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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僞 自白이라도 안 했으면 只今 살아 있겠습니까”[논설위원 現場 칼럼]|東亞日報

“虛僞 自白이라도 안 했으면 只今 살아 있겠습니까”[논설위원 現場 칼럼]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10月 2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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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自白한 ‘華城 8次’
20年 服役限 윤성여 氏

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한 윤성여 씨가 24일 자신이 19년 이상 수감됐던 청주교도소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심경을 털어놓았다. 윤 씨는 이춘재가 지난해 9월 ‘8차 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자백해 재심을 청구했고, 12월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위 사진). 윤 씨가 1989년 7월 경찰에 연행된 뒤 쓴 자술서의 한 부분. 피해자 집의 담장을 넘어 가는 부분 등이 적혀 있으나 윤 씨는 강요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고 말했다. 청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華城 連鎖 殺人 ‘8次 事件’으로 20年을 服役한 윤성여 氏가 24日 自身이 19年 以上 收監됐던 淸州矯導所 앞에서 自身의 얼굴을 公開하며 心境을 털어놓았다. 尹 氏는 이춘재가 지난해 9月 ‘8次 事件’을 自身이 저지른 것이라고 自白해 再審을 請求했고, 12月 裁判 結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위 寫眞). 尹 氏가 1989年 7月 警察에 連行된 뒤 쓴 自述書의 한 部分. 被害者 집의 담牆을 넘어 가는 部分 等이 적혀 있으나 尹 氏는 强要에 依한 虛僞 陳述이라고 말했다. 淸州=최혁중 記者 sajinman@donga.com
청주·수원=구자룡 논설위원
淸州·水原=구자룡 論說委員
‘華城 連鎖 殺人 事件’의 犯人 이춘재가 다음 달 2日 ‘8次 事件’ 證人으로 水原地方法院에 나온다. 이춘재가 저질렀다고 自白한 事件의 犯人으로 몰려 20年을 服役하고 나온 윤성여 氏(54)의 再審 9次 公判이다. 이춘재는 自身이 아닌 누군가가 ‘8次 事件’의 犯人으로 逮捕돼 處罰을 받았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이춘재의 自白이 法廷에서 事實로 確定된다면 尹 氏의 20年 服役은 人權을 保護해야 할 國家機關이 한 個人에게 씻을 수 없는 傷處를 남긴 司法 被害 事例로 記錄될 것이다. 再審 判決은 12月 나올 豫定이다.

2009年 出所 後 忠北 淸州의 한 自動車用品 業體에서 勤務하고 있는 尹 氏를 24日 午前 그가 服役했던 淸州矯導所 正門 앞에서 만났다. 尹 氏가 實名과 얼굴을 言論에 公開하는 것은 自身과 같은 일이 다시는 發生하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 堂堂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8年 9月 16日 競技 華城 태안읍 진안리에 살던 朴某 孃(13)李 自身의 집에서 잠을 자던 中 午前 1時頃 性暴行을 當하고 被殺됐다. ‘連鎖 殺人 7次 事件’ 發生 9日 뒤였다. 尹 氏는 1989年 7月 逮捕돼 이듬해 5月 大法院에서 無期懲役 確定判決을 받았다. 20年型으로 減刑된 뒤 滿期 몇 個月을 앞두고 出所한 지도 10年餘가 지난 지난해 9月 ‘이춘재의 自白’이 나왔다.

“裁判은 宣告 내려져 봐야 압니다”


“여기서 19年 6個月을 있었습니다.” 그는 矯導所 正門이 보이자 歎息처럼 말했다. “障礙人 福祉機關 自願奉仕를 위해 몇 番 밖으로 나온 것 말고는 안에서만 生活했다”는 尹 氏에게 再審 宣告를 앞둔 心境을 물었다.

“裁判은 宣告가 내려져 봐야 압니다.”

‘犯人만이 알 수 있는 意味 있는 陳述을 했다’며 警察이 지난해 11月 ‘이춘재가 眞犯’이라고 中間 搜査 結果를 發表했고, 올 1月 再審이 받아들여져 裁判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지만 尹 氏는 如前히 裁判 結果에 緊張하는 모습이었다.

尹 氏는 1審에서 無期懲役이 宣告된 뒤 ‘警察 調査에서 酷毒한 拷問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狀態에서 虛僞 陳述을 했다’며 抗訴했다. 왜 檢察 調査나 1審 裁判에서 抑鬱함을 呼訴하지 않았는지부터 물었다.

