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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民·嫌惡施設 邊두리 내몬 ‘植民都市’ 서울”|週刊東亞

週刊東亞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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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民·嫌惡施設 邊두리 내몬 ‘植民都市’ 서울”

都市문헌학자 김시덕 “大서울 擴張… 三星 工場 따라 牙山까지 넓어진 江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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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記者

    friend@donga.com

    入力 2021-09-0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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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오른쪽)가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아파트(왼쪽) 옥상에서 주변 시층(時層)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문헌학자 김시덕 博士(오른쪽)가 서울 西大門區 西小門아파트(왼쪽) 屋上에서 周邊 시층(時層)을 說明하고 있다. [지호영 記者]

    “여러 시층(時層)李 共存하는 興味로운 空間이네요. 헐리기 前 살펴볼 수 있어 多幸입니다.”

    8月 17日 午後 4時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西小門아파트 屋上에서 文獻學者 김시덕(46) 博士가 들뜬 듯 말했다. 이곳은 1972年 竣工된 108家口 7層(4層이 없어 表記上 8層) 높이의 住商複合아파트다. 警察廳과 NH農協生命 빌딩 사이 屛風처럼 휜 파사드가 印象的이다. 8月 3日 國土交通部는 이 一帶를 都心公共住宅複合事業 候補地로 選定했다. 西小門아파트는 河川 위에 지어져 大地 所有權을 인정받지 못한다. 近處가 再開發되면 헐린 뒤 公園 等으로 쓰일 可能性이 높다. 물탱크와 配管 等으로 어지러운 屋上을 누비던 金 博士의 說明이 이어졌다.

    만초천 位 西小門아파트

    “建物 밑에 잠든 만초천은 先史時代부터 흘렀을 것이다. 近處를 지나는 京義線 鐵道(1905年 開通)는 大韓帝國 때 생겼다. 바로 옆엔 植民地 時節 改良 韓屋과 倉庫 建物이 婚材한다. 길 건너 보이는 傳道館 敎會(西大門 天賦敎會)는 1960年代 建物(1969年 竣工)이다. 이 西小門아파트는 隣近 忠情아파트(1932年 竣工)보다 建築 時期는 늦지만 가좌역 近處 座元상가아파트처럼 住商複合의 初期 形態를 잘 보여준다.”

    金 博士는 文獻學者이자 ‘서울 答辭가’를 自處한다. 高麗大 日語日文學科를 거쳐 日本 總合大學院臺에서 博士學位를 받았다. 日本에서 著書 ‘異國 征伐 電氣의 世界’로 外國人 最初 ‘日本 古典 文學 學術賞’을 受賞했다. 國內 飜譯本 ‘日本의 對外 戰爭’도 學術院 優秀 學術圖書로 選定됐다. 最近 ‘大(大)서울’ 硏究에 集中하고 있다. 서울이 形成·擴張된 痕跡을 찾아 서울은 勿論, 競技·仁川·江原·忠淸 곳곳을 直接 踏査했다. 그 成果로 ‘서울 宣言’ 시리즈를 出刊했고 最近 세 番째 冊 ‘大서울의 길: 擴張하는 都市의 現在社’를 냈다. 西小門아파트에서 徒步로 約 10分 距離인 ‘東亞日報’ 忠正路 社屋에서 對話를 이어갔다.

    文獻學者 兼 ‘서울 答辭가’

    김시덕 박사는 건물 간판, 머릿돌 등 ‘문헌’으로 도시 역사를 분석한다. 사진은 서울 중구 다다미가게(왼쪽)와 서대문구 서대문 천부교회 머릿돌. [사진 제공 · 김시덕]

    김시덕 博士는 建物 看板, 머릿돌 等 ‘文獻’으로 都市 歷史를 分析한다. 寫眞은 서울 中區 다다미가게(왼쪽)와 西大門區 西大門 天賦敎會 머릿돌. [寫眞 提供 · 김시덕]

    문헌학자가 ‘서울 踏査’에 나선 理由는?

    “4年 前 職場 問題로 韓國을 떠날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서울을 向해 나 나름 作別 人事를 하고 싶었다. 日本 硏究者로서 動機도 있었다. 留學 時節 外國에 있을 때는 필드워크가 쉽지만 歸國 後에는 如意치 않다. 日本 植民統治가 포스트 콜로니얼 時代 韓國 都市에 어떤 影響을 끼쳤는지 살피고 싶었다. 都市文獻學의 見地에서 都市化石을 찾는 等 大서울을 읽어내고자 한다.”



    ‘都市文獻學’ ‘都市化石’ 모두 生疏하다.

