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南部 프로방스의 都市 아를 市內의 한복판. 韓國의 美術家 이우환(87) 畫伯의 作品을 常設 展示하는 李禹煥美術館(Lee Ufan Arles)을 만날 수 있었다. 2022年 4月에 門을 연 따끈따끈한 美術館이다. 李禹煥 畫伯의 作品은 每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韓國國際아트페어)와 畫廊美術祭를 비롯해 國內外 代表的인 아트페어에서 最高 價格으로 팔리는 핫한 作品이다. 우스갯소리로 “點 하나 찍으면 1億, 點이 2個 있으면 2億원”이라는 말이 있을 程度로 單純한 點, 善으로도 人氣가 높다. 韓國 外에서도 特히 日本과 프랑스에서 人氣가 높다. 2010年 日本 나오시마 섬에 ‘이우환 美術館’이 세워졌고, 2015年에는 釜山 해운대구에 있는 釜山市立美術館에 ‘이우환 空間’李 開館했다. 프랑스 아를에 세워진 이우환 美術館은 日本, 韓國에 이어 세 番째 세워진 李禹煥 畫伯의 常設 作品 展示 空間이다. 2007年 프랑스 最高 權威의 ‘레지옹 도뇌르’ 勳章을 받았던 李禹煥 畫伯은 2014年 파리 隣近의 베르사유宮의 招請으로 野外庭園에서 個人展을 열기도 했다. 제프 쿤스, 아니쉬 카푸어 等 世界的인 現代美術 作家들에 이어 招請받았던 것. 이 畫伯은 當時 돌과 鐵板을 材料로 한 ‘關係項’(Relatum) 聯作 總 10點을 設置했다. 그렇다면 李禹煥 畫伯은 프랑스에서도 왜 何必 아를에서 美術館을 開館한 것일까. 프로방스의 아를은 빈센트 반고흐價와 파블로 피카소, 張 콕토 等 藝術家들이 사랑했던 都市로, 수많은 美術 愛好家들이 찾는 都市이자 現代美術의 中心地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特히 고흐는 아를에서 約 15個月間 머물면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란집’ ‘꽃피는 아몬드 나무’ 等 200餘 點의 自身의 代表作을 남겼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프로방스의 自然 속에서 고흐는 바람과 별, 구름, 꽃, 나무를 찾아다니며 名作을 그릴 수 있었다. 한便으로는 至毒한 외로움과 따돌림, 親舊와의 다툼과 自害, 鬪病과 療養을 겪으며 人生의 가장 波瀾萬丈한 激動의 歲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 아를은 고흐 以前에도 ‘프랑스의 로마’라고 불릴 程度로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인 古代 로마 時代의 遺跡이 잘 남아 있는 都市다. AD 90年 아우구스투스 1歲 時節 지어진 로마 圓形競技場은 2萬5000名이 觀覽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인데, 只今도 鬪牛競技場과 콘서트場으로 使用되고 있다. 4月 初에 아를을 찾았을 때 코로나19 以後 오랜만에 열린 鬪牛 페스티벌의 열기로 온 都市가 들썩였다. 또한 1世紀頃에 세워진 1萬 名을 收容할 수 있는 아를 古代劇場이 있고, 로마人 共同墓地 ‘알리스캉’도 잘 남아 있다. 또한 2021年 아를에는 超現代式 뮤지엄人 ‘루마(LUMA) 아를’李 槪觀해 全世界의 耳目이 集中됐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美術館을 設計했던 프랑크 게리의 新作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모티브로 한 루마 아를은 요즘 유럽 最高의 핫플레이스다. 이러한 프로방스의 美術 旅行의 中心地로 떠오른 아를 市內 한복판에 이우환 作家의 美術館이 생겼다는 點에서 무척이나 鼓舞的인 일이다. 李禹煥 畫伯은 인터뷰에서 “아를은 로마 帝國 以來로 깊은 歷史를 가지고 있다”며 “이 歷史와 내 作品이 만나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길 期待한다”고 말했다. 