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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半 9홀은 選手로, 後半 9홀은 指導者로 새 出發|週刊東亞

週刊東亞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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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前 올림픽 女子 골프 國家代表 監督 박세리

前半 9홀은 選手로, 後半 9홀은 指導者로 새 出發

“隱退해도 필드 지킬 것”…來年에 골프아카데미 열 計劃

  • 金鍾奭 동아일보 記者 kjs0123@dong.acom

    入力 2016-09-09 16: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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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리(39·寫眞)는 요즘 全盛期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女子 골프 代表팀 監督을 맡아 116年 만에 誕生한 박인비의 金메달을 이끌어 周圍의 關心이 集中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올림픽을 밝히던 聖火가 꺼진 지 꽤 時間이 흘렀지만 박세리는 골프 關聯 行事 參席과 인터뷰 要請 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9月 5日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박세리와 어렵사리 인터뷰를 했다. 이날은 京畿 南楊州 한 골프場에서 畫報 撮影 等 다양한 日程이 豫定돼 있었다. 박세리는 “내가 金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周圍에서 많은 關心을 가져줘 感謝할 따름이다. 나는 運이 참 좋다”며 웃었다. 그는 또 “美國 女子프로골프協會(LPGA) 투어에서 숱하게 優勝하며 熱烈한 歡迎을 받았지만 이番 올림픽만큼은 아니었다. 選手 時節 받은 祝賀가 至極히 個人的이었던 反面, 國家를 代表한 이番은 次元이 달랐고 벅찬 感激을 느꼈다”고 말했다.



    自身을 뛰어넘은 ‘歲리키즈’에게 “고맙다”

    리우올림픽 女子 골프 마지막 날 박세리가 競技를 마친 박인비를 껴안으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名場面으로 꼽는 이가 많다. 時代를 뛰어넘어 韓國 女子 골프를 빛낸 過去와 現在의 傳說이 貫通하는 瞬間이었다.

    박인비는 1998年 7月 7日 US女子오픈 延長戰에서 박세리가 優勝하는 瞬間을 家族과 함께 TV로 지켜본 뒤 골프를 始作했다. 박세리가 맨발 鬪魂(洋襪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멋지게 공을 쳐낸 것)을 펼쳐 外換危機로 呻吟하던 온 國民에게 ‘할 수 있다’는 希望의 메시지를 傳達한 때였다.



    “나도 저렇게 골프로 成功하고 싶다”며 골프채를 잡은 ‘歲리키즈’ 박인비는 2008年 박세리가 優勝했던 US女子오픈에서 頂上에 올라 스타 誕生을 알렸다. 當時 19歲 11個月이던 박인비는 박세리의 大會 最年少 優勝 記錄까지 깼다. 美國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主要 言論은 ‘PAK(박세리)의 자리를 PARK(박인비)가 代身했다’며 大書特筆했다.

    남다른 因緣을 가진 박세리와 박인비. 올해 박인비는 LPGA투어 名譽의전당 加入을 確定지었다. LPGA투어에서 通算 25勝에 빛나는 박세리에 이어 아시아 選手로서 두 番째로 이룬 快擧였다.

    韓國 골프 開拓者인 박세리의 뒤를 따른 박인비는 리우올림픽에서 4大 메이저大會 타이틀에 올림픽 金메달까지 목에 거는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達成했다. 박세리는 自身의 記錄을 뛰어넘는 快擧를 이룬 박인비에 對해 “무척 고맙다. 代表팀 監督을 맡아 選手 때 못지않은 性的 負擔에 시달렸다. 그런데 人비가 모든 근심을 눈 녹듯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인비의 마음苦生을 누구보다 잘 理解한다고 했다. “人비가 올림픽 出戰을 둘러싸고 어떤 말 못 할 苦悶이 있었고 힘겨운 準備過程에서 어떤 苦生을 했는지 잘 안다. 人비가 올림픽에서 金메달 獲得을 自祝하며 두 팔을 번쩍 드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나 亦是 힘든 時節을 겪었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感激의 瞬間을 떠올리던 박세리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박세리도 2005年 最惡의 不振으로 골프를 그만둘 危機를 맞았다. “슬럼프에 빠지면서 머릿속에 1個였던 물음標가 每日 하나씩 늘었다. 訓鍊만이 藥이라고 여겨 새벽 5時에 일어나기도 하고, 죽어라 공을 쳐보기도 했지만 虛事였다. 혼란스럽고 모든 게 너무 안 돼 도망가고 싶었다. 當時 女同生이 나를 보며 ‘저러다 언니 죽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했다는 말을 나중에 傳해 들었다.” 수렁을 헤매던 박세리에게 脫出口는 특별한 데 있지 않았다. “손목을 다쳐 아예 쉬었던 게 오히려 轉禍爲福이 됐다. 골프場을 떠나 親舊들과 茶를 마시고 麥酒도 한잔하면서 차츰 나를 돌아보게 됐다. 한 가지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 自身이 未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生活에 餘裕를 찾으면서 徐徐히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즈음 어떤 팬이 ‘웃으니까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場 보고 料理하고 激勵하는 朴 監督

