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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땄지만… 일에 묻혀 親舊도 健康도 잃고, 家族과도 멀어져|동아일보

★ 땄지만… 일에 묻혀 親舊도 健康도 잃고, 家族과도 멀어져

  • 東亞日報
  • 入力 2013年 11月 13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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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女性時代]2部 專門職 <11>‘企業의 별’ 任員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記者 soojin@donga.com
外國系 企業 女性 任員인 A 氏(55)는 10年 前 일만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定期檢診車 찾은 病院에서 靑天霹靂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乳房癌입니다.”

그 瞬間 20餘 年間의 會社 生活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大學 卒業 直後 23歲에 社會生活을 始作한 그는 當時 남들보다 빨리 昇進하는 재미에 會社를 다녔다. 夜勤을 밥 먹듯이 하면서 몸은 고되어도 이를 當然히 여겼다. 課長級 以上의 中間 管理者 以上은 大部分 男性이어서 그는 다른 職員들보다 더 注目받았고, A 氏 亦是 이런 期待에 副應해야 한다는 생각이 剛했다. 또 自身이 잘해야 後輩 女性 職員들의 昇進 길도 넓어진다는 强迫觀念이 있었다. 會社 側은 이런 A 氏를 높이 評價했다.

A 氏는 休暇를 쓰고 手術을 받았다. 會社에는 祕密로 했다. 健康에 異常이 있다는 事實이 알려지면 앞으로의 會社 生活에 支障을 받을 수 있어서다. 多幸히 手術은 成功裏에 끝났다. 1年間의 休職 生活 끝에 다시 復職한 A 氏는 現在 일부러라도 時間을 내어서 運動하는 等 健康을 管理하고 있다. 그는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내줘야 하는 건 當然하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健康했기 때문에 家族과의 關係를 抛棄하게 될지언정 健康을 잃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女性 任員은 ‘별 中의 별’로 通한다.

國內 100大 企業 中 女性 任員은 不過 1.5%에 그친다. 이들은 昇進으로 任員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健康을 비롯해 家庭生活, 人間關係, 마음의 餘裕 等 잃은 것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女性 任員들은 “女性의 社會 進出이 漸漸 늘어가고 있지만 後輩 커리어 우먼들이 우리의 前轍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며 自身들의 經驗을 털어놓았다.

○ “내가 설마 健康을 잃을 줄이야”

30代 後半에 大企業 任員이 된 B 氏(42·女)도 A 氏와 비슷한 境遇다. 30代 中盤에 大企業 部長으로 昇進한 그는 强行軍을 거듭했다. 期待에 副應하기 위해 美國에 出張을 가도 現地에서 業務만 보고 곧장 돌아오는 ‘1泊 3日’ 出張을 마다하지 않았다.

會社의 文化 마케팅 企劃을 맡았을 때다. 仁川空港에서 밤 飛行機로 出發해 美國 뉴욕에 到着하자마자 行事場으로 向했다. 行事와 리셉션 場所를 涉外하는 等 事前 踏査를 하고, VIP들의 動線을 一一이 살펴야 했다. 當日 밤 飛行機로 뉴욕에서 出發해 다음 날 仁川空港에 到着했다. 韓國에서의 日程도 빠듯해 곧장 돌아온 것. 目標를 세우면 오직 目標에만 集中하는 스타일로 每日 빡빡한 日程으로 業務를 處理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쪽 팔을 들 수가 없었다. 病院에 가 보니 목과 허리에 同時에 디스크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B 氏는 “일에 沒入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 보니 몸이 아픈지도 몰랐다”며 “바쁜 일이 끝나자 몸에서 脫盡 信號를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全身痲醉에 3時間에 이르는 大手術을 받은 그는 “그만했길 多幸”이라고 생각한다. 健康이 더 나빠지기 前에 健康을 챙길 수 있는 契機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一旦 내가 살아야 일도 할 수 있다”며 “只今도 하루에 30分 以上은 헬스클럽에서 運動을 하는 同時에 物理 治療도 週期的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 同僚들의 마음을 잃다

女性은 原則에 忠實할 것이라는 期待에 副應하려 同僚들에게 傷處를 입혔다는 任員도 있었다. 여러 企業을 거치며 財務 擔當 任員으로 乘勝長驅하고 있는 C 氏는 2000年 中盤 當時 몸담았던 企業의 賣出額이 急減하자 職員들의 構造調整을 直接 해야 했다. ‘女性’이라면 原則에 忠實할 것이라는 周邊의 期待에 副應해야 한다는 强迫觀念에 사로잡혔다.

勞組나 職員들과 對話할 때 構造調整의 當爲性을 傳達했다. 함께 일한 사람을 내보낸다는 構造調整이 불러올 衝擊 等 情緖的인 側面을 充分히 考慮하지 않은 채 構造調整 事實을 ‘乾燥하게’ 傳達한 것. 그는 “돌이켜 보면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重要한데 코앞에 닥친 일 處理에만 汲汲하다 보니 하지 않거나 迂廻해서 해도 될 말을 굳이 하면서 相對에게 傷處를 입혔던 것 같다”고 말했다.