“다른 말이 必要 없다. 내가 虛僞 自白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只今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鷄卵으로 바위 稚氣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겁먹게 했을까. 그는 “當時는 狀況이 그랬다”고만 했다. 當時 警察 關係者는 裁判에서 3歲 때부터 小兒痲痹로 왼쪽 다리가 不便한 狀況에서 尹 氏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고 證言했지만 尹 氏는 仔細히 말하지 않았다. 法廷에서 한 警察官은 毆打도 있었다고 證言했지만 現場을 指揮했던 當時 刑事係長은 苛酷行爲는 없었다고 否認했다.

公開 裁判 法廷에서라도 抑鬱하다고 말해 볼 생각은 못 했을까.

“裁判을 기다리는데 다른 未決囚들이 ‘公訴狀의 罪로만 보면 死刑이다. 火星 殺人 事件은 널리 알려져 있어서 宣告하자마자 兄이 早期 執行될 수도 있다’고 했다. ‘法院 괘씸罪’라는 말도 들었다. 警察과 檢察에서 認定한 것을 否認하면 그렇다고 했다. 只今과는 많이 달랐다.” 尹 氏는 “辯護士를 求할 수도 없는데 罪를 否認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周圍에서 助言이나 변변한 도움을 받지 못한 狀況에서 不確實한 情報와 不安, 恐怖 等이 뒤섞여 自己 防禦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했다. 尹 氏는 1審 判決이 나온 뒤 抗訴했지만 1年도 안 돼 2, 3審에서도 그대로 原審이 確定됐다.

國科搜 鑑定書 미스터리


서울에서 初等學校 3學年까지 다니다 母親이 不意의 交通事故로 死亡하자 親戚이 있는 火星으로 보내진 尹 氏는 11歲에 耕耘機工業社에 들어가 줄곧 일했다. 1989年 7月 25日 저녁 하루 일을 마치고 工業社 社長 等 6, 7名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는데 警察이 와서 “잠깐 가자”고 했다. 따라나섰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손에 手匣을 채웠다.

尹 氏는 初等學生 被殺 事件을 調査한다길래 7番假量 體貌를 뽑아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警察署나 派出所 한番 가보지 않았던 그는 當時에도 自身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警察은 被害者의 몸에서 採取된 犯罪 容疑者의 體毛에서 티타늄 等 金屬 成分이 多量 檢出되자 尹 氏를 包含해 金屬을 取扱하는 業種 從事者를 對象으로 探問 및 體貌 採取 調査를 벌였다. 當時 이춘재도 電氣 業體에서 勤務했지만 ‘華城 6次 事件’에 이어 이番에도 血液型이 달라 調査 對象에서 빠졌다. 警察은 國立科學搜査硏究院으로부터 現場 體貌와 尹 氏 體毛가 一致한다는 ‘放射性 同位元素 鑑定書’를 傳達받은 다음 날 尹 氏를 逮捕했다.

지난달 14日 水原地法 7次 再審 公判. 裁判部는 1989年 尹 氏 事件 裁判 當時 自白 外 唯一한 科學的 根據로 提示됐던 國科搜 ‘鑑定書’에 對한 專門家들의 意見을 들었다. 1989年 鑑定書는 現場 體貌와 尹 氏 體貌의 類似性이 ‘3600萬 分의 1’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3600萬 名 中 한 名밖에 없을 程度로 서로 類似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當時 鑑定書에는 그 같은 結論을 스스로 否定하는 內容들도 담겨 있었다. 두 體貌 間 10餘 種 金屬物質의 放射性 同位元素의 偏差率은 40%였다. 通常 5%, 最高 20%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게 專門家들의 意見이다. 그런데다 염소는 170(現場 體毛) 臺 1572(尹 氏 體貌), 마그네슘은 198 臺 844(單位 ppm) 等으로 몇 倍 差異가 났다. 하지만 1989年 裁判에선 누구도 그런 內容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番에 尹 氏의 再審 裁判에 나선 國科搜 等 專門家들은 “到底히 같은 試料(體貌)라고 볼 수 없다”고 證言했다.

