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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萬番 더 打倒 氣分 좋은 것 自轉車’…“75歲에도 山길 44km는 거뜬”[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東亞日報

‘千萬番 더 打倒 氣分 좋은 것 自轉車’…“75歲에도 山길 44km는 거뜬”[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0月 29日 14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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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手 김세환 氏가 서울 양재천에서 즐거운 表情으로 自轉車를 타고 있다. 1980年代 中盤 美國에서 山岳自轉車(MTB)를 購入해 들어와 타기 始作한 그는 自轉車 타기를 生活化하며 健康하고 활기찬 老年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훈구 記者 ufo@donga.com
“제 집이 서울 良才洞인데 지난週 土曜日에는 京畿道 九里, 日曜日에는 幸州山城까지 갔다 왔어요. 往復 한 70~80km 程度 됩니다. 親舊들과 어울려 中間에 쉬고 點心도 먹고…. 이 나이에 이렇게 즐겁고 健康하게 사는 것보다 重要한 게 있을까요?“

韓國나이 올해로 75歲인 歌手 김세환 氏는 自轉車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린다. 自轉車를 타게 된 스토리부터 長點이 무엇인지, 自轉車를 꼭 타야 하는 理由, 平生 타면서 經驗안 에피소드….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그의 自轉車 얘기를 듣다보면 時間 가는 줄 모른다.

그는 틈만 나면 自轉車를 탄다. 山岳自轉車(MTB)와 사이클 가리지 않는다. 1986年 美國에 스키 타러 갔다 MTB를 사가지고 와서 自轉車에 빠진 ‘MTB 1世代’인 그는 “무릎에 無理를 주지 않고 健康을 지킬 수 있는 最高의 運動이 自轉車 타기”라고 强調한다.

親舊들과의 約束, 라디오 放送할 때도 自轉車를 타고 간다. 金 氏는 “양재동에서 汝矣島까지 自轉車로 45分이면 간다. 車타고 가면 막혀 짜증나는데 自轉車는 확 트인 野外에서 좋은 空氣를 마시며 즐겁게 갈 수 있다. TV 放送 出演 땐 服裝과 머리, 얼굴 狀態 때문에 어쩔 수 없이 車를 탄다”고 했다.

歌手 김세환 氏가 山岳自轉車를 타는 모습. 김세환 氏 提供.
金 氏의 自轉車 사랑은 1980年代 中盤에 始作됐다. 1968年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美國에 스키를 타러 갔다 MTB와 因緣을 맺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키를 탈 수 없었다. 近處에 自轉車 파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앞 기어 3段, 뒤 기어 7段으로 된 自轉車가 있었다. 職員에게 무슨 自轉車냐고 물었더니 ‘山에서 타는 自轉車’라고 했다. 山을 내려오는 게 스키랑 비슷한 妙味가 있을 것 같아 바로 購買해 韓國에 갖고 들어왔다”고 했다.

“自轉車를 그대로 飛行機에 실을 수 없었죠. 그래서 螺絲를 하나씩 다 풀어 分離해서 트렁크에 나눠 실었죠. 或是 나중에 組立을 못 할까 싶어 一一이 그림을 그려 位置를 把握해뒀죠. 붓대 속에 木花씨를 숨겨온 文益漸이 된 것 같은 氣分이었죠.”

金 氏는 그 自轉車로 혼자 漢江으로 山으로 타고 다녔다. 비슷한 自轉車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 人事했다. 그렇게 만나서 造成 된 同好會가 ‘限時半’이다. 그는 “自轉車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됐다. 내가 敎會를 다녀서 日曜日 禮拜를 보고 點心 먹고 漢江에 나가면 午後 1時30分쯤 됐다. 자연스럽게 그 時間에 제3한강교(현 漢南大橋) 밑에서 만나 함께 自轉車를 탔다. 限時半 會員들은 아직도 모인다”고 했다.

“우리가 國內 最初로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기도 했죠. 1980年代 末 서울에서 束草까지 220km 當日 투어를 처음 試圖했어요. 새벽 5時에 出發해 저녁 6時에 彌矢嶺 頂上에 到着했죠.”

歌手 김세환 氏가 自轉車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훈구 記者 ufo@donga.com
金 氏는 집 近處 우면산, 그리고 남한산성을 隨時로 올랐다. 只今은 MTB 同好人들의 聖地인 江原道 春川 江村챌린지코스도 開拓하는 等 國內 MTB 코스를 多數 開發했다. 그는 “智異山 벽소령度 올랐다. 只今은 國立公園內 自轉車 出入이 禁止됐지만 2000年代 初盤은 可能했다. 우리가 自轉車 타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떻게 이게 可能하냐?’며 亂離가 났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MTB 情報를 얻을 데가 없어 美國 雜誌를 많이 參考했어요. 梨泰院에 가서 美軍部隊에서 흘러나온 雜誌를 사보다가 定氣購讀을 했죠. 只今도 그 때 보던 雜誌들이 많이 남아 있죠.”

그의 집엔 MTB 雜誌의 先驅者라 할 수 있는 ‘마운틴바이크 액션‘를 비롯해 다양한 雜誌가 1980年 代 末부터 1990年代까지 있다. 日本 冊도 있다.