40代 初盤에 大企業 任員이 된 D 氏(43·女)도 “周邊을 챙기고 돌아볼 機會가 없었다”고 말했다. 每事에 速度戰을 重視했던 그답게 昇進도 高速으로 했다. 팀에는 自身보다 나이가 많은 部下 職員이 折半 以上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나이 많은 部下 職員은 勿論이고 나이 적은 部下 職員에게도 늘 尊待말로 깍듯하게 對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距離感을 두는 要因으로 作用했다. 人間的으로 親해질 機會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處理가 늦은 職員에게 “왜 이렇게 안 하니”라고 다그친 적도 한두 番이 아니다. 自身의 基準으로는 當然히 마무리가 되어 있어야 했던 業務가 完了되지 않았을 때에는 動機 附與를 하기보다 짜증을 냈다. 그와 同時에 잘해도 稱讚에 인색했다. 業務 力量이 뛰어난 그가 相對의 業務 力量을 自身을 基準으로 判斷해 생기는 問題였다. D 氏는 “職員들이 指示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하긴 했지만 旣往이면 ‘人間的인 信賴를 바탕으로 스스로 動機를 附與받아 일하게 할걸’ 하는 後悔가 든다”고 말했다.

○ 人生은 直線이 아닌데…

E 氏(49·女)는 個人的인 삶의 價値를 잃었다고 했다.

그는 커리어를 曲線이 아닌 直線으로 봤다고 했다. 쉬었다가 가거나(점선) 迂廻해서 가도(곡선) 結局은 自身이 願하는 目的地에 到達할 수 있는데, 커리어 自體를 直線으로 달려 無限 疾走해야 하는 것으로 봤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會社에서도 子女들을 위해 時間을 쓰는 데 인색했다. 子女는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에게 맡겨 두고 平日에 退勤해서는 잠을 請하기에 바빴다. 일을 잘해야 한다는 早急한 생각 때문에 家庭을 抛棄하고 일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自身과 비슷한 時期에 아이를 낳은 同僚들이 1, 2年 程度 休職한 뒤 復職해 일과 家庭의 均衡을 追求한 것과는 對照的이었다. 勿論 同僚들보다 빨리 任員이 됐지만 休職을 쓰고 家庭을 챙기면서도 任員이 된 사람이 있다. E 氏는 “좀 더 빨리 始作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躁急해하지 말고 個人的으로 重要하다고 여기는 價値를 擇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業體 任員인 F 氏(46·女)는 家庭에 相對的으로 優先順位를 두면서 일을 했던 탓에 마음을 나눌 만한 親舊들을 잃었다. 結婚을 하기 前에는 週末에 짬을 내 親舊들을 만났지만 結婚 後 出産하면서 生活이 확 바뀌었다. 平日 저녁에는 夜勤을 하거나 顧客社와의 저녁 食事 等으로 個人 時間을 내기 힘들었고, 退勤해서도 아이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親舊와의 關係는 늘 優先順位에서 처졌다. 會社에서도 業務가 끝난 뒤 同僚와 時間을 보내느니 아이들과 時間을 보내는 데에 優先順位를 뒀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아이들이 크면 親舊나 同僚와의 關係가 復舊되겠지’ 하는 생각을 漠然하게 했지만, 아이들이 中學生이 되어 엄마 손이 相對的으로 덜 必要한 나이가 됐을 때에도 親舊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男便과 나누지 못하는 會社 生活의 苦衷을 나눌 同僚나 또래 親舊들도 必要하다”며 “會社가 人生의 100%가 아닌 限,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드는 것도 神經을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反對로 G 氏(53·女)처럼 結婚할 時期를 놓친 境遇도 있다. 海外旅行이 힘든 時節이었던 1980年代 홍콩 等地에서 1, 2個月間 일하면서 周圍의 부러움을 샀다. 父母님은 “멋진 딸을 뒀다”는 稱讚을 들었다. 週5日制가 없던 時節, 外國系 企業이라 土曜日은 쉬는 날이었지만 自進해서 勤務를 했다.

하지만 30歲를 넘자 狀況이 달라졌다. 남들은 結婚해서 家庭을 꾸렸다. 名門女大를 나온 터라 大學 同窓들 大部分은 專門職 男便을 만나 中産層 生活을 했다. 反面 그는 每日 夜勤이었다. ‘프로’라는 自信感은 ‘루저’라는 挫折感으로 바뀌었다.

뒤늦게 맞선 市場에 뛰어들었지만, 마음에 드는 相對가 나오지 않았다. 欠집이 있는 사람을 만나 힘들게 사느니 혼자서 재미있게 사는 게 낫겠다고 判斷한 그는 結局 아직도 結婚을 하지 않았다. 그는 “只今 生活도 滿足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萬若 제때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只今 훨씬 더 幸福한 生活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고 말했다.

김유영 消費者經濟部 記者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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