法務法人 茶山과 함께 尹 氏 裁判을 맡고 있는 ‘再審 專門’ 박준영 辯護士는 裁判廷에서 “‘偏差율 40%’가 ‘類似性 3600萬 分의 1’로 遁甲돼 尹 氏를 犯人으로 모는 ‘確證 偏向’을 일으켰다”고 主張했다. 再審 證言臺에 선 尹 氏 起訴를 擔當했던 檢事는 “鑑定書의 數字는 仔細히 보지 않고 ‘一致한다’는 國科搜의 結果만 믿었다”고 말했다. 當時 國科搜에서 鑑定書를 作成한 責任者는 健康 惡化로 證言을 못하고 있다. 尹 氏는 暫時 休廷 時間에 “鑑定書를 보고 擔當 檢事의 말을 듣고 있으니 ‘쑥쑥 오른다’(부글부글 끓는다)”고 했다.

한 事件, 두 名의 自白


尹 氏 再審 事件에서 核心은 鑑定書의 信賴性과 함께 이춘재와 尹 氏의 自白이다. 尹 氏는 警察에 逮捕된 後 犯行을 ‘自白’하는 自述書를 3次例에 걸쳐 10쪽假量 썼다. 尹 氏는 “連行된 뒤 3日間 잠을 한숨도 재우지 않아 警察이 불러주는 대로 精神없이 썼던 것 같다”고 했다. 自述書는 被害者의 목을 조를 때 맨손을 使用하고 犯行 後 被害者의 아래 속옷을 벗긴 後 그대로 다시 입혔다고 했는데 現場 狀況과 달랐다. 初等 3年을 마친 被疑者가 썼다고 볼 수 없는 表現도 여러 곳이라고 辯護人 側은 說明했다.

反面 警察이 지난해 이춘재를 眞犯으로 暫定 結論 내리면서 犯人만이 아는 ‘意味 있는 陳述’을 몇 가지 例示했다. 被害者의 身體 特定 部位에 對한 說明, 朴 孃의 房 構造를 펜으로 그려가며 說明한 點, 벗은 洋襪로 목을 조른 犯行 手法과 犯行 後 被害者의 새 속옷을 뒤집어 입히고 나왔다는 內容 等이 犯行 當時 狀況과 같았다는 것이다. 다리가 不便한 尹 氏가 열린 大門을 두고 自身의 키 높이보다 높은 담牆을 넘어 들어갔다 나왔다는 陳述이나 現場 檢證 內容도 信憑性이 떨어진다고 辯護人 側은 主張했다.

여기서 한 가지. 現場 體貌의 血液型은 B型으로 이춘재의 O兄과도 다르다. 이춘재가 眞犯이라면 現場에서 採取된 體毛가 어디서 나왔는지, 血液型 調査가 正確했는지가 問題다. 國家記錄院에 保管되어 있던 現場 體毛 두 點은 오랜 時間이 지나 最近 遺傳子 檢査 等 尖端 鑑識을 依賴했으나 ‘感情 不可’ 判定이 나왔다. 1986年부터 1991年까지 이춘재가 自白한 10件의 華城 連鎖 事件 中 5件은 遺傳子 檢査로도 確認됐다.

엄숙히 지켜봐야 할 再審 結果


지난해 9月 尹 氏는 退勤하고 집에서 午後 8時쯤 한 通의 電話를 받았다. 淸州矯導所에 있을 때 勤務했던 朴某 係長이 이춘재의 自白 事實을 알려줬다. 平素 뉴스나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 尹 氏는 그에게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 며칠 前 이춘재를 다시 調査하던 警察이 찾아와서 “8次 事件도 다시 보려고 한다”고 했지만 自白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尹 氏는 이춘재의 自白 消息을 듣고 반갑거나 놀라기보다 ‘華城’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기만을 바랐다고 했다. “周圍에 火星 8次 事件으로 服役하고 나온 것을 감추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내가 華城과 關聯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져서 뭐가 좋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只今처럼 再審을 請求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미 20年을 服役하고 나와서도 10年이 지났다. 잊혀졌던 華城 事件이 자꾸 들먹여지는 것이 싫었다.”

12月에는 1991年 釜山 엄궁동 洛東江邊 殺人事件으로 21年間 獄살이를 했던 두 名에 對한 再審 判決도 나올 豫定이다. 再審 結果는 當事者뿐 아니라 이 社會와 國家에도 큰 意味가 있다. 이들이 모두 無罪로 나온다면 司法 시스템 全般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아 痛烈한 反省이 있어야 할 것이다. 嚴肅하고 眞摯하게 結果를 지켜볼 일이다.

淸州·水原=구자룡 論說委員 bonhong@donga.com


#이춘재 #自白 #再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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