    “都市도 하나의 巨大한 文獻이라고 할 수 있다. 踏査와 解釋으로 그 歷史를 읽어낼 수 있다. 地質學에 標準化石이라는 槪念이 있다. 암모나이트처럼 地層을 區別하는 基準이 되는 化石이다. 都市化石島 都市文獻學에서 비슷한 구실을 한다. 假令 傳道館(1950年代 생긴 新興宗敎 ‘韓國예수교전도관復興協會’·縣 ‘韓國천부교回’) 敎會가 있는 地域은 過去 많은 信徒를 모을 수 있는 繁華街였다는 推論이 可能하다. 未來에는 래미안(三星物産 아파트 브랜드) 아파트 團地에 對해 ‘舊都心을 밀어내고 21世紀에 지은 住居地’라는 解釋도 可能할 것이다. 래미안이 2000年代 브랜드 아파트 붐을 일으켜 再建築·再開發 地域에서 脚光받았기 때문이다. 建物 머릿돌度 훌륭한 文獻이다. 竣工 年度뿐 아니라 材質과 크기, 位置 等으로 다양하게 解釋할 수 있다. 本來 유럽에서 휴머니즘은 文獻學에서 出發했다. 韓國은 이런 人文學의 基本을 疏忽히 하면서 메타 談論을 論한다. 都市文獻學은 이런 風土에 對한 안티테제 性格도 있다.”

    왜 首都圈이 아닌 ‘大서울’인가.

    “地域을 地方自治團體 單位로 理解해선 안 된다. 假令 집은 京畿道에 있어도 서울의 學校, 職場에 다니거나 反對 境遇도 많다. 首都圈이라는 表現은 서울, 京畿, 仁川만 包含하는 面(面) 槪念에 가깝다. 實際 사람의 生活圈은 道路를 따라 선(線) 槪念으로 形成된다. 大서울은 行政區域이라는 틀 밖 空間을 說明하기 위한 槪念이다. 仁川 江華島, 京畿 金浦·高陽·파주시(大서울 西部), 江原 春川·원주시(大서울 東部)를 網羅한다. 大서울은 繼續 擴張한다. 假令 江南은 서울地下鐵 8號線, 盆唐線, 신분당선을 따라 넓어진다. 最近 三星은 忠南 아산시 탕정면에 工場을 세웠다. 旣存 大서울은 植民地 時節 總督府가 만든 京釜線 軸을 따라 發達했다. 只今의 서울地下鐵 1號線 路線과 類似한 軸이다. 大企業의 開發이 새로운 軸으로 大서울, 具體的으론 江南乙 擴張한 事例라 興味롭다.”

    “貧民村 헐고 지은 아파트에 기와 精子”

    서울 관악구 관악산 북쪽 기슭부터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까지 시층(時層). [사진 제공 · 김시덕]

    서울 관악구 冠岳山 北쪽 기슭부터 永登浦區 汝矣島 一帶까지 시층(時層). [寫眞 提供 · 김시덕]

    金 博士의 踏査記는 文化遺産을 賞讚하거나 ‘아픈 近代의 痕跡’을 들춰 憤怒하지 않는다. 서울은 歷史가 켜켜이 쌓인 都市다. 그의 表現대로 “漢陽에서 京城으로, 京城에서 서울로 이 都市는 繼續 넓어졌다. 영등포와 鷺梁津은 漢陽이 아니었지만 1936年 京城이 됐고 永登浦 東쪽은 鏡城이 아니었지만 1963年 서울에 編入돼 江南이 됐다”(‘서울 宣言’ 42쪽). △朝鮮 後記 △四大門 안 △王族·兩班 △朱子學 △男性 中心主義에 埋沒된 서울이 아닌, 只今 여기 모두의 痕跡에 注目하자는 趣旨다. 2018年 出刊한 大서울 硏究의 첫 成果 ‘서울 宣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40年 삶을 돌아보면 서울이라는 都市가 漢陽과 鏡城의 範圍를 넘어 膨脹해가는 過程이 그려진다. 난 부천시 素砂, 蠶室, 再開發 前 안양시 평촌, 신반포, 舊반포, 안암동, 中溪洞, 高陽市 一山, 開浦洞, 落星垈에서 살았다. 스스로 서울市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줄곧 ‘四大門 案이 眞짜 서울’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에 따르면 난 40年 넘게 서울市에 살면서도 眞짜 서울로 認定받는 곳에선 한 番도 살지 못한 게 된다. 納得할 수 없었다.”

    仔細히 說明해달라.

    “서울은 大部分 朝鮮時代 平民이 살던 곳이다. 거기에 解放 後 貧民村이 들어섰다. 이런 聚落을 다시 밀어내고 最近 아파트가 들어서기 일쑤다. 그런 團地에 소나무를 심고 기와 올린 亭子를 짓는다. ‘우리는 모두 兩班 子孫’이라는 自意識이다. 實存한 수많은 平民과 奴婢의 歷史, 痕跡이 사라진다. 植民地時代와 現代 韓國의 都市 空間도 지워지곤 한다. 서울 大部分 地域엔 살지도 않던 王族과 兩班의 存在를 想像해 都市 ‘팩션’을 만든다. 대단히 封建的 思考다. ‘朝鮮主義’랄까.”