아를의 이우환 美術館이 들어선 곳은 16~18世紀에 지어진 ‘오텔 베르弄(Hotel de Vernon)’ 邸宅이다. 로마時代 古代 圓形競技場과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포룸廣場 사이 골목길에 있는 大邸宅이다. 이 建物은 25個의 房이 있는 옛 3層 住宅으로, 延面積 1350㎡ 規模다. 日本 나오시마 섬에 있는 이우환 美術館은 日本의 世界的인 建築家 안도 다다오(82)가 設計했는데, 아를의 이우환 美術館도 안도 다다오가 參與했다.아를 李禹煥美術館 關係者는 “李禹煥 畫伯의 切親인 建築家 안도 다다오가 邸宅을 改造해 美術館으로 만드는 作業에 參與했다“며 ”오래된 歷史를 지닌 베르弄 邸宅을 精製된 藝術作品의 空間으로 바꾸는 作業에 안도 다다오와 李禹煥 畫伯이 깊은 意見을 나누면서 作業을 했다“고 밝혔다. 아를 이우환 美術館 入口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안도 다다오의 作品이다.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露出 콘크리트로 된 壁 사이로 들어가면,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장 안에 있는 中心部에는 발바닥에 하늘이 있다. 어떻게 발밑에 하늘이 보이지? 하고 暫時 어리둥절한 瞬間, 仔細히 보니 映像이었다. 하늘을 찍은 映像을 바닥에 틀어놓은 것이었다. 어두운 달팽이 콘크리트 壁 안에서 만난 낯설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入口의 콘크리트부터 1層은 온통 돌의 饗宴이다. 1層에는 李禹煥 畫伯의 돌과 鐵로 된 作品 10點이 展示되고, 2層에는 이 畫伯의 繪畫 作品 30點이 展示된다. 1936年 慶南 咸安에서 태어난 李禹煥은 서울대 美大를 中退하고 日本에 건너가 日本隊 哲學科를 卒業했다. 그는 事物과 世界의 關係에 穿鑿하면서 日本 아방가르드 運動 ‘모노下’를 主導했다. 모노하는 1960~70年代 콘크리트, 琉璃板, 鋼鐵 等 産業 材料와 돌과 나무를 結合한 作品을 선보인 美術 運動이다. 李禹煥이 돌과 鐵, 琉璃板을 특정한 空間에 놓아 두는 設置 作品은 ‘關係項’(Relatum)이다. 그는 平凡해 보이는 돌과 鐵板, 琉璃를 空間 속에 다양한 形態로 놓아둠으로써 觀客들이 새로운 意味를 느끼게 한다. 라틴語인 ‘Relatum’은 哲學 用語로 關係를 맺는 主體를 뜻한다. 藝術作品이 絶對的인 것이 아니라, 作品과 觀客이 空間의 變함에 따라 새로운 關係를 生成하게 되는 것이다. 空間에서는 觀客도 하나의 作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李禹煥은 사람들이 “아를이라는 歷史的인 空間에서 내 作品이 사람들과 어떤 關係를 맺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藝術家란 作品의 媒介者이자 仲介者 役割을 하는 사람일 뿐이며, 最終的으로 作品을 完成하는 것은 觀客인 셈이다.“길가의 녹슨 甁뚜껑을 보고도 가슴이 뭉클해질 수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많은 豫期치 않은 瞬間들, 燦爛하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더러운 瞬間들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反復한다.” (이우환)?돌 사이에 鋼鐵 막대가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우리의 對話는 엇갈림 속에서 서로 疏通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向하고 있지 않는가.벽의 額子를 바라보는 돌멩이는 額子 속에 들어 있어야할 그림을 깔고 앉아 있다. 우리는 정작 重要한 것은 깔고 앉아 있고, 텅빈 額子 속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닐까.돌멩이에 꽂힌 鐵絲가 壁에 뭔가 그리고 있다. 