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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다른 哀悼[왕은철의 스토리와 治癒]〈241〉|東亞日報

色다른 哀悼[왕은철의 스토리와 治癒]〈241〉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5月 4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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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身도 우리처럼 어리석었습니다.” 어떤 詩人이 同僚 詩人을 哀悼하며 쓴 말이다. 哀悼의 말치고는 무척 낯설다. 더욱이 마흔 살 넘게 差異가 나는 巨匠을 向한 말치고는 無禮하기까지 하다. ‘W. B. 예이츠를 追慕하며’라는 W. H. 오든의 詩에 나오는 말이다.

오든이 이 詩를 쓴 것은 예이츠가 世上을 떠나고 몇 달 지나서였다. 오든은 예이츠를 尊敬하면서도 그의 現實 參與에는 懷疑的이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 民族主義 運動의 中心에 있던 사람이었다. 英國 植民主義로부터 政治的, 文化的으로 獨立하는 것이 그의 目標였다. 그러나 그의 努力에도 現實은 그대로였다.

事實 그 詩는 오든 自身에 關한 省察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대단히 政治的인 詩人이었다. 社會的 正義에 敏感한 左派的인 詩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詩가 社會的, 政治的 變化의 道具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懷疑的이었다. 그가 보기에 詩가 歷史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不可能한 일이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에 따르면 市는 2次 世界大戰 中 單 한 名의 유대人도 살리지 못했다. 事實이다. 只今도 그렇지 않은가. 市는, 아니 藝術은 戰爭 中인 우크라이나에서 單 한 名의 목숨도 求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든은 이렇게 宣言한다. “詩는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英文學을 통틀어 가장 有名한 詩句 中 하나가 되었다.

認定하기 싫어도 이것이 現實이다. 그렇다면 絶望만 해야 하는가. 不義와 暴力이 판을 쳐도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인가. 아니다. 歷史를 바꿀 힘은 時人에게 있는 게 아니니 詩의 本領에 忠實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든이 생각하는 詩의 本領은 무엇일까. “얼어붙은 憐憫의 바다”를 깨고 “마음의 沙漠 속에서/치유의 샘이 始作되게” 하는 것이다. 歷史와 現實에 傷處받은 사람들을 言語의 힘으로 慰勞하는 것이다. 이것이 藝術의 힘이자 限界요, 限界이자 힘이다. 그는 偉大한 詩人 예이츠의 죽음을 哀悼하며 바로 이러한 逆說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왕은철 文學評論家·전북대 碩座敎授
#哀悼 #色다른 哀悼 #省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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