    어두운 近現代 痕跡을 撤去하자는 主張도 있다.

    “요즘 再開發·再建築할 때 文化財를 毁損하는 손쉬운 핑계가 ‘日帝 때 建物이니까 밀어버리자’는 것이다. 假令 옛 總督府 建物은 朝鮮總督府보다 大韓民國 中央廳과 博物館으로 더 오래 쓰였다. 政府 樹立의 現場이자 制憲議會가 열린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 建物인 것이다. 總督府 建物을 헐고 景福宮을 제대로 復元하지도 못했다. 出身이 奴婢면 平生 常놈이라는 意識이 反映된 것일까. 最近 ‘힙地로’라며 脚光받는 乙支路 地域도 日本人이 지은 建物이 적잖다. 解放 後 韓國人이 그곳에서 數十 年間 살았다. 以北에서 온 越南民들이 살아 冷麵 文化가 퍼지기도 했다. 이런 空間을 日本人이 造成했다는 理由만으로 없애면 都市에 무엇이 남겠나.”

    김시덕 박사는 ‘대(大)서울’ 일대를 답사했다. 사진은 각각 ①경기 고양시 이산포수문에서 바라본 일산신도시. ②경기 평택시 송탄역에서 오산 미군기지로 향하는 옛 군용철도. ③철거를 앞둔 강원 춘천시 ‘기와집골. [사진 제공 · 김시덕]

    김시덕 博士는 ‘大(大)서울’ 一帶를 踏査했다. 寫眞은 各各 ①京畿 高陽市 이散脯水門에서 바라본 一山新都市. ②京畿 평택시 송탄역에서 烏山 美軍基地로 向하는 옛 軍用鐵道. ③撤去를 앞둔 江原 春川市 ‘기와집骨. [寫眞 提供 · 김시덕]

    “都市 ‘均質性’ 깨야”

    金 博士는 都市 開發을 두고 兩 極端의 主張이 衝突한다고 指摘했다. 各各 “再開發·再建築부터 하고 보자”는 開發論과 “옛 痕跡을 모두 지키자”는 保存論이다. 그는 “서울 內 宅地 開發을 繼續해야 한다. 메갈로폴리스를 地方 中小都市처럼 低密度 開發해선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敷衍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美國 都市經濟學子)가 著書 ‘都市의 勝利’에서 指摘했듯, 高層 建物이 오히려 親環境的이고 效率的이다. 다만 예전처럼 軍事作戰 式의 暴力的 開發은 안 된다. 都心 再開發 現場을 가보면 問題가 深刻하다. ‘社說 傭兵’인 用役會社 職員이 住民에게 暴力을 行使한다. 警察에 申告해도 ‘다치면 그때 오라’는 式으로 對應한다. 國家가 都市 開發에서 마땅한 責任을 다해야 한다.”

    大都市 建設은 곧 暴力·排除의 歷史인 듯하다.

    “그렇다. 臺서울에서도 이른바 嫌惡 施設은 서울 外郭이나 京畿道로 移轉했다. 都市 貧民도 邊두리로 내몰았다. 帝國主義 列强의 植民都市 建設과 類似하다. 植民地 本國 住民이 城壁으로 지켜지는 都市를 願하는 것이다. 韓國에서 슬럼이 눈에 잘 안 띄는 理由도 都心 考試院이나 半地下房 等의 形態로 감춰져 있어서다. 슬럼 住民에 對한 支援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그 存在가 可視化해야 한다. 그런 點에서 特定 都市 空間에 비슷한 階層만 사는 ‘均質性’이 깨져야 한다. 適切한 소셜믹스(social mix)가 必要하다.”

    都市 文化遺産을 지킬 方案은?

    “政府가 文化財 保護를 名目으로 土地·建物主에게 現象 維持를 强制해선 안 된다. 說得과 惠澤이 必要하다. 中長期的으론 내셔널트러스트(英國에서 始作된 自然 및 私的 保存 市民團體) 運動이 答이라고 생각한다. 最近 一部 市民團體가 不適切한 會計 處理 等으로 物議를 빚기도 했다. 基本을 지키는 市民團體가 主導해 市民의 힘으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金 博士는 最近 活動 領域을 유튜브로 넓혔다. 經濟 유튜브 채널 ‘三프로TV’에서 ‘都市野史’ 코너를 進行하고 있다. 大서울 곳곳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主題다. 유튜브 채널 出演 理由를 묻자 그가 웃으며 答했다.

    “미처 몰랐는데, 내 冊을 不動産業界 從事者가 많이 읽는다고 한다. 開發 豫定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便利하다더라. 같은 市民으로서 讀者와 視聽者에게 ‘여러분이 入住할 땅은 先住民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라고 알리는 것도 意味 있다고 생각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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