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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海邊에서 떠올린 北녘 故鄕[鑄成하 記者의 서울과 平壤사이]|東亞日報

日本 海邊에서 떠올린 北녘 故鄕[鑄成하 記者의 서울과 平壤사이]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11月 19日 23時 36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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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 서부의 한 해변. 기자의 북한 고향과 위도상으로 정확히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북한에는 백사장이, 일본에는 검은 몽돌 해변이 있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日本 홋카이도 西部의 한 海邊. 記者의 北韓 故鄕과 緯度上으로 正確히 맞은便에 있는 곳이다. 北韓에는 白沙場이, 日本에는 검은 몽돌 海邊이 있었다. 鑄成하 記者 zsh75@donga.com
내 故鄕은 韓半島 最北端 바닷가 마을이다. 約 50m 너비의 白沙場이 끝나는 곳에 故鄕 집이 있었다. 波濤 소리를 자장歌로 알고 자랐고, 每日 門을 열면 탁 트인 바다가 맞아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成長하면서 世界地圖를 통해 바다 건너에 日本이 있다는 것 程度는 알았지만 그 以上은 알 수가 없었다.

주성하 기자
鑄成하 記者
여름에 颱風이 오면 어린 少年의 피는 끓었다. 颱風이 지나간 뒤 海邊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런 날 아침이면 맨 먼저 바닷가 海邊에 나가 천천히 걸으며 간밤 海邊에 到着한 色다른 쓰레기를 주워봤다. 그것이 世上을 向한 少年의 好奇心을 충족시키는 唯一한 方法이었다. 남에겐 쓰레기일지라도 少年에겐 바깥世上의 祕密을 푸는 퍼즐이었다.

쓰레기는 日本에서 밀려온 것이 가장 많았고, 南朝鮮에서 온 것도 있었다. 主로 빈 페트甁, 캔 等이 많았지만 가끔은 只今까지도 기억나는 쓰레기도 있었다. 日本 슬리퍼 한 짝을 들고 ‘이런 건 왜 신고 다니지’ 궁금했던 적도 있고, 義足 하나를 들고 어떻게 발에 붙이고 다닐까 한참 想像했던 적이 있다. 파란色 一齊 플라스틱 파리채를 주워 와 몇 年 잘 썼던 적도 있다.

그 洞네에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바다 건너 世上. 그곳에서 每年 꼬박꼬박 건너오는 쓰레기들을 少年은 戀愛便紙를 바라는 心情으로 기다렸다. 커갈수록 海邊에 앉아 건너便 世上을 想像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結局 피 끓는 20代에 목숨을 걸고 脫北했다. 中國과 北韓에서 여섯 番이나 監獄을 옮겨 다녔어도 바깥世上을 向한 意志를 꺾지 않았다. 2002年 마침내 韓國에 왔고, 하나圓을 나와 4個月 뒤부터 記者가 돼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꿈은 늘 가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내 故鄕 건너便엔 무엇이 있을까.’

2005年에 구글어스 서비스가 始作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故鄕과 緯度가 分秒까지 똑같은 日本 海邊을 찾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그곳엔 검은 海邊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그 海邊에 서서 이番엔 맞은便 故鄕을 바라보는 것이 오랜 歲月 나의 버킷리스트 1番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보름 前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삿포로에서 니가타까지 日本 北西部 海邊 道路를 5泊 6日 동안 車로 달렸다.

故鄕 집과 正確하게 緯度가 一致하는 海邊은 콩알처럼 작은 검은 몽돌이 깔린, 사람이 接近하지 않는 외진 海邊이었다. 그곳에 서서 故鄕 하늘을 바라볼 때 萬感이 交叉했다.

어렸을 땐 바다 건너 日本은 絶對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不可能하게 여겨졌던 꿈을 마침내 이뤘지만, 이番엔 바다 건너 故鄕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어찌하여 이 바다는 이렇게도 건너기 힘든 것이 됐을까.

1300年 前 渤海人들은 劣惡한 木船으로도 日本을 오갔는데, 只今의 北韓은 그 어떤 배를 打倒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渤海人들이 타고 왔던 季節風과 海流를 타고 부서진 北韓 木船들만이 白骨을 실은 채 日本 海岸에 到着할 뿐이다. 渤海 使臣 樣態社는 季節風을 기다리는 半年이 너무나 길어 ‘한밤의 다듬이소리’라는 애달픈 詩를 남겼는데, 니가타港에서 떠난 10萬 名 가까운 사람들은 半世紀가 지나도록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日本 西海에 머물렀던 엿새 동안 나는 漸漸 더 外部와 孤立돼 가는 北韓 東海의 都市와 마을들을 헤아릴 수 없이 떠올렸다. 北韓 바닷가 마을 어디에선가 40年 前의 어린 나처럼, 外部 情報가 담긴 쓰레기를 들고 好奇心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살펴보는 少年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검은 몽돌 海邊에서 나는 새로운 覺悟를 다졌다. 다시 저 건너에 서리라. 어쩌다 보니 나는 또 바다를 건너는 것이 目標인 人生을 살게 됐다. 그것은 바다 건너 北韓 人民들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우리가 같은 꿈을 꾸다가 문득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온다면, 나는 故鄕에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저 바다 건너便엔 風車가 가득한 아름다운 海邊이 있더구나. 나는 平生을 바쳐 다녀왔지만, 이제 너희들은 배를 타고 한나절 만에 갔다 오거라.”



鑄成하 記者 zsh75@donga.com
#홋카이도 #北녘 #故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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