물음標??天井에 달린 照明 빛이 커다란 접시에 담긴 물에 反射된다. 물빛이 흔들릴 때마다 天井에는 알 수 없는 表情이 새겨진다. 고흐가 그린 아를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 같기도 하고, 骸骨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프면서도 燦爛한 빛이 變化無雙하게 空間을 가득 채운다. 돌을 琉璃板 위에 올려 놓다가 깨졌는데, 우연하게 금離間 琉璃板은 그대로 하나의 藝術이 된다. 내 삶의 單 한番의 選擇도 내 人生에 커다란 금을 가게 할 수 있다. 깨진 金은 어디로 쫙 갈라져 나갈지 豫測할 수 없다. 그것도 하나의 人生의 指紋으로 남을 것일 뿐. 1層 展示場 마지막 作品. 李禹煥이 孫女를 위해 만든 作品이라고 한다. 바닥에 앉아 있는 돌멩이는 孫女이리라. 할아버지는 壁에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하얀色 캔버스를 걸어놓았다. 孫女가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作品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하얀色 圖畫紙에 孫女가 自身만의 關係項을 그려, 自身만의 人生을 만들어 나가라는 뜻일까. 2層으로 올라가는 階段에 걸려 있는 陶藝 作品. 흙으로 빚은 판에 손가락을 깊게 찔러 넣은 자국으로 點을 하나 찍어 놓았다. 點과 線에 穿鑿해 온 自身의 世界를 2層에서 本格的으로 보여주리라 하는 意圖인 듯하다. 李禹煥 畫伯은 1973年쯤 부터 ‘點으로부터’ ‘線으로부터’ 聯作을 始作했다. 그는 點을 찍은 뒤 붓끝의 顔料가 없어질 때까지 線을 긋는 作業을 反復했다. 水墨畫에서 먹을 묻힌 後 물氣가 날아가면 거칠어진 線이 남게 되는 ‘飛白’ 效果를 西洋畫에서도 導入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李禹煥 畫伯의 그림을 본 아를의 한 少年은 “飛行機가 날아갈 때 하늘에 남은 하얀 痕跡같다”고 말했다고 한다.제트기 數十臺가 함께 編隊飛行을 한 自國일까.구부러진 先導 나타난다.이번엔 點이다. 點이 두 個다.점 하나 찍었다. 설마 이 作品은 얼마일까?자유분방한 點들. 點 하나가 좀더 커지고, 길어졌다.점이 花盆 模樣이 된다. 東洋畫처럼 弄談의 差異가 있는 點이다. 애플 로고처럼 端正하다. 밝은 照明 아래에서는 3D 效果가 난다.점이 여러個로 變한다.점이 동그란 圓을 이룬다. 點의 行列이 뒤로 갈 수록 濃度가 옅어진다. 왼쪽 方向으로 헤엄치는 올챙이들 같기도 하고, 매트릭스 映畫에 나오는 컴퓨터 畵面 픽셀 같기도 하다. 點이 컬러로 變한다. 붉은色과 푸른色 點이 抱擁을 하면서 겹치며 한몸이 되고, 階段을 이루기도 한다.? 李禹煥이 1層 野外 庭園과 房에 돌과 鐵, 琉璃로 設置해놓은 ‘關係項’을 보고 난 後에 2層에 있는 繪畫 作品을 보니 비로소 그의 作品 世界가 무슨 意味인지 조금은 理解할 수 있을 듯했다. 李禹煥은 돌과 鐵路 ‘關係項’ 作品을 할 때는 野外나 房이라는 3次元 空間을 캔버스 삼아서 作業을 한 것이다. 이러한 돌과 鐵은 2次元 平面의 繪畫 作品에서는 붓으로 그린 點이 되고, 線이 되는 것이다. 집 안에 돌과 鐵과 같은 무거운 作品을 가져다 놓을 수 없으니, 繪畫 作品을 壁에 걸어놓고 點과 選의 關係項을 冥想해보라는 뜻인 듯했다. 그의 點은 돌이고, 線은 쇠막대였다. 그의 캔버스는 立體的인 房이고, 空間이 되는 것이다. 아를에서 이우환의 作品을 한꺼번에 鑑賞할 수 있었던 것은 幸運이었다. 世界 어떤 美術館이나 아트페어보다 가장 많은 作品을 보았던 것 같다. 釜山市立美術館의 ‘이우환 空間’에서도 野外와 室內에서 作品을 보았지만, 아를이 作品이 더 다양하고 많았다. 이 程度 크기의 이우환 作品을 이렇게 많이 모아놓다니. 果然 價格이 얼마나 될까 想像이 되지 않는다. 李禹煥은 아를 美術館에 自身의 作品을 貸與해주었다고 한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