    리우올림픽 期間 박세리는 ‘엄마 리더십’ ‘맏언니 리더십’ 等으로 박인비를 비롯해 김세영, 양희영, 전인지로 이뤄진 女子 골프 代表팀을 이끌었다. 代表팀 監督이라는 重責을 처음 맡게 됐을 때 그는 “世界 最高 選手들에게 技術的인 部分을 얘기하는 건 意味가 없다. 큰 舞臺에서 마음 便하게 平素 實力을 發揮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말했다.

    리우올림픽에서 대한골프협회는 大會 골프場 隣近에 別途 아파트를 마련해 選手들이 最上의 컨디션을 維持할 수 있도록 配慮했다. 박세리는 올림픽 期間에 宿所 건너便 大型마트에서 每日 場을 봐 飮食과 間食 等을 장만하는 精誠을 기울였다. “나도 選手를 해봐서 아는데, 큰 大會를 앞두고는 잘 먹어야 힘을 쓴다. 美國 투어 生活 틈틈이 익힌 料理 솜씨를 發揮했을 뿐이다.” 박세리는 部隊찌개, 된醬찌개, 제肉볶음 等을 손수 料理해 選手들에게 먹였다. 新鮮한 과일을 고르려 直接 마켓을 돌아다녔다. “後輩들이 맛있게 먹어줘 고마웠다.”

    이番 시즌을 끝으로 隱退하는 박세리는 필드와 作別을 準備하고 있다. 7月 特別 招請을 받아 出戰한 US女子오픈이 事實上 告別 舞臺였다. 그는 9月 30日부터 京畿 驪州市 솔모로컨트리클럽(CC)에서 열리는 韓國女子프로골프투어人 ‘OK貯蓄銀行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直接 主催한다. 박세리는 “當分間 大會 準備로 精神이 없을 것 같다. 直接 出戰하지는 않지만 選手들이 便하게 競技에 集中할 수 있도록 大會를 運營하겠다”고 다짐했다. 10月에는 仁川에서 열리는 ‘2016 LPGA KEB하나銀行챔피언십’에서 隱退式을 치르기로 했다. 박세리는 國內에서도 告別戰을 해야 한다는 周圍 輿論에 손사래를 쳤다. “勿論 나도 플레이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出戰하면 다른 選手 한 名이 出戰하지 못한다. 내 자리를 後輩에게 넘겨 機會를 주는 게 더 큰 意味가 있다. 그래야 박세리, 박인비를 凌駕하는 選手가 나오지 않겠는가.”

    美國 집을 賣却하며 20年 가까운 客地 生活을 整理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大戰 한 아파트 같은 洞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세 姊妹 가운데 둘째인 박세리는 平素에도 韓國에 오면 父母 곁을 떠나지 않았다. 셔틀버스 타고 幼稚園에서 돌아오는 조카 마중도 姨母의 日課가 됐다고 한다. “그동안 旅行 한 番 제대로 간 적이 없다. 全 世界를 돌아다니며 選手 生活을 했지만 다음 大會 場所를 向해 짐을 싸고 떠나는 日常 속에서 不安感이 생겼다. 나 自身에게 너무 인색했다. 休暇 때도 옆에는 늘 골프채가 있었다. 이젠 마음 便히 좋은 데 놀러다니고 싶다.” 올 秋夕은 모처럼 家族과 함께 時間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고도 했다.



