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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衆音樂家로 살아남는 法|週刊東亞

金作家의 音談樂談(音談樂談)

大衆音樂家로 살아남는 法

‘코리아 스플래시 뮤직캠프’ 參觀記

  • 大衆音樂評論家

    noisepop@daum.net

    入力 2019-10-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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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1]

    [뉴스1]

    크라잉넛은 말했다. “그래도 이런 敎育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만으로 밴드하기 正말 좋아진 거죠.” 9月 19日부터 23日까지 서울 홍대 앞 公演場 무브홀에서 열린 ‘코리아 스플래시 뮤직캠프(Korea Splash Music Camp)’에서. 

    이 行事는 釜山, 大邱, 忠南 等 地方廣域團體에서 活動하는 뮤지션을 對象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行事다. 所屬社의 도움 없이 地方에서 活動하는 뮤지션들이 2泊 3日 동안 서울에 머물며 音樂 活動에 必要한 實務敎育을 받았다. 內容은 다채로웠다. 音樂 스타일링, 海外 페스티벌 經驗談, 엔지니어와 疏通法, 報道資料 作成法, 稅金 關聯 講座 等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뉴스1, AP=뉴시스]

    [뉴스1, AP=뉴시스]

    나는 ‘밴드로 살아남기’의 모더레이터(司會者)로 參與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크라잉넛과 함께 自己 色깔을 갖고 오랫동안 밴드 活動을 할 수 있는 노하우를 묻고 答도 듣는 자리였다. 앞서 言及한 크라잉넛의 말은 “예전과 只今을 比較했을 때 밴드로 生活하기에 어떤 것 같으냐”는 質問에 對한 答이었다. 그 말을 듣고 지난 時節을 돌아봤다. 瘠薄하기 그지없던 初期 인디 밴드 神을. 1990年代 홍대 앞 風景이 눈앞에 펼쳐졌다. 

    抑壓의 時節이었고 反抗의 時節이었다. ‘록커’의 象徵이던 긴 머리에 가죽바지 代身, 머리를 뾰족뾰족 세우고 허리에 체인을 두른 펑크 밴드에게는 警察의 不審檢問이 日常이었다. 時도 때도 없이 當하는 그 檢問에 盧브레인은 初期 ‘警察이면 다냐’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當時 韓國에서 가장 자유로운 雰圍氣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홍대 앞을 지나는 行人조차 떼 지어 다니는 펑크족을 動物園 원숭이나 痲藥에 절어 있는 갱스터인 양 쳐다보곤 했다. 

    音樂界 視線도 곱지는 않았다. 實力보다 表現과 噴出이 더 重要했던 當時 펑크밴드를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莫論하고 ‘演奏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 取扱했다. 有名 메탈 밴드들은 인터뷰에서 대놓고 그들을 쓰레기라고 表現하기도 했다. 그들이 活動하던 라이브 클럽은 不法 空間이었다. 公演場이나 遊興酒店 許可를 받지 않고 公演하는 건 當時 現行法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홍대 앞이 新人들 登龍門이 된 理由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뉴스1, AP=뉴시스]

    [장승윤 동아일보 記者, 뉴스1, AP=뉴시스]

    모든 先入見과 抑壓 속에서 그들은 音樂과 行動으로 基盤을 다졌다. 크라잉넛의 ‘말달리자’,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같은 히트曲이 홍대 앞에서 一般 大衆에게로 퍼져나갔다. 밴드와 라이브 클럽 代表, 그리고 活動家가 모여 라이브 클럽 合法化를 위한 公演을 열며 캠페인을 만들었다. 새로운 흐름에 注目한 言論은 홍대 앞을 새로운 獨立文化의 空間이자, 文化解放九老 規定했다. 音樂뿐 아니라 獨立映畫, 花壇(?壇) 밖 實驗美術 等 새로운 代案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 홍대 앞이었으니 當然한 일이었다. 

    이런 흐름이 쌓이면서 홍대 앞에는 시스템과 비즈니스가 자리 잡기 始作했다. 라이브 클럽을 中心으로 돌아가던, 卽 特定 밴드가 特定 클럽에서만 公演하고 그 클럽이 所屬 밴드의 音盤까지 내던 시스템이 깨졌다. 劣惡한 라이브 클럽보다 제대로 된 環境을 構築한 專門 公演場이 하나 둘 門을 열었다. 體系的 매니지먼트와 弘報, 流通을 支援하는 레이블度 생겨났다. 모든 걸 自體的으로 解決하려는 DIY(Do It Yourself) 時代에서 主流, 또는 旣存 시스템과 協業하는 時代로 轉換이 이뤄진 것이다. 實力 없다고 손가락질 받던 演奏者들의 技倆도 꾸준히 上昇했던 건 勿論이다. 

