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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귀로 보지 말라”|신동아

Interview

“그림을 귀로 보지 말라”

美術品 感情·復元 專門家 최명윤

  • 강지남 記者 | layra@donga.com

    入力 2016-07-27 15: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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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月 8日 최명윤(69) 國際美術科學硏究所長(명지대 客員敎授)의 硏究室을 찾았을 때 그는 眉間을 잔뜩 찌푸린 채 PC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地方의 어느 美術館이 有名 近代畫家의 展示를 開催한다는 인터넷 記事인데, 展示 主催 側에서 代表作으로 내세운 그림이 僞作(僞作)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假짜로 보는 몇 가지 根據를 들며 “나중에 어떻게 責任을 지려고…”라면서 혀를 찼다.

    崔 所長은 굵직굵직한 僞作 事件이 터질 때마다 그 中心에 있어온, 自他 公人 國內 最高의 美術品 感情 및 復元 專門家다. 2005年 李仲燮 僞作 事件, 2007年 朴壽根 ‘빨래터’ 事件 等에서 그는 問題가 된 作品들이 왜 假짜인지 科學 鑑定 結果를 公開했다가 論難을 觸發하고 民·刑事上 告發을 當期도 했다. 最近 이우환 僞作 事件에서도 警察은 먼저 그를 찾아와 押收한 그림들의 眞僞 鑑定을 付託했다. 그가 “모두 假짜”라고 發表하고 李禹煥 畫伯이 “모두 眞짜”라고 主張하자 요즘 美術界 一角에선 “다들 최명윤에게 휘둘린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의 自宅 兼 硏究所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藝術家와 畫像(畵商), 컬렉터들이 모여 사는 洞네다. 얼마 前 心散한 마음을 달랠 兼 洞네 沐浴湯에 갔더니 사람들이 두 牌로 갈려 警察 押收 그림을 놓고 “眞짜다” “假짜다” 하며 甲論乙駁하더란다. 그는 “뜨거운 물에 푹 담그러 간 것인데 얼른 洗手만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平倉洞 싸움닭

    ▼ 또 論難의 主人公이 됐습니다.

    “싸움닭 소리를 들으면 氣分이 좋지 않죠. 하지만 一一이 相對하자면 내 말이 거칠어지고, 그러면 내가 옳아도 져요. 그러니 못 들은 척해야죠.”

    이우환 僞作 事件에 이어 천경자 ‘美人圖’ 眞僞 論難까지 일자 文化體育觀光部(以下 文體部)가 僞作 根絶 對策을 推進하는 等 ‘이 참에 僞作 問題를 뿌리뽑자’는 輿論이 形成됐다. 最近 文體部 主催 討論會에서는 韓國美術品感情評價院이 鑑定을 依賴받은 作品 中 30%假量이 僞作이라는 事實도 擧論됐다.

    ▼ 國內 美術市場에 僞作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요.

    “僞作 比率이 重要한 게 아닙니다. 畫家를 代表하는 畫集에 실린 作品 中에 僞作이 있느냐가 重要합니다. 國內 美術品 圖錄은 大部分 學者들의 硏究 結果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畫商들이 그림을 팔기 위해 만든 高級 洋裝本 形態예요. 거기에 의심쩍은 그림들이 섞여 들어가 있고요. 그래서 文體部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作家의 重要 作品을 集大成한 全作圖錄) 事業을 도무지 理解할 수가 없어요.”

    文體光는 頻繁하게 불거지는 僞作 是非 等으로 美術品 感情 基礎資料 마련이 時急하다는 理由에서 韓國 近現代 美術을 代表하는 作家들의 全作圖錄 發刊을 推進 中이다. 1次 對象 作家로 朴壽根과 李仲燮이 指定됐고, 事業 施行 機關도 選定됐다. 崔 敎授는 “朴壽根, 李仲燮에 對한 先行 硏究가 이뤄지지 않은 狀態에서 全作圖錄을 만드는 것은 時機尙早”이며 “오히려 市場에서 混亂만 부추길 수 있다”고 憂慮했다.

    ▼ 只今 할 일이 아니다?