MTB 타며 負傷도 많이 當했다. 그는 “골프 皇帝 타이거 우즈도 OB를 낸다”며 “아무리 高手라고 해도 다칠 수 있다”고 했다. 넘어지며 무릎과 팔꿈치를 숱하게 다쳤다. 그래도 큰 負傷은 없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첫 마디가 조금 不便한 게 後遺症으로 남았다. 多幸히 其他 칠 때 그 손가락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MTB에 集中하던 그는 2010年代 初盤 사이클도 타기 始作했다. 4大江 事業으로 江周邊 自轉車길이 造成되면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탄 것이다. 그는 “車에 比喩하면 MTB가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스포츠유틸리티 車輛)라면 사이클은 세단이다. 그 맛이 完全히 달랐다”고 했다. 金 氏는 MTB를 탈 땐 平均時速 25km, 사이클을 탈 땐 平均時速 30km로 疾走한다.

나이는 80歲를 向해 가지만 그의 몸은 아직 ‘靑春’이다. 金 氏는 “最近 젊은 親舊들과 江村 山길 44km를 달리고 왔다. 숨을 헐떡이며 ‘야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야겠냐’라고 하소연했지만 아직 그 程度는 問題없다”며 웃었다.

가수 김세환 씨(왼쪽)와 구자열 대한자전거연맹 회장. 동아일보 DB.
歌手 김세환 氏(왼쪽)와 구자열 大寒自轉車聯盟 會長. 東亞日報 DB.
‘自轉車 親舊’인 구자열 大寒自轉車聯盟 會長(69·(週)LS 議長)과도 자주 라이딩 한다. 구 會長과의 因緣도 두 사람의 共通된 趣味인 스키場에서 偶然히 만나면서 始作됐다. 金 氏는 國內에서도 겨울이면 스키場을 자주 다녔다. 그런데 普通 사람처럼 自動車가 아닌 MTB를 타고 스키場엘 갔다. 이미 自轉車에 關心이 많던 丘 會長은 스키場에서 만난 金 氏가 타고 온 MTB의 魅力에 흠뻑 빠져 버렸다. 以後 두 사람은 틈틈이 MTB를 타고 全國 坊坊曲曲을 누볐다. 요즘은 사이클도 함께 탄다.

“그거 알아요? 空氣 좋은 山에서 自轉車를 타다 보면 正말이지 酸素가 씹히는 氣分이 들어요. 어느 날 휘닉스 파크 스키場 뒤쪽으로 내려갔는데 空氣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간 親舊들에게 酸素가 씹히는 것 같다고 했죠. 그랬더니 나중에 고도원의 아침便紙에서 引用해서 話題가 되기도 했죠.”

 김 氏가 꼽은 ‘MTB 人生 自轉車’길은 講院 襄陽 미천골이다. 그는 “20年 前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을 때다. 여러 親舊와 함께 미천골을 타고 내려오다 너무 아름다운 光景에 모두 넋을 잃었다. 自轉車에서 내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瀑布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歌手 조영남과 이문세, 김현철, 개그맨 박명수 氏에게도 自轉車를 勸해 ‘自轉車 傳道師’로 불린 그는 2007年 ‘김세환의 幸福한 自轉車’란 冊을 썼다.

“그 冊에서 딱 두 가지를 强調했어요. 우리나라에서 自轉車 第一 잘 타는 사람은 負傷 없이 오래 타는 사람이고, 自轉車에서 가장 좋은 部品은 鞍裝 위에 앉아 있는 人間이라고. 빨리 달리는 것, 비싼 自轉車 意味 없습니다. 健康하게 오래 타는 게 最高죠.”

가수 김세환 씨(맨 앞)가 라이딩을 하며 두 손으로 V자를 그리며 달리고 있다. 김세환 씨 제공.
歌手 김세환 氏(맨 앞)가 라이딩을 하며 두 손으로 V字를 그리며 달리고 있다. 김세환 氏 提供.
그는 安全하게 타기 위해선 技術을 익혀야 한다고 强調했다.

“自轉車는 無條件 타는 게 아닙니다. 그냥 페달만 밟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基本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安全하게 탈 수 있습니다. 自轉車에도 다양한 技術이 있어요. 急브레이크를 잡아도 안 되고…. 요즘 全國的으로 自轉車타기 클래스가 많이 생겼으니 初步者들은 그런 곳을 찾아 基本 技術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金 氏에게 自轉車는 ‘主治醫’다. 그는 “自轉車 타려고 나서면 내 몸 狀態를 알 수 있다.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健康은 健康할 때 지켜야 한다. 自轉車 타고 病院을 지나다보면 내가 健康한 것에 다시 感謝 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健康하니 ‘아직 팔린다’며 웃었다. 그는 “忠南 豫算 沙果祝祭에서도 오라고 하고 서울 城東區에서도 行事 있다고 出演을 付託했다. 健康하니 아직 불러주는 데가 있다”고 했다. 그는 午後 10時에서 11時 就寢해 새벽 4~5時에 일어나 하루를 始作한다.

“일어나서 먼저 新聞을 다 봅니다. 世上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훤히 알 수 있죠. 그리고 제가 關心이 있는 유튜브 等을 봅니다. 요즘 正말 世上 좋아졌어요. 全 世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컴퓨터 하나도 다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世上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世上 맘껏 즐기려면 健康해야죠. 모두 自轉車 타세요.”

그는 自轉車 얘기할 땐 노래 부를 때 보다 더 즐거운 表情이었다. 그의 代表作 ‘사랑하는 마음’의 歌詞 中 “千萬番 더 들어도 氣分 좋은 말 사랑해”를 “千萬番 더 들어도 氣分 좋은 말 自轉車”라고 바꿔 불러도 全혀 異常하지 않다.

歌手 김세환 氏에게 自轉車는 삶 그 自體다. 김세환 氏 提供.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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