規模7.2… 建物 崩壞 最小9名 死亡
3日 臺灣 北東部 화롄에서 南東쪽으로 約 25km 떨어진 곳에서 規模 7.2의 强震이 發生했다. 1999年 9月 21日 中部 난터우縣에서 規模 7.3의 强震이 發生해 2400餘 名이 숨진 ‘921 大地震’ 以後 25年 만에 가장 强力한 規模다.
臺灣 氣象廳 等에 따르면 이날 午前 7時 58分(現地 時間) 화롄 一帶에서 發生한 康津은 首都 타이베이, 隣近 新베이, 中部 타오위안 等 臺灣 全域은 勿論 바다 건너 中國 南西部 푸젠성에서도 振動이 感知될 程度로 剛한 威力을 發揮했다. 以後 山沙汰와 建物 崩壞가 이어져 臺灣에서 午後 8時 半(韓國 時間) 現在 最小 9名이 숨지고 946名이 다쳤다.
地震 發生 直後 建物들이 約 1分間 激烈하게 흔들렸고 一部는 무너지거나 中心을 잃고 甚하게 기울어졌다. 崩壞된 建物에 最小 50餘 名의 住民이 갇혀 있어 人命 被害가 더 늘어날 수 있다. 地震 直後 世界 最大 半導體 委託生産(파운드리) 業體인 臺灣 TSMC는 震源地에서 130km 떨어진 駐亂 地域 工場의 一部 生産라인 操業을 一時 中斷하고 職員들을 緊急 待避시켰다.
臺灣에 隣接한 日本 오키나와縣과 필리핀에도 한때 地震海溢(쓰나미) 警報가 내려졌다. 오키나와에 地震海溢 警報가 發令된 건 2011年 3月 東日本 大地震 後 13年 만이다. 오키나와는 駐日美軍 基地 여러 곳이 있는 美國의 아시아太平洋 安保 要衝地라 非常이 걸렸다. 다만 큰 被害는 없어 警報는 이날 午後에 解除됐다.
이番 地震은 震源으로부터의 距離나 에너지 電波 方向 等으로 韓國에는 큰 影響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專門家들은 臺灣과 日本 等에서 地震이 이어지는 만큼 “韓半島 亦是 ‘地震 安全地帶’가 아니란 點을 記憶할 必要가 있다”고 强調했다.
原爆 32個 威力에… 화롄 建物 崩壞-山沙汰, 臺灣 全體가 흔들
[臺灣 25年만에 最大 强震]
150次例 餘震 이어져 950餘名 死傷… 出勤길 市民들 悲鳴 “災難映畫 彷彿”
150km 떨어진 타이베이 5.0 振動… 오키나와 美軍基地도 쓰나미 警報
“列車가 甚하게 흔들리고 窓밖으로 山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3日 午前 臺灣 首都 타이베이에서 北東部 화롄으로 가는 汽車를 탔던 타이베이 市民 훙모 氏가 現地 媒體 롄허보에 傳한 地震 當時의 緊迫한 狀況이다. 그는 ‘災難 映畫’의 한 場面 같았다며 “地震海溢(쓰나미) 警報까지 울려 正말 무서웠다”고 했다.
이날 午前 7時 58分(現地 時間) 화롄縣 南東쪽 25km 地域에서 發生한 規模 7.2의 康津은 臺灣 全域을 强打했다. 震央에서 約 150km 떨어진 타이베이에서도 震度 5의 振動이 感知됐다. 出勤길 타이베이 地下鐵에서는 甚한 振動으로 곳곳에서 乘客들이 주저앉고 悲鳴을 질렀다. 美國 地質調査局(USCG)은 地震 規模를 7.4, 日本은 7.7까지 높여 發表했을 程度로 威力이 셌다. 原子爆彈 32個를 한꺼번에 터뜨린 水準이다.
人口 35萬 名이 居住하는 北東部 據點都市 화롄은 震源과 가까워 被害가 特히 컸다. 타이壘거 國立公園 散策路에서 登山客 3名이 落石에 맞아 숨졌고, 東쪽 海岸 隣近 高速道路에서도 死亡者가 나왔다. 現地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映像에는 地震 當時 都心의 8層짜리 톈王싱(天王星) 빌딩이 道路 쪽으로 기울어지자 行人들이 遑急히 도망가고, 運轉者들도 車를 버리고 待避하는 모습이 담겼다.
臺灣 氣象廳은 “진원이 陸地와 가깝고, 깊이도 매우 얕은 便이라 臺灣 全域에서 振動을 느꼈을 것”이라고 說明했다. 타이베이에 居住하는 韓國人 留學生 金某 氏는 “寄宿舍 冊床에 올려둔 커피나 鄕愁病이 모두 쏟아졌다. 무서워 冊床 밑으로 숨었는데 20∼30秒 동안 振動이 이어졌다”고 傳했다.
타이베이 地下鐵은 이날 1時間 넘게 運行이 中斷됐다. 高速列車는 運行 再開 以後에도 安全上의 理由로 低速 運行했다. 또 臺灣 全域에서 36萬8700餘 家口가 정전을 겪었다. 첫 地震 發生 約 10分 뒤 6.5 規模의 地震을 包含해 이날만 150次例가 넘는 餘震이 이어졌다. 氣象廳 또한 “앞으로 3, 4日間 6.5∼7.0의 餘震이 繼續 發生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番 地震은 1999年 9月 21日 臺灣 中部 난터우縣 一帶를 强打한 ‘921 大地震’ 以後 가장 强力한 地震으로 꼽힌다. 當時 7.3 規模의 强震으로 2400餘 名이 숨지고 8600名이 負傷을 입었다. 臺灣은 921 大地震 以後 共工科 民間 建物 모두 리히터 規模 6.0의 地震에 버틸 수 있게 設計하도록 規定을 바꿨다. 이에 1999年 地震 當時보다 被害가 적었지만, 그럼에도 震源 깊이가 15.5km로 얕아 耐震 設計에도 建物이 무너졌다.
이웃 日本과 필리핀도 緊張했다. 日本 오키나와縣은 地震 發生 以後 最大 3m 높이의 쓰나미 警報를 發令했다. 當時 公營 NHK放送은 正規放送 代身 緊急 特別 災難放送을 傳했고, 필리핀 또한 海岸 地域 住民에게 待避를 警告했다. 다만 地震 發生 約 3時間 뒤 쓰나미 威脅이 大體로 지나가 兩國의 注意報는 모두 解除됐다.
아직까지 地震에 따른 臺灣 內 僑民의 人命 被害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롄 一帶에만 約 50名의 韓國人이 滯留하는 것으로 傳해졌다.
政治的 緊張 關係에 있는 中國은 卽刻 口號 支援 意思를 밝혔다. 臺灣 業務를 擔當하는 中國國務院 臺灣事務辦公室은 代辯人 名義 聲明에서 “本土(中國)는 地震 被害를 입은 臺灣 同胞에게 哀悼를 표한다. 必要한 支援을 提供할 用意가 있다”고 밝혔다.
김철중 記者 tnf@donga.com
김예윤 記者 yeah@donga.com
도쿄=이상훈 特派員 sanghun@donga.com
-
- 좋아요
- 0
個
-
- 슬퍼요
- 0
個
-
- 火나요
- 0
個
-
- 推薦해요
- 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