    “천천히 제대로 가자는 게 제 主張입니다. 먼저 學術 硏究를 해서 걸러낼 것은 걸러내자는 거지요. 只今 狀況에선 有名 畫集에 실리고 展示 經歷이 華麗한 그림들이 單純 취합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이 일에 關與하는 사람들 中에 過去 僞作 事件에 連累된 人物들도 있습니다. 文體光는 全作圖錄에 실을 作品을 추려 인터넷에 公開하고, 이의 있는 사람은 그때 意見을 提示하라는데, 이런 發想이 都大體 理解가 안 돼요. 近現代 美術史 學者가 없다고만 하지 말고, 學術硏究 共謀를 했으면 합니다. 여기에 應할 젊은 學者는 많아요.”


    美術, 科學, 法

    이우환 僞作 搜査팀은 崔 敎授의 이러한 感情 노하우에서 많은 도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假짜 그림을 걷어내는 것은 美術市場과 作家를 保護하는 일이기 때문에 警察의 搜査 協助 要請에 應한 것”이라고 했다.

    ▼ 搜査팀은 어떻던가요.

    “제가 ‘結婚들은 했냐’고 물었을 程度입니다. 都大體 집에는 언제 가는지, 밤낮없이 뛰어다니니까요. 脂肪으로 基準作 調査를 하러 갈 때는 새벽에 움직이곤 했습니다. 밤새 運轉하고 調査하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안쓰러워 밥 한 끼 사주려고 하면 辭讓하더군요. 熱心히 搜査하고 計座 追跡 等으로 特定人을 注目해가고…. 참 잘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美術 쪽에서는 專門性이 없으니까 眞僞 搜査와 關聯해선 時間이 많이 所要되는 等의 限界가 있었습니다. 이番에 文體部에서 推進하는 特別司法警察制度가 導入되면 이런 게 解消될 수 있을 거예요.”

    文體光는 僞作 根絶 對策의 一環으로 全作圖錄 事業 以外에도 國家美術品感情硏究院(假稱) 設立, 特別司法警察制度(以下 特司警) 導入 等을 檢討하고 있다. 특사경은 食品·醫藥品을 團束하는 食藥處 公務員처럼 專門知識을 갖춘 公務員에게 司法警察權을 附與하는 것. 崔 敎授는 “이미 文化財 分野에서는 特司警이 活動하고 있다”며 “오늘은 現代美術이지만 來日은 文化財라는 點에서 近現代美術 分野에서도 特司警이 必要하다”고 力說했다.

    ▼ ‘法美術學’을 强調하셨는데요.

    “科學 感情만으로는 說得에 限界가 있습니다. 法과 美術을 結付해 體系的으로 硏究하고 眞僞를 立證해야 蔓延한 僞作 問題를 하나씩 解決해나갈 수 있어요. 美術史, 物理學, 化學 等을 專攻한 사람들이 서로 協力하면 漸漸 더 實力이 쌓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科學感情에 必要한 裝備가 매우 高價입니다. 이런 理由에서도 國家 次元의 支援이 必要해요.”

    ▼ 僞作人 줄 모르고 팔면 罪가 안 되는 現行 法體系에서 特司警이 導入된다 해도 限界가 있지 않을까요.


    “畫商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僞作 販賣 事實이 摘發되면 ‘眞짜인 줄 알았다’며 다들 故障 난 라디오처럼 똑같이 말합니다. 그림 販賣는 一般的인 商行爲와 다릅니다. 文化를 다루는 것인데, 最小限의 工夫를 하고 責任感도 있어야 해요. 于先 特司警을 導入하고, 盲點을 차근차근 改善해갔으면 해요.”

    ▼ 特司警에 參與합니까.

    “어떤 役割을 맡는 것은 아니고 才能 寄附 次元에서 돕고 싶은 바람은 있습니다.”



    朴壽根 僞作에 큰 關心

    그는 李仲燮 事件 때 私費를 털어 顔料 成分을 分析하는 螢光分析機(XRF)를 6000萬 원을 주고 샀다. 그 돈을 갚는 데 3年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硏究室엔 復元을 기다리는 有名 畫家들의 그림이 놓여 있곤 한다.

    ▼ 美術品 復元이 돈이 되진 않나요.

    “저희 硏究所에 復元을 맡기려면 先行 條件이 있습니다. 依賴者가 該當 作品이 眞品이라는 것을 客觀的으로 證明해야 해요. 假짜를 고쳐줄 순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花郞 依賴는 없고 畫伯들이 回顧展을 準備하며 옛 作品의 復元을 付託합니다. 돈이 되질 않죠. 명지대 停年退職 後 客員敎授로 繼續 學生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 月給을 硏究所 運營에 갖다 쓰지요.”