    여기에는 外的인 背景도 있다. 디지털 音源의 登場과 함께 音盤市場이 急激히 沒落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解體됐다. 갈수록 줄어드는 市場에서 冒險은 奢侈였다. 아이돌과 발라드만이 그나마 主流 音樂界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前까지는 TV와 라디오 中心으로 活動하며 安定的인 演藝界 生活을 할 수 있던 音樂人들이 홍대 앞의 門을 두드렸다. 


    [사진 제공 · 쇼파르뮤직, 뉴스1, AP=뉴시스]

    [寫眞 提供 · 쇼파르뮤직, 뉴스1, AP=뉴시스]

    그런 音樂, 卽 1990年代였다면 이승환, 柳喜烈 같은 方式으로 活動했을 音樂人이 ‘인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公演하고 인디 레이블에서 앨범을 냈다. 主流 音樂界가 苦難의 行軍을 하는 사이, 홍대 앞에는 오히려 그 前보다 더 많은 音樂人이 데뷔하고 더 많은 팬이 公演場을 찾았다. 豐足하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分明히 1990年代와 비슷한 活氣가 이어졌다. 

    이런 흐름이 絶頂에 이른 건 2000年代 後半 검정치마,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이 연이어 登場하면서였다. 인디 1世代를 뛰어넘는 새로운 스타들의 誕生期를 世上은 ‘인디 르네상스’라 불렀다. 그리고 只今, 더는 非主流와 主流의 境界는 없어 보인다. 볼빨간思春期, 멜로망스, 그리고 十센치 等 음원 차트에서 늘 最上位를 記錄하는 이들이 있으며 革誤, 잔나비 같은 새로운 스타도 나타났다.

    持續可能한 뮤지션이 되기 위한 戰略

    [동아DB,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東亞DB, 송은석 동아일보 記者]

    그렇다면 밴드, 卽 自己 音樂을 하는 이들에게 世上은 더 좋아진 걸까. 앞서 紹介한 크라잉넛의 말처럼 一定 部分은 맞다. 活動하기도, 데뷔하기도 좋은 與件이다. 民官의 이런저런 支援 事業들도 그 與件을 탄탄하게 한다. 하지만 ‘持續可能性’에 對한 苦悶을 하자면 如前히 疑問符號가 붙는다. 

    以前과 比較할 수 없을 만큼 많은 新人이 데뷔하고, 弘報 또한 뉴 미디어 等을 통해 前에 비할 바 없이 쉬워졌다. 하지만 逆으로 그만큼 注目과 生存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너무 많은 情報는 오히려 그 價値를 낮추기 마련이고, 이는 音樂에서도 例外가 아니다. 公演을 熱心히 하고 實力이 입所聞을 타면 最小限의 注目을 받을 수 있던 時代는 끝났다는 얘기다. 아이돌도,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代案이 있다. 確實히 差別化되는 콘셉트와 장르로 데뷔하는 것이다. 록을 基盤으로 하는 게 當然한 밴드 神에서 디스코와 펑크를 내세우고 이슬람 스타일의 터번을 두른 채 登場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그 좋은 例다. 視覺的으로나 聽覺的으로나 그들은 눈에 確實히 띄었다. 韓國 밴드들을 日本에 紹介하는 한 日本 音樂界 人事는 그들을 두고 “다른 밴드들은 日本에도 다 있다. 하지만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같은 밴드는 없다”며 그들의 日本 進出을 圖謀하기도 했다. 

    또 하나는 소셜미디어 時代의 公式에 立脚해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말고 最小限의 팬덤을 構築하는 것이다. 卽 어떤 公演을 해도 자리를 채워줄 50~100名의 팬을 만들 수 있다면 持續的인 活動이 可能하다. 音樂만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잔나비가 그러했듯 音樂을 基盤으로 多樣한 콘텐츠를 生産하고 유튜브 等을 통해 팬들과 直接的으로 疏通하며 積極的으로 팬덤을 形成해가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나 音樂을 만들고 누구나 데뷔할 수 있지만 누구나 成功할 수는 없는 時代, 自己 音樂을 하려는 이들이 생겼으면 한다. 다른 콘텐츠 비즈니스들이 그렇듯, 音樂도 이제 콘텐츠 自體만으로는 成功을 圖謀하기 힘들어졌다. 重要한 건 持續可能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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