. 돈을 더 벌지 못하더라도 藝術을 즐기고 따라가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 그게 더 幸福한 것 아니냐. 이게 제 結論입니다. 제 아내도 같은 意見이고요.”

이런 그는 金融界에서 오래 일했지만 財테크는 아예 關心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1990年代 末 外換危機 때 金融監督院에서 構造調整 責任을 맡고 있었어요. 돈벌이에 神經 썼다가는 아마 監獄에 갔을 거예요. 一切 關心을 끊는 게 속이 便했죠.”

○‘老人과 바다’의 老人처럼

그는 藝術을 하는 姿勢로 ‘麗朝朔鼙(如鳥數飛)’를 隨時로 强調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論語 鶴이(學而)에 나온다.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練習하고 익히는 姿勢를 말한다.

特히 老年에 새로운 試圖를 할 때는 固定觀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勸한다. “老年期의 記憶體系는 밀려드는 새 知識을 쌓기보다 살아온 軌跡과 經驗値에 對한 加重値를 增加시키는 年輪이 늘죠. 藝術 하기에 適當한 腦입니다.”

이렇게 麗朝朔鼙의 每日을 보내며 精進하다 보면 豫想치 못한 기쁨과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老人과 바다’의 늙은 漁夫 산티아고 아시죠. 84日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日째 되는 날 드디어 큰 靑새치를 낚은 기쁨. 그런 鬪爭과 같은 기쁨을 每日 느낄 수 있어요.”

著書 ‘隱退者의 藝術 따라가기’는 漢字의 起源과 書體부터 中國 文化藝術 探訪記, 韓國畫와 西洋畫 鑑賞, 美術史의 흐름, 寫眞과 繪畫 等 東西洋과 過去 현대를 縱橫無盡 넘나든다. 무엇보다 그가 直接 다녀온 世界 各國의 博物館과 美術館에서 얻은 생생한 寫眞과 情報로 가득하다. 그는 期待는 안 하지만 或是라도 冊에서 印稅가 들어오면 안나의 집에 갖다 주려 한다고 말한다. 김하종 神父가 運營하는 城南의 露宿人 無料給食所 안나의 집과의 關係는 8年餘 前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는 每달 會費를 내고 가끔 努力奉仕를 하러 간다.

○“南과 比較하지 말자”


일출을 찍은 사진작품을 성남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에 기증했다. 김하종 신부(왼쪽)는 사진을 보고 “이 속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했다. 김영균 씨 제공
日出을 찍은 寫眞作品을 城南 露宿人 無料給食所 ‘안나의 집’에 寄贈했다. 김하종 新婦(왼쪽)는 寫眞을 보고 “이 속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했다. 김영균 氏 提供
난生처음 作品으로 賞을 받은 건 2008年 6·25戰爭 記念 公募展에 出品한 水彩畫였다. ‘지울 수 없는 追憶 開城’이란 題目에 爆擊 맞은 장난감을 생각하며 그린 想像畫였다. ‘同行(同行)’을 今文으로 쓴 글씨도 賞을 받았다. 2016年 水彩畫協會 優秀賞을 받은 것을 契機로 “남과 比較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認定 欲求가 어느 程度 채워지고 나면 自己 滿足이 더 重要해집니다. 큰 賞을 받고 나니 欲心이 생기려 하더군요. 그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스스로 즐기려 하는 건데, 欲心 부리지 말자고요. 오히려 마음이 便해졌습니다.”

―30年 金融맨이 30年 藝術家로 살기에 挑戰하는 셈인데요, 앞으로 計劃은….

“날갯짓을 繼續할 뿐입니다. 可能한 제가 가진 것들을 나누면서 하고 싶어요. 지난해 龍仁市 圖書館事業所에 ‘휴먼北(知識과 經驗을 나눠주는 自願奉仕者)’으로 登錄했는데, 코로나 狀況이라 그 또한 如意치 않네요. 美國에 그랜마 某지스(1860∼1961)라는 할머니 畫家가 있었습니다. 平生 農夫의 아내로 살았는데 나이 70이 다 되어 健康上 움직이기 곤란해지자 그림을 그리기 始作해 101歲로 世上을 떠나기까지 作品活動을 했어요. 山골 敎會 마을 等 土俗的인 風景을 그렸는데 作品은 主로 年末年始 카드 그림에 실렸죠. 저도 그런 할머니처럼, 素朴하게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며 스스로 幸福을 찾을 뿐입니다.”

오래 살아본 분들은 異口同聲으로 말한다. 人生에서 가장 빛나는 時期는 60歲에서 75歲라고. 百首를 누리는 김형석 연세대 名譽敎授를 비롯해 西歐나 日本의 專門家들이 强調하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김영균 氏의 이 時期는 藝術로 더욱 빛이 났던 듯하다.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김영균 #金融人 #老人과 바다 #書藝 #寄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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