    어느 컬렉터로부터 崔 所長에 對해 들은 얘기다. 某處에서 僞作을 接한 崔 所長은 늦은 밤 弟子들에게 電話해 裝備를 들고 오도록 했다. 달려온 弟子들에게 그는 “봐라, 이런 그림을 眞짜라고 하면 平生 責任져야 한다”고 산 敎育을 했다.

    ▼ 感情을 가르치면서 强調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되도록 眞僞에 對해 입을 열지 말라고 합니다. 함부로 僞作이라고 하면 안 되지만, 또한 함부로 振作(眞作)이라 해서도 안 됩니다. 僞作이라고 意見을 밝힐 境遇 相對가 共感할 수 있는 理由를 3가지 以上 댈 수 있어야 해요. 또한 判斷이 틀렸을 境遇 一切 辨明하지 말라고 합니다.”

    ▼ 어느 作家의 僞作 問題에 가장 關心이 많습니까.

    “朴壽根이지요.”

    ▼ 어떤 點에서?

    “흔히 마티에르라고 하는 度돌 質感의 朴壽根 油化는 1953年 國展(大韓民國美術大展) 出品作부터 나타납니다. 그런데 市場에서 認定되는 道돌質感 油畫가 600餘 點이에요. 모두 眞品이라면 1年에 60點씩 그렸다는 얘긴데(박수근은 1965年 作故했다), 畫家는 1957年 國展에서 落選하자 붓을 놓고 彷徨했고, 1963年에는 눈 手術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또 1940年代 作品에서도 道돌 質感 油畫가 나와요. 文獻 硏究 等 準備 資料는 다 갖춰놨습니다. 그림만 確保하면 한 달 안에 眞僞를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朴壽根, 李仲燮은 韓國人이 사랑하는 代表的 畫家다. 特히 올해는 李仲燮 誕生 100周年으로 그에 關한 展示가 자주 열린다. 天眞爛漫한 아이들과 물고기를 그린 그림, ‘아빠가 돈 많이 벌어 膳物 사 갈게요’라는 畫家의 便紙 앞에서 많은 이가 눈물을 훔친다. 畫家의 삶이, 그가 남긴 藝術이 大衆에게 큰 慰安이 된다면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僞作이 一部 섞여 있는 것은 눈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藝術의 價値’ 지키려면

    ▼ 僞作에 對해 꼭 그렇게 執拗해야 합니까.

    “大衆은 그림이 아니라 스토리에 感動하는 겁니다. 제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 點이에요. 學生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中 하나가 ‘그림 工夫를 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귀로 들은 것에 얽매이면 못난 그림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림에 集中하지 못하는 거죠.

    예전에 어느 國會議員으로부터 ‘그림을 感性으로 봐야지, 꼬치꼬치 따지면 그림이 보이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림 工夫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따져서 그림을 골라내고 大衆이 그것을 感性으로 보는 거지, 이거저거 다 놓고 感動한다면 그거야말로 悲劇 아니겠느냐고 했어요. 所謂 專門家라는 사람들이 그림을 귀로 봐왔기에 昨今의 問題들이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平生을 美術에 둘러싸여 지내고도 그림을 ‘藝術’로 보지 못하는 그에게 “좋아하는 畫家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火防을 물려받지 않고 復元美術을 하겠다고 했을 때 父親과 했다는 두 가지 約束을 그 對答으로 代身 내놨다. 첫째, 그림을 사고팔지 않는다. 둘째, 그림을 所藏하지 않는다. 그림에서 利得을 보는 瞬間 學者로서 客觀性을 잃기 때문이다. 그는 “損傷된 그림 하나 싸게 사서 몰래 復元해 되팔면 硏究所 運營費 몇 年値를 한番에 벌 수 있다”며 웃었다.

    ▼ 이우환 僞作 事件이 누군가의 精巧한 거짓말에 모두가 속아 넘어간 것일 可能性도….

    “僞造犯들은 警察이 押守한 그림을 보기 前에 캔버스를 매는 方法, 顔料를 만든 方法 等을 陳述했고, 그 內容이 押收된 그림과 一致했습니다. 그들 作業室에서 나온 顔料度 僞造 그림에 쓰인 것과 同一했고요. 萬若 그들이 僞作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어떻게 可能하겠습니까. 그것 外에도 여러 根據가 있지만…앞으로 次次 밝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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