    “또 結婚 얘기냐”

    1998年 박세리의 LPGA투어 進出을 契機로 韓國 골프가 飛躍的으로 成長한 건 굳이 說明할 必要도 없다. 박세리도 “스포츠라는 認識조차 없던 골프에 對한 認知度가 높아졌다. 後輩들의 技倆은 놀라울 程度로 向上됐다”고 自評했다. 박세리가 어린 時節 共同墓地에서 膽力을 키웠다는 逸話는 有名하다. 라면만 먹고 金메달을 땄다는 陸上 選手 임춘애 스토리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그 얘기라면 지친다. 訛傳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CC에서 하루 終日 練習하다 집에 가려면 깜깜한 山속 샛길을 걸어야 했고, 그때 무덤을 지나친 적이 있었을 뿐이다. 下體를 鍛鍊하려고 아파트 15層을 每日 5番 以上 오르락내리락했다. 변변한 피트니스클럽 하나 없던 時節이었다.”

    박세리의 活躍 속에 體系的인 주니어 育成 프로그램이 導入됐고 國內 투어도 活性化됐다. 그래도 그는 아직 改善될 部分이 많다고 指摘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어린 選手의 訓鍊 與件은 나빠졌다. 골프場에서 練習 라운드 한 番 하려 해도 부킹이 쉽지 않고, 過多한 그린피 等 어려움이 많다. 選手들이 最上의 競技力을 發揮할 수 있는 政策的 支援이 時急하다.”

    박세리는 來年이면 어느새 40줄에 접어든다. 인터뷰 때마다 듣는 質問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또 結婚 얘기를 꺼내느냐. 하고는 싶은데,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좋은 사람 있으면 紹介 좀 해달라”며 웃었다. 박세리는 6年 사귄 男子親舊와 3年 潘 前 헤어진 뒤 紹介팅 機會도 좀처럼 없다고 했다. 박세리의 男子라는 자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選手 때는 運動을 핑계 삼아 미룬 結婚. 이젠 餘裕가 생겼으니 平生 배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박세리는 “選手 生活을 그만뒀으니 이젠 白手 아닌가. 새로운 일도 始作해야 하고 더 바쁠 것 같다”고 말한다. ?

    박세리는 來年부터 골프아카데미를 열어 새로운 人生을 걸어갈 計劃이다. 自身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最適의 場所를 찾고자 全國을 돌아다닐 豫定이다. ‘歲리키즈’들 德에 韓國 女子 골프가 全 世界 最高 水準에 오른 만큼, 앞으로 그의 目標는 韓國 골프의 未來를 책임질 有望株를 發掘해 키우는 것이다. 이番 리우올림픽을 契機로 박세리는 골프를 떠나 韓國 스포츠 前半의 現實에도 눈을 떴다고 했다.

    “非人氣 아마추어 種目 選手들은 4年 동안 올림픽만 바라보며 온갖 苦生을 다하는데 1~2分 만에 그間의 努力이 決判나기도 하죠. 메달 色깔 같은 結果만 따지는 일은 없어야 해요. 過程의 重要性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또 “나만 해도 늦게까지 選手 生活을 했지만 大部分 너무 이른 나이에 運動을 그만둔다. 어릴 때 運動에만 매달린 탓이다. 意欲을 잃기 쉽고 負傷 危險도 많다. 즐겁게 롱런하려면 무엇보다 選手 管理 프로그램이 重要하다. 携帶電話도 再充電 없이는 오래 쓸 수 없지 않느냐”고 指摘했다.

    박세리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골프 前半 9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後半 9홀을 構想하는 時期에 比喩했다. “골프의 魅力은 알수록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繼續 努力하고 硏究하게 만든다. 이제 選手 박세리는 없지만 指導者든 어떤 職銜을 갖든 필드를 지킬 것이다. 一旦 朴 監督이라는 呼稱이 마음에 든다. 다시 힘차게 10番 홀 티박스를 向해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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