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리가 간다]귀화 마라토너 오주한
“孫先生처럼 올림픽 이름 남기고, 靑陽에 짓고 있는 집 移住 計劃”
케냐서 世界記錄 킵초게 等과 猛訓
陸上聯盟度 專擔 코치 現地 보내고, 페이스메이커 等 全幅 支援하기로
지난해 11月 오주한(32·靑陽郡廳·케냐名 윌슨 老爺나에 에루페)은 後見人 吳昌碩 白石大 敎授(58·寫眞)와 함께 서울 中區 손기정記念館을 찾았다. 競走國際마라톤에서 2時間8分42秒로 도쿄 올림픽 基準 記錄(2時間11分30秒)을 通過하고 나서 며칠 後 일이었다.
서울國際 4回, 慶州國際 3回 等 동아마라톤에서 7次例나 優勝했어도 오주한이 韓國 마라톤의 英雄 손기정을 알 理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大韓陸上聯盟 關係者는 “韓國人 마라토너라면 日帝 治下에서 온갖 逆境을 이겨내고 民族의 自矜心을 드높인 손기정 先生을 알아야 한다”며 訪問을 勸했다. 吳 敎授는 “오주한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優勝한 韓國人이 있다는 事實에 놀라더라. 本人도 韓國 마라톤 歷史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고 傳했다.
韓國 陸上 史上 첫 特別歸化 選手 오주한이 남다른 다짐과 함께 도쿄 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現在 케냐의 엘도렛에서 케냐 同僚들과 訓鍊 中이다. 世界記錄 保有者이자 지난해 한 이벤트에서 最初로 2時間 壁을 突破(非公認)韓 엘리우드 킵초게(36)도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오주한은 2011年 10月 처음 韓國에 와 競走國際마라톤에서 優勝했다. 이듬해 3月 서울國際마라톤 優勝을 契機로 歸化를 決心한 뒤 迂餘曲折 끝에 2018年 7月 韓國 國籍을 얻어 ‘靑陽 吳氏’의 始祖가 됐다. 지난해 3月 世界陸上聯盟(WS)은 그가 韓國 選手임을 認定했다.
오주한이 처음 歸化를 申請했을 때 國內 陸上界에서는 “아프리카 出身이 오면 韓國인 마라토너는 다 죽는다”며 反對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오주한의 歸化가 미뤄지는 동안에도 韓國 마라톤은 뒷걸음질만 했다. 韓國 記錄은 2000年 이봉주가 세운 2時間7分20秒가 20年 동안 그대로다. 오주한의 最高記錄은 2時間5分13秒다.
오주한이 歸化에 成功한 뒤 大韓陸上聯盟은 全幅的인 支援을 決定했다. 그마저 없다면 올림픽 메달의 꿈은 이룰 수 없다고 判斷해서다. 聯盟은 支援策 中 하나로 吳 敎授를 오주한 專擔코치로 選任했다. 吳 敎授는 1月 中 大學을 休職하고 케냐로 떠난다. 聯盟은 “向後 트레이너와 페이스메이커 等도 支援할 計劃”이라고 밝혔다. 吳 敎授는 “聯盟은 勿論이고 所屬팀 靑陽郡廳(郡守 김돈곤)도 沈滯에 빠진 韓國 마라톤을 위해 오주한을 積極的으로 돕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오주한의 努力”이라고 말했다.
吳 敎授와 오주한은 現在 忠南 靑陽에 共同名義의 建物을 짓고 있다. 完工되면 오주한은 아내, 두 子女와 함께 이곳에서 살 計劃이다. 吳 敎授는 “오주한이 自身의 꿈(올림픽 메달)을 이루면 國籍을 버릴 것이라는 疑心의 눈초리가 如前히 있다. 떠날 사람이 큰돈을 들여 집까지 짓겠는가. 오직 韓國을 위해 뛴다는 意味로 지은 오주한(吳走韓)이라는 이름처럼 體力이 許諾할 때까지 太極마크를 달고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한은 3月 22日 서울國際마라톤에서 最終 實戰 點檢을 한 뒤 케냐로 돌아가 ‘人生 레이스’를 準備할 計劃이다.
손기정이 1936年 베를린 올림픽에서 優勝한 날은 8月 9日이었다. 황영조가 1992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金메달을 딴 날도 같았다. 도쿄 올림픽 男子마라톤度 大會 閉幕日인 8月 9日에 열린다.
李承乾 記者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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