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잘 모른다[동아광장/최인아]|동아일보

우리는 잘 모른다[동아광장/최인아]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11月 27日 03時 00分


코멘트

避하고 싶지만 찾아온 아버지와의 離別
父母님과 追憶 만들기에 時間 많지 않아
워라밸은 所重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라는 것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客員論說委員·최인아冊房 代表
어제 아버지의 四十九齋를 치렀다. 生을 다한 다음의 묫자리가 무슨 所用인가 싶지만 그래도 遺骨을 모신 자리가 해도 잘 들고 景觀이 좋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아버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應急室로 실려 가셨다. 배가 많이 아파서였는데 CT를 찍으니 膽石이었다. 九十을 넘긴 高齡이라 全身 痲醉手術 代身 管을 집어넣는 施術을 했다. 結果는 成功的이어서 2週日쯤 지나자 膽石으로 因한 膽囊炎은 깨끗해졌다. 그런데, 다른 重大한 問題가 생겼다. 飮食을 삼키지 못했다. 飮食은커녕 물도 넘기질 못해 물 한 모금을 드시고도 연신 기침을 했다. 다들 아시지 않나. 飮食物이 祈禱로 들어가면 肺炎이 되기 쉽고 老人의 直接 死因은 많은 境遇 肺炎이다. 病院에선 管 給食을 하려 했지만 마지막 瞬間까지 意識이 또렷한 데다 平生 虎狼이 같았던 아버지는 恥辱스럽다며 拒否해 45日間 링거만 맞았다.

그러는 中에 避하고 싶은 그 瞬間이 왔다. 高齡에다 氣力이 많이 弱해진 狀態라 올겨울을 넘기실까 걱정했지만 그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그때는 겨우 가을 初入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瞬間은 期於이 찾아와 病院으로부터 急한 부름을 받았다. 病室에 到着했을 때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다. 正確히 말하면, 감고 있는 게 아니라 눈을 뜰 氣力이 없는 듯했다. 손을 잡아 보니 이미 싸늘했고 발도, 정강이도 차가웠다. 그래도 가슴과 목 뒤는 따뜻했다.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機能이 聽力이라는 얘기가 생각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눈 좀 떠보세요.” 우리의 안타까운 소리를 들으신 건지 當身도 눈을 떠보려 안간힘을 쓰는데 눈꺼풀이 움찔 떨릴 뿐 쉬이 떠지지가 않았다. 아, 눈을 뜨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必要한 거구나…. 그러다 마침내 눈꺼풀이 三分의 一쯤 올라가고 瞳孔이 조금 보였으나 그뿐, 아버지는 나머지 三分의 이를 끝내 밀어 올리지 못했고 그 後 몇 時間이 안 돼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特別한 持病이 있어서 어느 날 툭 生命이 끊어진 게 아니었다. 徐徐히 가늘어지던 生命이 어느 瞬間에 이르러 스러진 거였다. 숨을 거두다, 숨지다, 숨이 멎다 같은 말들도 比喩가 아니라 實在였다. 예전에 필라테스 先生님이 呼吸을 强調하면서 “죽는 게 다른 게 아녜요. 들이쉰 숨을 내쉬지 못하면 그게 죽는 거예요”라고 했는데 아버지도 그랬다. 徐徐히 숨을 거두었다.

三日葬을 치르는 동안 葬禮式場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코로나 時局인 데다 家族葬으로 조용히 치렀으므로 遺族들도 別로 정신없지 않았다. 뜻밖에 생각할 時間이 많았던 나는 북적이지 않는 葬禮式場 한쪽에서, 火葬터에서, 遺骨函을 묻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리고 아버지가 가시고 난 後 몇 날 며칠 이 생각에 파묻혔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우리 아버지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계셨을까, 우리는 서로 얼마나 알았던 걸까.

돌아보니 철이 든 後론 아버지와 보낸 時間이 別로 없었다. 特히 社會生活을 始作한 後론 한層 더했다. 그때는 워라밸이라는 槪念조차 없을 때라 夜勤이 日常이었고 週末 勤務도 茶飯事였다. 집에서 나는 거의 下宿生이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새 프로젝트가 始作되기 前 어쩌다 時間이 생기면 不足한 잠을 자거나 親舊를 만나러, 或은 旅行을 가느라 밖으로 돌았다. 빽빽이 바삐 돌아가는 時間表에 父母와 같이 보내는 時間은 거의 들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多情한 父女가 아니었으므로 꼭 必要한 얘기 말고는 對話도 많지 않았다. 엄마 表現에 依하면 아버지는 多感한 데라고는 없는 ‘뚝보’였으므로 나는 내 人生의 重要한 苦悶들을 아버지와 나누지 않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아버지와 같이해 보지 못했다. 崔○○라는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 내가 우리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 外에 우리는 서로에 對해 무얼 얼마나 안 걸까. 나는 都大體 그 많은 時間을 누구와 뭘 하며 보낸 걸까. 함께 보낸 時間이 많지 않으니 追憶도 많지 않은데 그게 참 슬펐다. 이제 와 後悔해 봐야 소용없는 나는 父親喪에 慰勞를 건네는 知人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父母님과 되도록 많은 時間을 함께 보내세요. 追憶을 많이 만드세요. 時間이 많지 않아요.”

當身도 後날 後悔하지 않으려면 所重한 사람들과 더 많은 時間을 함께하시라. 워라밸의 참뜻은 일과 人生의 分離가 아니라, 所重한 사람들과 함께 人生을 살아가라는 게 아닐까. 곧 서로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지는 年末이다.



최인아 客員論說委員·최인아冊房 代表


#離別 #父母님 #워라밸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